놀라운 공부/수행·전생·영혼

류관순 열사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2. 5. 14:04
류관순 열사의 천도식을 해드리고

무척 숨가쁜 더위속에서 일주일을 보내었네요.

아무리 더워도 너무 찬 것 많이 드시지 마세요.

찬 음식은 수명에 해롭다고 합니다.

이열치열로 더위를 물리치셨던 옛사람들의 지혜를

깊이 되새겨보며 현명한 여름나기를 해야겠어요^^

 

내일은 저희 도장에서 천도식이 있습니다.

일주일동안의  주 운영을 마감하면서

천도식과 관련한 자료 하나를 여러분께 보내 드립니다.

가슴속 깊이 맺힌 원과 한을

바르게 풀어 낼 수 있는

참 삶의 주인공이 되시길 또한 바라는 마음입니다.

 

상제님 진리와 관련하여 궁금한 것이나 도움이 필요한 것이 계시면

언제라도 저에게 메일 보내 주세요^^

부족하나마 상제님 진리를 바르게 만나실 수 있도록

진실하게 노력하는 새터가 되겠습니다.

019-594-1691 남 필 namsimp@hanmail.net

◈ 류관순 열사의 천도식을 해드리고




본 내용은 태을주 수행과 도공을 하면서 체험한
기적, 신도(神道)세계 그리고 깨달음의 생생한 구도체험담입니다.




도공을 통해 느끼게 된 류관순 열사의 한



류연자 / 서울광화문도장

 

전 그동안 신앙을 하고 도공을 했지만 전혀 도공의 맛을 느끼지 못했고
도공이 되지 않아 도공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한번은 도공을 하는데 한쪽 팔이 올라가더니 원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한 성도님이 보시더니 한 손만 올리지 말고
양팔을 올려서 기(氣)를 한번 타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은 그렇게 해보았습니다.

정말 기를 따라 가다보니 많은 동작들이 자유롭게 나왔고,
도공을 시작하면 꼭 끝맺음도 있었습니다.


그 다음날,
도장에서 도공을 하는데
갑자기 제가 한 손을 들더니 원을 그렸고,
태극기를 흔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3.1절 노래도 생각나고
산에서 봉화 올리는 장면,
태극기를 들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일본 놈들이 총을 겨누는 모습들이 떠올랐고,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동상이 보였습니다.

순간 류관순 열사가 생각났습니다.

류관순 열사는 저에게는 할머니 뻘 되시는 분이시기는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오신 분이 류관순 열사이시면 만세를 불러달라고 생각했더니
정말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쳐 들었다가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도공을 시작하는데 당시 고통스러웠던 모습들이 재연되는듯 했습니다.
이리 저리 엎어지고 넘어지고. 그러면서도 눈물은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래 전에 저의 아버님께서 강원도에 가서
류관순 열사의 동생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어렵게 살아가고 있었고
당대 절손되어 양자를 들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일이 문득 떠오르면서
그렇다면 제가 류관순 열사의 천도식을 올려 드리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자 천도비는 얼마를 들이고, 천도식은 어떤 방식으로 해야되겠다는 생각이
흡사 누가 알려 주는 것 같이 머리 속에 입력되어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철야 도공을 하려고 4배를 올리는데
문득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류관순 열사의 동상이 생각나더니
정말 예쁜 옷을 해드려야 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다시 혼자 일어나서
마음껏 그분의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 도공에 몸과 마음을 맡겼습니다.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고, 똑바로 태극기를 들고 서있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 장면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데 이번에는 넘어지고 쓰러지고 하면서
흡사 고문당할 때의 동작과 체험들이 반복되면서 너무도 아팠습니다.

그러기를 장장 4시간 동안이나 계속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눈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다시 200배를 하고 수행에 들어갔는데
그 전까지는 태극기를 흔들거나 고문당하는 동작들이 나왔는데,
이날은 드디어 상제님께 정중히 4배를 드리는 동작이 나왔습니다.

그러고 난 뒤 또 아픈 장면들이 재연되었습니다.
그날은 몸도 마음도 너무 힘이 들어서 이제 천도식을 해드릴테니
그만 해원하시라고 두손 모아 기도드렸습니다.

그후 천안에 있는 류관순 열사 추모각으로 전화를 해보니
제가 도공을 시작한 10월 12일이 바로 류관순 열사가 순절한 날이어서
추모제를 드렸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일을 전후해서 저를 찾아와
천도식을 원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천도식을 위한 정성수행 입공치성에 들어갔습니다.



저는 류관순 열사의 직접적인 후손은 아니었기에
류관순 열사에 대해 사실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천도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류관순 열사의 집안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류관순 열사의 부모님은 일본군에 의해서 바로 살해되셨고
관옥 오빠도 학교에서 만세운동을 하다가 바로 붙잡혀 죽음을 당했고
집은 불태워졌습니다.

그리고 남은 두 동생이 있었지만
어렵게 살다가 자손을 두지 못한 채 돌아가셨습니다.
예전에 아버님이 만났던 류관순 열사의 동생이 그 중 한 분이었습니다.

그런 사실들을 알고 나니 류관순 열사를 위해
나라에서는 기념관도 지어주고 추모각이며 동상도 세워주고 훈장도 내려줬지만
정작 당사자인 류관순 열사한테는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류관순 열사께서도 이화학당에 들어갈 때 선교사에 의해 학교를 다녔고,
지금 천안 병천에 있는 류관순 열사의 기념관을 관리하고 계신 분도
먼 후손이었지만 기독교 신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기일날 제삿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을 것이고,
또 상제님 전에 가고 싶어도 천도를 해 줄 후손도 마땅히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지만
인간적으로 보면 너무도 불행했고 집안도 참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류관순 열사께서 저를 찾아와 해원을 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지난 11월 18일(음력 10월 4일)에 정성수행이 끝나고
마침내 류관순 열사의 천도식을 올렸습니다.

천도식 때 폐백으로
평상복 한 벌과 고운 한복 한 벌을 정성껏 지어서 올려드렸습니다.

한 성도님께서 천도식 때 보셨던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분향명촉을 하는데 왼쪽 촛불에 불을 켜는 순간, 류관순 열사가 보였답니다.
류관순 열사께서 제가 올린 평상복을 입어보고 다시 한복을 입더니 앉아 있더랍니다.

그리고 ‘훔치 훔치’하며 태을주 수행이 시작되자마자 춤을 추며 너무 좋아하는데
지금까지의 경직된 모습은 사라지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류관순 열사는 울다 웃다 하면서 자기 집안 이야기를 하더랍니다.

자기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렇게 죽었는데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자손도 끊어져 집안이 다 망했다고 합니다.

본인이라도 상제님께로 가야 부모님이 편안해 하시기에
이번에 이렇게 해원을 하고 상제님께로 가게되었지만,
부모님께는 너무 죄송스럽다고 합니다.

자기가 여자인데다 직계 후손도 없어서 참 서럽고,
차마 부모님까지 천도를 해달라고는 염치가 없어 말을 못하겠다고 하면서
한없이 울더랍니다.

그래도 류관순 열사가 저를 찾아온 이유는
조상 선영들끼리 합의를 통해 자기가 정해지고
그래서 같은 성씨인 저에게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치성이 끝나고 돌아갈 때 자기는 해원을 해서 이제 올라간다고 하면서
모습은 사라지고 기운만 저의 어깨로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폐백을 장만할 때 제 치수에 맞추면 될 것 같아서 그렇게 옷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떠나면서 폐백 옷을 제 몸에 대어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고 합니다.

저는 신명계를 못 봐서 참 답답했지만
도장 성도님을 통해 하나하나 얘기를 전해들으면서
인간세상이나 신명세상이나 똑 같구나하는 것을 또 한번 절감했습니다.
정말 할 수 있다면 그 부모님까지도 천도를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수많은 조상님들이 해원을 하고 자손을 상제님 도문에 들이고자
엄청난 노력들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깊이 깨달았습니다.

‘류관순 열사’하면 전국민이 추앙하고 있기에 어찌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그 분도 한 인간이기에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불쌍하십니다.

초등학교 때 ‘3.1절 노래’를 부를 때
다른 아이들은 ‘류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하고 노래할 때
저는 ‘류관순 할머니를 생각합니다’ 하며 불렀는데
그때 철없이 그렇게 불렀던 기억이 나서 무척 부끄러웠습니다.

이번에 부디 열사님께서 상제님께로 해원천도 되시어
이제 한 나라가 아닌 전 세계인류를 위해 다시 한번 그 의기를 되살려
저와 함께 증산도의 사역꾼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제가 그분의 후손이든 아니든
암울한 시대에 태어나셔서 온몸을 다 받쳐 나라를 위해 일심을 다하신
17살 소녀의 그 충의와 의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저 또한 류관순 열사의 그 정신을 본받아 천하사 일에 전념하겠습니다.

이 천도식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상제님 태모님 태사부님 사부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아! 유관순 누나



천도식에 참석한 권호성님의 글

 

1919년 4월 2일(음력 3월 1일)
해뜨는 동방의 조선 땅, 아우내 장터에서
대한독립만세 소리가 터진다

수많은 군중들의 흥분된 얼굴과,
일제히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는 장쾌한 모습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만세소리에 당황한 무장 경찰관과 헌병들이 군중을 향하여 몰려온다.
그러나 만세 부르는 소리는 아랑곳없이 천지를 진동한다.

만세 부르는 학생을 일본 헌병이 환도(環刀)로 내리친다.
국기 든 손이 거의 끊어질 지경이다.

쓰러졌던 학생, 엉금엉금 기어서 왼손에 국기를 집어들고,
다시 한번 힘차게 만세를 부르다 쓰러진다.

이 광경을 본 군중의 분노는 더욱 끓어올라,
장터는 온통 독립 만세 소리와 군중의 물결로 뒤덮였다.
이렇게 그 날 해가 지기 전에 아오내 장터는 붉은 피로 물들여 졌던 것이다.

한편 주동자를 찾던 경찰은
이 엄청난 일이 16세의 가냘픈 소녀가 주도한 것을 알고
아연실색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이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유관순 열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녀는 현 이화대학, 당시 이화학당의 학생으로
1919년 3월 1일(양력) 파고다공원에서 만세를 부르고는
다시 고향 천안 땅으로 내려가 위험을 무릅쓰고 오늘의 거사를 준비하였던 것이다.

이후 일본 헌병에게 잡힌 소녀는 법정에서 검사에게 걸상을 던져
법정 모독 죄가 가산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 이송된다.

이에 아랑곳없이 소녀는 옥중에서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세를 부르니
또 다른 감방에 있는 모든 독립투사들이 이에 화답하여 일제히 "만세"를 불렀다.
이는 마치 대 합창단의 합창과도 같았다.

드디어 서울 서대문 형무소 지하실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문과 혹형에 그 어린 몸이 갈래갈래 찢기우고,
애석하게도 1920년 10월 12일 순국의 영혼이 되시니,
그 때가 아직 활짝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 나이 17세였다.

* 나중에 이화학당의 미국인 교장이 시신을 인도 받았을 때,
석유상자 속에 버려진 그녀의 시신은 7토막 나 있었다고 한다.

소녀는 말하였다.

"내 손톱이 빠져나가고, 내 귀와 코가 잘리고,
내 손과 다리가 부러져도 그 고통은 이길 수 있사오나,
나라를 잊어버린 그 고통만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라고.

그리고 그의 마지막 유언은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이 소녀의 유일한 슬픔입니다." 라고 했다.

한나라의 주권침탈로 인한 자유의 구속이
16세 소녀의 가슴을 이토록 뜨겁게 만들었던 것이다 !

그런데 이 글을 쓰면서 왜 눈물이 자꾸 나오는 지 모르겠다.
나답지 않게...

나라는 되찾았으나 거대 강국의 이해관계로
아직도 우리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반 없는 우리의 현실

어찌 보면 식민지 이전보다 더 초라한 모습으로 풀죽은 모습으로
소녀의 유혼(幽魂) 앞에 고개를 들 수 없을 지경에 이른 대한민국.

21세기를 맞이한 이 시점에도
한반도는 흑돌(북)과 백돌(남)로 분명히 나뉘었고,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의 "한반도 따먹기 시합"에서
남은 남대로, 북은 북대로 끌려 다니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이후
한반도를 둘러싼 미 중 일 러 4강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암울한 이 시대에..
온몸을 다 받쳐 나라를 위해 일심을 다하신
17세 소녀의 그 충의와 의기를 다시 회복하기만 한다면
우리민족의 미래도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난, 생각한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2001년 11월 28일 서울 증산도 광화문 도장...
많은 성도들이 모여서 천도식을 올리고 있다.

정성스럽게 마련한 음식을 진설하고
평상복 한 벌과 고운 한복 한 벌을 정성껏 지어서 폐백으로 올리고
성도들이 나란히 젯상 앞에 서서 사배하고, 엎드려 독축을 하고 있다.

그러나 평소 천도식과는 달리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또 모신 신위가 한 분뿐이다.

그런데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이름.. 류관순 열사가 아닌가!

그렇다 류관순 열사의 천도식이다.
그런데 오늘 천도식과 관련하여 눈물겨운 일화가 있다.
지금 그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광화문도장에는 류관순 열사의 손녀 뻘 되는 신도(류연자)가 있다.
그녀는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성으로
최근 매일 새벽수행과 저녁수행을 꾸준히 하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는 도공수행 중 색다른 경험을 하게된다.

처음에는 도공수행 중
한쪽 팔이 저절로 올라가더니 원을 그리는 것이었다.
다음 날은 양팔이 氣의 이동에 따라 많은 동작이 자유롭게 나왔다.

그 다음날은
갑자기 한 손이 원을 그렸고, 태극기를 흔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3.1절 노래도 생각나고 산에서 봉화 올리는 장면,
태극기를 들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일본헌병들이 총을 겨누는 모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동상이 보였다.

순간, 그녀는 류관순 열사가 생각났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지금 오신 분이 류관순 열사이면
만세를 불러 달라고 생각했더니
정말 그녀도 모르게 두 손을 번쩍 쳐들었다가 내리는 것이었다.

* <참고적으로> 수행이 제대로 되면 현재의 동물적인 인간에서
점차 영적으로 성숙된 인간의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신명체험을 하게 되고,
더 경지에 오르면 신안(神眼)이 열린다.

그리고 다시 도공을 시작하는데
당시 고통스러웠던 모습들이 재연되는 듯 했다.
태극기를 흔드는 동작, 이러 저리 엎어지고 쓰러지고,
고문당할 때의 동작과 체험이 반복되면서 고통까지 수반되었다.
그러기를 장장 4시간이 계속되었다.

이후 같은 현상이 계속되자 몸도 아프고 너무 힘이 들어서
이제 천도식을 올려 드릴테니 그만 해원(解寃) 하시라고 두 손 모아 기도를 드렸다.

그래서 그녀는 서둘러 천도식을 위한 정성수행에 들어갔고
이것이 광화문도장에서 류관순 열사의 천도식을 거행하게 된 이유이다.

사실 류연자씨는 직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류관순 열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몰랐고
오히려 천도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류관순 열사의 부모는 만세운동 당시 일본군에 의해서 바로 살해되셨고
오빠도 학교에서 만세를 부르다 바로 붙잡혀 죽음을 당했고, 집은 불태워졌고,
남은 두 동생이 있었지만 유랑걸식을 하다 자손을 두지 못한 채
돌아 가셨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천도식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재주인 류연자씨는 천도식 당일 열사의 모습을 보지 못했으나
천도식을 올린 후 도장 성도님의 이야기를 통하여
류관순 열사의 모습을 듣게 되었다.

류관순 열사께서는 폐백으로 올려드린 평상복을 입어보고
다시 한복을 입더니 앉아 있더란 것이다.

태을주 수행이 시작되자마자 춤을 추며 너무 좋아하는데
지금까지의 경직된 모습은 사라지고 발랄한 소녀의 모습이었으며.
울다 웃다 하면서 자기 집안의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자기가 독립운동을 하다가 이렇게 죽었는데
부모님을 생각하면 너무도 가슴이 아프고 너무 죄송하다고 한다.

그리고 류관순 열사가 그녀를 찾아 온 이유는
조상 선영들끼리 합의를 통해 같은 성씨인 그녀에게 접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님까지 천도를 해달라고는 염치가 없어 못하겠다고 하면서
한없이 울더라는 것이다.

류관순 열사,,,,
전국민이 추앙하고 있기에 어찌 보면 화려해 보이지만
그 분도 한 인간이기에 개인적으로 너무나 불쌍하시다.

나라에서 기념관도 지어주고 추모각이며 동상도 세워주고
훈장도 내려줬지만 과연, 이게 그 분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매년 기일 날 제삿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했을 것이고,
천도를 해줄 후손도 없다.

기념관도 좋고 추모각도 좋지만
차라리 따뜻한 제삿밥 한 그릇이 더 실질적이 아닌가? (*)
 

'놀라운 공부 > 수행·전생·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마들의 회의록  (0) 2007.02.05
재미있는 카르마 이야기  (0) 2007.02.05
정말 윤회가 있는가  (0) 2007.01.14
회원님의 영적 체험담  (0) 2007.01.13
수행의 자세  (0) 2007.0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