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증산도 개벽문화

베트남을 밝힌 상생의 빛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12. 4. 13:03

베트남을 밝힌 상생(相生)의 빛

출처 : http://blog.daum.net/wing103/13283900 

 치열했던 베트남 전쟁이 끝난 지도 벌써 30여 년이 흘렀다. 이미 한-베트남이 수교한지도 15년이 됐고 호치민과 하노이 등에 10만 가까운 교민이 거주하며 사업 등을 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농촌에 시집오는 신부 중에 베트남 처녀가 제일 많을 정도로 교류가 활발하다. 이처럼 한국, 베트남 양국이 노력한 결과 베트남전의 상흔이 많이 희석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 꺼풀을 벗겨보면 아직도 양국에 전쟁의 아픔이 곳곳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큰 걸음은 아니지만 이번에 베트남전의 상처가 아직도 생생히 남아 있는 지역을 저희 증산도 상생봉사단이 닷새에 걸쳐 다녀왔다. 그곳은 베트남에서도 오지인 중부 쾅나이성(省) 빈손현(縣) 빈호아 마을이다. 

 이 지역이 베트남전의 대표적 희생지역이 된 것은1966년 12월 5, 6일 이틀에 걸친 미군 폭격과 한국군 작전으로 당시 2000명의 빈호아주민 중 430여명이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을 입구에는 당시 희생자 430명의 명단이 빽빽하게 새겨진 위령비가 그날의 처참함을 증언하듯 세워져 있다.

12월 5일, 첫 날 작전으로 희생된 37명은 대부분 어린이와 노인들로 지금도 둥근 공동무덤에 묻혀 있다. 둘째 날인 6일에도 빈호아 지역에서 작전은 계속돼 400여명이 희생됐다고 한다.

◆ 430여 명의 희생자 명단이 새겨진 위령비 

 총 430명 이상의 희생자 중에는 168명의 어린이, 88명의 여성, 22명의 아이 그리고 21명의 임신부가 포함되었다고 한다. 위령비에는 422명의 명단이 있는데 희생자가 430명인 것은 뱃속의 아이까지 포함했다는 설명이다. 전쟁의 광기에서 저질러진 비극이라고 치부하더라도 강간당한 여성들과 불에 소사(燒死)된 아이들 그리고 목이 잘려 희생된 노인의 영령들 앞에서 대한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죄스러움은 모든 생각을 멎게 했다. 지금도 매년 현지에서 희생된 영령들을 기리는 제사가 12월 5, 6일에 거행된다고 한다.

  상생봉사단은 수술에 앞서 상극의 시대가 빚은 전사 영령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간 제물을 올리고 전쟁 희생자들의 원과 한을 풀어주고자 해원(解寃) 치성을 올렸다. 이를 멀찌감치 지켜보고 있던 지역 주민들이 향(香)과 술을 가지고 와 자연스레 함께 제사를 올리게 되었다. 간단한 제사 후 봉사단 일행은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심정으로 서둘러 개안수술을 시작했다. 대상은 베트남 전쟁 희생자들이었고 제목은 상생의 개안 수술이었다. 이 수술은 올해 3월 라이따이한 등 5명의 베트남 분들을 초청, 개안 수술을 해드린 프로그램의 연장선이다. 그러면 시간이 좀 지났지만 이번(10월 21일-10월 25일)에 베트남 빈호아 마을에서 펼쳐진 상생의 개안수술의 활동을 간략히 소개 한다. 

    

◆ 37명의 희생자가 묻혀 있는 공동무덤(좌) 56명의 희생자가 묻혀 있는 공동무덤 

 

이번 베트남 전 희생지역을 찾아 펼친 개안수술은 우리와 재작년부터 이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는 베트남 농민 신문사의 노력과 요청이 컸다. 본 봉사단은 이번 베트남 전 희생지역 개안수술을 위해 몇 달 전부터 상당한 준비를 하였다. 효과적인 수술을 위해 수술 대상자를 선정하고 원만한 수술을 위해 수술 장비와 운반 등도 점검하였다. 특히 이번수술은 해외 그중에서도 사회주의 국가에서 하는 수술이라 파트너 신문사뿐만 아니라 한국주재 베트남대사관, 베트남 한국 영사관 협의도 했다. 하지만 수백kg에 이르는 수술 장비와 10명 이상의 적지 않은 인원의 이동은 상당한 어려움을 수반하였다.

   본 봉사단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한 건 21일 점심 무렵, 이번 활동은 역사적인 장소에서 한국인으로 처음 벌이는 의료봉사였기에 신문 방송도 동행했고 그만큼 부담도 많았다. 따라서 일정도 쉽지 않았다.

 첫날은 하노이에서 국내선 비행기로 갈아타고 중부의 항구도시인 다낭에서 여장을 풀었다. 피곤에 지쳐 첫날이지만 모두는 저녁 후 곧 잠자리에 들었고 이튿날 일찍, 쾅나이성 빈숀현으로 향했다. 다낭에서 빈손현까지 100km가 넘는 먼 거리였기 때문이다. 3시간가량을 장비 등을 싣고 달려 빈손현에 도착, 그 곳 부군수 돈 덩(47세) 씨를 만났다. 그는 6살 때까지 희생지역인 빈호아 마을에 살아 당시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돈 덩 씨의 안내로 빈호아 도착, 초입에 있는 빈호아 초등학교에 들러 동행한 기자가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에 대해 묻자 한 초등학생이 “그때 한국군은 강하고 잔악했다”고 또렷이 말했다. 교실 벽에는 한국군 탱크와 베트남 탱크가 서로 싸우는 낙서가 세월의 때에도 선명했다. 

 서둘러 병원으로 돌아와 수술 장비를 조립하는데 한국에서 안과의사가 왔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어느 새 상당수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대부분 60-70대 노인들로 베트남의 많은 곳에는 안질환 환자가 많다. 또한 베트남 전 당시 무차별 폭격에 의해 눈을 다친 주민들이 오랜 기간 동안 제때 수술을 받지 못해 실명이 된 경우도 많다. 베트남은 안과기술도 많이 낙후되어 있고 경제적으로도 어려워 농촌지역에서는 노인들뿐 만이 아니라 젊은 환자들도 쉽게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 진료를 기다리는 백내장 할머니들과 환자를 검진 중인 송기영 원장님 

 금세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이 수십 명에 이르렀고 송기영 원장님(증산도 상생봉사단, 충주 밝은 안과)이 간호사와 함께 정신없이 한 분 한 분을 검진하였다. 결과는 총 17명이 수술이 가능한 것으로 판정되었다. 수술이 불가능한 분들 중에는 생후 6개월 만에 베트남전에서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누이를 잃은'덩 응이아'(42세)씨도 있었다. 꼭 최선을 다해 광명의 빛을 보게 해드리려 했지만 이미 각막이 심하게 손상되어 어찌해 볼 수 없는 사실에 송원장님도 무척 안타까워하였다.

"우리가 몸을 안 쓰면 굳는 것처럼 눈도 안 쓰면 자꾸 줄어들어 못 쓰게 됩니다. 아무 것도 해 줄 게 없네요. 너무 늦었어요. 해 줄 게 없어 가슴이 안타깝습니다."

 

◆ 덩 응이아씨(42세) 

 안타까운 마음에 준비해 간 홍삼을 선물해 건네자 그는 일상의 일인 듯 크게 실망하지 않고 이렇게 와서 검진을 해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다며 연신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였다. 시각장애인들 일행을 함께 생활하는 적십자 회관에 모셔다 드리니 십 여 명의 일행은 서로 팔짱을 끼고 서로를 징검다리 삼아 능숙하게 안으로 들어가며 즐겁게 웃는다. 서로 위하는 마음은 어느 가족보다 뜨거웠고 비록 시력은 잃었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도 열려 있는 것이 피부로 전해왔다. 

 덩 응이아 씨와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었지만 수술을 받은 17명의 환자들은 모두 시력을 회복하여 환하게 앞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은 수술만 제때 잘 받으면 충분히 시력을 회복할 수 있는 백내장 환자들이었다. 한편 굳이 수술을 받지 않아도 되는 분들에게는 안경이나 약을 처방해 드렸다. 

 원래 빈호아 마을 보건소에서 수술을 하기로 하였지만 상황이 너무 좋지 않아 빈손현에 있는 종합병원에서 수술을 하였다. 종합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의료 장비도 우리의 60,70년대 수준이고 수술 의약품도 거의 없었다. 그리고 전기 전압도 일정치 않아 수술이 중단되기고 하였다. 심지어 수술 중에 모기도 물기도 하였다. 빈호아 마을의 보건소는 더 열악하여 하루에 약 20명이 이용하는 보건소(의사 1명, 간호사 3명 근무)이지만 기본적인 의약품조차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 개안 수술에 빈호아 보건소 의사도 어머니를 모시고 와 수술을 받고 환하게 웃으며 연신 감사했다.  

 이 때문에 ‘남이 잘 되어 그 덕으로 나도 잘 된다’는 모토의 증산도 상생 봉사단은 내년 연말쯤 빈손현 보건소를 조산소, 병실, 의약창고, 휴게실 등을 갖춘 최신식 병원 신축과 첨단 의료 장비를 지원하는 문제를 빈손현 관계자와 논의 하였다. 또 빈손현 뿐만 아니라 인근의 빈하이, 빈푸 지역 주민들도 이용할 수 있도록 차량을 지원할 계획이다. (약 1억 원 으로 추산되는 병원 건립비용은 증산 상제님 성탄절 기념 상생의 바자회와 후원금 등을 통해 마련할 예정이다) 

 빈호아는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에 의해 큰 피해를 본 마을이지만, 이제 빈호아 마을 주민들의 마음에 베트남 전쟁의 앙금은 조금씩 희석되고 있고 새로운 기대로 부풀어 있다. 이번 상생 봉사단의 작은 활동이 그 분들에게 따스한 마음으로 꼭 전달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그 따스함이 남아있는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내년에 베트남 오지에 상생의 빛을 발하는 병원건립으로 피어났으면 한다.

◆ 내년에 상생 봉사단에서 개축할 예정인 마을 보건소

카페 이름 : 증산도의 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