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주 백상루
저 백상루는 참으로 아름다운 누각이다. 하지만 이 상인은 알맞은 철에 놀러 오지 않았으므로 그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듯이 모든 사물에는 제각기 알맞은 때가 있으며, 만약에 알맞은 때를 만나지 않는다면, 저 백상루의 경우와 다름이 없게 되는 것이다.
여우 겨드랑이 털로 만든 가죽옷은 천하의 귀한 물건이지만 무더운 5월에 그것을 펼쳐 입는다면 가난한 자의 행색이 되며, 팔진미(八珍味)가 제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일지라도 한여름에 더위 먹은 사람을 구하지는 못한다. 황금과 구슬, 진주와 비취는 세상 사람들이 보석이라고 일컫는 물건이지만, 돌보지 않아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 방안에서 그런 황금과 옥으로 치장을 하고 앉아 있다면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농사짓는 집의 여인이 짧은 적삼에 베치마를 입었으면서 그 위에 구슬과 비취로 만든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면 비웃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아름다운 명성과 좋은 관직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러나 얻을 만한 때 얻는다면 좋은 것이겠지만 얻을 만한 때가 아닌 때에 정당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면,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전한(前漢)의 세상에서는 유협(遊俠)을 숭상하였고, 전국시대의 경춘(景春)은 장의(張儀)와 공손연(公孫衍)을 대장부로 간주하였다._1) 그들의 명성도 명성이라 할 수는 있지만 그 때는 다름 아닌 한나라가 쇠퇴한 때요 전국(戰國)시대였다. 송(宋)나라 소흥(紹興) 시절에는 금(金)나라와 강화를 맺자는 주장에 찬동하는 자들이 높은 벼슬자리에 올랐고, 경원(慶元) 연간에는 주자(朱子)를 그릇된 학문이라고 공격하는 자들이 요직에 두루 포진해 있었다. 그런 자리가 좋은 자리이기는 하지만 그 때는 바로 진회(秦檜)와 한탁주(韓탁胄)가 행세하던 시기였다._2) 저들은 자신들이 훌륭하다고 생각했겠지만, 군자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썩은 쥐보다도 못하여 병든 올빼미가 한 번 놀랄 거리도 되지 못한다._3)
무릇 이러한 것들이 다 겨울에 백상루를 구경한 소금장수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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