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절초와 상처
글 / 강변마을
거실 윗목에 자리잡은 구절초 한 송이는 저절로 핀 게 아니다.
오가다 유독 눈에 띄어 자제 해야 하는 마음 다잡지 못하고 꽃자루 채로 꺾어 온
나의 죄 탓 임에도 누구 한 사람 그 죄 탓하는 이 없더니 며 칠을 견뎌 내고도 하얗게 부신다고
오히려 대견한 눈초리로 시시탐탐 견눈질에 사랑 독차지로 자리차지하고 있었다.
한 나절 내내 거실 복판까지 찾아오는 가을햇살은 하얀 구절초 한 송이를 어루고 어루더니
나 만큼 큰 실수를 범하고 말았나보다.
꺾어진 상처 아물기는 커녕 아픔 삭힌 듯
햇살이 지나간 자리에 꽃 잎파리 하나 고개 떨구더니 시들시들하다 결국 무너져 버렸다.
주둥이가 아주 작은 난장이 꽃병이
구절초가 먹다 남은 멀건 물 한 모금을 거실 바닥으로 엎질려지던 날은
대굴대굴 구르며 비어있는 허전함을 하소연하듯 허공을 뚫고 나가는 소리를 가슴으로 들렸다.
가을이 깊어간다고 담벼락 귀뚜리도 낭낭한 노래로 부르고 또 부르는 날
그 햇살은 여전하지만 빈 난장이 꽃병은 없어지고 부시도록 하얀 구절초도 가을속으로 사라졌고
전등불 켜 놓은 것 처럼 환하던 노란은행 잎은 은행바람을 일으키며
서두는 아장걸음을 총총 따라 나서는 풍경조차도 쓸쓸하게 보였다.
허해진 마음 부등겨 안고 뒷꿈치를 질질 끌면서 끌끌롭게 변한 목소리로
텅 빈 거실을 홀로 어슬렁 거리며
지금의 나는 엊그제 희귀불명이라는 혹 하나를 떼어 낸 목덜미에
손바닥 만한 하얀 반창고가 붙어있고 손바닥만한 게 아닌 내 몸 전체를 둘둘 감아 놓은 것처럼
유독 표나게 눈에 띄였고 그 언저리로 가지 말아야 할 손이 근질거릴때마다
어루만지다 쓸어내리다 볼 품 없는 모습이 볼상스러워 종일을 끙끙거려야 했다.
구절초 한 송이로 살가웁게 맞이한 올 가을이
하얀 반창고가 붙은 자리를 시시탐탐 노리며 혹~혹~하며
가을 마무리를 해야하는 꼴로 되고 보니
말라버린 구절초 만큼이나 초라하게 변화는 것 같아
쓸쓸함이 이 가을깊어가는 것 보다 더 깊어간다.
그 꼴이 처랑하게 보이는지
잊고 지냈던 동화 혹부리할아버지 이야기 한 구절로 웃음보따리를 풀어놓던 녀석도
새근새근 고른 숨소리가 들리고
어쨌거나 혹부리할아버지가 아닌 혹부리할머니가 된 이 가을에 남긴 작은 상처 하나로
먼 훗날 이 가을을 기억하며 목덜미를 어루만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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