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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9. 7. 8. 15:10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에바 일루즈 지음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에바 일루즈 지음 / 강주헌 옮김

스마트비즈니스 / 2006년 6월 / 390쪽 / 15,000원

 

 

▣ 저자 에바 일루즈(EVA ILLOUZ)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교수이다. 저자는 한 번도 빠짐없이 ‘오프라 윈프리 쇼’를 시청했고, 100여 편에 이르는 그 토크쇼의 대본과 오프라 윈프리 관련 기사를 분석했으며, 오프라가 창간한 잡지 『오 매거진』과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에서 선정한 도서, 토크쇼에서 소개한 자기계발서적, 나아가 오프라 윈프리 웹사이트에 올라온 수백 여 편의 게시물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오프라 윈프리의 모든 것’을 파헤쳤다. 지은 책으로는 『낭만적 유토피아의 소비: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과 사랑(Consuming the Romantic Utopia: Love and 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자본주의 문화(The Culture of Capitalism)』 등이 있다.

 

▣ 역자 강주헌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공부했다. 언어학 박사로서 한국외국어대학교와 건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서 주목받고 있으며, 숨어 있는 좋은 해외 도서를 소개하는 일도 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2003년에는 ‘올해의 출판인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옮긴 책으로는 『문명의 붕괴』, 『내 인생을 바꾼 스무 살 여행』, 『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당신 안의 기적을 깨워라』, 『가스통 갈리마르』, 『하룻밤에 읽는 경제학』, 『지식인의 책무』, 『권력자들의 만찬』, 『행복의 패러독스』, 『마음의 회복』, 『우체부 프레드』, 『바빌론 부자들의 돈 버는 지혜』, 『선물』 등 100여 권에 이른다.

 

▣ Short Summary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했지만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여자,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팔아서 얻은 성공이다. 자신의 삶이 토크쇼의 게스트들의 불행과 닮았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자신의 삶을 상품화하여 스타가 되었다는 점에서 오프라는 기존의 토크쇼 진행자들과 차별화 된다.

 

오프라의 쇼는 이질적인 주제들을 다루지만 ‘고통받는 자아’라는 기본의도를 갖고 있다. 실패와 고통은 오프라에게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며 그녀가 청중과 대화하는 상징적 도구이다. 규범적 행위에 속한 것과 자아에 관련된 것이 뒤엉키는 형식은 오프라의 쇼에서 소개되는 이야기의 특성인데, 그녀는 현대인의 자아를 옥죄고 있는 혼란을 남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고, 그런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해 준다. 또한 오프라의 쇼는 심리세계를 다루는 이론, 언어, 조직이 복잡하게 뒤엉킨 문화로 해석되는 치유 문화가 언어적 행태를 갖춘 것이다. 그녀의 치유문화는 언어를 매개체로 사용해서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 간다. 오프라는 치유자의 역할을 자임하며 다양한 형태의 고통이 제기한 의미를 다루면서 자기 변화를 위한 기법과 자기계발 이야기를 제시한다.

 

결론적으로 오프라는 실패한 자아를 짓누르는 악마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 악마를 떨쳐낼 수 있는 상징체계에 대한 바람을 관례적 형태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문화의 이런 기본적인 면과 자신을 비상하게 관련시킴으로써, 오프라는 단순히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화현상이 되었다.

 

▣ 차례

프롤로그 - 오프라 윈프리와 오프라 현상

 

1.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여자

오프라 윈프리를 이해하는 열쇠 /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정체성 / 흑인의 유산, 역경을 이겨내는 불굴의 의지 / 소명의식의 뿌리, 흑인 교회 / 생물학적 관계로 강요되어서는 안 되는 가족 관계 / 가족폭력 / 사회적 경계를 넘어 / 고백함으로써 자유를 얻다 / 텔레비전의 치유력 / 다이어트를 하는 여자,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

 

2. 고통을 승화시킨 오프라 윈프리의 매력

새로운 충격, 뚱뚱한 흑인 여성의 토크쇼 / 특별한 이야기가 이슈를 이기다 / 사회자와 게스트 사이의 경계를 허물다 / 눈물과 포옹으로 시청자를 배려하다 / 출연자에게 출연료를 주지 않고 삶의 가치를 선물하다 / 일상의 신비로운 매력 / 평범한 일상을 부각시키다 / 상처받은 자아에서 의미를 찾다 / 일상을 뒤틀어버리다 / 청중의 감정을 숨김없이 폭발시키다

 

3. 실패와 고통으로 승화된 카타르시스의 미학

고통받는 사람들의 공통적 코드 / 실패라는 질병을 이겨내는 힘 / 슬픔은 어떻게 단련되는가 / 연민으로 기록한 삶의 보관소 / 북클럽-오프라 현상의 또 다른 뿌리 / 슬픔과 고통이 피어낸 꽃

 

4. 오프라와 시청자 그리고 어울림

변화-삶을 향한 끊을 수 없는 갈증 / 토크쇼-변화의 촉매 / 변화를 위한 몇 가지 방법들 / 스스로 변화를 찾아내게 하다 / 삶을 변화시키려는 의지 / 거울요법 / 자기계발을 위한 하이퍼링크 / 오프라 윈프리, 자아를 치유하다 / 오프라 제국의 영향력

 

5. 세상을 구하는 참모습, 고통과 자기계발

고통의 치료제를 온 세상에 퍼뜨리다 / 쇼로 인생을 변화시키다 / 고통받는 사람들의 공동체

 

6. ‘오프라 윈프리 쇼’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의 뿌리 / 아프리카계 여성들의 뼈아픈 고통 / 희생당한 집단의 일상 / 희생의 삶을 뛰어넘어 / 흑인의 고통 / 심리적 방황과 다르지 않는 야만적 폭력 / 오프라 윈프리의 자기계발정신이 바꾼 문화 / 세상을 바꾸는 또 다른 힘

 

7. ‘예의’, ‘평등’, ‘공정함’으로 오프라를 비판하라

불순한 비판을 향하여 / 오프라 윈프리의 도덕적 상상력에 대한 비판

 

오프라 윈프리, 위대한 인생

에바 일루즈 지음 / 강주헌 옮김

스마트비즈니스 / 2006년 6월 / 390쪽 / 15,000원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해 가장 높은 곳까지 오른 여자

 

오프라 윈프리의 성공이 남다르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모가 뛰어난 것도 아니고 유명한 영화에 출연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사실 그녀의 성공은 대중 앞에서 잔혹할 정도로 솔직하게 말하고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팔아서 얻은 성공이다. 오프라는 토크쇼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삶을 포장해서 상품화 시켰고, 이런 방식으로 게스트의 삶까지도 포장했다. 따라서 오프라의 전기는 두 가지 점에서 그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하나는 그녀가 자신의 방대한 문화적 행위에 불어넣은 의미를 파악할 실마리를 제공하는 텍스트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가 대중 소비용으로 의도적으로 교묘하게 포장된 문화적 산물이란 점이다.

 

오프라의 전기를 구체화시키는데 관계한 수많은 사회력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이 그녀가 아프리카계 미국인 공동체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남부의 흑인 교회에서 성장한 오프라의 몸에 밴 흑인문화는 무척 종교적이었다. 흑인교회는 추상적인 개념보다 흑인을 고통에서 구하겠다는 도덕적 행위로서 사회정의를 요구하고, 감성과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강조하는 독특한 문화의 장이다. 그래서 오프라의 토크쇼에는 ‘흑인 설교자의 수사적 화법이 배인 언어를 사용해서 다양한 형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겠다.’는 소명의식이 보인다. 오프라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보다 문화와 윤리에 집중함으로써 보편적 호소력을 갖는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때문에 오프라는 스타와 영적 리더의 경계선상에 있다. 이런 복합적인 면이 그녀가 다른 토크쇼 사회자와 다른 점이며, 그녀만의 페르소나를 규정짓는 특징이 된다.

 

오프라가 다른 스타들과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는 아름다움과 젊음을 과시하는 ‘비주얼 아이콘’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프라에게는 삶이 곧 브랜드이다. 그녀는 텔레비전 사회자라는 역할을 벗어나 개인적인 삶까지 허물없이 공개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기법이 동원된다. 하나는 스튜디오를 개인적 삶과 진정한 자아를 연장시킨 공간으로 꾸미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녀의 삶과 게스트의 삶이 갖는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식으로 인터뷰하는 방식이다. 그녀의 삶이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유는 그녀가 자수성가한 남성들의 신화를 여자의 몸으로 이뤄낸 사람이면서, 성공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비밀’을 틈나는 대로 밝혔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성공이야기는 유명한 남성들의 것과 무척 다르다. 오프라는 성폭행을 당해서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성폭행을 당했고 그런 사실을 감추지 않고 공개했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그녀의 성공은 문젯거리로 점철된 힘겨운 삶을 이겨낸 치유의 승리로 비춰진다. 따라서 오프라의 경우 스타로서 자아를 만들어간 과정이 스타로서 자아를 해체하는 행위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오프라의 전기에서 가장 인상적인 사건들은 텔레비전과 철저히 뒤얽혀 있다. 오프라 윈프리 쇼가 처음으로 방영된 1986년 그녀는 학대받는 여성을 다룬 프로그램에서 중년의 여인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말하자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오프라는 광고방송을 요구하고 그 여인을 팔로 꼭 껴안았다. 그리고 자신도 아홉 살에 사촌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처럼 오프라가 자신의 비밀(다이어트의 어려움, 성폭행, 유산, 자긍심의 결여)을 폭로할 때마다 시청률이 몰라보게 올라갔고 ‘오프라 윈프리 쇼’는 게스트와 사회자가 서로 비밀을 털어놓는 토크쇼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고백이 있은 뒤 실제로 오프라의 삶이 변화했다는 점이다. 그녀는 예전에 비해 날씬해졌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매력적으로 변했고, 성공적인 삶을 누렸다. 그녀는 텔레비전이 삶을 바꿀 수 있고 실제로 바꾼다는 사실을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토크쇼에서 가장 이상적인 게스트가 되었다.

 

 

고통으로 승화된 오프라 윈프리의 매력

 

오프라가 토크쇼라는 흔한 장르의 코드를 어떻게 조작해서 문화와 윤리의 아이콘으로 성장했는지 살펴보자. 오프라 윈프리 쇼는 우리를 도덕적 의문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명확한 스타일을 띤다. 달리 말하면 좋은 삶과 좋은 자아를 규정하는데 관계된 도덕적 딜레마를 제기하고 해결하려 한다. 그렇다고 이 스타일이 오프라의 스타일이라고 등식화 할 수 없다. 이것은 필 도너휴가 발명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프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전략을 구사해서 자신의 토크쇼를 현재와 같은 문화적 형태로 발전시켰다. 따라서 필 도너휴 쇼와 오프라 윈프리 쇼를 비교하면 오프라의 장르가 갖는 흥미로운 특징을 찾아낼 수 있다.

 

두 토크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도너휴가 이슈를 강조한 반면 오프라는 이야기를 강조했다는 점이다. 그녀의 토크쇼는 스토리텔링이란 전통적인 장르에 속하며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가 이끌어내는 이야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듣는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도록 조절된다. 두 쇼에서 소개되는 분위기도 달랐다. 도너휴는 사람들이 일상의 삶에서 겪는 문제에 철저히 초점을 맞춘 반면에 오프라는 공공의 장에서 논의되기에는 사소한 주제를 선택했다. 도너휴에 비해 오프라는 여성의 일상적 삶을 괴롭히는 사소한 문제들을 더 잘 알았고, 정체성이 형성되고 왜곡되는 무수한 방법들에 초점을 맞춰 그 문제들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오프라의 차별성은 모든 토크쇼의 사회자들 중에서 게스트와 가장 유사하면서도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에 있다. 즉 그녀의 삶이 게스트들의 불행과 닮았다는 점에서 유사하고, 자신의 삶을 상품화함으로써 스타가 되었다는 것이 다르다. 평범함과 남다른 카리스마가 복합된 모습은 오프라를 도너휴와 구분 짓는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텔레비전에 비친 영적인 리더십에 스타라는 허울을 벗어버린 평범한 여자의 모습이 복합되면서 오프라는 식역(의식과 잠재의식의 경계선)적인 지위를 갖는다.

 

오프라 윈프리는 여성의 관점에서 본 가정사와 일상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그녀의 토크쇼가 남달라 보이는 이유는 가정이란 영역을 뒤틀어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 게스트들은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낮에는 주부이고 헌신적인 어머니이지만, 매일 밤 그들은 집을 나가 매춘부로 일합니다.” 주제를 소개하면서 오프라는 이야기의 범위를 가정으로 좁히며 시청자들을 가장 가까운 공간으로 안내하고 게스트가 지극히 평범한 사람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평범한 공간에 불안하고 걱정스런 사건을 투영시킨다. 오프라의 기법은 정상과 일탈의 보편적인 뜻을 뒤흔들어 버리는데 있다. 일상의 삶에서 아주 사소한 면을 과장하고 낯설게 변모시킴으로써 오프라는 일상적인 규범의 변덕스런 면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따라서 일탈이 정상으로 변하고, 일상적인 것이 낯설게 보인다.

 

오프라의 쇼는 당연하게 여겨지던 도덕적 범주의 근거를 뒤흔드는데 즐거움이 있는 듯하다. 예를 들어 근친상간을 한 아버지와 딸의 자기변명을 듣고 난 후에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해서 적절한 판결을 내리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처럼 그녀의 쇼는 우리에게 도덕적 상상력의 경계를 확장시켜주는 일종의 훈련이다. 규범을 파괴한 사람들이 육성으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우리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도덕기준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된다. 토론과 논증을 통해서 궁극적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고 말하면서, 오프라의 쇼는 모든 규범과 규정, 구분은 임의적인 것이며 우리가 스스로 선택한 개인적 관점에서 그 규범들의 근거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고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실패와 고통으로 승화된 카타르시스의 미학

 

오프라의 쇼가 이질적이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뒤에는 하나의 기본적인 의도가 감춰져 있다. 문화적 행위를 해석할 때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아야 할 것은 바로 그 의도이다. 나는 ‘고통 받는 자아’라는 주제가 오프라의 미로 같은 텍스트에 들어가기 위한 입구라고 생각한다. 오프라의 쇼를 제작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다양한 이유로 곤경을 겪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속 시원히 푸념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실패와 고통은 오프라의 신상이야기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이며, 그녀가 청중과 대화하는 주된 상징적 도구인 셈이다.

 

오프라의 프로그램은 전문가들의 합리적이고 규격화된 전문적 언어로 고통을 보여주는 대신에, 특정한 이야기들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는데 그친다. 물론 그 이야기들은 전문가들의 조언과 진료가 필요한 사례들이다. 이런 이야기들로 다루어진 주제로는 실패한 자아(예: 식욕부진증, 외모에 대한 열등감), 폭행당한 자아 (예: 가정폭력, 성폭력), 파경에 이른 관계(예: 여성이 남성에게 버림받는 이유, 이중의 삶을 사는 남편), 막다른 운명에서 비롯되는 불행 (예: 에이즈), 사회문제(예: 아이와 총, 10대 미혼모) 등이 있다.

 

틀짜기(framing)는 어떤 이야기의 주제가 갖는 특별한 사회적 의미를 청중에게 부여하는 문화적 도구이다. 예를 들어 생존을 위한 이야기로 틀이 짜인 근친상간에 관한 이야기는 연민을 불러일으키지만, 사회적 문제로 틀이 짜이면 분노를 끌어낸다. 그럼 오프라가 요구해서 만들어 가는 신상 이야기의 구조는 어떤 걸까? 예를 들어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오랫동안 관계를 가진 딸을 둔 어머니가 게스트로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다루어지는 이야기는 딸과 어머니를 맺어주는 의무에 관한 도덕률의 위반, 그리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자아를 위협하는 위반에 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이 이야기에는 도덕적 코드(딸이 어머니의 남자친구와 성관계를 가졌다)와 치유적 코드(이 사건이 어머니의 심리적 건강을 위협한다)가 뒤엉켜 있다. 규범적 행위에 속한 것과 자아에 관련된 것이 뒤엉키는 형식은 오프라의 쇼에서 소개되는 이야기들의 차별적 특성이다. 규범의 위반으로 자아가 타인이나 자신에 의해 상처받게 될 때, 도덕률은 치유적 코드를 만들어낸다. 오프라는 자아가 그런 상처에서 벗어나 회복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며, 이런 이야기의 소급구조를 미래지향적 구조로 전환시킨다.

고통이 오프라의 중심축이라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현대인의 삶은 이혼, 실업, 정치적 박해 등 위험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안전한 관계를 맺으려는 욕구가 더 커진다. 그러나 가족이나 가까운 관계에서 경험하는 섬뜩한 삶의 역경들은 종종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렵게 느껴지며, 현대 미국문화는 고통의 문제를 다룰만한 역량을 갖춘 문화의 장을 갖고 있지 못하다. 따라서 일상의 삶이 갖는 섬뜩함이 수행적 언어행위와 대중적 관례를 통해 다루어지고 완화되는 상징적 장이 무척 중요하다. 오프라는 후기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자아을 심각하게 옥죄고 있는 혼란을 남다른 방식으로 무대에 올리고, 그런 혼란을 극복하는 방법을 제시해준다. 모순되는 강력한 상징성을 통합시켜 강한 믿음을 만들어낼 수 있는 상징체계를 종교라 한다면 오프라는 종교적 상징성을 구체화시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오프라와 시청자 그리고 어울림

 

상업텔레비전에서 고통의 문제를 자주 다루자, 많은 문화 전문가들은 “토크쇼는 이익추구를 위해서 인간의 불행을 이용하고 조작하는 냉소적 행위”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런 관점에 따라 오프라 쇼에도 비난이 가해지기는 하지만 오프라는 시청자들에게 전대미문의 신뢰와 충성도를 끌어냈다. 그녀는 고통의 이미지에 덧씌워지는 의혹을 극복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분노와 연민을 기초로 한 제국을 세울 수 있었다. 그녀의 문화적 재능은 곧 도덕적 재능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녀는 착취라는 의혹을 벗어나기 위해 우리 도덕성의 경계지대를 교묘하게 이용했다.

 

오프라는 토크쇼에 대한 도덕적 비판을 기꺼이 인정하며, 그런 비판을 수용해서 토크쇼의 구성을 바꾸며 도덕적 기준을 높였다. 1993년 평론가들의 비판에 도너휴는 “우리는 시청자를 끌어들이려고 봉급을 받는다.”라고 반박한 반면, 오프라는 “토크쇼라는 장르가 기능장애에 따른 넋두리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이다. 그래 나도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오프라는 자신을 도덕적 인물로 비추고 청중과 더불어 도덕적 책임을 공유하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주목받는 스타가 되었다.

 

게스트들은 메시지를 널리 확산시키려는 욕구에서, 자신의 생활방식을 합리화시키려는 욕구에서, 혹은 유명해지고 싶은 욕구에서 토크쇼에 출연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다른 동기, 즉 출연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를 실질적으로 바꾸어보려는 바람이 덧붙여져야 할 것이다. 고통과 마찬가지로 자기계발은 오프라가 자신의 토크쇼에 부여한 중요한 의미 중 하나이다. 고통의 고백은 이야기 구조와 도덕에서 한 가지 중요한 목표를 갖는다. 즉 이야기를 변화의 완성으로 종결지으려는 목표이다.

 

오프라가 이상적인 게스트로 소개했던, 홀로코스트 기간에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여인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여인이 강제수용소에서 겪은 잔혹행위가 소개된 후, 거의 40년 전에 그녀가 당시 변호사(현재 남편)에게 보낸 편지가 낭독되었다. 클라이맥스에 이르자 오프라는 그 피해자가 남편의 지극한 사랑을 통해 고통을 이겨내고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선언했다. 이 단편적인 이야기에 오프라의 쇼가 알리려는 도덕적 원칙이 집결되어 있다. 강제수용소에서의 수난(발단), 불확실한 미래(귀찮은 문제), 그녀가 고통을 극복하도록 돕겠다는 장래 남편의 약속(치유), 약속이 이루어지고 목표가 성취되면서 해결(종결)에 이른다. 두 연인 사이의 사적인 대화였던 편지를 소개함으로써, 오프라는 ‘전쟁이야기’를 ‘가족이야기’로 교묘히 대체하고 집단의 비극을 개인의 비극으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대규모 재앙에 대한 개인의 승리를 주제로 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오프라는 스튜디오에 있는 참여자와 토크쇼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에게도 변화를 요구한다. 그녀는 시청자에게도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라고 독려하기 위해 능동적 수법을 사용한다. 예컨대 성폭행 당한 여자들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다룬 토크쇼에서 오프라는 시청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프로듀서인 수잔에게 말했습니다.‘오늘 우리는 사람들이 폭력적인 남자에게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 합니다.’라고….” 오프라의 전형적인 어법이다. 토크쇼의 제작팀을 언급함으로써 자신과 시청자 사이에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구축한 것이다. 따라서 오프라는 집에 있는 청중에게도 일상적으로 대화하듯이 말할 수 있고, 그 덕분에 신뢰와 배려에 기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 오프라는 가족의 변덕스럽고 불확실한 면을 여성에게 부각시키면서, 여성이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자아, 즉 건강하고 자립적인 자아뿐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생각은 오프라의 세계관을 이루는 중심축인 동시에, 그녀가 게스트나 시청자와 관계를 구축하는 방법의 열쇠이기도 하다.

 

 

세상을 구하는 참모습, 고통과 자기계발

 

거의 10년 만에 오프라와 그녀의 토크쇼는 범세계적인 문화형태가 되었다. 또한 고백형태를 띤 토크쇼가 세계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기면서, 오프라 윈프리 쇼는 일반화된 현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고통과 자기변화의 이야기가 어떻게 문화의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로 확대될 수 있을까? 내 생각에는 오프라가 토크쇼에서 방영된 신상 이야기의 공식을 끊임없이 쪼개고 개인화, 표준화시켰기 때문인 듯했다. 그녀는 개인이나 삶의 이야기를 끌어들이는 능력을 통해 대규모 시장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제 오프라 윈프리 자체가 범세계적인 제국이 되었지만 그녀는 토크쇼를 여전히 단편화, 개별화시킨다. 따라서 오프라는 텔레비전을 과거 어느 때보다 개별 가정과 접촉하는 테크놀로지로 만들어감으로써 텔레비전의 활용가능성을 혁명적으로 바꿔놓았다고 말할 수 있다.

 

오프라 쇼의 역할은 미국사회에서 심리학자가 떠맡은 역할이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녀의 쇼는 심리세계를 다루는 이론, 언어, 조직이 복잡하게 뒤엉킨 문화로 해석되는 치유문화가 하나의 언어적 행태를 갖추고, 심지어 이제는 자아, 고통, 치유는 그런 언어 형식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치유적 지식에 대한 오프라의 믿음은 세 가지로 나타난다. 첫째는 그녀의 쇼는 치유를 위한 참고서적을 널리 알리는 동시에 치유를 시행하는 주된 통로이다. 이 형식은 오프라가 게스트들의 감정에 대해 토론해서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전문가들을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둘째, 오프라 윈프리는 정체성은 끈질긴 자기관리와 내적 성찰로 이루어질 수 있고 마땅히 그렇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치유의 기본 원리에 근거하고 있다. 이 원리는 소비시장의 구조적 특징과 일치한다. 치유행위와 소비행위는 끝없는 불만과 자아를 만들어가려는 시지프스적 욕망에서 시작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치유문화는 언어를 매개체로 사용해서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고 타인과의 관계를 만들어간다. 오프라의 문화 프로젝트는 고통을 주제로 한 자전적 이야기를 수행할 뿐 아니라 치유담론과 치유기법을 통해서 자전적 이야기를 다시 쓰는 것이다.

 

치유이야기 구조는 개개인의 특이한 경험을 추상적이고 범세계적인 치유언어와 결합시키는 강력한 문화적 장치이다. 게다가 이것은 매일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달해야 하는 텔레비전의 특성상 안성맞춤일 수 있다. 치유 이야기는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불행에 적절한 이름을 붙일 수 있고, 그런 불행은 새로운 이야기를 끝없이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치유적 이야기는 제작비를 크게 투자하지 않아도 되고 한결같이 새로운 사건이면서도 표준화된 이야기 구조로 쉽게 가공할 수 있으므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무척 유리한 위치를 갖는다. 그러나 치유적 이야기가 갖는 가장 뚜렷한 특징은 토크쇼의 게스트와 참가자, 시청자, 웹사이트 방문자를 서로 연결시켜 공통된 문화 모체를 형성해서 삶을 표준화시킨다는 것이다.

 

오프라 자신의 이야기와 게스트들의 신상이야기는 웹사이트, <오 매거진>, 북클럽의 소설, 토크쇼에서 소개되는 자기계발 서적 등 다양한 문화수단을 통해서 이야기 수단으로 매일 제공된다. 그녀가 사용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와 미디어에 소개되는 이야기들은 스타일과 의도가 놀라울 정도로 획일적이다. 여기서 그녀의 놀라운 성공을 이해하는 단초가 되는 문화적 패러독스가 발견된다. 오프라는 특이한 고통을 말하고 개인의 목소리를 직접 소개하면서 각양각색의 이야기를 제공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규격화된 문화형태로 가공해버린다. 그녀의 문화행위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각양각색의 지역 문화를 연결시키고 경계를 허물어뜨린 까닭에 오프라의 문화행위는 공간도 없고, 맥락도 없는 행위가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쇼는 세계를 하나로 포괄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개인의 경험을 탈맥락화시켜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 범세계적이라 할 수 있다.

 

 

‘오프라 윈프리 쇼’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오프라는 현대의 자아가 겪는 불행을 대중에게 보여주기 위한 매개체로 자신의 토크쇼를 이용했고,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지난 200년 간 억압에 대응하기 위해서 문화적 전략으로 발전시켜온 도식까지 동원했다. 종종 지적되듯이 오프라는 어떤 연예인보다 미국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현대 여성이 직면한 문제를 다룬 그녀의 토크쇼가 아프리카 미국 여성의 사회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 특히 흥미롭다. 그녀가 와해된 가족이란 문제와 가족 내에서 일어나는 위해와 폭력을 즐겨 다루는 이유는 흑인 여성의 가족에 대한 부정적 경험에 뿌리를 두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그녀의 쇼는 오락물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흑인가정의 실질적이고 해묵은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와해된 가정이 일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이런 와해가 가난 이외에 다른 이유로 지금도 모든 사회계층과 인종집단에서 쉽게 확인되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문화행위자보다 오프라 윈프리는 해체 상태에 있는 가족을 체계적으로 보여주었고, 지난 30년 동안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 새로운 유형의 가족을 정당화시키려 애썼다. 가족의 기능장애를 보여주는 동시에 그런 문제를 껴안고 살아가거나 변화시키는 방법을 제시하는 문화행위는 시청자에게 두 방향에서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하나는 그들의 가족이 비정상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는 느낌을 덜어 주면서 정상적 삶을 회복하도록 도와주는 효과이며, 다른 하나는 사회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우월감을 안겨주는 효과이다.

 

오프라가 만들어낸 장르는 가족의 내부와 외부에 동시에 있는 위치를 차지하면서 사적인 공간과 공적인 공간의 경계를 넘나든다. 역사적으로 흑인 여성은 자신의 가족과 백인 고용자의 가족 간에 분열된 존재였다. 그 결과 그들은 외부인의 시각에서 백인 가정의 삶을 속속들이 관찰할 수 있었다. 완전히 다른 가정을 오갔기 때문에 흑인 여성은 가족을 지탱하는 규범과 규칙에 동화되어 익숙해질 수 있었고, 관찰자의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었다. 이런 위치는 오프라가 택한 입장이기도 하다. 오프라가 “당신이 태어난 곳이 당신 가정이 아닌 때가 많습니다. 당신은 가족을 만들어갈 수 있습니다. 당신을 받아들이는 세상 사람들의 품에서 가족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고 자주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상황은 우리 의도와 계획에 저항하고 대항하는 세상의 방식을 뜻한다. 한편 전략은 우리 의도에 대한 세상의 저항에 대항하고, 그 저항의 뜻을 헤아려서 극복하고 수용하는 일정한 방식을 가리킨다. 오프라는 대처전략(coping strategy)을 자신의 쇼에서 관례처럼 사용하였으며, 그 전략들은 곤경을 겪는 자아의 조건을 해결하기 위한 문화적 자원으로 승화시켰다. 즉흥적인 말솜씨로 대화 위주의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끌어가는 능력은 오프라의 돋보이는 재주인데, 자유분방한 그녀의 화법은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아프리카 문화는 스토리텔링과 구두성이란 특징을 갖는다. 오프라는 이런 점에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

 

오프라는 흑인영성이란 것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듯하다. 흑인영성은 기본적으로 구두로 전해지는 이야기 형식, 즉흥성, 특정한 답을 제시하지 않는 융통성 있는 커뮤니케이션 방법에 근거를 둔다. 그녀의 토크쇼는 부름과 응답으로 또한 청중과 공연자 사이의 의식적 상호작용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소설가 게일 존스의 표현대로 “흑인 문화는 언제나 듣는 사람을 중요시하며 의식”한다면, 오프라 윈프리가 중심인물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게스트 사이의 관계, 게스트와 전문가 사이의 관계, 시청자와 게스트 사이의 관계를 틀짜기 한다고 해서 놀라울 것은 없다.

 

 

예의, 평등, 공정함으로 오프라를 비판하라

 

토크쇼를 가장 설득력 있게 비판한 마이클 샌들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이야기를 하는 존재이므로, 이야기가 없는 세상에 저항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갈구한 나머지 일부는 토크쇼의 고백 같은 덧없는 것에서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 조건을 이해하고 민주적 원칙에 근거해서 시민의 삶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확신과 자제력을 고취시켜주는 사람에게서 우리시대의 희망을 찾을 수 있다.” 그럼 오프라는 자신의 주장대로 우리조건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가?

 

오프라는 치유자의 역할을 자임하며, 다양한 형태의 고통이 제기한 의미를 다루면서 자기변화를 위한 기법과 자기계발 이야기를 제시해 주었다. 그녀는 고통을 대중화시킨다고 비판받으면서도 자기계발을 독려한다는 점에서 칭찬 받지만 내 생각에는 오프라의 자기계발을 위한 문화적 행위가 가장 큰 문제인 듯하다. 오프라는 고통 받는 사람이 혼란에 휩싸여 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고통에 대한 오프라의 한결같은 반응, 거의 기계적인 반응 덕분에 우리는 그 반응을 재사용해서 기운을 북돋워주는 경험으로 승화시키게 된다. 하지만 기초 자체가 흔들리는 삶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그 경험은 모호할 수밖에 없다.

 

오프라의 세계관에서 자아는 과거의 불행에서 언제나 구원받는다. 그러나 꺼림칙한 문제가 있다. 실패한 삶이 실패한 자아를 가리킨다면, 그리고 강한 자아는 의지와 치유의 힘으로 언제나 실패를 이겨낼 수 있다면 우리의 불행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결국 우리 자신뿐이다. 따라서 우리가 불행을 자기변화의 긍정적 이야기로 재활용하지 못한다면 죄의식에 시달리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자책감에 휩싸이기 십상이다. 결국 자아가 자신의 모든 불행을 짊어지고, 또 그 불행을 극복하기 위한 의미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도덕적 상상력은 다양한 삶의 조건과 역경을 이해해서 공감하는 능력, 인간 행위의 모순적 속성을 이해하는 능력을 뜻한다. 그러나 자기계발에 대한 오프라의 집착은 두 방향에서 그녀의 도덕적 상상력을 약화시킨다. 첫째 오프라가 시청자에게 전하려는 동정심을 약화시킨다. 자기계발이란 족쇄 때문에 우리는 감정적 운명을 끊임없이 만들어 가는 시지프스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실패한 삶을 너그럽게 용서하기 힘들다. 둘째 자기계발정신이 모든 형태의 도덕적 고통을 학습과 개선의 기회로 바꾸라는 동일한 명령으로 환원시키기 때문에 자기계발정신은 모든 고통을 똑같이 취급하면서 각각의 이야기에 담긴 개성을 없애버린다. 결국 고통을 민주화시키려는 오프라의 행위가 호소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힘겨운 불행의 불안한 모습을 정복된 고통으로 기계적으로 뒤바꾸려 하는 데 있다.

오프라의 토크쇼에서 소개되는 많은 상처의 치유가 실효성이 있는지는 단언할 수 없다. 이 연구는 이런 의문을 평가하기 위한 도구로 시도된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은 오프라가 실패한 관계와 자아를 짓누르는 악마가 무엇인지 설명하고 그 악마를 설득시켜 떨쳐낼 수 있는 상징체계에 대한 바람을 관례적 형태로 발전시켰다는 점이다. 문화의 이런 기본적인 면과 자신을 비상하게 관련시킴으로써 오프라는 텔레비전을 일상적 삶의 일부로 만드는데 크게 기여했고, 자아를 갖는 과제에 관여하는 텔레비전의 몫을 크게 높여 놓았다.

 

본 도서요약본은 원본 도서의 주요 내용을 5%정도로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원본 도서에는 나머지 95%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보다 많은 정보와 내용은 원본 도서를 참조하시기 바라며, 본 도서요약본이 좋은 책을 고르는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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