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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치우천황묘 중국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다 !!!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9. 7. 28. 11:28

출처 : http://chiwoo.org  치우학회

중국측 기록인
- <사기> '오제본기'를 비롯,
- <산해경> '대황북경',
- <전국책> '진책',
- <술이기>
등 여러 사료에서 치우는 탁록전투에서 황제에게 죽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 우리 측 기록에는 한 부장인 '치우비'가 공을 탐내어 서두르다가 죽었다고만 기록하고 있을 뿐
치우는 탁록에서 죽지 않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의 기록에도 죽었다는 탁록지역에 무덤이 있다는 기록은 한 곳도 없고,

<한서> 지리지를 비롯한 여러 책에
'동평군(東平郡) 수장현(壽張縣) 관[또는 감]향성(關[또는 監,  ]鄕城) 안에 그 무덤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위치가 현재 어느 곳이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았으며,
'다시 살아날까봐 시체를 여러 토막으로 내어 묻었다'는 전설과 함께 무덤도 여러 곳이 나타났다.

먼저 산동성 지역에는 현재의 문상현 남왕진 서쪽 400m에 있는 무덤은
사지(四肢)를 묻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산동성 양곡현 수장진(陽谷縣 壽張鎭)과 하남성 대전현(臺煎縣)성 사이
[또는 양산현 개하향 서남쪽 0.5km 지점]에 치우의 머리가 묻혀있는데,
5대 시기에 황하의 제방이 터져 남왕호라는 호수가 평지로 되면서
치우의 무덤도 땅에 묻혀버려,

현지 주민들이 제사지내기 위해 원래 유적에 치우총을 새로 지었다고 하나
현재는 들 한가운데 약간의 높은 곳이 그곳이라고 알려져 있을 뿐이다.

그리고,
거야현 현성(巨野縣 縣城) 동북 2km(또는 4.5km) 되는 곳에
치우의 몸이 묻힌 치우견비총(蚩尤肩脾塚)이 있는데,

현재 들판에 있는 마을 어귀에 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구능이 있고,
그 위에 집(과거 태산의 산신을 모셨다고 함)을 지어놓았으며,
그에 따른 비도 세워져 있었다.

전체의 높이는 과거에 7장에 달했으며 매년 10월 제사를 지냈다고 하나,
흙을 파서 인근 밭에 뿌리느라 낮아져 지금은 3-4m로 낮아져 있으며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


한편,
탁록지역에도 4개의 무덤이 있는데,

탁록중화삼조연구회에서는

동치우분(하북성 회래현 이관영향 팔괘촌 : 懷來縣 李官營鄕 八卦村)의 2개 무덤은 가짜,

서치우분(탁록현 보대진 요자두촌 부산자락 :  鹿縣 保垈鎭 窯子頭村 釜山자락)은 견비총이라고도 하는
'치우의 병기와 소머리(치우족의 상징)'무덤으로 인정하고,

남치우분(탁록현 반산진 탑사촌 :  鹿縣 礬山鎭 塔寺村)을 진짜 무덤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이는 치우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중에,

산동성 문상현 정부에서는
여러 책에 기록되어 있는 동평군 수장현 감향성의 위치를 문상(汶上)현 남왕(南旺)진으로 보고
현재 복원원공사를 진행되고 있다.

여러 곳의 치우천왕 무덤 전설 중 이곳이 가장 정확한 것으로 인정을 한 것이다.

치우총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1997년, 연변대학 중일한관계사 연구소 역사학과 학술고문 송호상교수를 포함한 문상현 고고탐색대는
9월 18일-28일까지 치우총에 대해 구체적인 색출작업을 벌여 확인하고,
무덤과 사당의 복원을 건의하였는데 예산문제로 늦추어져,
올 6월 중순에 착공을 하게 되었다.

공사의 내용은,
먼저 치우의 무덤을 복원하고 비석을 세우는데,
봉토의 밑바닥은 벽돌을 쌓고,
봉토의 높이는 10미터로 하며,
담장을 빙둘러 치고,
동서의 길이는 50미터,
남북의 길이는 60미터로 한다.

그리고 3칸의 사당을 복원하고,
대문을 세워 제사지내는 곳을 만들며, 미화작업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 복원중인 치우천자총 >







이에 따라
치우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중국의 탁록삼조문화연구회,
산동성 문상현 정부와 묘족 등 중국을 비롯,
일본과 한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관심이 높아질 전망이라고 한다.

이 중 가장 뒤쳐진 우리나라에서도 더 많은 연구가 이어져야 할 것이다.

 

 

<<@@@치우천황은 구려족이며 배달천국의 14대 천황입니다 .. 이분의 무덤이 발견 된것은 결국 배달국이 존재 했다는것인데요

이 묘가 중국이 일본처럼  없는걸 만들지 않았다면 당연히 고조선 이전의 국가인 배달국을 인정해야합니다.

배달국이 왜 우리 민족이냐면. 배달국의 마지막 환웅의 자손이 고조선을 건국했기 때문이죠

그리고 사실 홍산 문명은 고조선의 문명이라기 보다는 배달국의 문명이라고 보시기에 맞습니다.

왜냐하면 고조선은 BC2333년에 건국했지만 홍산 문명은 BC 4500년에서 BC 2000년에 걸쳐 거의 출토 되어지고 있기 때문이죠.   홍산문명은 그당시 국가가 아니고서야 만들어지기 힘든 문물이 계속 출토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과연

BC 2333년 이전의 홍산 문명은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여기서 배달국의 존재를 없애버리면 역사의 공백이 생기게 됩니다. 이 공백을 채워줄 것은 역시 배달국밖에 없는거 같은데요 ...

좀 더 많은 연구와 관심으로 밝혀 내었으면 하는게 저의 바람입니다.

그리고 이 치우천황까지 요새 중국인들이 황제 헌원과 치우 천황 염제 신농을 자신들의 시조라며 우기고 있는데요

치우 천황까지 중국이 가져 갈려고 하네요 ㅜㅜ

치우천황도 저희들이 지켜야 합니다 ~~~ 여러분이 알면 그만큼 조금씩 지키는 것입니다. !!

열분 즐거운 주말 되세요 ( __    ----> <<그리고 이건 저의 개인적인 생각이니 다른분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욕하지는 말아주세요 .......>>

 

 

출처 : 한류열풍 사랑
글쓴이 : 따거족발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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