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리(石壕吏)
날저물어 석호촌에 묵으니 밤에 관리가 사람잡더라 暮投石壕촌(邨) 有吏夜착인(捉人)
할아범 담넘어 도망가자 늙은 부인 문열고 나와 보네 老翁踰墻走 老婦出門看
관리는 호통치고 화를 내고 할머니 애통하게 눈물흘리네 吏呼一何怒 婦啼一何苦
할머니 나서서 하는 말 듣노라 세아들 업성 싸움 출정하여 聽婦前致詞 三男업성(鄴城)수(戍)
한아들 서신 보내 소식잇으나 두아들 새싸움에 전사햇다오 一男附書至 二男新戰死
살아있는몸 잠시 삶을 누리나 죽은자는 영영 끝나고 말것이라 存者且투(偸)生 死者長已矣
집안에는 남자라곤 다시없고 오직 젖먹이 손자가 있을 뿐 室中更無人 惟有乳下孫
손자애미 아직 내집에 잇으나 출입할 치마조차 성한게 없다오 孫有母未去 出入無完裙
늙은 할멈 비록 몸은 쇠약하나 나리따라 이 밤으로 갈까하오 老嫗力雖衰 請從吏夜歸
급한대로 하양 부역에 응하여 새벽취사 거둘 수 잇을것이오 急應河陽役 猶得備晨炊
밤이 깊자 말소리 끊기고 숨죽여 흐느껴우는 소리만 들리네 夜久語聲絶 如聞泣幽咽
신혼별(新婚別)
다북쑥 삼나무 엉킨 덩굴은 덩굴을 당겼자 길지못하리 兎絲附蓬麻 引蔓故不長
출정병사에게 여식출가시킴은 길바닥에 내어버림보다 못하리 嫁女與征夫 不如棄路傍
머리얹고 임의 처가 되엇으나 임의 잠자리 녹일 사이도 없이 結髮爲君妻 席不煖君牀
밤에 결혼하고 새벽에 이별함은 너무나 황망하지 않은가요 ? 暮婚晨告別 無乃太怱忙
임께서 비록 멀리 가시지않고 하양으로 부임하여 수비하시나 君行雖不遠 守邊赴河陽
며느리 됨 아직 분명치 못해 어떻게 시부모님께 절을 올리까요?妾身未分明 何以拜姑嫜
전에 부모님이 저 키우실때 낮이나 밤이나 잘 되기를 바라셨고 父母養我時 日夜令我臧
우리딸 시집보낼 때는 백년해로 어울리는 짝 얻고자 하셨지요 生女有所歸 鷄狗亦得將
이제 임께서 죽음의 싸움터 가시니 침통한 느낌 창자속에 스며들며 君今往死地 沈痛迫中腸
한사코 임을 따라 가고자 하나 형세가 도리어 창황하군요 誓欲隨君去 形勢反蒼黃
부디 신혼 염려마시고 나라지키는 일에 전력하세요 勿爲新婚念 努力事戎行
아녀자가 군대에 들어있으면 병사의 사기가 오르지 못할거예요 婦人在軍中 兵氣恐不揚
한스럽게도 가난한 저로서는 간신히 비단옷 장만했으나 自嗟貧家女 久致羅襦裳
비단옷 다시는 입지않겠고 임보아 붉은 화장 �겠습니다. 羅襦不復施 對君洗紅粧
우러러 뭇새들 나는것 보니 크나 작으나 쌍쌍이 짝지어 날건만 仰視百鳥飛 大小必雙翔
인간세상사 이렇듯 뒤틀리어 임과 떨어져 오래두고 바라만 봅니다. 人事多錯迕 與君永相望
두보의시감상(3)
봄날의 강촌 춘일(春日) 강촌(江村)
병든 몸 부축받아 붉은 인근 늘이다가 扶病垂朱불(紱)
돌아와 쉬며 이끼 낀 뜰을 거니노라 歸休步紫태(苔)
교외초당에 만년을 보낼 방도있거늘 郊비(扉)存晩計 (교비; 성도에 잇는 초당)
막부에 나가 선비들에 창피한 꼴을 보엿노라 幕府괴(愧)群材 (막부; 절도사 엄무의 막부)
제비나는 밖에는 아지랑이 아롱대고 燕外晴絲卷 (청사권;아지랑이가 감돌다)
백구 앉은 강가엔 물 풀잎이 피었어라 鷗邊水葉開 (鷗邊 ; 백구가 떠있는 강가 )
이웃들은 생선과 자라 보내오며 隣家送魚鼈
몇 번이고 서슴없이 안부를 묻노라. 問我數能來(나에게 안부묻고 몇 번이고 오다)
대자연의 품속에서 인정의 교감이 눈물겹도록 고맙다. 인생의 기쁨이란 이런 것이 리라.
영태원년 (765) 두보는 엄무의 막부를 떠나 완화계의 초당으로 돌아 왔다. 한가로운 봄맞이 마음이 들어나 있다.
두보의 시 감상 (3)
(주의;원숭이 와 기러기가 나온다) (九日)
중양절에 홀로든 술잔 마시지 못하고 重陽獨酌盃中酒 (盃中酒);잔속의 술)
병든 몸 간신히 강 기슬 정자에 올랏노라 抱病起登江上臺 (抱病起登;병든몸 부등겨안고)
죽엽청도 이제는 나와 연분 없으니 竹葉於人旣無分 (病無分);병 때문에 술마시지 못해)
앞으로는 국화꽃 피어나지 말라 菊花從此不須開 (從此; 이제부터)
타향에서 해지니 검은 원숭이 슬피 울고 殊方日落 玄猿哭 (玄猿; 검은 원숭이)
고향에서 흰 기러기 서리 앞서 오건마는 舊國霜前白雁來 (白雁來; 흰기러기가 오다 )
동생 누이 어디 있나 아득하거늘 弟妹蕭條各何在 (소조(蕭條); 쓸쓸하고 외롭다)
전란과 노쇠 내 몸 더욱 조이네 干戈衰謝兩相催 (衰謝; 노쇠,쇠약하고 시들다)
(兩相催;전란과 노쇠가 함께 몰려와 죽음을 독촉한다)
두보가 55세 때인 대력 원년(766)가을에 기주에서 지은 시(詩)다. 죽엽청도 이제는 인연이 다 한 것인가 ? 앞으로는 국화꽃도 내 앞에서는 피지 말아다오 처절한 외침이 아닐 수 없다.
(주석) ; 필자는 일본의 닛꼬(日光)뒷산에서 원숭이를 본적이 있고 중국의 산동반도에서 태청궁 뒷산에서 원숭이를 본적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야생원숭이가 없는것 같다. )
두보의시감상(4)
(원숭이) 登 高
바람세고 하늘 높아 원숭이 울음 애절하며 風急天高猿蕭哀 (猿蕭哀; 원숭이소리 애처롭다)
강물 맑아 모래 희고 물새 날아 빙빙도네 渚淸沙白鳥飛廻 (저渚淸;물가가 맑다)
사방에 낙엽은 쓸쓸히 떨어지고 無邊落木蕭蕭下 (소蕭蕭下;낙엽이 쓸쓸히 떨어지다)
끝없는 강물은 도도히 흐르네 不盡長江滾滾來 (곤곤(滾滾);물이 도도히 흐르는 모습)
타향만리 나그네 노상 가을이 서러워 萬里悲秋常作客 (常作客;언제나 길손신세)
늙어 평생 다병인 나 외로이 올랐네 百年多病 獨登臺
가난에 시달려 백발된 모습 한스러워 艱難苦恨繁霜鬢(빈)(繁霜鬢;구렛나루가 온통 희다)
노쇠한 요즈음 탁주마저 들지 못하네 . 요(潦倒新停濁酒杯; (新停;최근에 그만두다)
대력 2년가을 9월9일의 중양절을 맞아 낙엽지는 가을 쇠락하는 자신을 한탄하며 지은시로 두 句식 꽉 짜여진 대구(對句)를 이룬다 애(哀) 회(廻) 래(來) 대(臺) 배(杯) 등의 운자를 쓰고 風急 天高 猿嘯哀 無邊 落木 蕭蕭下 등을 써서 밀려드는 초조감을 돋운다 鳥飛廻 滾滾來 라하여 대자연의 유연한 자세를 그리고 절망의 자신을 자탄한다.
(기러기)· 夜
이슬내리고 하늘 높아 가을 맑을 새 露下天高秋氣淸
공산에 홀로 밤새니 마음 설레이 노라 空山獨夜旅魂驚
희미한 등불 밝힌 외로운 돛배 잠들 새 疎燈自照孤帆宿
초승달 걸린 하늘에 다듬이 소리 울리네 新月猶懸雙저(杵)鳴
남쪽에서 거듭 국화꽃 보며 병들은 나 南菊再逢人臥病
북쪽 고향 소식 없으니 기러기도 무정쿠나 北書不至雁無情
처마에 나가 지팡이 짚고 견우 직녀성 보니 步첨(簷)의장(倚仗)看牛斗
步첨(簷)의장(倚仗);처마끝으로 걸어가 지팡이에 의존하다)
은하수 따라 장안의 대궐로 갔으면 하네 銀漢遙應接鳳城
나그네인 자신을 한척의 돛단배에 비유하고있다.
두보의 시 (5)
안록산의 난이전 ; 두보가 태어나던 해에(712) 현종의 치하에 들어가고 안록산이 난을 일으키기전까지 당나라는 가장 번성하였다. 억석(憶昔)이라는 두보의 시에 잘 나타나 있다.장안(長安)이나 낙양(洛陽)의 쌀 열말의 값이 이백전도 못되고 명주의 값도 그러했다. 세상이 평안하고 부유했으며 나그네는 만리길을 가는데도 아무런 무기를 지닐 필요가 없엇다. 천하는 태평했고 생산이 풍부하였으며 인구는 천보13년에 5280만이나 되었다. 당나라는 국토확장전쟁에서도 거듭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에 반대했던 두보는 변경확대정책을 비판하였다.
견회(遣懷)
전의 황제는 무력을 좋아 했으며 先帝正好武
천하도 쇠락하지 않았다. 환(寰)海未조(凋)枯
맹장은 서역을 평정했고 猛將收西域
막강한 무력은 거란을 격파했다. 長戟破林胡
백만대군을 동원하여 성 하나를 공략했고 百萬攻一城
장수들은 언제나 승리만을 보고하고 패전은 알리지 않았다. 獻捷不云輸
이에 황제는 흙뿌리 듯 하사품을 내렸으며 組練棄如泥
한 치 땅을 뺐기 위해 백만 병사를 희생했다. 尺土負百夫
이렇듯 변경개척대업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拓境功未已
음양 태화의 기운이 천지에서 사라져 세상이 전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元和辭大로(罏)
안록산의 난이 일어나기 전 까지는 이른바 성당의 문화적 전성기를 누렷다. 당시의 모든 지식인은 자아를 펼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점은 하락으로의 전환점이다. 당나라의 국운은 점차쇠락해 졌으며 모순을 노출하기 시작하였다. 이임보가 실권을 잡게 되자 조정은 황폐화 하기 시작했다. 현종이 며느리 였던 양태진을 맞아 양귀비로 높이고 그녀에게 빠져서 유연만을 일삼게 되고 사회의 기강이 혼탁해지자 과거를 시행했으나 이임보가 야(野)에는 슬기로운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현종을 기만하여 합격자를 내지 않자 두보는 과거에 응시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차츰 모든 선비 학자 지식인들이 멀리 떨어져나갔다. 이 모순이 극에 달한것이 안록산의 난이다.
안록산의 난 이후 ;천보13년 (755) 안록산이 반란을 일으키자 바로 쇠망의 길로 접어들었다. 두보가 죽기까지 약 15년간 나라가 혼란에 빠졌던 시기이다. 암흑과 혼란으로 떨어진 가장 큰 원인은 통치계급의 부패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두보는 다음과 같이 비판하엿다.
귀족들의 붉은 대문 안에는 술과 고기가 썩어 냄새를 피우고 있는데 朱門酒肉臭
길가에는 얼어 죽은 사람의 시체가 뒹굴고 있다. 路有凍死骨
이렇듯 영화와 빈한(貧寒)이 지척을 두고 갈라지고 있으니 榮枯咫尺異
그 처량한 느낌을 이루 다 말할 수가 없구나. 추창(惆悵)難再述
안록산이 15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자 불과 한달 내에 낙양(洛陽)이 함락하고 반년도 못되어 수도 장안(長安)마저 함락하자 현종(玄宗)은 촉(蜀)으로 피난하고 양귀비를 죽게하고 위구르족의 도움으로 반란군과 싸워야 했으므로 자치통감의 기록에는 성을 찾는날 땅과 선비들은 당나라로 돌아 왔으나 금이나 비단 및 여자들은 위구르족에게 돌아갓다. 安史의 난(亂)이 일단락되자 그해 10월에는 토번(吐藩)(지금의 티벳트족)이 장안으로 쳐들어와서 다시 난리를 겪어야 했다. 이 시기는 사회적 혼란기였다. 두보역시 고향을 버리고 객지로 떠돌며 전란에 시달리고 굶주림과 추위에 떨어야 했다. 두보는 이 모든 고난을 불후의 걸작으로 승화시켯다. 이리하여 탄생한 일련의 시는 社會詩엿다. 사회시는 정치와 사회비평을 기본으로 함으로서 혁신적 기풍을 불어 넣었다.
두보의 시(6)
두보는 영토확장정책을 비판하엿다.
견회(遣懷)
전의 황제는 무력을 좋아 했으며 先帝正好武
천하도 쇠락하지 않았다. 환(寰)海未조(凋)枯
맹장은 서역을 평정했고 猛將收西域
막강한 무력은 거란을 격파했다. 長戟破林胡
백만대군을 동원하여 성 하나를 공략했고 百萬攻一城
장수들은 언제나 승리만을 보고하고 패전은 알리지 않았다. 獻捷不云輸
이에 황제는 흙뿌리 듯 하사품을 내렸으며 組練棄如泥
한 치 땅을 뺐기 위해 백만 병사를 희생했다. 尺土負百夫
이렇듯 변경개척대업이 미쳐 끝나기도 전에 拓境功未已
음양 태화의 기운이 천지에서 사라져 세상이 전란에 휘말리게 되었다. 元和辭大로(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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