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우가 가야 하는 하늘 길
네모난 장독대는 우주의 형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지방地方을 상징한다. 정갈한 우물은 천원天圓인 하늘을 상징한다. 우물의 정화수는 하늘에서 천일생수天一生水하는 순수한 우주의 물이다. 이 물이 모여 흐르면 은하수가 되고 이를 천하天河라고 한다. 천하가 지구로 흐르면 바이칼호가 되었다. 바이칼을 지금의 말로 고쳐 쓰면 ‘배갈’ 즉 ‘배가 가는 길’이 된다.
‘배가 가는 길’은 견우가 칠월칠석 날 배를 타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하늘 길’이다. 고구려 때 그려 후세에 남긴 고구려의 천문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에 견우가 하나님에게로 가는 ‘하늘 길’과 그가 살고 있는 나라와 나라의 사정을 별자리로 표시해 놓았다.
견우는 사람 모양의 6개의 별로 표시했고, 견우가 사는 나라는 구가狗加가 사는 나라로 4개의 별로 표시하고 구국狗國이라고 하였다. 구국에는 9개의 우물이 있고, 바이칼호로 보이는 10개의 별자리로 된 천연天淵이라는 별자리가 있다. 이 천연을 개 2마리가 지킨다. 이들 개의 이름이 구狗이다. 천연 옆에는 천연을 지키는 우주의 거대한 14개의 별들로 구성된 자라별자리 즉 별鼈이 있다.
구국에는 하나님의 밭이 있는데, 9개의 별자리로 구성되어 있고, 9개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농사를 짓는다. 견우는 이 밭을 갈아 수확을 보아야만 하늘나라에 갈 수 있다. 말하자면 하늘의 위탁농사를 짓고 있는 것이다.
견우의 곁에는 견우가 늘 늦잠을 자지 못하도록 하늘의 시간을 알려주는 하늘의 닭 천계天雞라는 별자리가 있다. 모두 닭 3마리인데, 한 마리는 언제나 비번이 되어 쉰다.
견우 가까이에 있는 둑 넘어 4개의 별로 된 견우의 측실인 수녀須女가 살고 있다. 견우가 칠석날만 가서 만나는 직녀는 본부인이고 추녀는 첩실이 된다. 직녀가 하나님의 딸이고, 하늘에서는 북두칠성의 부인이기 때문에 감히 자기 부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다만 잠깐 하나님을 대리하여 알현을 할 수 있는 사이인 것이다.
그래서 견우가 직녀를 만나러 가려면 상당히 까다로운 의전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2개의 깃발을 세워야 했다. 이 깃발을 좌기左旗와 우기右旗라고 하였다. 좌기와 우기는 각각 9개의 별로 만들어져 있다. 또 견우의 거동을 알리는 북을 설치한다. 이 북이 3개의 별로 된 하고河鼓이다. 하고는 각각 좌장군 대장군 우장군이 맞는다. 북 앞에는 4개의 별로 된 북채 천부天桴가 있다. 이들 별들이 은하수의 안팎에 배치되어 있다. 견우가 직녀를 만나러 가려면 이 ‘하늘 길’을 통과해야만 하였다.
하고가 울리는 곳이 오작교가 놓이는 곳일 것이다. 오작교가 놓일 곳에 천진天津으로 불리는 하늘의 나루가 있다. 모두 9개의 별로 이루어져 있다. 이 하늘의 나루터를 낮에는 해중奚仲이라는 별자리가 지킨다. 4개의 별로 된 별자리인데 진짜 해는 아니고 해에 버금간다고 해서 해중이라고 하였다.
직녀의 앞에는 점대漸臺라는 별자리가 4개의 별로 구성되어 있다.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별자리이다. <천상열자분야지도>가 이미 마고시대에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는 별자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신라 말에 박재상이 쓴 「부도지」가 위서가 아님을 증명할 수 있는 별자리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종 때 이순지가 쓴 「천문류초天文類抄」에서 점대가 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臨水之臺也 主漏刻律呂之事
임수지대야 주루각율려지사
점대는 은하수 가까이에 있는 누대이다. 시간과 소리에 관련되는 일을 주관한다.
직녀가 누대에 천관天官을 두어 우주의 시간과 소리를 제어하고 있다는 뜻이다. 별이 4개인 점으로 보아서 4인의 천관이 이 일을 맡아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일을 맡아서 하는 분들이 「부도지」에 마고의 네 천인으로 나와 있다.
四天人分管 萬物之本音 … 各作穹而守職 … 各作巢而守職 因稱其氏
사천인분관 만물지본음 각작궁이수직 각작소이수직 인칭기씨
네 천인(마고의 네 아들)이 만물의 본음을 나누어 관장하니 … 각각 궁穹을 만들어 지키기를 직책으로 하고 … 각각 소巢를 만들어 지키기를 직책으로 하니 이로 인하여 穹과 巢를 씨칭氏稱으로 하였다. (「부도지」 제 3장)
마고의 네 아들은 황궁黃穹과 청궁靑穹, 백소白巢와 흑소黑巢이다. 이들의 황, 청, 백, 흑이 씨칭이 되었다는 것이다. 「부도지」에 따르면 황궁의 후손이다.
「천문류초」의 기록과 「부도지」의 기록이 일치하므로 직녀는 마고이고, 점대별자리와 직녀별자리가 이미 마고시대에 정해졌다고 보게 된다. 결코 진한대秦漢代에 정해진 중국의 별자리가 아니다.
견우는 6개의 별로 된 연도輦道를 통과하여 드디어 하늘나라인 자미원紫微垣5)에 다다르게 된다.
홍수와 소
소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주제이다. 물론 인류학적 아이콘이기도 하다. 소는 인류신화에서 홍수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신과 영웅의 서사시 길가메시서사시에 나오는 홍수이야기는 우리의 견우와 직녀, 나반과 아만의 신화와 맥을 함께 한다. 이 이야기의 모티브는 홍수이다. 홍수를 극복하는 상징으로 소가 등장한다.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는 우르크왕국의 왕으로서 반신반인의 인물이다. 126년 동안 수메르를 지배했던 인물이었다. 여신 닌순과 제사장 쿨랍 사이에서 태어나 출신성분이 좋은 덕에 자동적으로 반신이 되었다.
길가메시는 세력이 막강해지자, 혹독한 통치를 일삼아, 우루크 백성들에게 배척을 받았다. 백성은 신들의 어머니 아루루에게 길가메시를 죽일 수 있는 영웅을 하나 달라고 청원하였다. 아루루가 우르크백성들의 청원을 받아들여, 성창을 열었고, 성창에서 무지막지한 엔키두가 출생하였다. 엔키두는 짐승들처럼 광야를 쏘다니는 야생 그 자체였다. 이리하여 길가메시의 적대세력으로 엔키두가 등장하였다. 그러나 엔키두는 길들이지 않으면 아무 쓸모없는 사내였다.
성창聖娼의 관리자인 샤마트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녀가 한주일 동안 엔키두를 길들이기로 하였다. 그녀의 치밀한 유혹에 엔키두는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샤마트와 한 주일 동안 동침을 하고나서 부드러운 사내로 변했다.
엔키두는 길가메시를 죽이라는 명을 받고 길가메시에게 싸움을 걸었지만 속마음은 싸울 의사가 없었다. 그들은 싸우다가 싸움을 포기하고 친구가 되었다. 왜 동지가 되지 않으면 아니 되었는지 신화를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그가 태어난 우르크는 기이하게도 우가牛加를 유추하게 하는 지명이다. 우가는 소를 종족의 아이콘으로 썼던 종족이었다. 신화시대를 이끌어간 오가五加의 핵심세력이었다. 길가메시라는 이름도 “길가면서 모신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는 이름이다. 영생을 찾아 떠나는 길가메시에게 걸 맞는 이름이라고 할 것이다.
그를 유혹한 샤마트는 의미심장한 이름과 직책을 가진 여자이다. 샤마트에서 샤먼이 유추된다. 뿐만 아니라 샤마트는 삼신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그는 천손天孫을 생산하는 성창의 관리자였다. 따라서 샤마트를 ‘삼신마고의 터’로 해석할 수 있다.
신들의 어머니 아루루는 알을 유추하게 하는 이름이다. 알은 천손을 태어나게 하는 난卵이다. 또 최고신 안(安)의 변음이기도 하다.
엔키두는 안기두安氣斗(頭)로 볼 수 있는 문자이다. 최고신의 기운인 북두칠성이라는 뜻이다. 칠성님이 점지하여 태어난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달리 “안으로 들어오는 자”로 해석할 수도 있다.
길가메시는 엔키두와 동지가 되어 공동의 적인 숲의 거인 훔바바를 찾아간다. 훔바바의 울부짖음이 홍수를 일으키기 때문에 찾아가서 죽이기로 한 것이다. 먼 옛날에는 후와와라고 불렸다.
거인이라는 아이콘도 풍이의 아이콘이다. 그가 후와와로 불렸다는 것은 후와와가 바람소리의 의성어擬聲語이므로 풍백風伯의 다른 이름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홍수를 일으키는 실체가 풍백이라고 하겠다.
훔바바는 신들이 살고 있는 이르니니신전이 있는 소나무산에 살고 있었다. 이르니니는 이르는 곳, 닿는 곳으로 볼 수 있는 이름이다. 인간이 충분히 가서 닿을 수 있는 곳에 신들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13개의 바람으로 훔바바를 공격하여 죽였다. 이리하여 홍수를 근원적으로 없애버린 것이다.
견우와 직녀, 길가메시와 엔키두와 샤마트
견우와 직녀, 엔키두와 샤마트신화는 모계사회의 대표적인 신화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시대엔 홍수가 인간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자연재해로서는 가장 큰 재해였다. 이 자연재해에 대하여 대처하는 방법이 직녀계열과 샤마트계열의 신화에서는 천양지차의 격차를 보인다. 직녀계열은 인류 최초의 문명인답게 하늘과의 관계 속에서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샤마트계열의 신화에서는 문명인답지 않은 해결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모략과 음모와 기습의 방법으로 숲의 거인 훔바바를 죽임으로써 홍수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한다.
견우와 직녀 신화에서는 견우의 측실인 수녀가 땅에서 제관이 되어 견우가 하나님과의 담판에서 하나님을 설득하여 비를 그치게 하고 돌아올 때까지 온갖 정성을 다 드려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신화에서는 승리하고 돌아오는 길가메시에게는 성창을 주관하는 여신 이슈타르가 유혹의 추파를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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