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3월 09일씀
나는 오줌을 하루에 한 잔씩 마시는 사람이다.(익명...김아무개)
감옥에서 만난 나의 요료법(尿療法) 이야기
나는 오줌을 하루에 한 잔씩 마시는 사람이다. 물론 내 오줌을, 건강을 위해서이다. 소위 ‘요료법(尿療法)’를 한다. 아침마다 별 다른 사정이 없으면 일어나서 첫 오줌을 예쁜 도자기 잔에 정성(?)을 드려 받아서 마신다. 첫 오줌의 처음을 조금 흘러 버린 다음에 중간 부분에서부터 한 잔이 가득 찰 때까지 받아서 마시는 것이다. 마치 생명수를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요료법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감옥에서이다. 나는 대학 졸업을 앞둔 1990년 12월경 민주화 운동 관련 사범으로 1년여 수배생활을 해 오다가 경찰에 의해 체포되어 짧지 않은 수감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80년대 당시 학생운동을 한다는 대부분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불규칙한 식습관과 생활에 툭하면 점거농성 등으로 건강을 잃기가 다반사이다 물론 나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수배생활을 1년여를 한 터라 잠자리와 먹는 것이 일정치 않았다. 먹게 되면 먹고 눕게 되면 그 곳이 잠자리이었다. 감옥에 들어 온 나는 한마디로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리고 집행유예 기간에 다시 수감생활을 하게 되어 짧지 않은 징역생활이 예고된 터라 난 일단 건강을 추스르는 것을 우선 목표로 세웠다. 소위 재판투쟁을 준비하는 6개월 동안 나름대로 생활 규칙을 만들어 건강 추스르기에 몰두했다. 다행히도 건강은 조금씩 좋아 졌으면 운 좋게도 한 징역 고수(?)이신 선생님을 만나면서 ‘인도 요가’를 접하게 되었고 아침마다 20~30분씩 요가를 수행하였다. 지루하고 긴 재판투쟁을 끝내고 기결수가 되어 예상대로 2년 반의 징역을 받고 이감을 가게 되었다. 내가 기결 수감생활을 시작하게 된 곳은 전주교도소였다. 전국의 교도소 중에 재범 또는 강력범 수인들만 모아 둔다는 꽤 빡센 교도소로 알려진 곳이다. 내심 걱정은 되었지만 그 곳도 다 똑같은 사람이 사는 곳이며 감옥은 다 감옥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본격적인 징역생활을 시작하였다.
나의 수감생활 주된 일과는 책 읽기와 운동이었다.(공안사범은 다 그렇다.) 그 중에서 운동은 기상 후 요가 20분, ‘건강 도인술’(우연히 건강 관련 책을 통해 접한 건강비법으로서 소위 인체의 모든 혈 점을 발가락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순서대로 마사지(양손을 비빈 후 왼손으로 좌우 18번씩 돌려주고 기(氣) 흐름대로 쓸어주고 내려주는 것으로 옛 도인들의 건강비법으로 내려오는 것)를 해 주는 것이다. 그런 후 0.7평의 공간에서 할 수 있는 각 종 맨손 운동을 30여분 한 후 냉수마찰을 마지막으로 아침운동을 끝낸다. 그리고 독방생활 수인들에게 주어지는 1시간 운동시간에는 걷기운동을 주로 하면서 종종 수감 동지들과 농구 또는 땅탁구(합판으로 만든 체와 유구 공을 이용하여 땅바닥에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탁구경기 규칙을 적용하는 게임, 감옥의 특수한 환경(?)을 고려한 운동 종목임)를 했다. 저녁식사와 폐방(소위 하루 수감 공식 일정(노역, 접견, 운동 등)을 마치고 모든 수인들이 다음날 아침까지 방안에서 나 올 수 없는 상태로 보통 계절별로 차이는 있지만 통상 오후 5시경부터다.) 후 약 1시간 정도 각종 근력운동으로 하루의 운동량을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교도소에서 각 수인들에게 정량으로 제공된 돼지고기 한 점을 먹고 체했는지 탈이 났다. 운동을 해도 소화제를 먹어도 심지어 다음날 새우젓을 구해서 먹어도 심지어 의무과에 가서 주사를 맞아도 가슴에 턱하고 걸려 있는 그 무엇이 내려가지 않았다.
또 다시 하루가 지나가고 여전히 고통스러워하는 차에 갑자기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나는 급히 읽던 책을 덮고 뺑끼통(감옥에서 화장실 겸 주방(?)으로 사용하는 공간) 끝을 조심스럽게 밟고 밖을 내다보았다. 건너편 사동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자세히 보니 비전향장기수 선생님이셨다. 전주교도소에는 장기수 선생님들이 10여 분이 계신다. 그 분들은 짧게는 15여 년 길게는 30여 년을 넘게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온갖 공작과 탄압에도 굽히지 않으시고 0.7평의 작은 공간에서 살아오신 분들이다. 심지어 20대 청년으로 들어와서 50살이 넘는 미소년 청년으로 32년째 살아가시는 선생님도 계신다.(지금도 그 분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연진다. 추후에 계기가 되면 이 분들에 대한 기억을 정리하고 싶다. 아무튼 그 당시 함께 했던 분들이 대부분 지난 국민정부 시절에 이북으로 송환되시어 고향의 품으로 돌아가셨다.) 나를 부르신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자마자 “강동지, 많이 아프다면서요. 어디가 어떻게 아프신 것입니까?”하면서 물으셨다. 그래서 이런저런 과정을 말씀드렸더니 그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그럼 한 번 요료법을 해 보시지 않겠어요. 나도 꽤 오래하고 있는 데 효과가 있을 텐데...”라고 말하였다. 나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나의 귀를 의심하면서 되물었다. ”요료법이요?“ 그러자 그 장기수 선생님은 ”오줌 말이요. 아침 첫 오줌을 한 컵씩 먹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료법의 방법과 오줌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해 주셨다. 나는 속으로 어떻게 ‘오줌’을 먹는다는 것인가? 오줌은 노폐물인데...‘ ”난 오랜 기간 먹었왔소! 아무 탈 없으니 일단 나를 믿고 내일 아침에 한 잔을 먹어 보시오!“ 하며 운동시간이 끝나셨는지 통방(교도소에서 수인끼리 벽을 사이에 두고 주고받는 대화)을 제지하는 교도관을 따라 사동으로 들어 가셨다.
‘오줌을 하루에 한 컵씩, 그것도 매일 아침에 첫 오줌을...‘ 오줌은 신체에서 나오는 노폐물이라는 고정관념과 선입관에 젖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오줌을 어떻게 먹는다는 것인가? 나는 먹겠다는 마음의 결정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떤다. 여전히 나의 가슴은 무엇인가에 의해 막혀 있는 듯 답답했다. 문뜩 어제 장기수 선생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동지를 믿고 일단 먹어 보시오‘ 나는 마침 마려운 오줌을 참으며 생각했다. ’그래 그 선생님이 괜한 말씀을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지, 일단 선생님을 믿고 눈 딱 감고 먹어보자‘ 나는 전쟁터에 출장하는 장수의 마음처럼 작은 밥그릇을 하나 들고 뺑끼통으로 갔다. 이윽고 한 잔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마시기 위해 입에 댔다. 다시 입을 땠다. 난 2~3분을 오줌이 담긴 그릇을 들고 입대기를 반복하다가 다시 비장한 각오로 두 눈을 찔끔 감고 한 번에 들이켰다. 오줌이 입을 떠나 목구멍으로 흘러내리고 가슴을 통과하는 순간, 놀랍게도 동시에 가슴에 뭉쳐있던 그 무엇이 같이 ’쓰윽‘하고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마치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이 말이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시원한 트림소리와 함께 탄성이 흘러나왔다. 3일을 고생하면서 별의 별 방법을 다 써도 내려가지 않던 체증이 오줌 한 잔으로 내려간 것이 아닌가?
난 아직도 오줌을 처음 마실 때 그 순간의 짜릿함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것이 내가 요료법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였다. 난 그 뒤로 요료법의 신봉자(?)가 되어 나에게 요료법을 권해 주신 선생님과 틈틈이 교도관의 눈을 피해 통방을 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오줌에 대한 과학적 의학적 접근도 하게 되었다. 일본에서는 공영방송에서 오래 전부터 요료법 강좌를 할 정도로 널리 알려졌으며, 요료법 관련 책도 여러 권 출판되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이 주신 일본판 요료법 관련 책도 빌려서 사전을 찾아 가며 읽어 보았다. 그리고 나중엔 한국판 요료법 책이 발간이 되었다 하여 그것을 어렵게 구해 읽어 보기도 했다. 난 처음으로 오줌에 대해 깊이 접근하게 되었고 점점 오줌 속으로 빠져 들었다. 오줌의 성분, 오줌의 원리, 요료법의 기원, 요료법의 원리, 치유 효과 있는 질병... 등 난 감옥에서 요료법 전파사가 되어 한 사동에 같이 생활하는 동지들과 일반 수인들에게도 권하기도 하였다.
열 사람이면 아홉 사람은 건강도 좋지만 그것을 어떻게 먹느냐며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쳐다 볼 정도였다. 그러나 나 스스로 요료법의 효능을 몸소 체험한 나로서는 철저하게 오줌을 마셨다. 심지어는 몸의 상태가 조금 안 좋다고 생각되면 수시로 나오는 대로 마셨으며, 하루에 나오는 오줌을 따로 받아 놓고 저녁 운동을 끝내고 그 오줌으로 전신 마사지를 하고 자기도 했다.(물론 24시간을 갇혀서 수감생활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가능할 수도 있다.) 요료법을 한 지 한 달 두 달이 지나가면서 나의 몸에는 변화가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느낄 정도이다. 징역을 오래 살면 얼굴이 뜬다고 한다. 먹는 것도 부실하지만 햇볕을 못 보고 좁은 공간에서 갇혀 살다 보니 특히나 독방생활을 하는 수인들은 더 그렇다. 그런데 나만은 징역을 사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얼굴에 홍조를 띠며 화색이 돌았다. 그래서인지 요료법에 대해 관심조차 없던 동지나 일반 수인들도 남 다른 나의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한 두 명씩 요료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늘어 갔다.
특히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내가 사는 사동에는 소위 ‘고령자방’이라 하여 70살에 달한 노인들만 15여 명이 사는 방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협심증으로 하루에 심장약을 서너 알씩 복용하시는 분이 있었다. 운동시간에 보면 그 노인은 열 걸음도 걷지를 못할 정도로 숨차하셨다. 그래선 난 그 분에게 요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권해 보았다. 일단 1주일만 한 잔씩 드셔 보라고 말이다. 그 노인은 진지하게 나의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확답을 하지 않았다. 다음날 운동시간 되어 운동장으로 나갔는데 어제 그 노인이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오시더니 나의 두 손을 덥석 잡으셨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강선생 고맙소! 이제 살 것 같소! 나의 생명의 은인이요”라고 하시는 거였다. 그 노인은 오늘 아침에 요료법을 했다는 것이며 그 첫 오줌을 마시는 순간에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30년간 묵었던 체증이 내려가듯이 가슴이 펑 뚫리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몸도 여느 날과 달리 아주 가볍다는 것이다.
그 후 그 노인은 수시로 나에게 요료법을 하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을 신이 나듯 상담을 하곤 했다. 결국 그 고령자방에서 가장 아팠던 분이 요료법을 하고 건강해 지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확인 한 다른 노인들도 오줌을 먹게 되면서 그 방에 계신 대부분의 노인들이 요료법을 하게 된 일도 있었다. 한 참이 지나 그 노인이 폐방을 하는 시간에 내 방으로 찾아 왔다. 그러면서 “내가 내일 출소하오. 강선생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오. 나가면 울 마누라도 먹일 생각이요” 하면서 고맙다면 인사를 하고 가셨다. 아무튼 난 2년 6개월을 살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요료법을 전파했다. 내 자신이 임상 실험대상이 되면서 말이다.
이것이 내가 ‘요료법‘을 처음 접하게 된 이야기이자 기억이다. 여기서 요료법 관련 모든 기억과 정보를 언급할 수는 없다. 그리고 요료법을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며칠 전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요료법‘에 대한 내용이 제법 의학적인 지식까지 동원하여 쓰여 진 글을 읽고 문득 20여 년 전 나의 기억이 문득 떠올라 그 기억을 더듬어 본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긴가민가하면서도 요료법에 관심이 있는 분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기억은 나의 기억일 뿐 나의 이야기를 전적으로 믿기보다는 인터넷이나 책을 통해서 요료법에 대한 정보와 지식 그리고 체험자의 이야기들을 많이 읽어 본 후에 충분히 생각하고 요료법을 시도해 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물론 나처럼 ’내가 요료법을 하는 사람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오줌을 먹는다고 하면 곱게는 안 보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요료법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요료법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혹시 관심이 있으신 분은 댓글을 달아 주면 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음. 요료법을 처음 시작할 때는 경험자와 매일 매일 그 느낌의 변화와 증상을 상호 교환하는 것이 좋음.)
아무튼 요료법은 나에겐 많은 것을 가져다주었다. 건강은 물론 정신적 안정에도 큰 도움을 주어 난 수감생활을 하는 동안 매일매일 활력이 넘치게 보낼 수 있었다. 난 출소 후에도 계속 몇 년을 요료법을 하다가 삶에 쫒기다 보니 제대로 하지를 못하다가 지난 가을부터 다시 매일 아침을 첫 오줌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마도 요료법을 한 기간을 이래저래 따져 보면 적어도 10여 년은 족히 될 듯싶다. 요료법에는 돈도 시간도 들지 않는다. 단지 첫 오줌 한 잔을 마실 수 용기만이 필요 할 뿐이다. 한 번의 용기로 건강과 삶의 활력을 찾는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 만한 일이 아닐까 싶다...
2009년 3월 어느 봄날에...김아무개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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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우수카페]가고파시골(시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글쓴이 : 운범(釜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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