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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도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7. 4. 4. 17:39

팔선도

팔선과해 각현신통(八仙過海 各顯神通)| 신화,설화

팔선과해 각현신통(八仙過海 各顯神通) 




팔선은 민간에서 좋아하는 신선이다. “팔선과해, 각현신통(八仙過海 各顯神通, 여덟 신선이 바다를 건너는데 각자 서로 다른 신통력으로 건너다)”이라는 성어는 중국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렇다면, 팔선은 역사상 실존한 인물인가? 팔선의 신화전설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어떤 사람의 연구에 따르면 “팔선”이라는 단어는 철괴리(鐵拐李) 등 팔선이 나타나기 휠씬 전부터 존재했다. 그들은 한(漢), 육조(六朝)때부터 이미 “팔선”이라는 단어가 있었으며, 원래는 한진(漢晋)이래로 신선가들의 환상 속의 한무리 신선이었다. 성당(盛唐)때는 음중팔선(飮中八仙)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당시대에 “팔선”은 그저 통상적인 명칭이었고, 철괴리, 종리권(鍾離權) 등 이름과 성을 가진 팔선과는 아직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현재 공인된 팔선은 철괴리, 종리권, 남채화(藍采和), 장과로(張果老), 하선고(何仙姑), 여동빈(呂洞賓), 한상자(韓湘子), 조국구(曹國舅)를 말한다. 이는 명나라 중엽때 비로소 확정된 것이다.

 


조경심의 《팔선전설》에 따르면, 원나라때 심지어 명나라전기까지는 팔선이 도대체 누구누구를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하여 아직 정설이 확립되지 않았다. 원나라때 마치원(馬致遠)의 《여동빈삼취악양루》에서 여덟명의 신선이 나오는데, 하선고의 이름은 없고, 서신옹(徐神翁)이 대신 올라있다. 또 다른 희극에서도 ‘중남경녀(重男輕女)’의 경향을 보인다. 하선고 대신 장자랑(張四郞)이 들어가 있다. 어떤 경우는 하선고가 들어가고 조국구가 빠진다. 심지어 장과로, 하선고가 빠지고 풍승수(風僧壽), 원호자(元壺子)가 들어있기도 하다. 다만 서신옹은 팔선에서 자주 이름을 드러내는데, 나중에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하선고로 대체되었다. 명나라때 오원태의 《동유기》와 탕현조의 《한단몽》이나 이후 팔선은 현재 유행하는 명단으로 고정되게 된다.

 
팔선은 사람들이 아무 근거없이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역사역물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다만 도대체 어느 역사인물인지에 대하여는 견해가 일치하지 않고 있다.
 
철괴리는 일설에는 성이 이씨이고 이름이 홍수(洪水)이며, 수나라때 사람이라고 한다. 노신은 《중국소설사략》제16편 《명지신마소설》에서 다시 철괴리를 언급하는데 이름을 현(玄)이라고 했다. 조인긔 《해여총고》에서는 철괴리의 본래 성은 유(劉)라고 했고, 어떤 소설에서는 그의 성이 악(岳)이라고도 하고, 요(姚)라고도 한다.
 
장과로의 원래 이름은 장과(張果)이다. 그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당나라때 정처해의 《명황잡록》등의 책이다. 장과라는 사람은 《구당서》, 《신당서》에 모두 비교적 상세한 기록이 있다. 그는 황당하게 요임금때 태어났고, 장생불로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관적과 생년을 모른다고 한다. 무측천과 당현종은 이를 믿었던 것같다. 사신을 보내서 그를 산에서 나오도록 청하고 일찍이 궁중을 드나들기도 했다.
 
하선고의 이야기는 송나라때 사람들이 쓴 《집선고》에 나온다. 그녀는 당나라때 영릉 사람이다. 《속통고》에서는 그녀가 무측천때 사람이며, 광주 증성에서 태어났고 하태(何泰)의 딸이다.
 
한상자는 대명이 자자한 문학가 한유(韓愈)의 조카손자이고, 진사출신이다. 관직은 대리승(大理丞)에까지 올랐다. 그가 신선에 된 전설이 최초로 나오는 것은 당나라때 당성식의 《유양잡저》이다.
 
조국구에 대하여는 《속문헌통고》 및 명나라때 전인식의 《잠확류서》에 기록이 있다. 송나라때 승상 조빈의 아들이고, 조태후의 동생이다. 그런데, 《송상》에 기록된 조반의 아들이고 조태후으 동생은 조일(曹佾)이다. 그런데 그가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이외에도 조국구가 신선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그러므로 조익은 《해여총고》에서 이에 대하여 의문을 나타냈다.
 
어떤 사람은 “여동빈, 종리권, 남채화는 순수히 민간전설이다”라고 말한다. 사실 이 세 사람도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가 있다. 팔선의 내력중에서 이야기가 가장 많이 전해지고 이견이 가장 많은 것은 여동빈이다. 역사상 대다수의 연구자들은 여동빈의ㅣ 성은 여(呂)이고 이름은 암(巖)이며 당나라 말기때 사람이라고 한다. 《전당시》, 《사종》에는 모두 여동빈의 시가 실려있다. 조경심은 《팔선전설》에서 송나라때 여동빈에 관한 기록 다섯가지를 열거했고, 송나라때, 나대경의 《학림옥로》, 홍매의 《이견지》 및 《집선전》 등의 책에 모두 기록이 있다고 지적했다. 명나라때 여동빈에 관한 기록은 더욱 많아진다. 어떤 설에 따르면 그는 당나라때 예부시랑인 여위의 후손이고, 당나라말기에 진사에 급제하지 못했다고 한다. 또 어떤 설에서는 그가 함통에 진사급제를 했고, 현령까지 지냈다고 한다. 그의 관적에 대하여도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당나라 경조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송사, 진박전》에서는 그가 당나라 관서사람이라며, 1맥여세를 살았다고 되어 있다. 그의 자(字)인 “동빈”에 대하여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풍길증은 《문회보》에 실은 글에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시국이 혼란하고 속세의 무상함을 깨달아, 관직을 버리고 처를 데리고 은거했다. 노부부는 산동(山洞)에 거주했는데, 서로 손님을 대하듯이 존중했다. 그리하여 이런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팔선중에서 여동빈과 장과로 두 사람은 정사에 기록이 나온다.
 
종리권은 《전당시》 권31전에서 당나라 함양사람이라고 칭했다. 호는 화곡자(和谷子)이다. 일찍이 노인을 만나서 선결(仙訣)을 전수받고, 나중에 공동산에 들어간다. 《집선전》에서는 그러나 그가 당나라말기에 종남산에 들어갔다고 적었다. 《전당시》에는 종리권의 시 한수가 전해진다. 그는 스스로 “천하도산한종리권(天下都散韓鍾離權)”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후세인들은 글 "한종리"라고 오해하고 있다. 《역대신선사》에서는 그를 한나라때 신선으로 분류했는데, 한나라때 대장군 종리권이라고 하기도 하고, 나중에 어떤 사람은 한나라때 장군 종리매(鍾離昧)라고 억지로 주장하기도 해서, 가면 갈수록 황당해졌다.
 
남채화에 관하여는 육유의 《남당서》등에 모두 기록이 있고, 당나라말기의 은사이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여름에 솜옷(絮杉, 서삼)을 입고, 겨울에는 자주 얼음눈위에 누워있다고 한다. 그리고 자주 장안에서 노래했고 스스로를 ‘남채화’라고 하였다. 원나라때 《남채화》라는 잡극에서는 그녀의 원명이 “허견(許堅)”이며, 남채화는 예명이라고 하였다. 《전당시》에는 허견의 시가 있느데, 그를 여강사람이라고 주석을 달았다.
 
팔선의 내력에 대하여 청나라때 이미 적지 않은 학자들의 주의와 고증을 이끌어냈다. 건륭가경학파의 조익은 《송사》의 조일에 관한 기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등등을 언급했다. 노신은 《중국소설사략》에서 팔선의 이야기에 대하여 평가한 바 있다. 이들 이야기는 최초에는 인민의 입으로 전해지던 일부 민간이야기를 수집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사회에서의 영향력은 크다고 했다. 신중국이 성립된 후 중국출판부서에서는 《사유기(四遊記)》를 간행한 바 있다. 그 중에 《동유기(東遊記)》가 있고, 이는 팔선과해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사실, 팔선의 변화과정은 아주 재미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팔선의 자리는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고, 자주 다른 신선이 와서 빼앗으려고 했고, 당선자를 끌어내리고 자신이 올라앉으려고 했다. 보기에 그들이 무슨 철밥통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그들은 사적이 탈월하고, 민중들이 좋아하여 이름은 역서에 남기고 지금까지 전해 내려온 것이다.

何仙姑(하선고)

八仙人物图

吕洞宾(여동빈)

八仙人物图

张果老(장과로)

八仙人物图

曹国舅(조국구)

八仙人物图

蓝采和(남채화)

八仙人物图

钟离权(종리매)

八仙人物图

铁拐李(철괴리)

八仙人物图

韩湘子(한상자)

八仙人物图

팔선과해관광구(八仙過海觀光區)는 산동성 봉래시 북쪽 황해에 접해있고 단아산(丹崖山), 장산열도(長山列島)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면적 5.5만㎡ 이다. 관광지는 바다를 향하여 조롱박처럼 가로눕고 있으며, 수천 년이래, 팔선과해(八仙過海)의 아름다운 전설과 경치와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등 황제들의 신기한 이야기가 스며있는 곳이다.

 

 

 

 

   선원루(仙源樓)는 팔선과해관광구 출입하는 문루로 상서로운 구름이 서서히 감돌며 누각이 있을 때도 있고 신선들이 왕래하는 누각이란 뜻이다.

  망영루(望瀛樓)는 팔선문화박물관이다. 1층은 목조각과 고전가구 2층은 옥조각, 사기그릇, 칠그릇, 사벼루 등 예술귀중품이 전시, 3층은 팔선장수차와 차예공연관이 있어 여기서는 차를 마시면서 바다 경치를 보면서 파도소리를 듣는 곳이다. 건축은 두공 비청식에 속하고 그림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으며 현판 ‘망영루(望瀛樓)’는 당대 유명한 서예가 계공의 글씨이다. 망영루에서 바다를 보면 삼선도를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동해삼선도 영주제일루(東海三仙島 瀛洲第一樓)”의 칭찬도 얻었다.

 

 

   군선축수(群僊祝壽圖)와 학음춘휘(鶴吟春暉) 등 많은 진귀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군선축수(群僊祝壽圖)는 신선들이 서왕모 생일을 축하하는 선도회를 거행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표현하였다. 중앙 위에 불새를 타는 분은 서왕모와 그분을 섬기는 선녀들이며 아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여동빈, 남채화, 한상자, 장과로, 조국의, 이철괴, 하선고, 한종리 여덟 명의 신선과 노자와 시동, 유해, 마고 화합두신선, 나자, 복록수삼성이 등장한다. 이 벽화는 1888개의 비취, 상아, 옥으로 조각한 것으로 다른 나라 영도자에게 선물용으로 만든 양주 칠기장의 국가적인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학음춘휘(鶴吟春暉)는 국화대사인 제백석이 보석, 상아, 옥으로 만든 작품으로 아름다운 봄에 만물이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표현하였다.

 

 

 

 

   팔선사(八仙祠)는 철괴리, 한종리, 장과로, 여동빈, 하선고, 남채화, 한상자, 조국구 팔선을 모시는 사당이다. 왼쪽에 기복전(祈福殿), 오른쪽에 재신전(財神殿)이 있다. 팔선은 노동자를 동정하면서 악을 처벌하고 선을 칭찬하며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다. 여덟 선인(八仙)은 각자의 신통 수법으로 바다를 건넌다는 아름다운 전설도 내려오고 있다.

* 푸른바다여행사(대표 이용기, 본사 061-842-2002, 광주사무실 062-654-7722)는 석도국제훼리(주)와 중국 산동성 해협국여(산동해협국제여행사유한공사)와 함께 군산과 중국 석도간 훼리를 타고 떠나는 중국 산동성 5A급 명품 관광상품 개발을 위한 팸투어를 2016년 4월 4박5일간 실시하였다. 팸투어는 위해 화하성풍경구의 하원, 고사 태평선사, 신유아쿠아리움, 중국 최고 화하신유쇼. 위해 환취루공원과 국제해변공원. 봉래 삼선산풍경구의 유교·도교·불교의 삼교합일 화기대전, 팔선구 관광. 연태 근대역사문화유적지와 장유와인박물관. 적산 해상왕 장보고 대사 유적지의 적산법화원, 장보고전기관, 적산명신 등 문화탐방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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