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사진·그림

서울 동대문 선농단과 염제 신농씨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7. 8. 27. 11:33

서울 동대문 선농단과 염제 신농씨

선농단은 ‘선농제를 지내는 제단’이라는 뜻이다. 선농단에서 이루어지는 ‘선농대제’(先農大祭)를 지내는 장소, 즉 제터(祭基)라는 이름을 딴 서울 지하철 1호선 제기 역 1번출구를 나와 그 앞이 선농단 가는 길이다.  안암동 로터리에서 종암초등학교 올라가는 다소 언덕진 곳에 선농단이 위치해 있다.  

선농단과 선농대제
선농단은 1392년 조선이 건국되면서 현재의 위치에 단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선농의 기원은 삼국시대로 보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신농씨에 대한 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를 보면 신라에서는 입춘 뒤 선농제를, 입하 후 중농제를, 입추 후 후농제를 지냈다고 한다.

선농단역사문화관 고구려 벽화 속의 신농씨

이후 고려 성종 때 와서 신농씨와 후직씨를 제향한 것으로 보이고, 이후부터는 선농제만 지내게 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선농제를 지내는 대상인 ‘신농씨’가 바로 ‘선농신’으로 인식됐다.

선농단의 주인 신농씨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으로는 신농씨는 전설상의 제왕이고, 후직씨는 중국 주나라의 시조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삼황오제와 고대 하상주 왕조에 이르는 문화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들은 중국민족과 별 관련이 없는 우리 배달 조선족이 현 중국대륙을 경영할 때의 인물들임을 알 수 있다. 

염제 신농씨는 배달국 8세 안부련 환웅천황의 신하인 소전씨(유웅국의 임금)의 아들이다. 수렵채취사회에서 농경사회로 전환을 시켜준 이가 바로 신농씨였다. 당시에는 경작지가 없었기 때문에 산이나 들에 불을 질러 화전을 일구는 농사가 선행되었다. 즉 인류 첫 농사는 화전농사였다. 그래서 신농씨의 앞에 붙은 염제(炎帝) 또는 열산씨(烈山氏)는 바로 이 화전 농업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고 농사의 신(神農)이라는 명칭도 최초로 농업을 시작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조선에 와서는 경칩 뒤 길한 해일(亥日)을 골라 제를 올렸다. 이 때 제물로는 쌀과 기장, 고기는 소와 돼지를 통째로 날것으로(血食) 올렸고 임금이 직접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제사 후 근처 친경지에서 왕이 직접 밭가는 시범을 보이는 친경례(親耕禮)를 지냈다 한다. 

선농단 일대에는 왕이 친히 쟁기를 잡고 밭을 갈아 보임으로써 천하지대본인 농업의 시작과 소중함을 알리는 의식을 행한 적전(籍田)이 있었다. 이 적전에서 행하던 의례[籍田禮]는 조선 마지막 임금인 순종 때까지 이어져 왔다. 

이 선농단에서는 선농제 외에도 가을에 왕이 벼를 벼는 행사라든가, 기우제 등을 지내기도 했다. 그러던 1910년 경술국치 후 일제 민족말살정책으로 중단되었고, 선농단 자리에는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사범대 건물이 들어서면서 그 원형이 훼손되었다. 

선농단역사문화관 설명글

이후 선농제는 1979년 제기동의 뜻있는 주민들의 조직으로 치제(致祭)를 지내다 1992년 이후부터 동대문구가 중심이 된 국가행사가 되었다. 원래는 경칩 후 첫 해일(亥日: 길한 해일이라 해서 길해吉亥)에 지내던 것을 현재는 곡우에 지내고 있다.

현재 선농단에는 사방 4m의 석축단과 제를 지내는 장소와 천연기념물 240호로 지정된 향나무가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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