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의 잃어버린 고리,북부여사를 남긴 범세동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아직도 식민사학과 일부 민족사학의 블랙홀이 고조선의 멸망과 고구려의 건국사이의 181년의 공백기이다.
식민사학은 그 공백을 한사군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으로 메꾸며 가야= 임나라는 생고집으로 삼국유사와 사기에 언급된 환국,배달신시, 단군의 3조선,해모수의 북부여사를 목쳐서 신화로 만들고 한국고대사를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에서 출발한다고 가르쳤다.
민족사학도 삼조선(삼한)의 붕괴와 해모수의 북부여건국,동부여 건국배경를 인지 못하고 식민사학에 버금가는 소설같은 논문을 쓰는 분들도 가끔 있다.
삼한을 익산,경주지역의 삼한으로 인지하면 고대사는 영원한 블랙홀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 고작 한반도 남쪽 삼한을 자기들이 통일하기 위해 싸웠다는 블랙홀코미디인 것이다.
아직도 식민사학과 일부 민족사학의 블랙홀이 고조선의 멸망과 고구려의 건국사이의 181년의 공백기이다.
식민사학은 그 공백을 한사군과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으로 메꾸며 가야= 임나라는 생고집으로 삼국유사와 사기에 언급된 환국,배달신시, 단군의 3조선,해모수의 북부여사를 목쳐서 신화로 만들고 한국고대사를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에서 출발한다고 가르쳤다.
민족사학도 삼조선(삼한)의 붕괴와 해모수의 북부여건국,동부여 건국배경를 인지 못하고 식민사학에 버금가는 소설같은 논문을 쓰는 분들도 가끔 있다.
삼한을 익산,경주지역의 삼한으로 인지하면 고대사는 영원한 블랙홀이다.
고구려,백제,신라가 고작 한반도 남쪽 삼한을 자기들이 통일하기 위해 싸웠다는 블랙홀코미디인 것이다.
과연 삼한은 한반도 남쪽이 삼한인가? 고조선의 삼한관경은 환단고기의 주장인가?
역사가들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사진으로 먼저 전하고 범세동선생 유적지를 소개한다.
역사가들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사진으로 먼저 전하고 범세동선생 유적지를 소개한다.
고려사실체를 밝힌 인하대 고조선연구소의 논문집을 읽는데 다음 문헌을 찾았다.
북송의 지리지인 무경총요에 "길주는 삼한의 옛성곽이다"라는 구절.
삼한의 성곽이 익산이나 경주에 있지않고 왜 저 위쪽 북쪽 길주에 왜 있나?
삼한의 성곽이 익산이나 경주에 있지않고 왜 저 위쪽 북쪽 길주에 왜 있나?
<한국사에서 아직도 회피하는 고조선 삼한관경도. 신채호선생이 중국의 도서관을 전전하며 찾아낸 결과도 이와 같았다>
범세동선생이 전한 북부여기에는 고조선의 멸망과 해모수 북부여건국,그리고 해모수의 4대손 고주몽의 고구려건국사,박혁거세의 뿌리를 기록하고 있다.
이 북부여사만 이해하면 한사군도 임나일본부도 들어설 곳이 없다.그리고 고주몽후손들도 박씨들도 더이상 "알"이야기 안해도 된다.
범세동선생이 전한 북부여기에는 고조선의 멸망과 해모수 북부여건국,그리고 해모수의 4대손 고주몽의 고구려건국사,박혁거세의 뿌리를 기록하고 있다.
이 북부여사만 이해하면 한사군도 임나일본부도 들어설 곳이 없다.그리고 고주몽후손들도 박씨들도 더이상 "알"이야기 안해도 된다.
북부여기에는 기준은 고조선의 왕이 아니라 3한 중 번조선 마지막왕임을 이야기해 주고 있으며 한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는 고조선은 해체되어 없었고 이미 북부여가 건국되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어 고대사의 미스테리를 완벽히 이해시켜주고 있다.
북부여기에는 1대 해모수단군으로 부터 6대 고무서단군과 그 사위 고주몽,동부여의 건국과 멸망 등이 자세히 기록되고 있다.박혁거세 박씨의 기원도 "알"이 아니라 5대 고두막한 단군의 외손자임을 밝혀주고 있다.
범세동선생 유적지를 찾아가보자.
범세동(范世東, ? ~ 1397?)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금성,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통찬(通贊) 후춘(後春)의 아들이며 정몽주의 제자이다. 《환단고기》에서는 범장(范樟) 혹은휴애거사 범장(休崖居士 范樟)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가 〈북부여기〉를 썼다고 언급되어 있다.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분이다. 환단고기 중 삼성기의 저자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인물 원동중이 환단고기완역본의 저자의 수십년간의 문헌추적으로 바로 원천석으로 밝혀졌는데 그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화해사전 華海師全》을 편집하고 《동방연원록 東方淵源錄》을 편찬하였다.
관직은 낭사(郎舍)의 으뜸인 간의대부(諫義大夫)에 이르렀다.
사후에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지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으며 개성의 표절사(表節祠),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광주의 복룡사(伏龍祠)에 제향되었다.
○위치
범세동선생묘(范世東先生墓)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포은 정몽주의 제자인 복애(伏涯) 범세동(范世東)의 묘지이다. 1998년 2월 21일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가실 땐 주과포라도 꼭 준비하시고.
범세동선생 유적지를 찾아가보자.
범세동(范世東, ? ~ 1397?)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본관은 금성,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伏崖)이다. 통찬(通贊) 후춘(後春)의 아들이며 정몽주의 제자이다. 《환단고기》에서는 범장(范樟) 혹은휴애거사 범장(休崖居士 范樟)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가 〈북부여기〉를 썼다고 언급되어 있다.
두문동(杜門洞) 72현 중 한 분이다. 환단고기 중 삼성기의 저자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인물 원동중이 환단고기완역본의 저자의 수십년간의 문헌추적으로 바로 원천석으로 밝혀졌는데 그 원천석(元天錫)과 함께 《화해사전 華海師全》을 편집하고 《동방연원록 東方淵源錄》을 편찬하였다.
관직은 낭사(郎舍)의 으뜸인 간의대부(諫義大夫)에 이르렀다.
사후에 후덕군(厚德君)에 봉해지고 문충(文忠)의 시호를 받았으며 개성의 표절사(表節祠), 두문동서원(杜門洞書院), 광주의 복룡사(伏龍祠)에 제향되었다.
○위치
범세동선생묘(范世東先生墓)는 광주광역시 광산구 덕림동에 있는, 고려 후기의 문신이자 포은 정몽주의 제자인 복애(伏涯) 범세동(范世東)의 묘지이다. 1998년 2월 21일 광주광역시의 기념물 제23호로 지정되었다.
*가실 땐 주과포라도 꼭 준비하시고.
비석이 땅 속에 묻혀있다가 발굴되었다 한다.
범세동 선생 유적비는 생룡마을 범씨집성촌에 있으며 이장님 댁을 찾아 안내를 받아야 한다.
역사광복에 뜻있는 분들은 꼭 참배해야 할 소중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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