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우리역사 바로알기

독립운동가 이재명(李在明,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8. 10. 18. 23:23

 이재명은 친일매국노 이완용을 칼로 3번 찌른 22살 청년’

민족의 반역자들과 친일 매국노 등 나쁜 놈들만 ‘묻지마 지지’하는 TK 불량 국민들에게는 불쾌한 글이니 양해를 바랍니다. 가끔씩이라도 독립 운동가들과 착한 사람들도 사랑해주십시오. 독립운동가 이재명(李在明, 1887년 ~ 1910년 9월 13일)은 평안북도 선천군 출신으로 대한제국 시기의 독립 운동가이다. 불과 약관의 나이로 이완용을 처단하려 했으나 실패 후 형장에서 순국했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 복장(複章)을 받았다. 우리에게는 그 이완용을 대담무쌍하게 칼로 찌른, 이완용을 습격한 의사로 유명하다. 1904년 하와이를 거쳐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나, 1907년에 귀국하였다. 1909년 1월에 이토 히로부미가 순종과 함께 평양을 방문하기로 하였을 때 암살을 계획하였으나 안창호의 만류로 하지 못했다. 1909년 12월 22일 서울 종현천주교회당(명동성당)에서 이완용이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석하였다. 이재명은 신문을 보고 이 정보를 입수한 뒤 밖에서 군밤장수로 변장하고 있다가 11시 30분에 인력거를 타고 지나가려는 이완용의 허리, 어깨를 칼로 3번 찔렀다. 이 과정에서 이완용과 이재명 사이를 막아섰던 인력거꾼 박원문이 칼에 찔려 사망하였고, 부상당한 이완용은 서울대병원의 전신인 대한병원에서 당시로서는 최고 수준의 치료와 대수술을 받은 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이게 한국의 흉부외과 수술 1호이다. 이게 통탄할 노릇인 것이, 이때 이완용을 치료한 의사가 말하기를 "외과기술이 10년만 늦었어도 이완용은 이날 죽었다. 재판정에서 이재명은 일본인 재판장이 "피고와 같이 흉행한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하고 묻자 “야만 섬나라의 불학무식한 놈아! 너는 흉자만 알았지 의자는 모르느냐. 나는 흉행이 아니고 당당한 의행을 한 것이다."라며 고함을 쳤다. 재판장이 다시 “그러면 피고의 일에 찬성한 사람은 몇이나 되는가?"하고 묻자 "2천만이다!"라고 답하자 창밖에서 “옳소!"하는 소리와 함께 흥분한 방청객들이 유리창을 부수었다. 또한 "야만 왜종들은 퇴청시켜라. 그리고 창밖에 나열한 한국인을 모두 입장시켜라. 그렇지 않으면 나는 너의 심문에 대답하지 않겠다."라고도 했다. 1910년 9월 서대문형무소에서 교수형이 집행되어 순국. 순국 직전에 "나는 죽어 수 십 만명의 이재명으로 환생하여 기어이 일본을 망하게 하고 말겠다!"란 말을 남겼다. 비록 이완용 암살은 실패했지만 그의 칼침은 유효해 결국 이완용을 폐렴으로 괴롭히다 더 오랜 시간 동안 고통을 받으면서 죽게 만들었다. 페친 동지 여러분! 친일매국당을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불량 국민들이 전국에 1,500만 명이나 됩니다. 이들은 언제든지 “우리가 남이가”로 돌변하며 ‘묻지마 지지’할 수 있는 불량 국민들입니다. 꽃다운 청년 22살의 의사 이재명의 의로운 죽음에 대해 널리 퍼트려서 불량 국민들에게 읽게 하고,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느끼는 것이 있도록 해주고 싶습니다. 1차 ‘좋아요’ 누르고 2차 ‘공유하기’까지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공유하기'는 좋아요의 10배 이상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출처 나무위키백과 https://namu.wiki/w/%EC%9D%B4%EC%9E%AC%EB%AA%85(%EB%8F%85%EB%A6%BD%EC%9A%B4%EB%8F%99%EA%B0%80)새창으로 읽기

보낸사람
skachstj <skachstj@daum.net> 보낸날짜 : 18.10.07 09:58 주소추가수신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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