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성교(關聖敎) 출현
관교는 조선 말 황실의 지원으로 국교의 위상을 갖추고 고종은 1880년(光緖6年 庚辰) 관교의 경전인
과화조신(過化存神), 삼성훈경(三聖訓經), 1883년엔 관성제군오륜경언해(關聖帝君五
과화조신에는 각세진경, 구겁문(救劫文), 부대련구(附對聯句), 영험기(靈驗記), 교유문(敎諭文),
배심성훈(拜心聖訓)의 6가지 경전을 한문과 한글 번역문을 싣고 있습니다.
삼성훈경은 관성제군(關聖帝君)인 관우(關羽), 문창제군(文昌帝君)인 장아(張亞),
부우제군(孚佑帝君)인 여암(呂巖)의 삼성(三聖)에 관한 경문을 모아서,
한문 원문과 한글 번역문을 함께 싣고 있습니다.
관성제군오륜경언해는 오륜(五倫)인 부자, 군신, 부부, 장유, 붕우에 대한 한글 번역문을 싣고 있습니다.
민간의 제사장인 무당들은 관왕을 비롯한 최영, 이성계 등을 역사적으로 실존한 인물에 신격을 부여해
자신들이 그들을 접신하는 대리자를 자처하며 관왕신앙은 조선말기 국교의 위치로 성장합니다.
1920년대 지성지존(至聖至尊)인 관성제군이 병을 고치고, 자손을 주며 소원을 이루어준다고 주장한 무당
박기홍(朴基洪)·김용식(金龍
무당 박기홍(朴基洪)·김용식(金龍
교화로 풍속이 날로 좋아졌으나 교리의 천명과 교율(敎律) 면에서 철저하지 못하므로 성경(聖經)을
널리 펴서 폐습을 억제하고 진실된 교화를 널리 전하고자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은 동묘(東廟) 본당에 관운장의 입체 초상(肖像)을 봉안하고 별관 아래층에는 옥황상제(玉皇上帝)와
지신(地神:女像), 위층에는 천신(天神, 男像)과 사두칠성(四斗七星, 婦人像)을 그려 놓고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을 대제일(大祭日)로 지정합니다.
경전으로 『명성경(明聖經) - 충·효와 염치·절개(節介) 등 인간 수양에 필요한 네 가지의 덕목을 기술』, 『각세진경(覺世眞經) - 관우의 유언을 기술』, 『삼성훈경(三聖訓經)』을 둡니다.
관성교는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한글 언해본과 짧은 시간의 참배나 독송을 위한
『관성제군보고(關聖帝君寶誥)
가정에서는 축대를 쌓아 해 뜰 때와 해질 때 2차례 청수(淸水)를 올려 기도를 하게 합니다.
▲ 순원황귀비의 숭의묘(崇義廟), 서관왕묘(西關王廟), 약칭 서묘(西廟) 3
2) 무당에서 상궁, 교주(校主)가 된 송설당 최씨와 순헌황귀비
④ 명산마다 새겨진 송덕비
설송당 최씨는 다음 황위를 계승할 황태자의 보모상궁이란 지위와 고종과 순원황귀비의 신임을 배경으로 영친왕의 안녕을 축원하는 기도회를 8대 명산(백두산, 묘향산, 금강산, 속리산, 오대산, 지리산, 북한산, 화왕산)의 사찰들에서 진행합니다.
이 기도회는 단발성 행사가 아닌 흥국사에서 진행한 만일염불회처럼 장기간 지속된 행사로 여기에는 황실 내탕금이 사용됩니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상궁의 월급으로는 모을 수 없는 상당한 재산을 축적하는데 여기에는 탐관오리였던 남편 이용교의 역할도 있었습니다.
최씨는 1930년 2월 25일 자신이 가진 재산 302,100원으로 재단법인 송설당(松雪堂)을 설립해 김천보통학교(현 김천중고등학교)를 세우는데 당시 재산을 현재 화폐가액으로 환산하면 삼백 억원에 해당하는 재산으로 그녀가 축적한 재산이 얼마나 큰지 일 수 있습니다.
영친왕을 위한 기도회는 조일합방 이후에도 진행되었고 당시 사찰들은 절 주변 수려한 바위에 최송설당(崔松雪堂)이란 이름을 각인(刻印)하는 송덕비를 세웁니다.
명승지 사찰 바위에 양반들이 이름을 새기는 경우는 있지만 전국 명산 사찰마다 여성의 이름을 새긴 사례는 최씨가 현재까지 유일무일합니다.
현재 최송설당(崔松雪堂)이란 각인이 확인된 것은 통도사 청류동천과 부도암, 창녕 화왕산(1915), 북한산 부왕사지(1915), 김천 청암사 바위에 6곳이 있고 북측 유점사, 표훈사, 정양사 인근 바위에 각인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실체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법주사 복천암 촛대와 명기에 최송설당 각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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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원황귀비의 숭의묘(崇義廟), 서관왕묘(西關王廟), 약칭 서묘(西廟) 3
2) 무당에서 상궁, 교주(校主)가 된 송설당 최씨와 순헌황귀비
③ 흥국사 무량수불 괘불 조성
1902년 송설당(松雪堂) 최씨는 황실의 안녕과 영친왕의 평안을 기원한다는 이유로 현재 고양시 덕양지 지축동 소재한 한미산(노고산) 흥국사에 높이 6.6m, 폭 3.3m에 이르는 대형 괘불을 만듭니다.
흥국사 괘불은 영국 맨체스터 지역에서 생산된 면본에 경선 응석(慶船 應釋), 허곡 긍순(虛谷 亘淳), 보암 긍법(普庵 肯法), 범화 윤익(梵華 潤益), 설호 재오(雪湖 在悟), 동운 영욱(東雲 靈昱), 두흠(斗欽), 성규(聖奎), 경조(敬照), 오화(五禾), 종예(宗芸), 사미인 행언(幸彦) 등의 화승(畫僧)을 동원해 서방 극락세계의 교주인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음·대세지보살, 가섭·아난존자와 문수·보현보살의 7존상을 채워 놓는 괘불을 완성합니다.
괘불 완성에 맞춰 건봉사의 혜송이란 승려를 데려와 만일기도회(30년)를 시작하고 매일 1만 번씩 ‘나무아미타불’을 염송(念誦)을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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