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우리역사 바로알기

역사란 무엇인가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20. 7. 20. 18:07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6하 원칙으로 연구 되어야 하지만 역사기록이 부족하여 연구의 방향이

치우치기도 한다. 누가=지배자의 이름 / 언제=연대별 / 어디서=지배광역 / 무엇으로=금력 .무력. 도덕.

(이유)=기후. 전쟁. 경제. 쾌락. / 어떻게=군부독재/폭군정치/聖君政治/시대적 民心/시대적 문화/시대적 사상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이 좀 더 낳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역사연구는 그 시대의 사상과 철학이 대단히 중요하다

역사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시대에 따라 중요성을 달리한다

어떤 역사는 물질 중심으로 구석기>신석기>토기>청동기>철기 시대로 사금파리역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역사는 인물 중심으로 7대 환인천제>15대 환웅천황>47檀君臨檢으로 지배자의 이름을 배열한다.

어떤 역사는 환경 중심으로 그 시대의 정치적. 기후적 지리적 종교적 환경으로 그렇게 역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당시 필요 불가결한 환경은 주기적인 요소가 되어 수 천 년이 흐른 후에도 다시 온다는 과학적 사실에서 필연적

상황 연구가 매우 중요한것이다 기후의 환경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거나 축소되기도 하며 또는 인구가 이동을 한다.

 

인구는 그대로 있으면서 문화의 흐름도 있다 세계사에서 흔히 대문명 발상지라 하지만 문명의 흐름이었다.

예컨대 환인천제의 문화가 환웅에 의해 그 지역에서 야만인으로 살던 호족과 웅족에게 문명을 전수하는가 하면

서쪽으로 가서 슈메르 문명이 되고 동쪽으로 가서 마야. 잉카문명이 된 것이다.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환국시대의 신교문화는 그 지역의 기후화로 세계 각국으로 인구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면서

문명이 퍼져 나간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왜곡된 사연

漢族/지니족/하화족들은 반고의 후손들이며 지능지수가 동이족 보다 낮다 그래서 동이족과의 첫 전쟁

탁록대전에서 대패하여 西方支那族은 오랜 세월 신문명을 가지고 온 동이족에게 지배당해 왔으며 오직 노예로서

생활했다, 그러므로 그들을 다스리던 제왕이 대부분 동이족이며 고위층 관료 또한 동이족이었다.

동이족은 천손을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신단를 세우고 천제를 올리면서 하늘의 이치를 받아내려 蘇塗輕典

天符經(우주변화원리) 三一神誥(천지인의 철학) 參佺戒經(완전한 인간완성을 위한 생활윤리)을 만들어 공부하여

帝王在世理化 弘益人間의 통치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교육하였으니 동이족은 性統光明으로

智慧가 날로 높아 갔으며 그 神敎思想은 현대 儒佛仙宗敎母胎가 되었다. 위대한 정신문명으로

전 세계 인류의 정신적 문화 종주국이 되었으며 새 왕조가 들어오면 평균 수 천 년을 유지했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6하 원칙으로 연구 되어야 하지만 역사기록이 부족하여 연구의 방향이

치우치기도 한다. 누가=지배자의 이름 / 언제=연대별 / 어디서=지배광역 / 무엇으로=금력 .무력. 도덕.

(이유)=기후. 전쟁. 경제. 쾌락. / 어떻게=군부독재/폭군정치/聖君政治/시대적 民心/시대적 문화/시대적 사상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이 좀 더 낳은 미래를 위한 것이라면 역사연구는 그 시대의 사상과 철학이 대단히 중요하다

 

역사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그 시대에 따라 중요성을 달리한다

어떤 역사는 물질 중심으로 구석기>신석기>토기>청동기>철기 시대로 사금파리역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역사는 인물 중심으로 7대 환인천제>15대 환웅천황>47檀君臨檢으로 지배자의 이름을 배열한다.

어떤 역사는 환경 중심으로 그 시대의 정치적. 기후적 지리적 종교적 환경으로 그렇게 역사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당시 필요 불가결한 환경은 주기적인 요소가 되어 수 천 년이 흐른 후에도 다시 온다는 과학적 사실에서 필연적

상황 연구가 매우 중요한것이다 기후의 환경에 따라 인구가 증가하거나 축소되기도 하며 또는 인구가 이동을 한다.

 

인구는 그대로 있으면서 문화의 흐름도 있다 세계사에서 흔히 4대문명 발상지라 하지만 문명의 흐름이었다.

예컨대 환인천제의 문화가 환웅에 의해 그 지역에서 야만인으로 살던 호족과 웅족에게 문명을 전수하는가 하면

서쪽으로 가서 슈메르 문명이 되고 동쪽으로 가서 마야. 잉카문명이 된 것이다.

환단고기에서 말하는 환국시대의 신교문화는 그 지역의 기후화로 세계 각국으로 인구의 대이동이 이루어지면서

문명이 퍼져 나간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역사가 왜곡된 사연

 

漢族/지니족/하화족들은 반고의 후손들이며 지능지수가 동이족 보다 낮다 그래서 동이족과의 첫 전쟁

탁록대전에서 대패하여 西方支那族은 오랜 세월 신문명을 가지고 온 동이족에게 지배당해 왔으며 오직 노예로서

생활했다, 그러므로 그들을 다스리던 제왕이 대부분 동이족이며 고위층 관료 또한 동이족이었다.

동이족은 천손을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신단를 세우고 천제를 올리면서 하늘의 이치를 받아내려 蘇塗輕典

天符經(우주변화원리) 三一神誥(천지인의 철학) 參佺戒經(완전한 인간완성을 위한 생활윤리)을 만들어 공부하여

帝王在世理化 弘益人間의 통치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교육하였으니 동이족은 性統光明으로

智慧가 날로 높아 갔으며 그 神敎思想은 현대 儒佛仙宗敎母胎가 되었다. 위대한 정신문명으로

전 세계 인류의 정신적 문화 종주국이 되었으며 새 왕조가 들어오면 평균 수 천 년을 유지했다

 

그러나 서방 지나족은 저질 문화로서 전투를 해도 상대의 눈을 속이고 비겁하고 간사한 邪略

구상하였다 손자병법 오자서의 병법들이 대표적이다 삼국지를 읽어 보아도 모두 속이는 경쟁이다

그런 결과로 그들은 새 왕조가 들어와도 진실과 덕이 없으니 오래가지 못하고 붕괴되는 역사를 거듭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이족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힘을 길러 동이족을 공격했다.

한 무제와 고조선과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승리 했지만 그 유민들은 부여시대를 열었고

부여시대를 통합한 대 고구려 시대로 이어지면서 단군시대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다

지나족들은 다시 고구려와 대대적인 전쟁을 벌였다. 수양제는 100만 대군을 몰고 왔지만

역시 대패하였고 그로 인해 수나라가 망했다. 그 후 당나라를 세운 이세민이 다시 침략을 했으나

역시 대패를 하여 100만 군사를 잃고 이세민도 애꾸가 되어 병들어 죽고 말았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죽고

그 아들 연남생 형제가 정권을 잡자 당나라의 교활한 측천무후가 고구려 신료들을 매수하여 연남생 형제를

이간질하고 신라와 협잡하여 고구려를 내부적으로 병들게 하여 결국 침략에 성공하였으나 고구려 유민들은

대조영을 중심으로 대 대진국을 세워 고구려 땅의 대부분을 다물 회복하였다. 그러나 백두산에 화산이 터져

화산재가 덮여서 기후가 최악이고 모든 동식물이 다 죽어 農事廢農이 되니 대 진국이 쇠약해졌다.

남쪽 한반도는 통일신라 시대가 되었으나 사실상 당나라 속국이 되니 동이족의 위대한 대제국이 최악의

치욕의역사가 시작되었다. 당나라는 이차돈을 앞잡이로 하여 불교를 유입시켜 한민족의 민족정신을 말살했다.

당시 전국에 桓雄天皇을 모시던 大雄殿에 부처를 모시고 국조삼신을 모시던 서당에도 불교의 부처를 모시고

칠성당 명부전 옥황상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당 등 소도경전을 모두 없애고 그 자리에 부처를 들여세워

절 사찰로 바꾸었고 천제를 올리고 수 천 년 전승되어온 전통신교 제례사상이 일거에 박살이 나게 되었으며

당시 중 일연은 환인천제 자리에 제석천이란 불교적 해석을 달았으니 신라는 당시에 수많은 9000년 동이 역사서를 강제 수거하여 불태워 과거의 찬란한 동이족의 역사를 모두 지우고 신라중심의 역사 왜곡을 시작 했다.

삼국유사는 정통역사가 모두 불태워진 자리에 불고식의 유사한 역사책을 썼던 것이다

또 김부식의 아비는 지독한 慕華 사상가로서 화화족을 사모한 나머지 소동파를 신처럼 받들고 사는

당나라 수구 앞잡이다. 그래서 소동파의 형제 소철/소식의 이름 뒷 자를 따다가 제 자식을 김부철 김부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 김부식이가 당나라가 모든 역사책을 없애 버린 자리에 삼국사기라는 = 사기 치는 책을 썼다.

 

엄연한 9000년 역사 진실을 신화로 쓰는가 하면 당나라 중신으로 역사를 쓰면서 우리 동이족을 오랑캐로

중국을 높이고 제 자신 대한민국을 폄하 하는 역사를 썼으니 침략자들이 그 때 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그대로

두고 이게 우리 한민족 역사라고 우기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신라와 당나라가 합작하여 유구한 역사를 다 잘라 버리고 통일신라로부터 새로 시작하는 역사를 쓰는 것을 보고

한 민족의 먼 미래를 내다본 明見萬里救國 志士들이 부지런하게 역사자료를 챙겨서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안함로는 삼성기 역사 자료를 챙겨 은밀히 전하였으니 그것이 환단고기이다 신라와 당나라가 합작하여

역사자료를 모두 폐기시키기 전에는 수많은 자료가 있었을 것이며 모든 국민이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 후 1000년 동안 우리나라는 역사를 모르는 암흑시대가 되니 이 나라는 주인 없는 집이 되어 당/몽고//청이

지배 했으며 근자에는 일본 러시아 미국에게 주권을 빼앗기면서 침락자들이 들어 올 때 마다 역사책을 강제

수거하여 불 태웠으니 그 패악을 1000년 동안 당했으니 남아 있는 역사 자료가 있을 리 만무 하고 다만 의도적으로

은밀하게 전해주신 안함노/원중동/행촌이암/이맥/이기/계연수/범장/이유립 같은 우국지사에 의해 환단고기가 전해진 것이니 천신만고 끝에 천년의 치욕의 역사를 통과해서 전해진 소중한 자료를 햇 불 삼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겠다.

 

 

그러나 서방 지나족은 저질 문화로서 전투를 해도 상대의 눈을 속이고 비겁하고 간사한 邪略

구상하였다 손자병법 오자서의 병법들이 대표적이다 삼국지를 읽어 보아도 모두 속이는 경쟁이다

그런 결과로 그들은 새 왕조가 들어와도 진실과 덕이 없으니 오래가지 못하고 붕괴되는 역사를 거듭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이족을 지배하고 싶은 욕망으로 힘을 길러 동이족을 공격했다.

한 무제와 고조선과의 전쟁에서 일시적으로 승리 했지만 그 유민들은 부여시대를 열었고

부여시대를 통합한 대 고구려 시대로 이어지면서 단군시대의 옛 영토를 대부분 회복하였다

지나족들은 다시 고구려와 대대적인 전쟁을 벌였다. 수양제는 100만 대군을 몰고 왔지만

역시 대패하였고 그로 인해 수나라가 망했다. 그 후 당나라를 세운 이세민이 다시 침략을 했으나

역시 대패를 하여 100만 군사를 잃고 이세민도 애꾸가 되어 병들어 죽고 말았다.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죽고

그 아들 연남생 형제가 정권을 잡자 당나라의 교활한 측천무후가 고구려 신료들을 매수하여 연남생 형제를

이간질하고 신라와 협잡하여 고구려를 내부적으로 병들게 하여 결국 침략에 성공하였으나 고구려 유민들은

대조영을 중심으로 대 대진국을 세워 고구려 땅의 대부분을 다물 회복하였다. 그러나 백두산에 화산이 터져

화산재가 덮여서 기후가 최악이고 모든 동식물이 다 죽어 農事廢農이 되니 대 진국이 쇠약해졌다.

남쪽 한반도는 통일신라 시대가 되었으나 사실상 당나라 속국이 되니 동이족의 위대한 대제국이 최악의

치욕의역사가 시작되었다. 당나라는 이차돈을 앞잡이로 하여 불교를 유입시켜 한민족의 민족정신을 말살했다.

당시 전국에 桓雄天皇을 모시던 大雄殿에 부처를 모시고 국조삼신을 모시던 서당에도 불교의 부처를 모시고

칠성당 명부전 옥황상제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삼성당 등 소도경전을 모두 없애고 그 자리에 부처를 들여세워

절 사찰로 바꾸었고 천제를 올리고 수 천 년 전승되어온 전통신교 제례사상이 일거에 박살이 나게 되었으며

당시 중 일연은 환인천제 자리에 제석천이란 불교적 해석을 달았으니 신라는 당시에 수많은 9000년 동이 역사서를 강제 수거하여 불태워 과거의 찬란한 동이족의 역사를 모두 지우고 신라중심의 역사 왜곡을 시작 했다.

삼국유사는 정통역사가 모두 불태워진 자리에 불고식의 유사한 역사책을 썼던 것이다

또 김부식의 아비는 지독한 慕華 사상가로서 화화족을 사모한 나머지 소동파를 신처럼 받들고 사는

당나라 수구 앞잡이다. 그래서 소동파의 형제 소철/소식의 이름 뒷 자를 따다가 제 자식을 김부철 김부식으로

이름을 지었다 그 김부식이가 당나라가 모든 역사책을 없애 버린 자리에 삼국사기라는 = 사기 치는 책을 썼다.

 

엄연한 9000년 역사 진실을 신화로 쓰는가 하면 당나라 중신으로 역사를 쓰면서 우리 동이족을 오랑캐로

중국을 높이고 제 자신 대한민국을 폄하 하는 역사를 썼으니 침략자들이 그 때 쓴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는 그대로

두고 이게 우리 한민족 역사라고 우기는데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신라와 당나라가 합작하여 유구한 역사를 다 잘라 버리고 통일신라로부터 새로 시작하는 역사를 쓰는 것을 보고

한 민족의 먼 미래를 내다본 明見萬里救國 志士들이 부지런하게 역사자료를 챙겨서 정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때 안함로는 삼성기 역사 자료를 챙겨 은밀히 전하였으니 그것이 환단고기이다 신라와 당나라가 합작하여

역사자료를 모두 폐기시키기 전에는 수많은 자료가 있었을 것이며 모든 국민이 대부분 알고 있었다고 본다.

 

그 후 1000년 동안 우리나라는 역사를 모르는 암흑시대가 되니 이 나라는 주인 없는 집이 되어 당/몽고//청이

지배 했으며 근자에는 일본 러시아 미국에게 주권을 빼앗기면서 침락자들이 들어 올 때 마다 역사책을 강제

수거하여 불 태웠으니 그 패악을 1000년 동안 당했으니 남아 있는 역사 자료가 있을 리 만무 하고 다만 의도적으로

은밀하게 전해주신 안함노/원중동/행촌이암/이맥/이기/계연수/범장/이유립 같은 우국지사에 의해 환단고기가 전해진 것이니 천신만고 끝에 천년의 치욕의 역사를 통과해서 전해진 소중한 자료를 햇 불 삼아 역사를 바로잡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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