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명나라가 망하고 공산주의에 의해 나라를 세워 중화인민 공화국이라고 선포 한 날 1949년 10월1일 이다 그 전에는 수. 당. 명. 청 등 수많은 군소 국가들이 패망을 거듭한 역사 였으며 그것도 우리 한민족의 동북방과는 거리가 먼 산둥반도 아래 지역이며
지나족이 동북방으로 진출한 것은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여 동북방 한국의 영토(북간도.동간도/서간도.연해주)가 무주 공산이 됐을 최근의 일이다 사실 그 동북방의 광활한 대한민국의 영토는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지금의 중국이나 러시아 땅이 되어 버린 것이다 흑룡강성에 사는 사람들은 조선족 즉 이씨 조선때 우리 땅이요 연해주에는 고려인이 산다 고려때 우리 영토라는 말이다 그 전에는 고구려 땅인 것이다
0, 한국사람들 대부분이 중국 역사를 5.000년이라 하고 어떤 이는 3000년이라 한다 그러나 다 틀렸습니다 중국의 역사는 73년 된 新生國(신생국)이다 73년 전에는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없었다그냥 북경아래
양자강을 중심으로 강서 강동 강남 지역에서 오.진.한.촉.제.초.연.수.당.명 등등 수많은 군소 집단들이 끝없는 전쟁을 벌이면서 이합진산을 하면서 18사략으로 아귀다틈을 해온 것이 지금 중국의 역사이며 어느 무리가 패권을 잡았다고 해도 300년을 버틴 역사가 없다 그들은 대부분 무력으로 강제적 침략으로 세운 나라가 되어서 즉시 패망을 합니다 그것이 촤이나 역사이다 그에 비해 한민족은 환국 3301년 배달국 1565년 단군조선 2096입니다 한민족의 역사는 하늘의 이치를 따라 聖君政治를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위대한 역사를 왜 학교에서 안가르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0. 대한민국이 참담한 현실로 영토가 이 지경이 된 것은 후손들에게 면목이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후손들에게 역사 까지 가르치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지구에서 영영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위대한 역사를 가르치고 죽는다면 30년 1대가 지나기 전에 모두 다 물려서(다물정신) 역사를 회복 할 것입니다 그 만큼 위대한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2021년 우리 대한민국은 큰 기회를 맞고 있습니다 이제 전쟁으로 나라를 찾는 시대가 아닌 경제대국 시대 입니다 경제적으로 이미 10대 강국이며 반대로 중국은 아주 큰 경제위기에 처해 있으며 강제로 공산화 시켜서 묶어버린 각 민족들이 분리독립을 강력하게 추진 하고 미국이 그 독립을 후원하여 위그루/ 몽고/ 흑룡강성/ 대만으로 미국이 중국을 포위하여 독립을 추진 하고 있어 중국은 스스로 분멸되는 최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한민족의 9200년 위대한 역사 진실을 그대로 밝히는 환단고기 입니다 현 주류강단 사학에서 이 위대한 역사서를 위서라고 몰아 부치면서 일본총독부에서 대한민국을 침략하고 영원히 지배하기 위해 거짓으로 만든 왜곡된 역사를 정통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자기 자신의 국가를 스스로 멸망 시키는 최악의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만일 중국이 무너지고 러시아가 대한민국과 손잡고 지하자원 개발을 한다면 또한 고토회복의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노태우 대통령때 러시아가 국가채무를 지키지 못할때 연해주를 줄테니 받겠냐는 제의가 있었다 러시아는 90% 인구가 모스크마에 집중되어 있어 동북방 광활한 땅을 인구가 없어 관리가 불가해서 한 말이다
대한민국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류의 시대에 영광스러운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필수적인 것입니다 또 1년에 1천만명의 외국이들이 대한민국에 들어 올때 그들에게 위대한 우리 역사진실를 알리는 것도 최대의 광고가 되어 미래의 비젼이 되는 것입니다
0. 그래서 전 세계 사람들은 현 중국의 뿌리 이름을 촤이나라고 부른다 그것은 그 들의 옛 이름 支那族(지나족)을 말한다
0.지금의 중국사람들은 支那族(지나족)이라 말하는 것을 듣기 싫어 한다
0.자기네들이 지구촌 중심국이니 중국이라 불러 달라고 한다 왜냐하면 支那族(지나족)-가지 支자 어찌那자
0.지난 6.000년 동안 우리 동이족에게 조공을 받혀 오면서 섬기던 일과 그 당시 동이족들이 아시아의 선진국이며 주류 상등국이 였기 때문에 - 너희 하화 족 / 漢族들은 가지(支)이니 어쩌랴(那) 하고 부리던 소리이니 듣기좋을 리가 없다
그들은 언제나 산둥반도 아래서 역사가 이루어 졌다 - 삼국지의 주 무대
그들은 언제나 산둥반도 아래서 역사가 이루어 졌다 - 초한지의 주 무대
동이족 한민족의 상고사는 아시아 전체를 주무대로 하고 있으며 삼국시대에도 백제는 일본열도와 발해만과 서해바다 해역을 백제연방국으로 하여 국제 무역국가 였다
동북방 - 몽골,선비국.말갈.부여,거란은 같은 동이족 형제국이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 갈수록 초라해지는 중국의 뿌리에 당황하여 그들은 수 조원을 들여 동북공정 서북 공정 서남공정을해 보지만 홍산에서 우하량에서 동이문물이 대량 발굴 된 사실 앞에 망연자실 더 할수도 중단 할 수도 없는 상태가 된것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자기들의 변방국가론을 편다 역사 속에 자기들과 국경을 맞대고 전쟁을 벌인 모든 주변국의 역사를 모두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고 급기야 동이족의 복희.신농씨까지 자기네 조상으로 둔갑시켜 거대한 동상을 세운다
우가 홍수로 인해 전멸직전에 고조선을 찾아와 살려 달라 애걸하여 2대단군 부루태자가 오행치수법과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국가법을 전수 한것이 홍범구주도이다 그후 그들은 남방 으로 가서 자리 잡았다 한민족은 환국3300년 배달 1568년 고조선 2096년을 계계승승 하였으나 漢族들의 역사를 살펴보면 전쟁의 역사요 강탈과 약탈 배신 권모술수 역사다
지나족을 홍수에서 구해준 홍범구주도 - 동이족의 천지이치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제왕학이다
0, 지나족의 역사를 보면 걸왕과 주왕의 폭정으로 시작된 후 초한지나 삼국지에 나타나는 행태에서 끝없는 배신 집단살육 눈속임. 손자 병법 18사략에 나타나는 역사는 모두가 간첩질. 이간질. 방화, 집단 사살 배임의 역사이다 조조에게 세력을 속이면서 사마위-사마소 - 사마염에 이르기 까지 3대를 조조.조비를 속여 결국 삼국을 통일 한다 삼국시절 그 위대한 영웅들이 모두 죽고 사마소에서 그칠 줄 누가 알앗으리오
중국(中國)은 동이족(東夷族)의 천지(天地)였다.
중국대륙(中國大陸)은 동이족(東夷族)이 선점(先占)하여 선진문명(先進文明)을 일으켰던 땅이었다는 사실(史實)을 여러 경로(經路)를 통해서 듣고 알 수 있었지만, 금번(今番)산동반도(山東半島)일대(一帶)를 순회(巡廻)하면서 중국(中國)의 모든 문물(文物)이 동이(東夷)로부터 이루어졌다는 사실(事實)을 재삼(再三)확실(確實)하게 확인(確認)하여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산동(山東)박물관(博物館)과 제령(濟寧)박물관(博物館), 그리고 청도(靑島)박물관(博物館)에서 전시기록(展示記錄)으로 전(傳)하는 내용(內容)들을 상고(詳考)하여 보고 내려진 결정(決定)이다.
산동(山东)박물관(博物館)에는 상이쟁휘(商夷爭輝)라는 제하(題下)의 글에서 동이문화핍상문화적중요핍수지일(东夷文化乏商文化的重要乏須之一, 동이 문화가 상족의 중요한 부족함을 보완하여 모름지기 하나가 되었다.)라는 글귀에서 이곳이 동이(东夷)의 선대(先代)들이 산동일대(山东一帶)의 결정적(決定的)문화중흥(文化中興)에 기틀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순(舜)임금에 대한 글이 있는데, 순제(舜帝)의 초상(肖像)이 그려져 있고 그림 왼쪽에는 선수광명필학절요구관공충만세대효(禪授光明 必學切要 九官公忠 萬世大孝: 분명하게 선위를 하여, 모든 요점을 반드시 배워서, 모든 관리들은 충성을 하고, 만세에 큰 효를 이루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고 안내문(案內文)에는 전설중적 성왕---유우씨순 (傳說中的 圣(聖)王---有虞氏舜: 전설 속의 성스러운 왕이신 유우씨로 이름은 순이었다.)라 쓰고, 아래에는 재하대지전유일개유우씨통치적시대(在夏代之前有一个有虞氏統治的時代: 하나라 시대 이전 사람이고, 유우 씨가 통치하던 시대의 한 분이다.), 칭위우대(称爲虞代: 우대로 칭한다.), 우대최유명적통치자(虞代最有名的統治者: 우대의 제일 유명한 통치자이다.), 순위동이지인(舜为东夷之人.....순 임금은 동이족의 사람이다.....)라는 글귀가 선명(鮮明)하다.
제령(濟宁)박물관(博物館)에는 전언(前言)이라는 제하(題下)의 글이 있는데, 조재일만년전(早在一万年前: 일찍이 일만 년 전에), 제령경내취유류고인거주(濟宁境內就有類古人居住: 제령 경내에 나아가 옛 사람들이 거주하면서), 재만장적세월중(在漫長的岁月中: 질펀하게 기나긴 세월 속에서), 아시선민증위중국역사적발전주출과중요공헌(我市先民曾为中國歷史的发展做出过重要貢獻: 우리식 선민들이 늘어났고, 이는 중국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공헌을 한 것이다.)이라고 기록하여 놓았다. 중국인(中國人)들이 이렇게 알고 있는 사실(事實)은 우리 동이민족(東夷民族)의 구천이백삼십육년(九千二百三十六年)역사(歷史)와 거의 일치(一致)하는 중요(重要)한 기록(記錄)이다
다른 한곳에 있는 동이족(东夷族)이라는 제하(題下)의 안내문(案內文)에는 아국동부지구고대민족적통칭(我國东部地区古代民族的統称: 우리나라(중국)의 동부지구에 대한 옛 시대의 통칭이다.), 약육천년전(約六千年前: 약 육천 년 전에,), 동이민족형성(东夷民族形成: 동이 민족이 형성 되었는데,) 저일민족최초활동우노남지구(这一民族最初活动于魯南地区: 이는 단일민족 맨 처음으로 활동하였는데 바로 노나라 남쪽지구였다.), 이후향사주확산(以後向四周擴散: 이후에 사방으로 고르게 넓혀 나갔는데,), 편급금산동(遍及今山东: 지금의 산동에 고르게 미쳤다.), 예동(豫東: 이미 동쪽), 강절등연해일대(江浙等沿海一帶: 강소성 절강성 등, 연해 일대까지)저명적씨족부락집단유태호씨(著名的氏族部落集團有太昊氏: 저명한 씨족부락 집단에서 태호씨가 나왔고), 소호씨(少昊氏: 소호씨와), 유우씨(有虞氏: 유우씨,), 치우씨(蚩尤氏等: 치우씨 등이 나왔다.), 지상주시기(至商周時期: 상나라와 주나라시기에 이르렀다.),
우사칭(又史称: 또 역사가 이르기를), “구이(九夷: 아홉의 이족을)” 혹의거주지칭지위서이(或依居住地称之为徐夷: 혹 거주지역에 따라서 달리 불렀는데, 서이와), 회이(淮夷: 회이라 하고), 래이(萊夷: 래이 라고 하였다.), 제령시증시태호(濟宁市曾是太昊: 제령시에는 일찍이 태호씨가 있고,), 소호씨족부락집단급기후예활동적중심지대(少昊氏族部落集団及其後裔活動的中心地帶: 소호 씨족의 부락이 집단을 이루었고 그 후예들이 활동한 중심 지대이다.), 인이(因而: 그로 인하여,), 문화발달(文化發達: 문화가 발달되었다.), 부분시기이초과중원지구적발전(部分時期已超过中原地区的发展: 부분시기에 이미 중원지구 발전을 초과하였으며,), 북신(北辛: 북신과), 대문국(大汶囗: 대문국,), 용산(龙山; 용산 과), 악석 등 문화즉동이족적토착문화(岳石等文化即东夷族的土著文化: 악석등의 문화가 곧 동이족의 토착 문화이다.),
춘추지제(春秋之际: 춘추시대 때에 이르러), 동이세력점쇠,(东夷勢力漸衰: 동이세력이 점차 쇠퇴하여지자,), 경과민족융합(經过民族融合: 시간이 경과한 후에 민족(중국)과 융합을 이루었는데,), 성위화하족적일부분(成为华夏族的一部分: 이룬 것은 화하족의 한 부분이 되었다.), 라고 기록(記錄)한 안내문(案內文)으로 보아 이곳은 우리 선조(先祖)이신 동이(東夷)가 정착(定着)하여 일구어 놓은 땅이라는 사실(事實)을 중국인(中國人)들이 상세(詳細)하게 기록하여 전(傳)하고 있는데 대하여 어른들이 말씀하신 드넓은 중국(中國)땅이 우리 선조(先祖)들이 지내시던 땅이었다.
라는 말씀들이 생각나면서, 그 말씀들이 사실(事實)로 내 앞에 기록(記錄)으로 펼쳐 보이니 한민족(韓民族)의 뿌듯한 자부심(自負心)을 느끼게 하고 있다. 중국인(中國人)들이 자신(自身)들의 뿌리를 동이족(東夷族)에서 근원(根源)하고 있음을 자연(自然)스럽게 밝혀주고 있는 것이 이곳의 현실(現實)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우리 조상(祖上)들의 빛나는 문화(文化)를 새삼 떠 올리게 된다. 중국학자(中國學者)들이 생각하고 전수(傳受)받은 상황(狀況)이 이러한데도 우리나라 역사학자(歷史學者)들은 왜 이 같은 사실(事實)에 대하여 강단(講壇)에서 함구(緘口)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疑懼心)에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어인 일일까?
한국의 주류 사학자들은 이렇게 명백한 9200연 대한민국 역사를 빨리 정립해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은 없는 역사도 만들어 우기는데 만일 대한민국의 강단 사학자들이 있는 역사도 계속 부정 한다면 자손만대로 대 역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머지 않아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외국학자들이 우리 역사를 밝히는 사태가 일어 난다면 자손만데로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될것이다 이미 환단고기를 연구 하는 러시아 동구권의 학자들이 대거 논문을 준비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 온다
또 한곳에는 녹각동조증여동이족조도승숭배(鹿角銅鳥曾與东夷族鳥圖勝崇拜.녹각처럼 생긴 가지 위에 동으로 만들어진 새(삼족오)는 동이족이 숭배하는 신조)라는 제하(題下)의 글에는 동이시중국선진시기(东夷是中國先秦時期: 동이는 중국 진 보다 먼저 시기인,), 우기시상주시기(尤其是商周時期: 더욱이 그 중에서 특히 상과 주시기에,), 중원거민대황하유역하유고청,연,서(中原居民對黃河流域下游古靑, 兗, 徐, 중원에 거주인과 대치하여 황하 유역 아래 살던 옛 청, 연, 서)의 삼주거민적총칭(三州居民的總称: 세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총칭이다.), 동이인시중국최고노문자(东夷人是中國最高老文字, 동이 인은 중국 최고의 오래된 문자를 가지고 있고,), 궁전(弓箭, 활과 화살,)과 예제화금속적발명화사용자(禮制和金屬的发明和使用者, 예의를 제도화하고 금속을 발명하여 사용한 자들이다), 가이설시중국최고저노적문명지일(可以說是中國最古老的文明之一, 가히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최고의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동주시기(東周時期, 동 주 시기에,), 유우제국화노국재산동적장기경영(由于齊國和魯國在山東的長期經營, 제 나라와 노 나라가 산동에 대한 장기 경영에 의하여,), 동이문명여중원문명축점융합(东夷文明與中原文明逐漸融合, 동이문명과 중원문명을 차츰 융합하여,), 성위화하문명적주체지일(成为华夏文明的主體之一, 화하(华夏. 염제(炎帝)와 소호(少昊)씨 시대의 문명)문명이 주체의 하나가 되었다). 라고 기록(記錄)하여 동이(東夷)가 문자(文字)를 만들어 사용하며, 예의(禮儀)를 제도화(制度化)하고 금속(金屬)을 발명(發明)하는 등, 선진문화(先進文化)를 창조(創造)하여 후진성(後進性)중국문화(中國文化)를 이끌었는데 동주(東周)시기(時期)에 와서 동이문화(東夷文化)를 배척(排斥)하고 화하문화(華夏文化)와 융합(融合)하여 자기들 문화의 주체(主體)로 삼았다. 라는 이 글은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提示)하고 있는가? 를 정확(正確)히 진단(診斷)할 수 있는 문구(文句)들이었다. 화하 문화(華夏文化)라는 것은 염제(炎帝)와 소호(少昊)씨 시대(時代)의 문화(文化)라고 하는데 태호(太昊)씨와 염제(炎帝), 소호(少昊)씨가 동이(東夷)의 왕(王)이었다는 사실(事實)을 알고 쓴 것인지 모르고 쓴 것인지?
참고(參考)로 삼황(三皇)과 오제(五帝)에 대하여 적어 본다. 삼황(三皇)은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씨 등 세분이신데 상서대전(尙書大傳)에 나온다. 또는 복희(伏羲), 신농(神農), 황제(黃帝)라고, 기록(記錄)되어 있다. 고미서(古微書)에는 수인(燧人), 복희(伏羲), 신농(神農)세분을 지칭(指稱)하기도 한다. 오제(五帝)는 태호(太昊), 염제(炎帝), 황제(黃帝), 소호(少昊), 전욱(顓頊)이라고 (여씨춘추(呂氏春秋))에 기록되어있으며, 황제(黃帝), 전욱(顓頊), 곡(嚳), 요(堯), 순(舜)임금 등 다섯 분 이라고, 대대례기(大戴禮記)에 기록(紀錄)되어 전해오고 있다. 결국(結局)에는 삼황오제(三皇五帝)가 모두 동이(东夷)의 선대조상(先代祖上)이라는 사실(事實)을 중국인들이 확인(確認)시켜 준 것이다.
청도(靑島)박물관(博物館)에는 동이문명소원(东夷文明溯源: 동이의 문명의 근원을 거슬러 본다)이라는 제하(題下)의 글 밑에는 거금약(距今約. 7000-3600년). 지금부터 약 7000-3600년 전)이라고 기록하여 놓았고 본문(本文)에는 거고적기재(据古籍记载: 고적 기재에 의하면)상고시기동방민족피칭(上古时期东方民族被称, 상고시기에 동방민족을 이르기를), 위동이(为东夷: 동이라 하고) 청도지구위래이지지(靑島地区为萊夷之地, 청도지구는 동이의 땅이다), 생활재청도지구적동이선민(生活在靑島地区的东夷先民, 동이의 선민들이 청도지구에서 생활하였다), 용근로지혜급해양지리적우세(用勤劳智慧及海洋地理的优勢, 부지런하고 지혜롭게 일을 하였으며 해양 지리적으로도 뛰어난 세력이었다),
창조료구유빈해특정적(創造了具有滨海特征的, 창조적으로 바다와 물길에 맞는 특징을 갖춘 기구를 만들어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동이문화(东夷文化: 동이문화는)” 여조국각지적원시선민공동창조료화하민족찬란적사전문명(与祖國各地的原始先民共同创造了华夏民族灿烂的史前文明, 조국(중국)의 각지에서 원시적 선민들이 공동으로 창조한 화하(华夏)민족문화의 역사 이전의 찬란한 문명이다), 도춘추전국시기(到春秋戰國時期, 춘추전국시기에 이르러), 청도지구작제국속지(靑島地区作斉國屬地, 청도지역이 제 나라의 속한 땅이 되었는데), 사회경제유료교쾌발전(社會經濟有了較快发展, 사회와 경제가 마침내 차이 없이 흔쾌하게 발전하였다), 동이지역문화최종구입화하중원문명적거류지중(东夷地域文化最終汇入华夏中原文明的巨流之中, 동이지역 문화가 최종적으로 중국의 화하 문명과 중원문명의 거대한 흐름의 중심이 되었다), 라고 기술되어 있으니 우리 동이선조(東夷先祖)들이 산동(山東)지역(地域)뿐만 아니라 중국대륙(中國大陸)의 문명(文明)의 근원(根源)이었음을 자신(自身)들이 증명(證明)하여 주는 진귀(珍貴)한 자료(資料)이자 기록(紀錄)인 것이다.
전기(前記)한바와 같이 중국에서 최고(最高)로 오래된 역사(歷史)를 지니고 있는 종족(宗族)이 바로 동이족(東夷族)이고, 문자(文字)를 만들어 사용(使用)하였는데 중국(中國)에서 가장 오래된 한문(漢文)글자가 바로 우리 문자(文字)라는 것을 알려준 것이고, 인류최초(人類最初)로 금속(金屬)을 발명(發明)한 것도 우리 동이선대(東夷先代)들 이시고 정교(精巧)한 활(弓)과 화살(箭)을 최초(最初)로 만들어 사용(使用)한 것이라는 사실(史實)과, 근면(勤勉)하고 지혜(智慧)를 동원(動員)하여 해안(海岸)을 따라 해상권(海上權)을 동이(東夷)들이 장악(掌握)하였다는 기록(紀錄)은 우리가 알아 두어야할 중요(重要)한 우리 동이선대(東夷先代)들의 찬란(燦爛)한 우리의 역사(歷史)라는 사실(史實)이 입증(立證)되는 것이다. 더욱이 우루무치(烏魯木⻬)에 있는 천산(天山)의 최고봉(最高峰. 가장 높은 봉우리)의 이름이 배달국(倍達國. 환웅(桓雄)조선의 나라 이름)을 상징(象徵)하는 박달봉(博達峰. 중국식(中國式) 발음(發音)으로 바께다봉(博蓋达峰)이라 부르는데 5445M의 만년설(萬年雪)이 뒤덮인 우리민족의 영산(靈山)인 것이다.
특히 논어(論語)계씨 제 십육(季氏 第 十六)편 제 3절(節)에서 이르신 공자(孔子)님의 다음과 같은 말씀이다. 공자왈(孔子曰. 공자 말씀하시기를,)녹지거공실(祿之去公室. 나라의 녹이 공실(公室=國庫)에서 떠난 지가)이 오세의(五世矣. 다섯 대요,)요 정체어대부(政逮於大夫. 정사가 대부에게 미친 지가)가 사세의(四世矣. 네 대이니)라 고(故. 그런 연유로)로 부삼환지자손(夫三桓之子孫. 삼환(三桓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으로 풀이함. 동이)의 자손(子孫))들이 미의(微矣. 미약해 졌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다. 는 구절(句節)은 우리 한민족이 예(禮)에 관한한 중국대륙(中國大陸)을 휩쓸었던 상고사회(上古社會)에서의 역할(役割)이 점차 사라짐을 한탄(恨歎)하신 것으로 보아야 한다. 또 팔일(八佾)제 9절에 공자(孔子)왈(曰), 하례(夏禮. 하나라의 예도)를 오능언지(吾能言之.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어도)나 기 부족 징야(杞 不足 徵也. 그 증거가 부족하여 증명할 수 없다)라는 기록과 공자(孔子)왈(曰), 은례(殷禮. 은나라의 예도)는 오능언지(吾能言之. 내가 능히 말할 수 있어도), 송 부족 징야(宋 不足 徵也. 송나라의 예도도 내가 말하지만 증거가 부족하여 증명할 수 없다.) 라는 기록이 있어서 중국 상고사(上古史)에 대한 부정적(否定的) 사관(史觀)을 그대로 나타낸 기록들임을 알 수 있다. 또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을 부정(不正)하는 단서적(端緖的)기록도 있다. 미자(微子)제 18편 제1장에 기록인 은(殷)나라의 삼현(三賢. 세 사람의 어진사람)을 열거(列擧)하였는데 미자(微子)는 거지(去之. 떠나가고), 기자(箕子)는 위지노(爲之奴. 종이 되었고), 비자(比子)는 간이사(諫而死)극간 하다가 죽었다)고 기록되어 전(傳)하고 있는데 기자동래설(箕子東來說)이라니 한심한 일이다. 공자(孔子)께서도 상기(上記)한 우리 동이족(東夷族)의 찬란(燦爛)한 문화(文化)와 역사(歷史)가 중국(中國)의 상고사(上古史)에 대체(代替)되었다는 사실(史實. 역사적 진실)을 인정(認定)한 것으로 보면 된다. 위의 사실은 논어(論語)를 읽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共感)하는 중요(重要)한 기록이며 우리민족(民族)의 우수성(優秀性)이 중국(中國) 상류(上流)지식인층(知識人層)에서 확고(確固)하게 자리했었음을 알려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의 역사는 72년이다-72년 전(1949년)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중국이라는 나라는 없었으며 수십개의 군소 나라들로 치열하게 주도권 다툼을 하면서 내려오다가 1949년에 와서야 공산당에 의해 중화인민 공화국으로 선포 하여 중국이라는 나라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으니 중국의 역사는 73년 된 역사이다
고대 중국은 한국의 속국이었다ㅣ안병우 교수ㅣ대한사랑 김해지부 경당 역사문화특강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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