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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무덤과 예수의 진실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22. 11. 7. 07:54

예수의 충격적인 결혼생활과 생애
(하늘은 진실을 말하라고 했다 )
https://youtu.be/tt2Pfqccd0Q?list=UUWGobsAYdyGFOD1i5Buq21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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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무덤과 예수의 진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했다는 사실이 영국bbc 3명의 기자들의 의해 밝혀지고 영국법정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영국법원판결 내용

주심판사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지않았다는 사실를 부정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않고 프랑스로 망명하여 84세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병사 판델라의 아들 이었습니다.

BBC기자들이 밝힌 내용은 모두 사실입니다 라고 판결 하였다

영국bbc 방송국기자 3명(마이클 베이전트. 리처드레이. 헨리링컨)은 10여년간의 조사 끝에

1982년 성혈과 성배 (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라는 책을 통하여 위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밝힌바 있는데 책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다가 다윗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될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 요셉을 통하여 많은 뇌물을 받은바 있는 로마의 유대총독(빌라도) 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한 다음 로마병사 호의 속에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은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착한 예수는 은둔 생활을

하며 84세 까지 살았다.

프랑스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 카드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샤토에서 교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에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거기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를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형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았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 고드프로아 드부 이용이 십자군 전쟁 때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렘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적증표을 갖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으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있다. 이러한 예수의 기밀에 대해 성당 기사단 (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를 보호하기 위해 조직된 교회군대) 과 시원 소 수도원 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을 간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렌느 르 사토에서 198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양피지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부를 누린 신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는 이러한내용의 책 성혈과 성배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아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도교와 천주교인에 의해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판사를 맡아 3년간의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의 사는 예수의 27대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있는 족보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 사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수녀,목사들은 법정 방청석에서 옺을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메고 자살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소란이 영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룰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에 80%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민국 전 언론 (동아. 조선.중앙 부산일보등)에서 보도(1982.2.20자 동아일보)을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퇴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낞았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서 메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증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 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의 문헌 고증에 의해 밝혀진 바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에서가에서 죽지 않았다] (일바 그루버,홀거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간행) 는 제목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주고 있다.

토리노 성의는 1세기 때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가에 때로는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63년꺼자 성의를 보관해 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핸재 로바 토르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여없는 100(40kg)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약과 침향 (알로에 추출물) (요한복음19:40)과 피,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사람을 싼 세마포라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8년 10월13일 토리노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으리가 13-14세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고 발표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아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요구하자 1997년 9월 5일에는 토리노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요구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있다.

토리노 성의는 예수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쎃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떠나서 기독교와 예수는 본고장에서는 잊혀져가는 종교입니다.

그들은 진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에 내용은 거짓이 아닙니다.

믿지 못하시는 분들은 당시 재판기록과 책 (성혈과 성배)을 읽어 보세요.
영어 좀 하시는 분들은 BBC 방송 자료를 보는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강석준 대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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