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삶/사진·그림

[스크랩]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살다가 간 천재화가 [모딜리아니]의 작품세계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1. 26. 20:29
* 가난한 예술가의 삶을 살다가 간 천재화가 [모딜리아니]의 작품세계 *




[ 위의 모딜리아니 자화상은 그가 바로 죽기
몇일 전에 제작된 것이라고 한다.]
마치 얼마남지 않은 자신의 생명을 감지한 것처럼.
열정적이고 장난꾸러기 기질은 온데
간데 없는... 생사를 초월 한 히마리 없는 한남자가 이그림에서 보여집니다.
그의 그림에서 쉽게 보여지던 와인빛과 제이드 빛의
강열한 색상도 바랜듯이 힘이 없습니다.

비록 가난한 예술가의 삶이었지만
마음만은 행복했노라고 말하고 있는것 같은 그의 표정...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는 마약과 술 그리고 지병인 결핵으로
인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낸다.
파리에서는 인상파 화가들과
아방가르드 스타일을 따르던
예술가들과 친분을 두텁게
쌓고 몽마르뜨의 여러 예술가. 시인이나. 작가들, 저널리스트.
사진작가들과 터울없이 친분을 과시했던 그는
비록 돈은 없었지만.
친구들의 초상화를 그려주며 자신의 작품숫자를 늘렸다.





[ 첫 아이를 가진 잔느의 모습 ]
돈이 없어 창녀들을 모델로 삼기도 했고.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 처럼 방값을
내기 위해 주인 양반도 그려주기도 했으며
천재적인 능력에 비해 말수가 많지 않았던

그는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주점 테이블에
올라가 누드쇼를 펼치기도 했다.





[ 프랑스 리비에라로 이사한 모딜리아니,
잔느 부부는 서로가 서로의 작품에
모델이 되어 준다.]
전쟁 이후 친구의 소개로 만난 독실한
카톨립 집안의 자녀였던 19살 잔느는
그의 죽기전까지의 충실한 모델이었으며
동반자 였다. 정착하지 못하고 방랑자 같은 삶을 살던
모딜리아니는 빼어난 미모를 지니고 얌전하며,
지적이고, 다소 수줍어하는 성격의 그녀를 만난 이후로
화풍도 점점 안정되기 시작했다.





유대인이었던 모딜리아니를 몹시 반대했던
그녀의 가족들은 그가 죽자 잔느를 곧바로 데리고
떠나지만 그녀는 모딜리아니가 죽은 후 이틀만에 5층에서
뛰어내려 죽어서도 그의 동반자가 되었다.
그녀가 죽은 후에도 그녀의 가족들은 끝까지
모딜리아니의 옆에 그녀가 묻히는 것을 반대하였고
그들이 죽은지 10년 후에야 가까운 이웃되는 묘지에 뭍혔다고 한다





Berthe Weill Gallery에서 열렸던 그의 전시회는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몇시간 만에 문을 닫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된다.
전시회의 실패 이후 그의 친구들은 그의 그림을 부자들에게
팔고자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몇몇의 작품을 팔게 되었지만. 겨우 몇 프랑이었다고 한다.

외설적이었다고 평가받은 그의 누드화들이다.




역시 화가였던 잔느의 작품이 인정받은 것은
그녀의 사후 30년이 지난 이후였고.
그녀의전시회는 2000년이 되서야 베니스에서 열린 모딜리아니의
전시회에 함께 출품될수 있었다.





자신들의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잔느의
친척에게 입양된 딸 잔느는 30년 후
그녀의 뿌리를 찾아 나섰고
그녀의 아버지의 인생을 1958년 책으로 발간하였다고 합니다.
그의 장례식은 몽마르뜨의 예술가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긴 추모행렬이 이어졌다고 한다.





['모딜리니아'와 죽음까지 함께 한 평생동반자였던 '잔느' ]


[ 출처 : 미디어다음 ]
출처 : 하얀미소가 머무는 곳
글쓴이 : 하얀미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