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사람들에게 겸손했던 박정희
청와대 이발사 朴秀雄씨가 본 「인간 朴正熙」 (월간조선 2001년11월호) ―朴대통령은 주로 언제 이발을 했습니까? 『이발을 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주로 이발은 주로 일주일에 한 번, 드라이는 이틀에 한 번꼴로 하셨는데, 아침 식사를 하시 기 전에 하셨고 소요시간은 30분 정도였습니다. 물론 國事(국사)로 바쁘실 때에는 한 달 가까이 이발을 하지 않으신 적도 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히 머리 감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래서 수건을 뜨거 운 물에 담가 그 수건으로 머리를 문지른 다음 스킨을 머리에 바르는 것으로 이발을 끝냅니다. 대통령께서는 스킨 로션도 비싼 외제 같은 것은 싫어 하시고 그 당시 국산 중에서도 가장 값이 싼 특정회사의 제품을 좋아하셨습니다. 향기가 마음에 드신다나요. 비서실 내에 전용 이발 공간이 마련되면서 직원도 저를 포함해 남자 이발사 3명, 여자 면도사 2명 등 5명으로 늘렸습니다. 비서실 간부들의 이발을 맡았습니다" ―朴正熙 대통령께 좋아하신 머리 스타일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제가 朴대통령을 모시면서 대통령께서 저에게 머리 스타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제가 하는 대로 맡겨 놓으셨습니다. 다만 머릿기름을 바르는 것과 중간 가르마를 타는 것은 싫어하셨습니다』 ―이발을 하는 도중 朴대통령은 어떤 말씀을 주로 하셨습니까? 『평소에는 말씀이 없으십니다. 朴대통령께서 이발관으로 가셨다는 연락이 부속실에서 오면 저희들은 서둘러 이발관을 깨끗이 정돈한 뒤 출입구 안쪽 에 도열해서 기다리다 대통령께서 이발관으로 들어오시면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朴대통령은 「어 그래, 잘들 있었나」 이 한 마디만 하신 뒤 곧 바로 의자에 앉으십니다. 朴대통령은 의자에 앉을 때 허리를 직각으로 곧추세우신 채로 이발이 끝날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으셨죠』 -陸英修 여사께서 이발관에 오시면 朴대통령은 陸여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朴대통령께서는 참 무뚝뚝한 분입니다. 陸여사께서 선풍기도 틀어 주시고 하면 고맙다는 인사 한 마디는 하셔도 흉이 안 되는데 그런 말씀도 없으십니다. 그냥 묵묵히 앉아 이발만 하시죠. 한 번은 제가 陸여사께「어르신의 머리가 곱슬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스타일을 내기가 어렵습니다」고 말씀을 건넸더니 陸여사께서「결혼할 때는 곱슬머리가 아니었는데 나이를 드시면서 곱슬머리로 변하더군요. 참 이상도 하지요」라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계시던 朴대통령께서 「곱슬머리면 어떻고 아니면 어때. 그게 뭐 그리 이상하다고」하시며 웃으셨던 이 기억납니다. 곱슬머리 얘기가 나오니 한 가지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다. 곱슬머리는 보통 머리보다 이발하기가 어렵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가 꾀를 내 대통령의 머리를 야금야금 조금씩 짧게 잘랐습니다. 제가 이발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朴군, 너무 짧게 자르지는 마래이」라고 경상도 사투리로 말씀하신 기억도 있습니다』 ―朴正熙 대통령의 머리 생김새가 이상한 곳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朴대통령의 머리는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고 이마도 그렇게 잘생기실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시다시피 朴대통령의 귀가 특히 잘 생기셨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뒤에서 보면 바가지를 엎어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는데 양쪽 귀의 모양이 똑같았죠. 보통사람들은 양쪽 귀의 모양이 똑같은 경우가 드물죠. 그리고 귀 윗부분의 머리를 자를 때에도 가위가 귀에 닿지 않을 정도로 머리카락이 난 부분과 귀의 구분이 뚜렷했습니다』 ―朴대통령께서 이발관을 찾으실 때 정장 차림으로 옵니까? 『아닙니다. 朴대통령께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하얀 러닝셔츠 차림에다 허리띠를 맨 바지의 윗부분을 한 번 아래로 접고 오십니다. 바지의 허리 부분이 헐렁할 때 허리띠를 맨 부분을 한 번 접으면 어느 정도 맞지 않습니까? 朴대통령의 러닝 셔츠에 구멍이 나 있는 것을 여러번 봤습니다. 대통령이 구멍 난 러닝 셔츠를 입고 계셨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는 갑작스럽게 朴씨로부터 逆질문을 받는 바람에 조금은 당황스러워 「그냥 계속하시죠」라고 넘겼다) 허리띠도 얼마나 오래 사용하셨던지 구멍이 새끼손가락 한 마디는 들어갈 도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느 날 「어르신, 이제 허리띠를 좀 바꾸시지요」라고 말씀드렸죠. 그랬더니 朴대통령께서 「이 사람아, 이것도 아주 편해. 몇 년은 더 충분히 사용할 수 있어」라며 웃으시더군요』 -正熙 대통령은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상관이었습니까? 『朴대통령은 아랫사람들 앞에서도 예의를 잃지 않으셨습니다. 부속실로 하여금 이발하러 가겠다는 연락을 하도록 한 뒤 5분 정도만 늦어질 것 같아도 직접 이발관에 오셔서 「朴군, 지금 회의가 끝나지 않아서 그런데 조금만 기다리래이」 하시면서 양해를 구하십니다. 한 번은 연락을 받은 뒤 40여 분 만에 이발을 했는데, 이때에도 朴대통령께서 중간에 이발관으로 오셔서 「미안해서 우짜노. 朴군, 일 마치고 바로 올 테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라고 하시더군요. 도리어 제가 미안해 「어르신 저는 여기에 근무하는 사람입니다. 저는 생각하시지 말고 충분히 집무 보십시오」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래 고맙대이」라며 특유의 옅은 미소를 지으시더군요. 그리고 원래 나이가 들면 방귀나 트림이 본인도 모르게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저는 朴대통령을 모시면서 그분이 방귀나 트림을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1973년 겨울 어느날 오전으로 기억됩니다. 부속실에서 朴대통령께서 본관에서 이발을 하시면 좋겠다고 하신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대통령께서 가끔 이발관이 아닌 본관 집무실 옆방에서 드라이 등 간단한 머리 손질은 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제가 여직원과 함께 가운을 입고 본관으로 올라갔죠. 朴대통령께서 저희들을 보시자 「朴군,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 꼭 얇은 가운을 입어야 하나? 격식 따지지 말고 얼른 가서 두툼한 스웨터 같은 옷을 입고 와」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저는 가운만을 입고 여직원에게는 가운 위에 겨울 스웨터를 입게 하고는 다시 본관으로 올라갔죠. 대통령께서 겨울 스웨터를 차려입은 여직원을 보시더니만 「그래, 이렇게 입으니 얼마나 좋아. 이제 안 춥재」하시며 여직원의 어깨를 두드리시고 이 직원의 어깨에 묻어 있던 머리카락을 털어내 주시는 것이 아니겠어요. 다른 사람들은 朴대통령을 보면 찬바람이 분다고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朴대통령만큼 인정이 넘치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朴씨는 朴正熙 대통령이 얼마나 주위 사람들에게 다정다감한 분인가를 느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며 한 가지 얘기를 더 들려 주었다. 면도사로 근무하던 박순옥씨에 관한 얘기였다. 1974년 봄 면도사로 근무하던 박순옥 씨가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이 보고를 들은 朴대통령이 어느 날 본관으로 자신과 박순옥씨를 부르더라는 것. 둘이서 대통령의 집무실이 있는 본관으로 올라가자 朴대통령이 『朴군, 순옥이가 곧 시집을 간다고 하니 우리 오늘 사진이나 같이 찍자』고 하더라는 것. 朴대통령이 그러면서 사진기를 서랍에서 끄집어 내 이를 朴씨에게 주고 박순옥씨의 어깨를 감싼 채 햇볕이 잘 드는 창가로 가 포즈를 취했다. 朴대통령도 사진기를 달라고 해 朴씨와 박순옥씨에게 『창가로 다시 가 포즈를 취해. 이번에는 내가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줄게』라고 하시며 사진을 찍어주었다고 한다. 집무실에서 사진을 찍으니 햇볕이 잘 들지 않아 사진이 흐리게 나올 것을 염려한 朴대통령은 『이왕이면 앞마당 잔디밭에서 정식으로 사진을 찍자』며 두 사람을 잔디밭으로 데려 갔고 서로 두 명씩 짝을 이뤄 사진을 찍었다. 朴대통령은 세 명이서 같이 사진을 찍자며 부속실 직원을 앞마당으로 나오게 해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는 것. 며칠 후 朴대통령이 불러 박순옥씨와 함께 본관 집무실로 가니 대통령이 창틀에 사진을 펴놓고 『이리 와 봐. 지난번 사진이 아주 잘 나왔어. 순옥아, 네가 시집을 가는데 내가 너에게 해줄 것이 없구나. 이 사진이라도 추억으로 가지고 가라』며 사진을 순옥씨에게 건네 주었다고 한다. 朴씨에게도 물론 사진을 건네 주었지만 자신은 그후 이사를 다니면서 이 사진을 잃어버렸다고 애통해 했다. 이때 朴대통령은 『사진은 너거들에게 주지만 필름은 내가 갖는대이』 하시면서 웃더라는 것이다. 필름은 아마 보안상 외부에 유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게 朴씨의 설명이다. ―陸英修 여사가 1974년 8월15일 돌아가시지 않았습니까? 그날도 朴正熙 대통령이 이발을 했습니까? 『그랬습니다. 그런데 그날 朴대통령의 머리를 만져 드리는 도중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었습니다. 대통령의 머리를 빗겨 드릴 빗이 바닥에 떨어져 두 동강이가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당시 제가 사용하던 빗은 평소 바닥에 떨어져도 부러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괜한 말씀을 드려 대통령의 심기를 어지럽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그냥 부러진 빗을 발로 의자 밑으로 밀어넣고 계속 머리를 만져 드렸습니다. 그날도 머리를 자르지는 않고 다만 물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빗으로 가지런히 정리만 해드렸습니다. 陸여사께서 文世光의 총탄에 맞으신 그날 저녁 저는 사건현장인 국립극장으로 가 평소 알고 지내던 이 극장 공연계장 이재문씨를 만났습니다. 李계장의 안내로 극장 안에 들어가 보니 방청석 앞쪽에 앉아 있다가 경호원의 응사에 맞아 숨진 학생이 흘린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었습니다. 그런데 李계장이 저에게 묘한 꿈 얘기를 하더군요. 사건이 일어나기 전날 꿈을 꾸었는데 陸여사께서 괴한의 총에 맞는 꿈이었다는 것입니다』 李계장은 자신의 꿈이 이렇게 정확하게 들어맞을 줄 알았으면 국립극장 간부들을 통해 청와대에 보고했을 것이라며 몹시 안타까워하더라는 것이다. ―陸英修 여사가 돌아가신 직후 朴正熙 대통령은 어떻게 지내셨는지요. 『朴대통령께서는 아침과 저녁 두 차례 志晩군과 槿惠(근혜)ㆍ槿英(근영)씨 등 자녀들을 데리고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며 애통해 하셨습니다. 가슴이 너무나 아팠던 것은 국민장으로 치러진 陸여사의 장례식 당일(1974년 8월19일) 아침 朴대통령의 머리를 만져 드리는데 눈물을 참지 못해 펑펑 울었습니다. 대통령께서도 두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대통령 앞에 있는 거울을 보니까 朴대통령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슴이 터질 것 같았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朴대통령께서 志晩군을 부르시더군요. 당시 중학생이던 志晩군이 올라오니까 대통령께서 저를 보고 「임자, 오늘이 이 애 애미의 출상이 아닌가? 이 애가 맏상주인데 이발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잘 좀 해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러시더니 朴대통령께서 志晩군의 머리를 쓰다듬으시면서 「어릴 때는 예쁘기만 하더니 크고 나니 (대하기가) 어렵구나」라고 하시면서 이발관을 나서셨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朴씨는 목이 메어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고 눈물을 애써 참으려는 듯 청와대가 있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陸英修 여사가 돌아가신 뒤 朴正熙 대통령은 외로움을 느끼시지는 않았습니까? 『평소에도 말씀이 없으셨지만 陸여사께서 돌아가신 뒤 더욱 말씀이 없으시고 갑자기 많이 늙으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朴대통령께서는 1976년부터 청와대 본관 앞 구석진 잔디밭에 펜스를 만들어 깃털이 금빛색을 띠는 닭의 일종인 金鷄(금계)를 키우셨습니다. 아마 외로운 마음에 금계를 키우신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루는 이발이 끝나자 대통령께서 담배를 한 대 피워 무시고는 잔디밭 쪽을 바라보시다 참새 수십 마리가 날아와 펜스 주위를 맴돌다 이 중 몇 마리가 펜스 안에 넣어둔 먹이를 먹기 위해 작은 구멍으로 들어가자 「朴군, 저거 보래이. 역시 용기 있는 놈이 맛있는 먹이를 먹는구먼」 하시며 너털웃음을 지으시던 일이 생각납니다. 1977년 여름에는 朴대통령께서 이발을 마치신 뒤 돌아가신 陸여사가 생각나셨는지 먼 하늘을 쳐다보시면서 「나도 이제 대통령 그만두고 신당동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그 집을 처음 살 때 내자(陸여사)와 아이들이 무척이나 좋아했었지. 집안 살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많이 마련하면 재미가 없는 법이라고. 조그마한 것에서부터 하나하나 키워 나가는 것이 삶의 재미지. 朴군, 자네도 욕심내지 말고 차근차근 살아」 하시면서 말을 잇지 못하셨습니다』 ―朴正熙 대통령께서 金載圭의 총탄에 맞아 돌아가신 날에도 이발을 하셨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날 오전 9시쯤 이발을 하셨습니다.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르지는 않았고 물수건으로 머리를 닦아낸 뒤 스킨을 바르고는 빗질만 해드렸습니다. 제가 「잘 다녀오십시오」라고 인사를 드렸더니 「그래, 갔다와서 보자구」하시더군요. 이 한 마디가 제가 이승에서 朴대통령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습니다』 朴씨는 인터뷰가 끝날 때쯤 朴正熙 대통령의 왼쪽 손바닥에 임금 「王」 字의 손금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고 했다. 『흔히 「임금은 하늘이 낸다」고 하지 않습니까? 손바닥의 손금만을 볼 때 朴正熙 대통령은 분명 하늘이 이 나라를 이끌고 갈 지도자로 낙점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다.● 청와대 이발사 |
출처 : 케이스톡뱅크
글쓴이 : 보드레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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