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 生家
집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生家까지는 약 밖에 떨어져 있지 않지만 큰맘 먹지 않고는 가보기 어려운 곳이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한번 가본 곳이기 때문에 관심 밖에 있기 마련인 것이다 저도 약 5년 만에 다시 가보는 것 같다. 大選 때만 되면 박정희 鄕愁가 일어나 大選走者들은 싫든 좋든 은근히 이것을 이용하든지 모방을 하곤 한다 이번에 생가를 방문하게 된 것도 그동안 얼마나 변하였는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박정희 前 대통령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다 생가 입구에는 제법 큰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데 관광 버스와 승용차를 주차할 수 있는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 제가 방문한 시각이 약 10시경이었는데 그때 까지는 몇 명만이 보였었는데 조금 지나니 20~30명으로 늘어나 제법 참관객이 많이 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구미시내 주요 도로의 이정표에는 이렇게 박대통령 생가 위치를 표시 해 놓았다. 1번 주차장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 것이 새마을 운동 중비 이다 아마 박 대통령의 가장 큰 업적 중에 하나인 새마을 운동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것 같다 비석 하단부에 새마을 운동 효시에 대한 글이 적혀 있다 2번 ![]() ![]() ![]() ![]() ![]() ![]() ![]() ![]() ![]() ![]() ![]() ![]() ![]() ![]() ![]() ![]() ![]() ![]() ![]() ![]() ![]() ![]() ![]() ![]() 박대통령 생가를 떠나면서 대한민국 역사에서 박정희시대 만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한 시대가 있었을까하는 마음이 든다 박 대통령 말기에 저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며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는 지금보다 훨씬 인기가 있었다 왼쪽 어깨에 조국 근대화의 기수 라는 마크를 볼 때 마다 자부심으로 가득하였던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기술인이 우대를 받았던 시대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당시에 저희 고등학교를 방문 하셨을 적에 가까이서 뵌 적이 있지만 당차고 당당한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요즘은 대통령이 산업 현장이나 연구소를 시찰 했다는 뉴스를 본적이 없다.) 올 해 또 대선을 치른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와 똑 같은 정치를 원하진 않는다. 다만 지도자의 리더십은 무엇이며 최빈민국에서 어떤 비전과 방법을 가지고 국가 발전을 이룩하였는지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배워야 할 것이다 개혁이란 말을 하지 않으며 조용히 改革을 하고 말로만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비전을 제시하고 實踐하는 지도자 갈갈이 찢어진 국민의 마음을 어루 만져주어 하나로 統合 할 수 있는 지도자 아직도 배고픔을 느끼며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지도자. 헌법을 우습게 보지않고 遵守하는 지도자 북한에 당당히 큰소리 할 수 있는 지도자 이웃나라와 친하게 지내면서 自主를 할 수 있는 力量을 키워나가는 지도자 이런 지도자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후세의 역사가들은 박정희 대통령과 동등한 평가 내지는 그 이상으로 평가 하지 않을까 또한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연임제 개헌을 하자고 하지 않을까 ---------------------------------------------- |
출처 : 엔카 컴나라
글쓴이 : 유덕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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