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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맥李陌 의 태백일사 太白逸史 (2)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2. 8. 20:19
천제가 계시는 곳을 환국이라 한다
 이처럼 이 지상의 모든 인류는 나반과 아만의 후손이며 우리 민족은 그 중에서도 삼신의 후예로서 환국을 건국한 환인의 후예이다. 환국이란 천제가 계시는 나라(天帝所居之邦)란 뜻이니 그 본래 뜻은 “영구생명의 근본”이라는 것이며 그래서 삼신을 “한 뿌리의 조상”이라 하는 것이다.
 
 삼신의 후예를 일러 환국이라 하니 환국은 천제天帝께서 계시는 곳의 나라라 전한다”(傳曰 三神之後稱桓國 桓國天帝所居之邦). 또한 가로대 “삼신은 환국의 선대에 있었고 나반이 죽어 삼신이 되셨으니 그 삼신이라 함은 영구 생명의 근본이라”(又曰 三神在桓國之先 那般死爲三神 夫三神者 永久生命之根本也). 그래서 또 말하기를 사람과 물건은 같이 함께 삼신에게서 나왔으니 삼신으로써 한 근원의 조상으로 삼느니라(故曰 人物同出於三神以三神爲一源之祖也)
 
 다시 말하면 나반이 제일 위의 천제(대선천)이시며 환인이 그 다음(중중천)이시며 환웅이 셋째 천제(대웅천)가 되시는 것이다. 치우환웅을 일면 지위천이라고도 한다. 또한 환인·환웅·치우 세 분을 삼황이라고도 이른다.
 
 환인도 역시 삼신을 대신하여 환국의 천제가 되었다. 후에 나반을 대선의 천(大先天)이라 하고 환인을 대중의 천(大中天)이라 하였고 환인, 환웅, 치우를 삼황三皇이라 하였다. 또한 환웅을 대웅의 천(大雄天)이라 하고 치우를 지위의 천(智偉天)이라 하였다. 곧 『황제중경黃帝中經』이 만들어진 연유이다.
 
 이같이 환인 환웅의 시대가 지난 뒤 단군이 다스리는 단국檀國 시대가 온다. 단국은 웅족雄族이 세운 나라이며 단군 역시 하늘에서 백두산에 내려오신 분이다. 단군은 또 신시의 법대로 백성을 다스리니 온 세상 사람들이 그를 천신 같은 존재로 추앙하였다. 단군을 영세토록 잊지 않는 것은 그가 선정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웅족雄族 가운데 단국檀國이 있어 가장 강성하였다. 왕검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서 불함산不咸山에 사시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받들어 단군으로 모시어 단군왕검이라 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히 신묘하고 성스러워서 구환九桓의 삼한관경三韓管境을 원만히 통합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회복하니 천하는 크게 다스려져서 온 세상이 그를 천신과 같은 존재로 보았다. 이때부터 숭보崇報의 예의가 영세토록 바뀌지 않았다.
 
 
 온 나라가 제천하니 이를 국중대회라 했다
 단국을 계승한 나라가 부여夫餘인데 부여에서는 단국 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가뭄이 들고 전쟁이 일어나고 질병이 만연하게 되면 모두 그것이 국왕의 탓으로 알았다. 즉 임금의 부덕한 탓으로 알았던 것이다.
 
 부여는 풍속에 가뭄과 병란 및 질병은 국왕에게 책임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도 우리 나라에서는 비가 오지 않아 가물면 모두 최고집권자인 대통령이 부덕한 탓으로 돌린다. 즉 그가 정치를 잘못하기 때문이라 믿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이 오랜 동안 하늘에 제사를 지내온 때문이며 임금이 하늘을 대신하여 다스린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한 자연 재해(天災)가 아니라 하늘을 대신하여 통치하는 임금이 하늘의 뜻을 어겼기 때문에 일어난 인재人災라 생각해 왔던 것이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축제를 부여에서는 국중대회國中大會라 하였다.
 
 삼한의 옛 풍속에 모두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원단)을 쌓아 하늘에 제사지냈다. 땅에 제사 지내는 것을 방구方丘(네모난 언덕)라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사 지냄은 각목角木이라 하니 산에 웅상雄常의 상像을 만드는 것은 모두 그 유습이다.
 
 하늘에 제사 지내는 제천행사는 환(임금)이 직접 제를 지내니 그 예가 매우 성한 것을 알 수 있다. 그 날 원근에서 사람들이 각기 생산한 것을 제단에 바치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면서 온갖 놀이를 다 하였다. 또 여러 소국들의 사신들이 찾아와 그 나라 특산물을 바치니 진귀한 것들이 언덕과 산처럼 둥그렇게 쌓였다. 환桓은 오로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그 때문에 제천행사는 관경을 번식케 하는 원인이 되었다.
 
 하늘에 제사지내는 것을 일명 소도제천蘇塗祭天이라 한다. 소도체천은 백성을 교화하는 통치의 근본이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이 담겨 있었다.
 
 소도제천은 곧 구려九黎를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소도제천은 첫째, 화를 당하면 이웃을 위하여 함께 힘쓰고(책화선린責禍善隣), 둘째,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돕는다(有無相資), 셋째, 문명으로 나라를 이루고(文明成治) 개화평등(開化平等)을 이룬다. 이리하여 온 세상에 제사의 예를 숭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단국 시대의 문화가 오늘에 남아있다
 단국 시대의 유습 가운데 오늘까지 계속 이어져 온 것이 많은데 그 하나가 아기를 얻은 후 이 아이가 잘 자라게 해달라고 삼신에게 비는 습속이 그것이고, 업주가리業主嘉利라 하여 가을에 추수한 신곡을 담아 농신農神에게 제사 지내는 습속이 그것이다. 또 새로 터를 잡아 집을 지을 때 행하는 제사가 다 그것이다.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삼신三神이라 하고 벼 익은 것을 축하하여 업業이라 하였다. 산을 군생통력群生通力의 장소라 하고 업을 생산 작업의 신이라 한다. 때문에 또한 업주가리라고도 한다. 집터에 빌기를 또한 터주대감土主大監이라 하고, 집에 빌기를 성조대군成造大君이라 하니 또한 해마다 좋은 복을 이루는 신이다.
 
 그밖에도 부모가 죽어서 장례를 지낼 때 지내는 산신제라든지 먼길을 떠날 때 지내는 제사가 그것이다.
 
 묘 자리를 쓸 때, 고기잡이를 나갈 때, 진을 칠 때, 길을 떠날 때, 모두 각기 제祭가 있으니 제는 반드시 날짜를 골라 목욕 재계齋戒하여야 복을 이루는 것이다.
 
 소도가 서면 반드시 다섯 가지 계율을 읊었으니 이것을 오상五常이라 했다. 소도 곁에는 반드시 경당 턇堂을 세워서 글을 읽고 활을 쏘는 연습[讀書習射]을 시켰다. 그리고 말을 타고[馳馬禮節] 격투하고 검술을 익히며 노래와 권박[歌樂拳搏]을 익혔으니 이것을 육예六藝라 하였다.
 
 소도가 서면 언제나 계戒가 있었나니 충, 효, 신, 용勇, 인仁의 오상이 그것이다. 소도 곁에는 반드시 경당을 세우고 혼인하지 않은 사내들로 하여금 여러 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으니, 대체로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며 예절을 익히고 노래 부르며 격투와 검술을 익히는 것 등 여섯 가지 기예였다.
 
 상고시대에는 모든 읍락에 삼로三老가 있어 지도자로 모셨고, 나라에서는 육정六正이 있어 국사國士로 모셨다.
 
 모든 읍락에서는 자율적으로 삼로를 모셨는데 삼로는 일명 삼사三師라고도 하였다. 삼로는 덕을 갖춘 자와 재물을 베푸는 자 그리고 지혜 있는 자로 구성되어 있었으니 모두가 이들에게 사사하였다. 또한 육정이 있었으니 현좌賢佐 충신忠臣 양장良將 용졸勇卒 명사名師 덕우德友가 그들이다.
 
 상고사회에서는 또 화랑花郞과 여랑女郞이 있어 나라의 기둥 역할을 담당하였다.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는 이들을 국수國粹라 하였다. 국수가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다. 그들은 특수한 의상을 하고 환웅의 신상에 경배를 하며 살생유택의 계율 등 세속오계의 계율에 따라 생활하였다.
 
 원화源花는 여랑을 말하며 남자를 화랑이라 하며 천왕랑天王郞이라고도 하니, 임금의 명에 의하여 까마귀 깃털이 달린 모자를 하사받았다. 모자를 쓰는데 있어서도 의식이 있는데 “큰 나무를 모시어 환웅의 신상神像이라 하고 이에 경배한다. 이 신령스런 나무를 웅상雄常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상常은 환웅이 늘 있음을 뜻하는 것이다.
 
 또 살생에 법이 있었으니 살생을 함에 있어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었다. 옛부터 말이 있어도 타지 않고 죽이지 않고 방생한다 함은 역시 이런 뜻에서였다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에 의하면, 살생유택은 원광圓光의 세속오계世俗五戒에서 나온 말이라 한다. 그러나 단지 신라 때 생긴 오계가 아니라 그 이전의 환국과 신시 그리고 단국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유습이었다는 것이다.
 
 
 글쓴이 박성수 씨는 서울대 사대 역사학과를 거쳐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각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후학들을 길렀으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을 역임한 후 한국정신문화원 편집부장으로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을 주도하였다. 아울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서 중국 속의 독립운동사적지 및 백두산, 발해사적지 등을 탐방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로서 정년 퇴임한 이후에도 왕성한 연구 및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글쓴이 박성수 씨는 서울대 사대 역사학과를 거쳐 고려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성균관대 이화여대 등 각 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며 후학들을 길렀으며,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을 역임한 후 한국정신문화원 편집부장으로서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을 주도하였다. 아울러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위원으로서 중국 속의 독립운동사적지 및 백두산, 발해사적지 등을 탐방하였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명예교수로서 정년 퇴임한 이후에도 왕성한 연구 및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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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월간개벽  http://www.greatope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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