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남해의 천제를 숙이라 하고, 북해의 천제는 홀이라 하며, 중앙의 천제는 혼돈(混沌)이라 한
다. 숙과 홀은 자주 혼돈에게 놀러갔는데, 혼돈이 그들을 대접하는 것이 매우 은근하고도 치
밀하였다. 어느 날 숙과 홀이 어떻게 하면 혼돈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을까 하고 의논하기
를, "사람은 모두 다 눈, 코, 귀, 입 등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음식을 먹고 하는
데, 혼돈에게는 구멍이 하나도 없으니 뭔가
부족함이 있지. 우리가 가서 그를 위해 구멍을 몇 개 뚫어주는 것이 어떨까"라고 말하였다.
그래서 둘은 도끼와 끌 등을 가지고 가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주게 되었는데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이레만에 일곱 개의 구멍을 다 뚫게 되었다. 그러나 불쌍한 혼돈은 그의 친구
들이 구멍을 뚫어주자 도리어 가엽게도 잠들어 버렸다.혼돈이 숙과 홀(빠른 시간, 번개를 의
미)에 의해 일곱 개의 구멍이 뚫려지자 혼돈자신은 비록 죽게 되지만 혼돈의 뒤를 이어 우
주와 세계가 탄생한다.
∥제강∥
산해경에 이르기를 서쪽의 천산에 신령스런 새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모습이
꼭 누런 헝겊 주머니 같고, 한 덩어리 불꽃 송이처럼 붉은데 다리가 여섯 개요, 날개가 네
개이고 눈, 코, 귀, 입이 모두 없었다. 그러나 음악과 춤을 알았으며 이름을 제강(帝江)이라
하였다. 제강은 곧 제홍(帝鴻)이며 또 중앙의 상제인 황제(黃帝)인데, 장자에서는 그를 중앙
의 천제라 하였다. 혼돈이 황제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다.
∥반고∥
하늘과 땅이 아직 갈라지지 않았던 시절, 우주의 모습은 다만 어둑한 한 덩어리의 혼돈으로
마치 큰 달걀과 같은 것이었다. 반고가 이 큰 달걀 속에서 잉태되었다. 그는 큰 달걀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나 곤하게 잠자며 1만 8천 년을 지냈다. 어느 날 그가 잠에서 깨어나 눈을 떠
보니,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고, 다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흐릿한 어둠뿐이었다. 그는 그 상
황에 몹시 고민하다가 화가 나서 어디서인지 큰 도끼를 하나 갖고 와서 눈앞의 어두운 혼돈
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들리는 것은 다만 산이 무너지는 듯한 와르르 소리뿐, 큰 달걀은 드
디어 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 있던 가볍고 맑은 기운은 점점 올라가 하늘이 되었
고, 무겁고 탁한 기운은 가라앉아 땅이 되었다. 뒤섞여 있어 갈라지지 않았던 하늘과 땅은
다시 붙을까봐 걱정이 되어 머리로는 하늘을 받치고, 다리로는 땅을 누르고 그 중간에 서서
는 하늘과 땅의 변화에 따라 자신도 변해 갔다. 하늘이 매일 한 길씩 높아지고 땅은 매일
한 길씩 낮아지니, 반고의 키도 역시 매일 한 길씩 자라났다. 이렇게 1만 8천 년이 지나니
하늘은 높아지고 땅은 낮아졌으며 반고의 키도 크게 자랐다. 반고의 키는 9만 길이나 되었
다. 이 거대한 거인이 마치 큰 기둥과 같이 하늘과 땅 사이에 버티고 서 있어서 하늘과 땅
이 다시 어두운 혼돈으로 합쳐지지 못하게 하였다. 하늘과 땅이 견고해지자 반고는 휴식이
필요했고 마침내 쓰러져 죽었다. 그가 죽어갈 때 그의 숨결은 바람과 구름이 되었고, 목소리
는 천둥소리가 됐으며, 왼쪽 눈은 태양으로, 오른 눈은 달로 변했다. 손과 발, 그리고 몸은
대지의 사극(四極)과 오방(五方)의 빼어난 산이 되었고, 피는 강물이 되었으며 핏줄은 길이
되었다. 살은 밭이 되었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하늘의 별로, 피부와 털은 화초와 나무로 변
하였고, 이, 뼈, 골수 등은 반짝이는 금속과 단단한 돌, 둥근 진주와 아름다운 옥돌로 변하였
다. 그의 땀조차도 이슬과 빗물이 되었다.
∥박보∥
하늘과 땅이 막 생겨났던 그때 지상에는 홍수가 범람하였는데, 상제는 거인 박보(樸父)와 그
의 아내를 함께 보내어 홍수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 한 쌍의 부부는 그 몸이 엄청나게 커서
키가 천리나 되었고 허리 둘레도 몸 길이와 대략 비슷했다. 통통한 호박처럼 생긴 두 거인
은 홍수를 다스린다는 이 어려운 일에 대하여 당연히 고민을 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너무
신경을 쓰지 않고 대충 일을 해치워 이 골치 아픈 일을 얼른 끝내 버리려 하였다. 그 결과
그들이 물길을 터놓은 강들은 어떤 곳은 깊게 파이고 어떤 곳은 얕게 파였으며, 또 막혀버
린 곳도 있었고 물길이 흐르지 못하게 된 곳도 있었다. 이렇게 모든 공정이 엉망진창이 되
어, 여러 해가 지난 뒤 대우(大禹)가 다시 한번 물길을 다스려야만 하게 되었다. 상제는 그
들의 게으름에 크게 노하여 일을 그만두게 하고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벌거벗은 몸
으로 어깨를 맞대고 동남쪽 황무지에 서 있게 하는 벌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들은 물도 못
마시고 먹지도 못했으며 추위와 더위에도 상관없이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만을 마시며 허기
를 채울 수 있을 뿐이었다. 그들의 죄는 황하의 물이 맑아지는 날에야 없어져 본래직책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황하의 물이 맑아지려면 바다와 강물이 그 흐름을 멈추
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 게으른 부부는 별수
없이 영원히 엉덩이를 드러내놓은 채 황무지에서 햇볕에 그을려야만 하게 된 것이다.
∥화서씨∥
인간과 신의 중간쯤 되는 사람들이 사는 낙원에 이름은 없고 그저 화서씨(華胥氏)라고만 불
리는 소녀가 있었다 하루는 그녀가 동쪽에 있는, 나무가 우거지고 경치가 아름다운 뇌택이
라는 호숫가에 가서 놀고 있었다. 그녀는 우연히 뇌택가에 찍혀 있는 한 거인의 발자국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소녀는 자신의 발로 거인의 발자국을 밟아
보았는데, 밟자마자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곧 임신을 해서 사내아이를 낳게 되었으
니 그가 곧 복희였다.
∥복희와 여와의 홍수신화∥
지구 위에 아직도 인류가 생존하지 않고, 이따금 하늘나라에서 천인(天人)들이 찾아 들던 때
였다. 천인들에게는 단조로운 천국(天國)보다는 높은 산, 울창한 숲, 맑은 강물과 검푸른 바
다가 있는 지상(地上)이 더욱 좋았다. 천인 중 용맹하기로 이름 난 한 사나이가 변화 많고
아름다운 땅 한 구석을 택하여, 별장을 지어 놓고 이따금씩 어린 아들과 딸을 데리고 내려
와 며칠씩 지상의 풍경을 즐기곤 했다.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덮이고 음산한 바람이 불고 이따금 마른천둥
과 번개가 수선을 떨었다. 필시 폭풍우가 땅을 휩쓸 기세였다. 용맹한 사나이는 다급히 어린
아이들을 집안에 넣고, 밖으로 나가 청태(靑苔)를 따 가지고 지붕 위를 겹겹이 덮었다. 빗물
을 막기 위해서 였다.
이윽고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찍이 본 적이 없었던 폭우였다. 천지를 진동할 듯 번개와
천둥이 뒤범벅이 되어 산과 들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한편, 폭풍은 우렁찬 고함을 치며 숲과
바다를 뒤집어엎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폭풍우는 그칠 줄을 몰랐다. 온 땅 덩어리를 물에
몽땅 삼켜 버릴 듯한 기세로 더욱 기승스럽게 쏟아져 내리고 후려치는 것이었다. 공포에 달
달 떠는 어린것들을 달래고 있던 용감한 사나이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필경 뇌신(雷
神)이 자기에게 도전을 해 온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보다시피 그는 맨주먹이었다. 투구나 무
기를 천국에 두고 지상에는 잡고 싸울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뇌신이 이렇듯 흉포하게
덤벼 들고 있었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사나이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뇌신을 맞아 싸우기로 했다. 즉시 쇠망태기 하나를 탄탄하게
엮어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쇠갈퀴를 들고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서 우렁차게 외
쳤다.
"뇌신아! 정정당당하게 싸우자! 자, 오너라!"
이 때를 기다렸다는 듯, 먹구름을 헤치고 뇌신이 쏜살같이 내려 덮쳤다. 두 손에 날카로운
도끼를 잡은 뇌신은 번갯불을 타고 사나이 가슴팍을 노리고 덤벼 들면서, 눈뜰 사이도 없이
도끼를 내려쳤다.
아차 하는 순간이었다. 사나이는 잽싸게 훌쩍 비켜서면서 손에 들었던 쇠갈퀴로 뇌신의 허
리를 낚아채기가 무섭게 다른 한 손에 들었던 쇠망태기 속으로 몰아 넣고는 뚜껑을 굳게 닫
았다.
"뇌신아! 네가 비겁하게 나의 덜미를 잡으려고 불의의 역습을 해 왔다마는 도리어 내게 덜
미를 잡히고 알았구나! 핫, 핫, 핫......"
용감한 사나이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통쾌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는 멀리 산골짜기로 메
아리 쳐 번졌다. 한편, 그의 웃음소리가 미처 멎기도 전에, 그렇게도 극성스러웠던 하늘은
씻은 듯이 말게 개였고 땅 위에는 다시 고요와 햇빛이 찾아들었다.
"잘 보아라. 이자가 바로 폭풍우를 몰고 와서 세상을 어지럽힌 뇌신이다."
사나이는 아이들에게 쇠망태기 속에 갇혀진 뇌신을 보이고 말했다.
"절대로 이 놈에게는 물을 주어서는 안 된다."
아이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고, 사나이는 밖으로 일을 보러 나갔다. 처음에는 퍽이나 괴상
하고 험상궂게 보였던 뇌신도 차츰 시간이 지나고 눈에 익으니깐 그다지 무섭지도 않게 느
껴졌다. 아이들은 쇠망태기 곁에서 태연하게 놀고 있었다. 그러자뇌신은 몹시 괴로운 표정을
짓고 신음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린 남매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왜 그러느냐고 물었다.
"목이 타서 죽겠다. 얘들아, 물 한 그릇만 떠다 다오"
뇌신은 더욱 고통스럽다는 시늉을 하며 애처롭게 애걸을 했다.
"아버지가 절대로 물을 주지 말라고 그랬어요."
윗나이의 오빠가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거절했다. 그러나 뇌신은 더욱 안달스럽게 애걸했다.
"한 그릇이 아니고 한 모금이라도 좋다. 당장에 죽겠으니 제발 목숨을 살려주는 셈치고 물
한 모금만 다오."
"한 모금도 안돼요."
오빠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옆에 서 있던 누이동생의 얼굴에는 측은한 빛이 돌았다.
교활한 뇌신은 누이동생을 보고 더욱 애달픈 목소리로 애원했다.
"아가, 나를 살려 다오! 물을 못 주겠거든, 저 냄비를 닦는 털끝에 물을 추겨 그것으로 내
입을 추겨다오"
그리고 뇌신은 두 눈을 감고 입을 떡 벌리고 기다리는 시늉을 했다. 마음이 약한 어린 누이
동생은 오빠를 보고 말했다.
"오빠! 털끝에 물을 추켜 주는 것은 괜찮겠지? 너무나 불쌍한데 그렇게 해줄까?"
오빠 생각에도 며칠째 물 한 모금 목에 넘기지 못한 뇌신이 너무나 불쌍하게 여겨졌다. 그
리고, 털끝에 물을 추겨서 입을 적셔 주는 것은 지장이 없을 거라고 여겨졌다. 그는 동생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누이동생은 털끝에 물을 추겨 가지고, 뇌신의 바삭바삭 탄 입술을 적시어 주었다. 그 순간이
었다.
"아! 참 고맙다. 너희들 덕택에 죽지 않고 살게 됐다. 자, 이제 내가 쇠망태기를 부수고 나갈
테니, 너희들은 저쪽으로 비켜 서 있거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와르릉! 하는 천둥과 함께 번갯불을 번쩍! 하고 일어나더니 뇌신은
쇠망태기를 부수고 훌쩍 뛰어나왔다. 그리고, 다급히 입 속에서 이를 하나 뽑아 어린 남매에
게 주며 말했다.
"너희들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다. 이 이빨을 땅에 묻으면, 싹이 나고 자라서 커다란 열매가
영글 것이다. 앞으로 재난이 있거든 너희들은 그 열매 속에 들어가 숨어라. 그러면 너희들만
이 살아 남을 것이다."
다시 한번 요란스럽게 천둥과 번개를 일으키고 뇌신은 하늘 높이 사라지고 말았다
용감한 아버지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자 어린것들은 넋을 잃은 듯 멍청하니 부서진 쇠망태기
를 가리켰다. 결국 털 끝에 물을 적셔 준 것으로 뇌신이 힘을 다시 얻어 하늘로 올라갔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철부지 어린것들을 꾸짖어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는 미구에 닥쳐
올 뇌신의 대 역습에 대비를 해야했다. 시각을 다투어 그는 커다랗고 튼튼한 철선(鐵船)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편, 어린 남매는 뇌신이 준 이빨을 땅에 묻었다. 이튿날 아침에 나가 보니, 파란 싹이 돋
았고 다음날에는 꽃이 피었고, 또 다음 날에는 커다란 호로(葫蘆)가 영글었다.
그 무렵이었다. 또다시 하늘이 심상치 않게 설레이기 시작했다. 두터운 먹구름이 완전히 태
양을 가려 덮어 온 지구를 암흑 속에 몰아 넣었다. 이어 삽시간에 하늘이 갈라지며 바닷물
을 엎어 부은 듯 폭우가 쏟아졌고, 팔방에서 천둥과 번개가 천지를 진동했다. 전번의 유가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산봉우리도 모조리 물에 잠기고 말았다.
용감한 아버지는 철선을 띄우고
"얘들아! 어서 이 배를 타라. 지난번의 뇌신이 복수하러 왔다."
하고 외쳤다.
두 어린 남매는 광포한 비바람 속에 허우적거리며 아버지 앞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억센
물결이 단숨에 그들을 멀리 흘려 떠내렸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바로 눈앞에 커다란 호
로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두 남매는 서로 고사리 같은 손을 잡아 끌며 호로 속
으로 들어갔다.
지구 위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오직 물만이 들끓듯 술렁이고 있었으며, 그 위에는 용감한
사나이가 탄 철선과 어린 남매가 탄 호로만이 사나운 파도에 까불리고 있었다.
철선을 탄 사나이는 이 괴변을 즉시 하늘 나라의 황제에게 보고하고자 천문(天門)을 찾아
두들겼다.
"어서 문을 열어 주시오. 황제 폐하에게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지상의 괴변을 전해들은 황제는 즉시 여러 천신(天神)들을 시켜 뇌신의 횡포를 멈추게 했다.
동시에 수신(水神)으로 하여금 당장에 천지 사이에 부풀었던 물을 빠지게 했다.
이내 비와 바람이 멎고, 천도(天道)까지 부풀어올랐던 물이 일시에 빠졌다. 그 바람에 천문
을 두드리던 아버지의 철선이 천길 높이의 허공으로부터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을 하고 떨어
졌다. 한편, 아버지의 뒤를 쫓던 남매가 탄 호로도 같이 떨어졌다. 그러나 굳은 철선은 산산
이 부서져 그 속에 탔던 용감한 사나이는 죽었으나, 탄력 있고 말랑말랑한 호로는 약간 튕
겼을 뿐 속에 탔던 두 남매를 상처 하나 없이 안전하게 살아 남게 해주었다. 이들 오누이는
호로(葫蘆)에 숨어서 살아 남았으므로 같은 뜻의 포희 또는 복희(伏羲)라고 불리우게 되었
으며, 후세에는 이들을 복희(伏羲)와 여와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뇌공이 일으킨 홍수 속에서도 조롱박 속에서 살아남은 복희와 여와 오누이는 시간이 흘러
어느덧 어른이 되었다. 오빠는 동생과 결혼하고 싶어했으나 동생은 원하지 않았다.
"우리가 어떻게 결혼을 해요? 우리는 친형제잖아요"
동생은 늘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오빠가 자꾸 원하니까 동생도 거절만 할 수 없어서 오빠
에게 말했다.
"오빠 저를 쫓아오세요. 저를 잡을 수 있다면 오빠와 결혼하겠어요."
그래서 오빠와 동생은 큰 나무를 가운데에 두고 빙빙 돌며 도망치고 쫓아가고 하게 되었다.
동생은 민첩하고 재빨라 오빠가 아무리 쫓아가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오빠는 꾀를 내
었다. 동생을 쫓아가는 척하다가 갑자기 몸을 돌려 무방비 상태에 있던 동생을 품에 안게
되었다. 그리하여 둘은 결국 부부가 되었다. 부부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동생은 둥근 공처
럼 생긴 살 덩어리를 하나 낳게 되어 부부는 기이하다고 생각하며 이 살 덩어리를 잘게 다
져 종이로 쌌다. 이 물건을 가지고 하늘사다리를 타고 하늘나라에 가서 놀려는 것이었는데
중간쯤 올라갔을 때 갑자기 바람이 몰아쳐 종이가 찢겨 잘게 다진 살 덩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는데, 그것들이 땅에 떨어져 모두 사람이 되었다. 나뭇잎 위에 떨어진 것은 엽(葉)씨
성을 갖게 되었고 나무 위에 떨어진 것은 목(木)씨 등 살 덩어리들이 떨어진 곳의 사물 이
름을 성으로 삼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하여 세상에는 인류가 다시 생겨나게 되었다.
∥견우와 직녀∥
먼 옛날 하늘의 옥황상제에게는 직녀라는 어여쁜 딸이 하나 있었다. 직녀는 옷감 짜는 여신
으로 온종일 베틀에 앉아 옷감에다 별자리, 태양 빛, 그림자 등을 짜 넣었다. 그런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하늘을 도는 별들도 그녀가 하는 일을 지켜보기 위해 멈추어 서곤 하
였다. 세월이 흐르면서 직녀는 자주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때때로 그녀는 베틀의 북을
내려놓고 창가에 서서 성벽 아래로 넘실거리는 하늘의 강을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봄날 그녀는 강둑을 따라 궁중의 양과 소 떼를 몰고 가는 한 목동을 보게 되
었다. 그는 아주 잘 생긴 젊은이였는데 그들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직녀는 그가 자신의 남
편감 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직녀는 자신의 마음을 아버지인 옥황상제에게 이야기
하고 그 목동과 결혼시켜 줄 것을 부탁하였다. 옥황상제는 견우란 이름의 이 젊은 목동이
영리하고 친절하며 하늘의 소를 잘 돌본다는 사실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으므로 딸의 선
택에 반대하지 않고 이들을 혼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혼인한 이들은 너무 행복한 나머지 자신들의 일을 잊고 게을러지고 말았다. 화가 난
옥황상제는 이들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었지만 둘만의 행복에 심취된 이들은 곧 다시 게
을러지곤 하였다. 마침내 옥황상제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이들을 영원히 떼어놓을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 결과 견우는 은하수 건너편으로 쫓겨났고, 직녀는 그의 성에 쓸쓸히 남
아서 베틀을 돌려야 했다. 옥황상제는 일 년에 단 한 번, 즉 일곱 번째 달 일곱 번째 날의
밤에만 이들이 강을 건너 만날 수 있게 허락하였다. 이들은 음력 7월 7일이 되면, '칠일월'
이라는 배를 타고 하늘의 강을 건너 만나게 되는데 비가 내리면 강물이 불어 배가 뜨지 못
하게 된다. 그래서 언덕에서 직녀가 울고 있으면 많은 까치가 날아와 그들의 날개를 하늘의
다리를 만들어 이들을 만나게 해 준다고 전해진다.
∥공공과 전욱의 싸움∥
수신(水神) 공공은 본래 염제의 후손인 화신(火神) 축융의 아들이다. 그는 사람의 얼굴에 뱀
의 몸을 하고 있었으며 머리카락이 붉었다. 당시 세계의 형세를 보면 육지가 전체의 3할을
차지하고 있었고, 바다와 강, 늪지 등이 7할에 달했다. 수신 공공은 이렇게 우세한 물의 힘
으로 천하를 제패하고자 했다. 황제와 염제 신농의 전쟁에서도 공공은 물을 이용해 염제를
많이 도와 주었다.
공공과 전욱의 싸움은 공공의 조상인 염제 신농과 전욱의 조상인 황제 헌원과의 싸움의 후
속이다. 공공과 전욱의 싸움은 또한 치우와 황제의 싸움의 연속이기도 했다
한번은 전욱이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은 북쪽 하늘에 못박고 폭정을 심하게 행한 적이 있었
다. 신들은 이에 불만을 품고, 공공을 주축으로 전욱에게 대항을 했는데, 이 양쪽의 군대가
심하게 승부를 가리다가 공공은 자신이 당장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에 갑자기 참을 수 없이
화가 나서 하늘을 떠받고 있던 부주산을 들이받아 서북쪽 하늘이 기울어지면서 북쪽 하늘에
고정되어 있던 태양과 달, 별들이 묶여 있던 끈을 풀고 기울어진 하늘을 따라 서쪽으로 달
려갔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천체의 운행은 이렇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또한 대 홍수
가 났고 여와가 거북이의 네 다리를 잘라 하늘의 기둥을 세웠다.
어쨌든 전욱이 다스리던 우주는 공공의 화 때문에 부서지고 변화해서 지금 우리가 살고 있
는 세상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용견 반호(龍犬 盤瓠)∥
제곡 고신왕(高辛王)의 나라는 먹을 것이 풍족하고, 안팎으로 화목하여 아무런 걱정이 없었
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황후가 갑작스레 귓병에 걸리게 되었다. 고신왕은 이름 난 명의
를 모조리 불러 모여, 심산유곡을 두루 찾아 영특한 약초를 거의 따다가 다려 바치게 했다.
그래도 백방약이 무효요, 황후의 귀는 좋아지질 않았다. 날과 달을 바꾸어 거듭하면서 조야
가 들고일어나 법석을 떨었으나, 통 아무런 효험을 보지 못한 채, 어느덧 삼 년이 지났다.
그러자, 기적이 나타났다. 새벽 일찍 잠에서 깨어난 황후 마마는 그 아프던 귓속에서 누에
같은 금빛 벌레 하나를 끄집어내고, 그 순간부터 그렇게 아프던 통증이 언제 있었느냐 싶게
말끔히 가시고 말았다.
황후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는 그 벌레를 표주박 속에 넣고, 쟁반으로 덮어두었다.
며칠이 지나자, 그 금빛 벌레는 무럭무럭 자라더니 마침내 개로 탈바꿈을 했다. 온 몸에 비
단을 덮은 듯, 오색이 영롱한 털에 찬란한 빛이 번지고 있는 용견이었다. 용견을 본 임금은
황후보다 더 기뻐하고, 몹시 사랑했다. 언제나 신변 가까이에 두고 애육하고, 쟁반과 박 속
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이름을 반호(盤瓠)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방왕(房王)이란 자가 반란을 일으켜서 쳐들어 올 거라는 정보가 전해졌다. 고신
씨 나라의 임금은 신하들에게 말했다.
"바야흐로 천하의 흥망을 가름할 위급한 때를 맞이하였도다. 과인은 그대들 여러 신하의 용
기와 충성을 믿어 마지않는 바이니, 누구든지 오랑캐 땅에 들어가, 역적 방왕의 목을 베어
오는 용사에게는 과인의 딸, 즉 공주와의 결혼을 허락하겠노라."
달같이 맑고 아름답고, 꽃같이 향기 드높은 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수 있다는 말에, 온 나라
의 용사들은 귀가 솔깃했으나, 오랑캐 방왕의 막강한 무력과 잔인하기 짝이 없는 포악을 잘
알고 있는 그들이라,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를 못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넘어, 역적의
토벌을 자청해 나서는 용사가 없는 반면에, 시시각각으로 오랑캐가 가까이 쳐들어 올 것이
라는 조바심과 불안이 먹구름 같이 임금의 가슴속을 덮어 흐리게 하고 있었다.
때마침 임금이 애지중지하던 용견 반호가 홀연 온데 간데 없이 종적이 묘연했다. 대궐 안
사람들은 물론, 전국의 모든 사람에게 수소문하였으나, 아무도 반호의 모습이나 종적에 대하
여 아는 자가 없었다. 임금은 더욱 우울했고, 수심에 쌓였다.
반호는 그때 궁전을 떠나 방왕의 군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방왕을 보자 머리와 꼬리를
흔들어 댔다. 방왕은 매우 흡족해하면서, 독한 술잔을 기울이며 외쳤다.
"그의 개까지도 내게로 투항해오니, 제곡의 나라는 반드시 망하고 말 것이다. 우리의 승리는
절대적이다."
밤이 새도록 방왕은 술잔치를 벌이고 마구 들이마시며 지껄였다. 방왕은 잔뜩 취해 군중의
천막 안에서 잠이 들었는데 이때를 틈타 반호는 방왕에게 덤벼 들어 한 입에 그의 목을 따
가지고, 궁전으로 돌아왔다. 고신왕은 자신의 애견이 적의 머리를 물고 궁전으로 돌아온 것
을 보고는 너무나 감격하여 제대로 말을 못 했다.
"오, 반호야! 내가, 나를 위하여 역적을 쳤구나! 기특하도다!"
충성스럽고 용맹한 반호의 소문이 온 나라 안에 퍼졌다. 임금은 더 없이 기뻐했고, 크게 높
여 자랑을 했다. 그러나 상대가 사람이 아닌 개라, 어떻게 상을 줄 수도 없었고, 더욱이 약
속한 대로 공주를 내려 짝을 지을 수도 없었다. 고작 반호가 좋아하는 음식을 마냥 먹여 줄
뿐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반호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하루 종일 구석에 맥없이 웅크리
고만 있었다. 임금이 손수 쓰다듬고, 음식을 손에 고여 주어도 꼬리만 몇 차례 흔들 뿐 통
먹지를 않았다. 이렇게 사흘이 지났다. 마음씨가 착한 임금은 몹시 걱정이 되었다. 아무리
곰곰이 생각해 봐도 그 까닭을 알 길이 없었다. 오직 한 가지, 자기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도 말하자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임금은 반호에게 타일렀다.
"반호야! 하기는 내가 방왕의 목을 베어 오면, 공주와 짝을 지어 준다고 했다만, 너는 사람
이 아니고 개인 걸 어떻게 하느냐?"
임금의 말이 미처 끝나기가 무섭게, 반호는 반듯이 자세를 가다듬고, 놀라우리만큼 또렷하게
사람의 음성으로 말했다.
"폐하,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저를 금종(金鐘) 안에 밤낮 칠일간만 묻어 주시면 훌륭한 사
람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단 칠일 이전에는 절대로 열어보지 마십시오."
미심쩍기는 했으나, 임금은 충성스런 반호의 청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즉시 금종 속에 반호
를 묻어 주고, 그 결과를 살피기로 했다.
한편, 이 소식을 전해들은 공주는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기한 안에는 절대로 열어 보
지 말라는 분부를 지키노라고, 초조한 하루, 이틀, 사흘을 넘겼다. 그러면서도 너무나 마음씨
가 곱고 인자한 공주는 걱정스러웠다. 벌써 여러 날 동안 한 모금의 물도, 한 줌의 먹이도
없이 지냈으니, 혹시 죽지나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에 사로잡혔다. 공주는 몇 번이고 옥수(玉
手)를 내밀어 금종의 뚜껑을 열까 말까 망설였다. 만 칠일 낮을 넘기고 한 밤만이 남았다.
줄곧 불안과 초조와 궁금증에 초췌하게 여위기까지 한 공주는 자기도 모르게 뚜껑을 살며시
열었다. 금종 속에서 반호는 무척이나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공주님, 이 밤만 무사히 넘겼더라면 좋았을 것을,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게 되었습니다. 저
는 이 이상 더 사람의 몸으로 변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전신은 다 사람의 몸
으로 변신했습니다만, 머리만은 아직도 개의 모습 그대로 남게 되었습니다."
공주의 가슴은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내 죄책감에 사로잡힌 공주는 용하게도 굳게 결
심을 했다.
"나라와 아버지의 생명을 구해 준 반호가 훌륭하게 사람으로 변신할 것을, 내가 잘못하여
완성하지 못한 것이다. 허물은 나에게 있으니, 내가 마땅히 반호에게 시집을 가야 할 것이
다. 그래야 임금이신 아버지도 언약을 지키실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용감하고 충성스런 반호와 선량하고 희생적인 공주의 결혼을 충심으로 축복했다.
결혼식을 올린 이들 신혼 부부는 정이 든 대궐을 하직하고, 남산(南山) 속 깊은 동굴로 가서
살았다. 반호는 지칠 줄 모르고 사냥을 했고, 공주도 소박한 차림으로 반호의 뒤를 돌봐주었
다. 이들에게는 명예나 영화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들이 사는 동굴에는 오직 행복과 사랑의
훈훈한 기운이 넘칠 뿐이었다.
몇 해가 지나자, 이들 부부는 어느덧 3남 1녀의 어엿한 어버이가 되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
은 임금은 손자 아이에게 저마다 성(姓)을 지어 주었다. 쟁반에 낳았으므로 반(盤)이란 성을
내렸고, 둘째는 바구니 속에 낳았으므로 남(藍)이라 불렀고, 막내 손자는 우레 칠 때 태어났
으므로 뇌(雷)라 불렀다. 막내둥이 손녀는 성장하여 씩씩한 병사를 사위로 맞이했으므로 종
(鍾)이란성을 따르게 했다. 이들 네 형제가 서로 성을 달리하여 저마다 한 집안을 이루었고,
후에는 서로 통혼(通婚)함으로써 집안이 커졌고 자손이 번성하게 되었다.
중국 남쪽의 요(搖)나 묘(苗)족은 최근까지도 반왕(盤王)을 자기네 시조로 모시고, 모든 사
람의 생사(生死), 수복(壽福) 내지는 빈천(貧賤) 및 길흉(吉凶)까지도 다 지배한다고 믿고 있
다.
*반호는 천지창조신인 반고와 발음이 비슷해 반고라고도 불려진다.
∥황제와 치우의 전쟁∥
* 중국신화에서의 치우와 우리 나라에서의 치우는 다르다는 사실은 다 아실 겁니다. 이곳에
올리는 내용은 중국 쪽에서 본 치우와 황제의 전쟁입니다.
앞서 공공과 전욱의 싸움에서도 말했듯이 황제와 치우의 싸움은 황제와 염제 신농씨와의 전
쟁으로부터 이어집니다. 치우는 염제 신농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치우의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체로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를 가진모습을
하고 있었고, 모래나 돌, 쇳덩이 등을 먹고살며 안개를 일으키는 도술을 부렸다고 합니다.
염제가 황제와의 싸움에서 패해 남방지방으로 쫓겨나자 치우는 복수하기 위해 자신의 형제
7,80명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남방의 묘족들도 불러모았는데 묘족은 본래 황제의 후손이었지
만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해서 항상 불만을 갖고 있던 터라 치우편에 들었다. 그리고 남방
의 수풀과 물가에 사는 이매, 망량같은 귀신들도 치우 편에 가담했다. 이들은 귀신들의 우두
머리 즉 황제의 삼엄한 감시에 항상 불만이 있었기 때문에 치우를 도와 황제의 자리를 빼앗
고자 하였다.
그는 수많은 군사를 이끌고 남방에서 진군하여 순식간에 탁록에 도착했다. 황제는 자신이
옛날 염제를 물리쳤던 탁록에 치우가 군사를 이끌고 왔다는 소식을 듣고 매우 화가 났지만.
도덕과 인의를 베푸는데 뛰어난 황제는 치우를 감화시켜 피를 흘리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어
가고자 했다. 그러나 고집불통인 치우는 황제의 감화를 전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고 결국
상황은 전쟁으로 귀착되고 말았다.
치우의 군대는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한 7.80명의 치우의 형제들과 묘족, 그리고 도깨비등
의 요괴들이었고, 황제의 군대는 사방의 귀신들과, 곰, 호랑이 같은 온갖 맹수들, 그리고 황
제를 도우려 했던 인간 세상의 몇몇 부족들이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팽팽한 맞수로서 조금
도 지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치우의 군대가 강인하고 용맹스러울 뿐만 아니라 치우가 비를
뿌리고 안개를 피우는 재주가 있었기 때문에 처음 몇 차례의 싸움은 치우의 승리로 돌아갔
다.
어느 날, 양쪽 군대가 들판에서 한창 싸우고 있을 때였다. 치우가 무슨 술법을 부렸는지 온
하늘과 들판에 안개가 끼더니 황제와 그의 군대를 첩첩이 에워싸는 것이었다. 아득하게 희
뿌연 안개 속에서 구리 머리에 쇠 이마를 하고 뿔이 달린 치우족들은 황제의 군사에게 더욱
두려운 존재였다. 그들은 안개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면서 신출귀몰하게 황제의 군대
를 베어 넘겼으니, 황제의 군사들과 말들은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도망치기 바빴다. 황제
는 이 짙은 안개를 헤쳐 나가려고 애를 썼지만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황제가 걱정이 되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을 때였다. 풍후라고 하는 신하가 전차 위에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북두칠성의 국자 모양의 손잡이가 왜 시간이 흐름
에 따라 가리키는 방향이 달라지는 것일까 하는 문제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
을 거듭하다 마침내 지남거(指南車)라는 수레를 만들었다. 이 수레의 맨 앞에는 쇠로 만든
작은 선인(仙人)이 붙어 있었다. 선인은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그 손이 항상 남쪽을 가리키
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 지남거 덕분에 황제는 그의 군대를 이끌고 겹겹이 싸인 안개의
장막에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치우의 군대에는 온갖 요괴들이 있었는데 기이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홀리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들은 대개 세 종류로 나뉘었다. 하나는 이매라고 하는데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몸
을 하고 있었으며 네 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다른 하나는 신괴라고 하며 역시 사람의
얼굴에 동물의 몸을 하고 있었으나 손과 발이 각각 하나씩 이었다. 그들은 마치 하품하는
것 같은 소리를 내었다. 마지막 한 종류는 망량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세살박이 어린아이같
이 생겼으며 온몸이 검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사람들의 말하는 소리를
배워서 사람들을 홀리는 것을 좋아했다.
황제의 병사들이 이 요괴들에 홀려 죽은 자가 상당히 많았다. 그러나 황제는 이상한 소리를
내어 사람들을 홀리는 요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바로 용의 소리라는 것을 알아내었
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소나 양의 뿔로 나팔을 만들어 낮고 가라앉은 듯한 용의 소리와 비
슷한 소리를 내게 하였는데, 이 소리 때문에 요괴들은 겁이 나서 더 이상 사람을 홀리는 짓
을 하지 못하였다. 바로 이 틈을 타서 황제의 군대가 진격해 들어가 그때서야 황제의 군대
는 비로소 작은 승리나마 얻을 수 있었다
황제에게는 응룡(應龍)이라고 하는 신룡(神龍)이 한 마리 있었다. 응룡에게는 한 쌍의 날개
가 달려 있었고 흉리토구산의 남쪽에 살고 있었는데 물을 모으고 비를 내리게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황제는 응룡에게 사신을 보내 전쟁터로 와서 자신을 도와 달
라고 하였다.
응룡이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곧 출정해 치우를 치려 하였다.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아 구
름을 몰아 비를 내리게 하려던 찰나, 이때 벌써 치우는 풍백(風伯)과 우사(雨師)를 불러와
응룡보다 먼저 큰 비바람을 몰아치게 하였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응룡은 재주를 부려볼 방법
이 없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풍백과 우사가 비바람을 황제의 진지로 몰아치니 황제의 군대
는 제대로 버티지도 못한 채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응룡이 아무런 힘을 못쓰는 것에 크게 실망한 황제는 할수 없이 그의 군대를 따라온 딸 발
(魃-가물 발)을 불러 자신을 돕게 하였다. 그녀는 늘 푸른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일설에는 대
머리였다고도 한다. 그녀가 전쟁터에 나서자 마자 비바람은 그치고 하늘에는 태양이 이글거
렸다. 치우의 형제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놀라자 황제는 이 기회를 틈타 공격했는데 치우
형제 몇 명을 죽일 수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천녀(天女)인 그녀는 너무 힘을 소모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지상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녀가 사는 곳은 언제나 빗물을 구경할 수 없고 가뭄이 심하게 들게 되었
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녀를 한발(旱魃)이라 부르고 늘 그녀를 쫓아내려고 하였다.
전쟁이 오래가자 황제의 군대는 점점 사기가 떨어졌다. 그러던 중 황제는 특수한 북을 만들
어 적을 제압하는 묘안을 짜냈다. 동해의 유파산에 기라는 동물이 있었는데 생김새가 소와
비슷했으나 뿔이 없고 발은 단 하나였다. 기는 자유자재로 바닷 속을 돌아다녔는데 이때마
다 큰 폭풍우를 동반하였다. 또 눈으로는 햇빛이나 달빛 같은 빛을 발하였고 소리가 마치
천둥소리와 같았다고 한다.
황제는 이 기를 잡아 그 껍질을 벗겨 가죽으로 북을 만들었다. 황제는 북채를 만들기 위해
뇌택의 뇌신을 생각해 냈다. 이 뇌신은 용의 몸에 사람의 머리를 한 괴물이었는데, 이 뇌신
이 배를 한번씩 두드릴 때마다 천둥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옛날 화서씨가 뇌택에서 괴물의
발자국을 밝고 복희를 낳았는데, 그 괴물이 바로 뇌신이다. 황제는 그를 죽여 그의 몸 속에
서 커다란 뼈를 꺼내 북채로 삼았다.
황제가 뇌신의 뼈로 기의 가죽으로 만든 북을 두드리면 우레 소리가 5백리 밖에서도 들렸다
고 한다. 이 북을 연이어 일곱 번 두드리니 천지가 진동해 황제 쪽의 군대는 사기가 오르고
치우의 군대는 사기가 떨어져 황제는 큰 승리를 걷을 수 있었다. 전력의 50%이상을 잃은
치우는 북방의 거인족 과보에게 도움을 청하였다.치우족의 사신은 과보족에게 도움을 청하
고자 하는 뜻을 밝혔다. 과보족은 후토의 자손으로 후토와 치우는 모두 염제의 자손이다. 그
래서 대부분의 과보족이 찬성의 뜻을 나타내, 그들은 전쟁터에 나가게 되었다.
치우는 과보족의 도움을 얻게 되자 단번에 기세가 회복되었다. 전력도 이제 황제와 엇비슷
해져서 황제의 군대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게 되었다. 황제는 과보족이 치우편에 가세했다는
말을 듣고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그에게 하늘나라의 선인인 사람의 머리에 새의 몸을
한 현녀(玄女)가 나타났다. 현녀는 황제에게 병법과 보검을 전수했는데 이 보검은 차가운 빛
을 사방으로 뿜어내었고 또 수정처럼 투명했으며, 옥을 자르면 마치 진흙을 베는 것처럼 쉽
게 잘렸다고 한다.
황제가 병법과 보검을 얻자 황제의 군대는 사기가 올라 전쟁에 크게 승리하였다.
황제의 군대는 이 전투에서 치우의 군대와 과보족을 죽이고 치우도 사로잡는 전과를 올렸
다. 황제는 탁록 지방에서 치우를 죽였는데, 그가 도망갈까봐 손과 발을 수갑과 족쇄를 채워
꼼짝 못하게 하고 완전히 숨이 끊어진 뒤에야 그의 몸에서 피 묻은 수갑과 족쇄를 풀어 대
황에 버렸다. 그것들은 나중에 단풍숲으로 변했다고 한다
황제는 묘족에게 냉엄한 복수를 했는데 그래서 그들은 대대손손 깊은 원한을 품고 있다고
한다.
∥북두성과 남두성∥
중국 위나라에 관로(管輅)라고 하는 점성술의 대가가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남양현의 시골
에서 문득, 밭 한가운데서 일하고 있는 안초라는 청년을 만났는데 그 얼굴을 보니 곧 죽을
운명이었다.
"아아, 안타까운 일이다. 이 소년은 20살까지밖에 수명이 없구나."
라고 중얼거렸다.
소년의 부친은 이 소식을 듣고 관로에게 찾아와 아들의 목숨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관로
는 안초를 불러 말했다.
"집에 돌아가서 청주 한 통과, 말린 육포를 준비하여 묘(卯)일에 자네의 밭의 남쪽 끝 뽕나
무 아래에 가면 두 사람의 노인이 바둑을 두고 있을테니, 그 옆에 술을 따르고 육포를 놓아
두면, 두 사람이 술을 마시고 육포를 먹을 것이네. 그들이 잔을 비우면 술을 따르고 이렇게
해서 술을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게, 만약 그들이 무어라고 말을 하면 아무 말 하지 말고,.
그저 머리 숙여 인사만 하면 되네. 그러면 그들이 자네를 구해줄 걸세"
안초는 관로가 일러준 대로 남쪽 끝의 뽕나무 아래에 가보니, 과연 두 사람의 노인이 바둑
을 두고 있었다. 안초는 그들 앞에 가만히 술과 안주를 놓아두었다. 두 노인을 바둑판에 빠
져 무의식 중에 술과 고기를 먹었는데, 술이 몇 순배 돌자 북쪽에 앉아있던 노인이 안초를
보고 꾸짖듯 말했다.
"이런 데서 뭘 하는 게야. 저리 가거라"
그러나 안초는 머리 숙여 인사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쪽에 있던 노인이
말했다.
"방금 우리가 이 청년이 가져온 술과 안주를 먹었으니, 무정하게 대하면 안돼지."
그러자, 북쪽의 노인은
"이 소년의 수명은 태어나서부터 정해져 있네. 지금 와서 어쩔 수는 없는 일이네"
하고 말했다. 남쪽의 노인은 북쪽노인에게 명부(命簿)를 빌려 받아 소년의 이름을 살펴보았
다.
이윽고 소년의 이름을 찾아 수명이 19(十九)세에 불과한 것을 보고는, 붓을 들어 글자를 뒤
집는 표시를 하였다. (十九 -> 九十) 이로써. 소년은 90살까지 살 수 있게 되었다. 안초가
돌아와 관로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니, 관로는
"북쪽에 앉은 선인은 북두칠성의 정령이고, 남쪽에 앉은 선인은 남두육성의 정령일세. 북두
는 죽음을 관장하고, 남두는 삶을 관장하지. 인간이 어머니의 뱃속에 깃들면 남두육성은 탄
생일을 기록하고 북두육성은 사망일을 기록하지 그러니 빌 것이 있으면 북두성에게 빌게나"
하고 말하고는 멀리 떠나갔다.
∥과보∥
과보족은 모두가 엄청나게 큰 거인이었는데 힘도 장사였고, 귀에는 두 마리의 누런 뱀을 걸
치고 있었고 손에도 노란 뱀 두 마리를 쥐고 있었다. 그러나 성품은 착하고 온순했다.
이 과보족의 한 거인이 한번은 태양을 쫓아가 보겠다고 태양과 달리기를 시작한 일이 있었
다. 그는 들판에 서서 그의 긴 다리로 성큼성큼 내딛으며 바람처럼 달리기 시작했다. 서쪽으
로 기울어져 가는 태양을 따라 순식간에 천리를 넘게 달렸다. 이렇게 해서 그는 태양을 쫓
아 우곡에 까지 가게 되었다. 우곡은 태양이 지는 곳이었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새빨간 불덩어리 하나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그는 환희에 차서 거대한
팔을 들어올려 그 태양을 움켜쥐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꼬박 하루를 달려왔기 때문에 너무
피곤하고 태양의 열기로 인해 목이 말라 엎드려 황하와 위수의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찌
나 목이 말랐던지 과보는 이 두 줄기 강물을 순식간에 모두 마셔 버렸다. 그래도 목마름이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다시 대택의 물을 마시러 북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불쌍한 과보는 목적지에 다다르기 전에 도중에 목이 말라 죽고 말았다. 그때 그는 마치 산
이 무너지듯 쓰러졌는데 그가 쓰러질 때 대지와 산, 그리고 강물까지도 모두 커다란 소리를
내었다고 한다.
그는 죽을 때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를 던졌는데, 그 지팡이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순식간에
복숭아 숲으로 변하였다.
지금의 호남성 완릉현에 과보산이 있는데 이 산 위에는 품(品)자 모양의 커다란 세 바위가
있는데, 과보가 태양과 경주할 때 배가 고파 솥을 가져다 여기에 걸고 밥을 해 먹었다는 이
야기가 전해진다.
∥설∥
설은 은나라의 시조로 그의 14대 손이 은나라를 건국한 탕왕이다. 설은 우를 도와 치수공사
에 많은 공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설의 탄생 신화
유융씨에게는 간적과 건자라고 하는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다.
어느 날 천제가 제비 한 마리를 보내어 그녀들을 보고 오도록 했다. 제비는 즉시 그녀들이
있는 곳으로 날아가 빙빙 돌며 노래를 하였다. 그 노랫소리는 그녀들을 기쁘게 했다. 그래서
다투어 제비를 잡으려 하니 제비는 마침내 옥광주리 안에 잡혀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조
금 후 궁금해진 그녀들이 광주리를 열어보는 순간, 제비는 훌쩍 날아가 버리고 광주리 안에
는 알 두 개만이 남겨져 있을 뿐이었다. 간적은 이 두 개의 알을 먹고 은 민족의 시조인 설
을 낳았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서는 그녀가 다른 두 여자와 함께 강에서 목욕을 하는데 제비가 하늘에서 알
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무심코 그 알을 받아 먹었는데, 임신을 하게 되어 설을 낳았다는
것이다.
∥후직(后稷)∥
후직은 주(周)나라의 시조로 성은 희(姬), 이름은 기(棄)이고, 요순시대에 농업을 당담했다.
*후직의 탄생설화
유태씨에게는 강원이라는 딸이 있었는데. 어느 날 교외에 나가 놀다가 땅 위에 거대한 발자
국이 나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이끌려 그 발자국을 밟아 보았다. 그 후로 태기가 있어 달
이 차서 아이를 낳았는데, 그것은 그저 둥그런 살덩이일 분이었다.
그 모습이 하도 기이하여 그녀는 그 살덩이를 마을의 좁은 골목길에게 버렸는데, 동물들이
그 살 덩어리를 밟을까봐 조심하여 옆으로 비켜 다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살 덩
어리를 들고 다시 숲으로 버리려 했으나 사람이 많아 그대로 돌아오고 말았다. 다시 돌아오
는 길에 얼어붙은 호수 위에 놓고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새들이 나타나 날개로 그 살 덩어
리를 포근히 감싸는 것이었다.
강원은 비로소 그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님을 알고 소중히 키웠다. 그리고 이름을 기(버린
다는 뜻)라 지었다.
후에 자손들이 그 아이를 후직이라고 불렀는데, 후직은 요 임금 때 백성들을 위해 농사짓는
여러 방법을 지도해 주었다. 후직은 하늘나라에도 올라가 그곳에서 온갖 곡식의 씨앗들을
가지고 인간 세상으로 돌아와 대지 위에 그것을 뿌려 수많은 농작물들이 들판을 가득 채우
게 했다고 한다.
∥잠신∥
황제가 치우를 살해한 뒤 하늘에서 잠신(蠶神)이 내려와 실을 토해내 이 실로 옷감을 짜게
되었는데, 이 실로 짠 비단은 가볍고 부드러워 이 이후로 누에를 기르고 옷감을 짜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잠신은 본래 용모가 아름다운 소녀였다. 먼 옛날 어떤 사람이 먼길을 떠나 오랫동안 집에
가지 못했다. 그의 집에는 어린 딸과 말 한 마리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말은 소녀가 먹이를
주어 길렀는데 혼자 남은 딸은 무척 쓸쓸해하며 늘 그녀의 아버지를 그리워했다. 그러던 어
느 날 그녀는 마구간의 말에게 농담으로 말을 건넸다
'말아! 네가 가서 우리 아버지를 모시고 오면 나는 너에게 시집을 갈텐데'
말은 그 말을 듣자마자 고삐를 끊고 마굿간을 뛰쳐나갔다. 몇 날 며칠을 달리다가 소녀의
아버지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소녀의 아버지는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 그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 딸이 아버지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했다. 아버지는 딸의 말을 듣고 나자 아무
할 말이 없어 그냥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어린 소녀는 말이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걸
알고 그 전보다 더 좋은 사료를 주었는데 말은 도통 먹지를 않고 신경질을 부렸다. 아버지
는 이 괴이한 모습을 보고 딸에게 물었는데 딸은 하는 수 없이 전에 말에게 농담 삼아 했던
이야기를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밝혔다.
아버지는 말을 사랑했으나 결코 말을 그의 사위로 삼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말을
죽였다. 그리고 그 껍질을 벗겨 뜰에 널어 두었다. 아버지가 외출한 사이 어린 딸이 말 가죽
옆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말 가죽에 땅바닥에서 날아 오르더니 소녀를 뒤집어
씌우고는 눈 깜짝 할 사이에 저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와 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딸을 찾기 위해 부근을 샅샅이 뒤졌으
나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이 있은 뒤 며칠이 지나 아버지는 큰 나무의 나뭇잎 사이에서 온몸이 말 가죽으로
둘러 쌓인 딸을 찾아냈으나 그녀는 이미 벌레로 변해 있었다. 그 벌레는 말 모양의 머리를
천천히 흔들며 입에서 희게 빛나며 길다랗고 가는 실을 토해 사방의 나뭇가지를 휘감는 것
이었다. 호기심에 찬 사람들이 모여 그 광경을 보고 실을 토해 내는 이 이상한 생물을 누에
(잠-蠶)이라고 부르고, 그 나무는 뽕이라 하였다
∥주목왕1(곤륜산의 전경)∥
주나라 목왕이 천하를 순시하러 떠나는 장면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주나라 목왕이 여덟 마리의 준마가 끄는 수레를 타고 천하를 순시하러 떠나는데, 이 팔 준
마 중 어떤 말은 너무 빨리 달려서 발에 흙이 묻지 않을 정도였고, 또 어떤 말은 새보다도
더 빨리 날았다고 합니다. 또 하룻밤에 만리를 달리는 말도 있었고, 등에 날개가 돋아서 하
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말도 있었다는 등, 팔 준마 모두신비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
니다.
주목왕이 천하를 돌아다니면서 물의 신 하백도 만나고, 곤륜산에서 황제의 궁전을 구경하게
됩니다. 곤륜산의 모습을 묘사한 것을 보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
산의 꼭대기에는 네모난 광장이 있고, 주위에는 경옥(硬玉)의 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사방의
구석마다 아홉 개의 우물과 아홉 개의 문이 있다. 이 아홉 개의 문을 지나 들어가면 바로
천제(天帝)가 있다는 궁전이 보이는데, 다섯 개의 성곽에 둘러싸여 있으며, 열두 개의 높은
누각으로 꾸며져 있다. 누각의 오른 쪽에는 새의 깃털도 가라앉는다는 약수(弱水)가 있고,
그 왼쪽에는 요지가 있다. 누각의 동서남북에는 주수(珠樹)·옥수(玉樹)·선수(璇樹)가 자라
고 있고, 봉황새와 난조(鸞鳥)가 노닐고 있다. 또, 사당수(沙棠樹)와 낭간수가 있는데, 낭간수
는 진주와 같은 예쁜 구슬을 열매로 맺는 귀중한 나무이다. 문옥수(文玉樹)에는 오색이 영롱
한 아름다운 구슬이 영글었다. 또한 열매를 먹으면 장생불사한다는 불사수(不死樹)도 있다.
그곳에 흐르는 예천(醴泉)은 맑고 차며 맛이 감미로우며, 강물 가에는 진기하고 묘한 화초들
이 우거져 더없이 아름답다.
.........
곤륜산 황제의 궁전의 입구에는 문을 지키는 개명수(開明獸)라는 짐승이 있는데, 머리가 아
홉 개나 있는데, 이 개명수의 머리는 모두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마치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저승입구를 지키는 케르베로스Cerberos와 비슷하군요.
또한 곤륜산의 옥이 자라는 낭간수는 매우 귀한 것이어서 황제는 특별히 눈이 밝고 세 개의
머리가 달린 이주(離朱)라는 사신을 보내어 그것을 지키게 했다고 합니다. 이주는 세 개의
머리로 돌아가며 잠자고 차례로 깨어나 작은 먼지까지도 찾아낼 수 있는 밝은 눈으로 하루
종일 이 낭간수를 지켰다는군요. 이주는 그리스 신화의 눈이 100개나 달린 감시자 아르구스
Argus와 역할이 비슷하네요.
또한 약수(弱水)의 주위에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큰 산이 있고, 그곳에 나무가 하나 있었는
데, 그 나무는 밤낮으로 계속 타고 있고 결코 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나무는 항상 황제
의 궁전을 비추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큰 불 속에는 소보다 더 큰 쥐가 살고 있었는데, 그 쥐는 무게가 천근이고, 털의
길이는 두자나 되었는데, 그 털은 명주실만큼이나 가늘었다고 합니다. 이 쥐는 불 속에서만
살아서 온몸이 붉은 색인데 일단 밖으로 나오면 곧 눈처럼 새하얀 빛으로 변하였고, 그래서
그 쥐가 밖으로 나왔을 때 얼른 물을 뿌리면 금방 죽었는데, 그 쥐의 털로 옷을 지어 입으
면 영원히 세탁을 할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더러워지면 불에 한번 태우기만 하면 다시
하얗게 변했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 옷감은 화완포(火浣布)라 불렀답니다.
∥주목왕2(서왕모와 요지연)∥
곤륜산에 대한 이야기는 이것으로 하고, 다시 주목왕 이야기로 돌아와서...곤륜산을 구경하고
난 주목왕은 적오족과 손이 땅에까지 늘어져 있는 사람들이 사는 장비국을 방문합니다.
목왕은 다시 서쪽으로 가 서왕모가 살고 있다는 엄자산으로 갑니다. 이 엄자산에는 말의 몸
에 새의 날개를 하고 사람의 얼굴에 뱀의 꼬리를 한 숙호라는 짐승이 있고, 또 생김새가 올
빼미와 같고 사람의 얼굴을 하고 원숭이의 몸에 개의 꼬리를 한 새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주목왕은 서왕모에게 갖가지 옥과 비단을 바치고, 이튿날 요지瑤池에서 연회를 배
풀어 서왕모를 대접합니다. 요지의 모습은 묘사되어 있는 것이 없지만, 곤륜산의 모습으로,
그리고 여러 그림들에 나와있는 모습으로 볼 때, 그리고 한자로 볼 때 (瑤 : 옥돌 요) 매우
아름다운 곳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목왕3(인간을 만든 언사)∥
서왕모를 만나고 중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왕은 손재주가 뛰어난 언사라는 자를 만나게 됩
니다. 이 자는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고 전해지는데, 목왕에게 아주 신기한 것을 보여주죠.
언사는 이상한 복장을 한 사람을 목왕에게 데리고 와서 자신이 만들어낸 사람이라고 말합니
다. 목왕은 깜짝 놀라죠. 아무리 보아도 진짜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으니까요. 목왕은
믿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가짜사람의 재주를 시종, 궁녀들과 함께 구경합니다.
그 가짜사람이 노래를 부르며 춤도 추는데 그 동작이 모두 박자에 맞고 노래솜씨 또한 일품
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그 모습 어디에도 가짜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을 수 없었죠.
노래가 거의 끝나갈 무렵, 목왕은 가짜사람을 진짜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언사가 자신을 우
롱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신하를 시켜 그 가짜사람의 목을 비틉니다. 근데 이게 웬일입니까.
언사가 말한 대로 그 가짜 사람은 가죽과 나무, 아교와 칠 등으로 만들어져 있던 겁니다. 몸
속의 내장이며, 관절 뼈, 피부와 털, 치아와 머리카락까지도 모두가 제대로 갖추어진 가짜사
람이었던 겁니다.
언사가 흐트러진 그것들을 다시 조립하자 그 가짜사람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다시 노래
를 부릅니다. 그때서야 목왕은 언사의 말을 믿게 되었고, 언사를 극진히 대접해 궁으로 데리
고 갑니다.
∥서 언왕∥
주목왕 이야기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주목왕이 세상을 여행하는 사이 남방의 서 언왕이 반란을 일으켜 주나라를 치려고 하는 일
이 일어납니다. 서 언왕은 총명하고 자애로와 어진 정치를 폈고 이웃나라와도 화목하게 지
냈는데, 당시 주 목왕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자 주나라는 어지러웠고, 이 틈을 타 한번 천
자의 자리를 얻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게 된 것이죠.
하지만, 서 언왕에겐 야심은 있었지만 야심을 실현시킬만한 박력이 부족해서 쉽게 군사를
밀고 나가지 못하고 결국 급히 나라로 돌아온 주목왕에게 패하고 말았고, 결국은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서 언왕에게 재미있는 전설이 하나 있죠.
전설에 의하면 서나라의 궁전에서 어떤 궁녀 하나가 갑자기 임신을 하게 됩니다. 그녀가 달
이 차서 낳은 것은 알이었습니다. 궁녀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여겨 그 알을 물가에 내다
버렸는데, 마침 그 근처의 과부할머니가 기르던 곡창이라고 하는 개가 물가에서 놀다 그 알
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곤 그 알을 입에 물고 돌아와 자신의 몸으로 따뜻하게 품어주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 알에서 어린아이가 태어납니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개처럼 누워
있었다고 해서 언(偃: 쓰러질 언, 누울 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죠,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아이가 태어날 때 살만 있고 뼈가 없어 자꾸 쓰러졌기 때문에 언이라고 불렀다고도 합니다.
어쨌든 본시 그 알을 낳았던 궁녀는 알속에서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아이를 데
려다가 자신의 아들로 삼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커서 서 언왕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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