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뿌리는 대한민족이다
1. 일본의 시조는 배반명(裵幋命)이다.
[일본의 고대사] 일본의 시조 陜野後裵幋命(협아후배반명)을 가지마는 니기하야 노모데루이며, 페니키
아왕이라 번역 했다. 일본서기는 니기하야히노미꼬를 배반명(裵幋命)이라 기록돼 있다. 그 후 고구려의
섬부(陝父:협부)가 일본에 들어가 왕이 되었다. 또한 선비(鮮卑) 모용외는 일본에 들어가 왕이 되었다.
2. 백제는 황제국이며 일본의 부모국이다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의하면 22세 文周王(문주왕)이 즉위한 乙卯(을묘:475년)에 도읍을 熊川
(웅주:지금의 公州(공주)에 옮겨 歷年(역년) 63년까지 도읍지이다. 1971년 백제 25대 무령왕릉이
발굴되어 108 종 2천 9백여 점의 수많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백제 제21대 개로왕(蓋鹵王
455~475년 재위)은 두 왕자가 있었다. 장남은 22대 문주왕(文周王, 475~477년)이며, 차남은 곤
지왕자(昆支王子)였다.
곤지왕자의 장남은 [모대왕(牟大王子 24대 백제 동성왕(東城王)]이고 차남이 무령왕이다. 백제 25대 무령왕(501∼523)의 아들이 순타(純陀) 태자이다. 무령왕의 아들 순타 태자의 일본이름은 사아군(斯我君)이며 505년 왜국에 체류하다가 513년에 죽었는데 이때 낳은 아들 법사군(法師君)이 야마토노키미(倭君)의 선조이다.
770년 야마토씨는 다카노(高野)씨로 성을 바꾸어 간무 천황의 생모가 된다. 고야신립(高野新笠)이 49대 일본 광인(光仁·770∼781)왕에게 시집가서 제 50대 칸무(桓武·재위 781∼806)왕을 낳았다고 기록돼 있습니다.
아키히토 일본 국왕은 2001년 12월 KBS와 기자회견에서 “나는 백제의 혈통이다.” 라고 솔직히 자백했다. 즉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나는 간무(桓武·재위 781∼806)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다. 라고 ‘속(續)일본기’에 기록돼 있는 사실에 한국과의 인연(緣)을 느낀다”라고 일본의 부모국이 바로 대한민국이란 역사적 진실을 아키히토 일본 국왕이 솔직히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얼빠진 한국인들은 일본왕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도 일제에 의해 말살, 왜곡, 변조된 조선사(현행국사)를 해방 61주년을 맞은 지금까지 청년학도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있으니 도대체 제정신이 있는 민족인가? 얼빠진 민족인가?
2. 백제 의자왕의 아들은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었다
660년 부모국의 백제 황제국이 멸망에 이르자 자손 후국(侯國)의 왜국은 군사 수만명을 급파하여 백제
부흥운동을 일으킨다. 당시 일본 37대 제명여왕(의자왕 여동생)은 부모국 백제를 되찾기 위해 군선을
건조하고 탐라국에 참전을 요구하고 왜병을 사비성에 파견하였으나 지도층의 내분으로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은 망국의 한을 품고 반드시 본토를 침략 회복하겠다는 굳은 맹세와 함께 유민들을 거느리고 왜국에 건너가서 제38대 텐치(天地: 661∼671)왕에 즉위하고, 부모국의 백제 황제국이 멸망하자 국호를 왜(倭)에서 일본(日本)으로 바꾸고 감히 자칭 황제라 칭하게 된다. 일본으로 국호를 개명한 것은 본국 백제의 제후(諸侯)에서 벗어나 자주 독립적 황제국이라 선포한 것이다.
제 50대 칸무(환무: 781∼806)왕은 794년, 신생 독립국의 수도를 헤이안(平安京: 현 교토)에 옮기고부터 1860년대 메이지 이전까지 1천년간 왕도(王都)이었다. 일본 막부(幕府:무사정권)는 무신(武臣)을 등용하여 부모국의 한국(백제) 본토(중국땅)를 반드시 정복하겠다고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신무기 개발정책에 박차를 가하여 1천여년 후 침략의 야욕이 결국 임진왜란을 일으키게 된다.
3.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의 배경
최근의 독도분쟁은 한국 영토를 침략하기 위한 하나의 구실에 불과하다. 한,중,일 어느
사서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란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역사적으로 독도가 자기나라 땅
이 아니라는 것을 어찌 일본인들이 모르겠는가!
그 배경의 실체는 백제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부모국이 백제]이기 때문에 중세의 일본왕
(칸왕)이 잃어버린 백제의 영토를 회복하겠다는 야욕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간토[關東]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연합한 뒤 1587년 일본 전국을 통일했다. 16세기 오다노부나가[織田信長]가 시작한 일본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백제의 본토를 침략할 야심을 품고 조선을 침략해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죽을 때까지 최고위 직인 다이코[太閤:1585~98]를 지냈다. 1592(선조 25)~98년에 2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이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적들이 외친 말이 있다.
"우리 황제국 백제 의자왕의 1000년 한을 풀겠다" 라고 소리쳤다. 백제의 마지막 의자왕(641년)의 아들 부여풍은 백제 멸망의 한을 품고 662년 백제 유민을 거느리고 일본으로 건너간 때로부터 약 1천년이 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백제의 마지막 부여풍왕의 원한을 풀고, 부모국의 백제 영토을 되찾겠는 야욕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키고, 그 후 끊임없이 침략해 결국 1905년 한국은 일본에게 잡아 먹이고 말았다. 이때부터 1945년.8.15일 해방될때까지 독도뿐 아니라 한국 영토 전체가 일본의 영토이었다.
일본은 먼저 백제가 한국의 역사인가? 일본의 역사인가? 판별하고 자각해야 될 것이다. 즉 중국의 소위 동북공정에서 고구려 역사를 자기들 역사라고 우기는 것과 같이 일본도 백제의 역사를 일본의 역사라고 억지주장을 하지 않고서는 결코 독도를 자기들 영토라고 주장할 수 없다. 는 역사적 사실을 명심하고, 일본국왕은 인류부모국의 한국역사를 말살, 왜곡,조작했다. 라고 진실을 세상에 밝히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일본과 한국은 진정한 화해(和解) 협력국으로 새롭게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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