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우리역사 바로알기

[스크랩] 1981년 국사청문회(1)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07. 2. 11. 23:56
 

1981년 국회 국사청문회


1. 청문회 개요

  (1) 친일부역매국식민사학의 결정판인 국사교과서를 바꾸기 위해 뜻있는 민족역

      사학자와 국회의원 19명의 요청으로 1981. 11.26 ~ 27 양일간 국회에서 "국사

      청문회"가 열렸다

  (2) 민족사학측은 안호상(安浩相), 박시인(朴時仁), 임승국(林承國) 3인 이었고

  (3) 식민강단사학측은 최영희(崔永禧), 김철준(金哲埈), 이용범(李龍範), 전해

     종(全海宗), 이기백(李基白), 이원순(李元淳), 안승주(安承周) 7인 이었다(이

      들 명단을 기억하여 그들이 쓴 역사책을 확인해보면 도움이 될 것임 : 전원 그

      당시 국사편찬위원임)

  (4) 식민강단사학측은 식민사학의 거두 "이병도의 수제자"들 이었음두말할 나

      위도 없음이며, 비전공자들과 토론하는 것이 겪에 맞지 않아 불쾌하다는 둥

      거들먹거리던 그들에게

  (5) 국회는 국사편찬위원 전원 경질이라는 철퇴와 청문회 내용을 국사책에 반영

       할 것을 결정하였다

  (6) 이러한 민족 사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의 결과로 "83년 국사교과서" 개편시 다

      음사항이 반영되었다

    1) 단군왕검의 고조선 개국사실 수록(역사로 인정)

    2) 백제의 대륙진출 수록

    3) 한 4군의 한반도 위치설 삭제 등

  (7) 이것이 밀알이 되어 “제 2의 국사청문회”를 개최하여 "81년의 국사청문회"보

      다 더 발전된 결과가 나와 매국식민사학 척결, 땅에 떨어진 민족정기를 회복

      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2. 고 임승국 교수님의 ‘국사 청문회’ 발언내용

※ "1,000년만의 역사혁명, 식민사학 71년"

※ 1981년 11월 27일 고 임승국 교수는 이병도의 제자들 5명과 국회에서 1대 5의 격론을 벌인다(1 : 5)⇒(임승국 : 김원룡, 김해종, 이기백, 이원순, 안승주)

  (1) 임승국 교수 발언내용

    1) 위원장님(국회 문교공보위원회 위원장 한병태韓柄泰)과 배석하신 여러 위원

       님들 한테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어제, 오늘 이틀에 걸쳐서 우리

       민족사로 말하자면 1,000년만의 개혁, 1,000년만의 혁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러한 중요한 계기와 동기를 마련해 주시고, 또 우리 사학적인 입장에서 보

       면 분명히 식민사학이래 71년만에 이러한 중대한 계기가 된 셈입니다

    2) 따라서 우리 대한민국 국회에서 이러한 계기를 이렇게 마련해 주셔서 정말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여러분들께서 아마 71년이라고 하는 말의 "뉘앙

       스"를 좀 이상하게 받아 들이실지는 모르겠습니다 만은 (일제 36년간 아닌 35

       년간)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일본시대를 일제 36년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3) 분명히 한번 냉정한 입장에서 계산을 해보시면 아마 36년이라고 하는 말이

        대단히 잘못 됐다는 것을 아실 거예요.

    4) 1945년에서 1910년을 빼면 산술계산적인 숫자로 35년간이 틀림 없습니다.

        날짜까지 따지면 35년에서 14일이 도리어 모자라요. 그런데 우리는 1년 14

        일을 보테서 36년 36년하고 정말 광복이후 36년간이나 떠들어 왔습니다

    5) 그런데 우리학계에서는 문교부 당국에다가 이 용어가 잘못 됐으니까 35년으

       로 고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건의도 여러차례 내었습니다. 바로 어저께

       강의해 주신 박시인 박사 명의로 건의를 했어요

    6) 그런데 어저께 역시 이 장소에서 나와서 답변해 주신 국사편찬위원장(이병

        도)으로부터 회신도 받았어요. 제가 오늘 그 회신을 가지고 나오려고 하다가

        미쳐 가지고 나오지 못했습니다마는 "우리의 계산법이 틀렸으니 다시 검산

        해 보시고 건의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것 이었어요

    7) 아무리 우리가 아둔한 사람이라도 45빼기 10이라고 하는 빼기계산을 다시

        해야 할 정도는 아닙니다.

    8) 그런데 금년 4월에 문교부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봤습니다. 신문에 보

       도된 바에 의하면 "명년도 82학년도 각종 교과서부터는 일제 35년으로 하기

       로 한다"는 것 이었습니다. 45빼기 10이라고 하는 이 단순한 수학계산을 하

       는데 36년이나 걸린 셈이지요

    9) 그렇지 않아도 문교부가 자꾸 얻어 맞는데 이런 말씀하는 것은 좀 미안합니

       다마는 36년 빼기 10하는데 36년이나 걸렸는데 우리 민족사를 바로 잡으려

       고 하는 이 운동이 하루 이틀에 되겠습니까 ?

  10) 정말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깨려고 하는 시도나 마찬가지인 줄 압니다. 그러

       나 이렇게 국회에서 우리 사학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이런 좋은 기회까지

       마련해 주시니까 그 난공불락의 식민사관이 71년만에 해결될 줄 압니다. 해

       방이후 36년 됐으니까 분명히 71년입니다

  11) 71년만에 깨질 공산이 보입니다. 가능성이 보입니다. 기왕 35년에다가 36년

       의 말씀을 드렸으니까, 제가 우리 한국사람 일반이 우리 조국사에 대해서 어

       느 정도 무관심한가 하는 실례를 한번 들어 보겠습니다

  12) 조선왕조 태조의 이름은  이단(李旦)

      어저께 박시인 박사께서는 조선왕조의 태조의 성명이 누구냐 해서 여러분들

      에게 물어 본 줄 압니다

  13) 이성계라고 하는 이름은 고려 장군 당시의 이름이시고 그가 태조로 등극하자

       이름을 바꿨습니다. 즉, 날일(日)자에 한일(一)자를 쫙 근 것 지평선위로 떠오

       르는 "라이징 썬" 떠오르는 해라는 뜻의 단(旦)자로 바꿨습니다. 그래서 이 단

       (李 旦)이라고 한 것입니다

  14) 조선왕조의 역사를 그렇게 역점을 두고 공부하고 있는 소위 우리한국의 사학

       자들이 조선왕조실록 첫 페이지 첫줄도 아직 읽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관

       심이 없다는 얘기이지요

  15) 李朝가 아닌 朝鮮王朝

      고려청자 다음에 우리 도자기 역사는 흔히들 뭐라고 그러느냐 하면 "이조백

      자"라 합니다. 또 우리 정사책의 제일 마지막 책이 뭐냐고 하면 흔히들 얘기하

      기를 이조실록이라고 그럽니다 만은 도대체 이조라고 하는 왕조가 어느 때 있

      었습니까 ?

  16) 왜인들이 이땅에 들어와서 쓰기 시작한 말이 이조예요. 이조라고 하는 말은

      "미스터"李의 나라라는 뜻 이예요. 이조실록이라고 하는 책이 과연 있었던가

       요 ? 없었습니다. 그것은 조선왕조실록입니다.

  17) 그래서 우리들의 역사에 대한 무관심이 우리 실생활과 국가생활에 어느 정도

       의 영향을 주고 있느냐 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중 략)

  18) “일본놈들은 단군은 물론, 중국정사인 25사도 못보게 했다”

      제가하는 이 말에는 조금도 추호도 모순이 없습니다. 일제시대에는 단군소리

      한마디도 하지 못했고, 우리 고대사의 온갖 자료는 전부 금서처분돼 있었습니

      다. 우리고대사만이 아니고 중국정사 소위 "25사"라고 하는 책도 금서처분돼

      있었습니다. 만일 이런책들을 보면 잡혀 갔어요.

  19) 자 그러니까, 그 당시에 학문하는 사람들 특히 한국사 공부한 사람들은 무슨

       사학을 했겠습니까 ? "불문가지"입니다. 물론 이용범교수께서는 연령 등으로

       봐서 그 당시에 공부하신 분으로 제가 보지 않습니다 만은, 저 총독부의 "조

       선사편수회"에 한국인 학자로서 참여해서 활동하다가 금년까지 생존해 계신

       분 즉 일본시대에 고등관을 지내신 분도 있습니다.

  20) 그 가운데 한분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꼭 한분(이병도)이 표본처럼 남아 살아

       계십니다. 이 분의 훈도(訓導)밑에서 사학을 배운 분들! 그 분의 감독밑에 감

       수밑에 감사밑에 학위를 받은 분들 !

  21) 저는 단순히 이용범교수 한분을 가리켜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역사단

       (現役史壇)의 전부가 대부분 그렇습니다. (아직도 국사 광복은 이루어지지 않

       았다)

  22) 저는 1945년 광복이라고 하는 것을 두가지 측면에서 봅니다. 정치적인  제도

       적인 문화 학술적인 측면의 광복과 또 하나의 광복을 맞이하지 못한 분야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바로 "국사분야"입니다

  23) 이 국사라고 하는 것은 한국정책의 사각지대에 온존(溫存)하면서 광복이라고

       하는 혜택과 시대적 평가나 조명을 전혀 받지 못한 분야입니다

  24) 이러한데, 이용범 교수는 그 식민사학을 과거에 배웠거나 그 스승밑에서 그

       훈도 밑에서 성장한 사학을 지금 자랑하게 돼 있어요? 오히려 나 같으면 쥐

       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야 될 입장일 것 같습니다.

  25) 지난날의 비전문사학자 "아마추어" 사학자와는 대화를 하지 않기로 했는데

       모처럼 이런 기회를 마련해 주셔서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여기(국

       회 청문회장) 나와서 얘기하는 듯한 표정은 정녕 학자로서의 "에티케트"가 문

       제되는 거예요

  26) 상대방에 대한 모욕도 그런 모욕이 어디 있습니까 ? 제발 이런 것은 앞으로

       이런 공청회에서는 제발 좀 삼가 주셨으면 합니다.

(이후 일제식민학자들은 국사편찬위원에서 전부 해임되나, 고대사 부분은 계속적인 논란거리로 아직까지 정리되지 못하고 있음)

3. “한민족의 책무”, “한국상고사입문”<이병도, 최태영 공저>서문을 보면 “일제의 한국 강점이후 민족말살정책으로 한국역사 위조의 강행이 주효하여 유구한 역사의 상반과 넓은 판도의 대부분의 절단이라는 세상에 유래없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제 잃어버린(빼앗긴) 수천년의 연대사와 반도의 일부로 구축된 민족분포(활동한) 지역을 실상대로 회복하여 아직까지도 진행중인 역사의 왜곡을 바로잡고 선천적으로 미개하고 무능한 종족이라고 선전되는 모욕을 면해야 할 시급한 책무가 한민족에게 지워져 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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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최태영 박사 : "내가 이병도를 설득하여 민족반역자의 오명을 죽기전에 벗어나

                        게 해주었다", "지들 스승을 욕할 수 없으니 나를 공격하지 못하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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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슬프다! 후세에 만약 이 책을 붙잡고 우는 사람이 있다면 나 죽어 넋이라도 한없이 기뻐하리라!

                    -北崖子의 <규원사화> 서문 中에서.

 (1) 발견시기

    국립중앙도서관이 1945년말 ~ 46년 1월 사이 책방에서 “김수일”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책값 100원(현재 약 100만원)에 구입 (당시 100원은 큰돈이다)

 (2) 등록일자 : 1946. 5.25. 貴629(古2105-1)

     1946년 5월 25일에 국립중앙도서관 귀중본 629번, 고서 2105-1번으로 등록.

 (3) 고서심의

     1972년 11월 3일 이가원, 손보기, 임창순 3인의 고서심의위원이 심의를 거쳐 조선조 숙종 1년인 1675년에 작성된 진본임을 확인하고 국립중앙도서관 귀중본으로 지정.

 (4) (사) 한배달 확인

    (사) 한배달은 1945년 발견된 규원사화 진본을 44년이 지난 1989년 11월 11일 국립중앙도서관 고서 귀중본 실에서 그 진본을 확인하고 한배달 1989. 12월호에 전제.

    (확인내용)

    - 도서열람번호 : 貴629(古2105-1) 1책

    - 제작연도     : 1675년 조선조 숙종 1년 3월 상순

    - 책 크기      : 24.7 × 16.5㎝

(현재 우리고대사를 규명하는 책은 ‘한단고기, 규원사화, 단기고사, 태백일사, 을지문덕사 등인데 이중 현존하는 중에 한가지 임)

출처 : 되찾아야 할 우리역사
글쓴이 : 스마일땡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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