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 대한 사랑,따뜻한 색채로 옮기다. [펌]☞Paul jacoulet ☞Gallery
<아시아의 색채-폴 자쿨레 판화전>
폴 자쿨레가 만난 따뜻하고 온화한 한국과 한국인들
▲ 커다란 리본을 꽂은 동양 소녀와 동양 아이의 손을 잡고 미소짓는 서양인.
사진에는 '1957년 폴 자쿨레와 기증자 나성순'이라고 적혀 있다. 사진 옆에는 이들의 특별한 인연과 폴 자쿨레에 대하여 길게 설명되고 있었다. 미소짓고 있는 동양소녀는 한국인이고,또 한사람은 주인공 '폴 자쿨레'였다.
폴 자쿨레는(Paul Jacoulet 1896-1960) 동양인들을 주로 자신의 작품 주인공으로 표현하였다. 게다가 동양의 작은
나라 한국은 더없이 따뜻하고 아름다운 나라였다. 국권을 상실한 국민으로서 암울한 시기였지만 이방인 폴 자쿨레는 한국인들로부터 따뜻함과 온화함,
그리고 희망을 보았나 보다. 작품마다 폴 자쿨레의 한국인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세심하게 표현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살고 있었고 특별한 인연으로 맺어진 사람들의 그리운 고향이 있는 한국이었으니까.
폴 자쿨레는 1896년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의 아버지가 도쿄 외국어대학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하던 1899년에 일본으로 이주하여 동양과 평생의 인연을 맺는다. 일본에서
성장한 그는 일본주재 프랑스 대사관에서 근무하면서 개인적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한국인 나영환을 만나게 된다.
나영환은
당시 일본으로 건너가 야간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나영환은 폴 자쿨레의 조수가 되어 작품활동을 돕게 된다. 그런데 이들의 인연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나영환의 동생 나용환도 함께 살면서 창작활동을 돕게 된다. 또한 폴 자쿨레는 나영환의 장녀인 나성순을 양녀로 삼아 자신의 모든 작품에 대한
저작까지 물려주게 된다.
이런 과정들을 보면 폴 자쿨레의 한국인들에 대한 애정과 신뢰가 어땠는지가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나성순은
자신의 아버지와 폴 자쿨레의 특별한 인연을 기리고자,지난 2005년에 국립중앙박물관에 폴 자쿨레의 다색판화 165점을 기증한다. 이렇게 만나게
된 폴 자쿨레의 다색판화들인데, 프랑스 파리태생의 이 판화가는 평생을 일본에서 살았지만 한국인들에게 더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도 그럴밖에, 폴 자쿨레에게 한국은 어머니가 살고있는 따뜻한 나라였다. 그의 아버지가 1921년에 사망한 후,그의 어머니는
경성제국대학(현재 서울대학교) 의학박사인 나카무라 히로시와 재혼하여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보기 위해 수시로 한국에 드나들면서
한국인들의 모습에 감동하고 작품으로 표현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그럴까? 폴 자쿨레의 다색판화속에서 살아있는 한국인들은 밝고
온화하다.
한복의 우아한 선과 질감을 충분히 살린 작품들
<아시아의 색채 -폴 자쿨레 판화전>을 통하여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은 20세기 초, 이방인의 눈에 비친 가까운 옛날, 우리의
모습이다.
그의 작품 속에서 한복에 대한 표현은 얼마나 섬세한지 애정이 특별하게 보일 정도다. 무엇보다도 한복의 우아한 선을 충분히
살리면서 우리 고유의 바느질인 '누빔'을 질감까지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것을 표현하면서 장점을 최대한 살린 것을
보면 우리의 전통에 대한 관심까지 많았지 싶다.
▲ 한복의 우아한 선은 물론 누빔까지 생생하게 표현하여 입체감을 살렸다. 손가락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illustration (C)
Paul Jacoulet/ ADAGP, Paris-SACK, Seoul 2006 ⓒ 국립중앙박물관
▲ 목판을 눌러찍어서 누빔까지 사실감있게 표현, 만져 보면 올록 볼록 할 듯 싶었다.
illustration (C) Paul
Jacoulet/ ADAGP, Paris-SACK, Seoul 2006 ⓒ 국립중앙박물관
화려함이 장점인 다색판화에서 흰색의 높은 비중을 표현하기에는 상당히 힘든 작업이라고 한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을 표현하면서 소재로 사용한
색채는 다른 아시아인들(중국, 일본, 미크로네시아)을 표현한 색에 비하여 월등히 흰색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폴 자쿨레는 화려한
색채 대신에 한복을 입은 사람들을 무수히 스케치하는 방법으로 우리 고유의 흰색과 한복의 우아한 선을 살리고 있었다. 한복 바느질에 자주 사용되는
'누빔'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누빔을 색으로 쉽게 표현해버리지 않고 목판을 눌러 찍는 엠보싱 기법을 이용하여 입체감을 충분히 살리고
있다.
폴 자쿨레가 이렇게 표현해낸 한복을 보고 있으려니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누빔의 입체감이 뛰어났다. 만져 보면
올록볼록할 것 같았다. 폴 자쿨레의 다색판화 속에서 한복의 우아한 선과 한복천의 질감이 생생하였다.
▲ 돌복을 입은 아이(1934)와 보물(1940)도 대표작품에 속한다. ▲ 신부
▲ 북풍(1947)은 폴자클레의 작품중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 눈이 쌓인 북한산을 배경으로 한복을 입은 여인이 서 있다. 옷고름이 바람에 날리고 있고, 머리에 쓴 검은색 조바위를 두손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 사실적이다. illustration (C) Paul Jacoulet/ ADAGP, Paris-SACK, Seoul 2006 ⓒ 국립중앙박물관
폴 자쿨레의 다색 목판화는 수없이 많은 스케치와 수채화를 통해 밑그림을 그리고 색을 정한 다음, 색깔의 숫자만큼 목판을 파고 겹쳐 찍기를
반복하여 완성된 작품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최고의 조각과 찍기의 장인과 공동작업으로 진행되었다.
폴 자쿨레는 모국인 프랑스, 삶의 터전이었던 일본, 어머니가 살던 한국, 화려함의 나라
중국, 나비를 찾아 떠났던 미크로네시아의 사람들을 간명하고 단정한 필선과 화려한 색채로 표현하였다.
폴 자쿨레의 작품에는 국적을
초월하여 온화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는 인간애(人間愛)가 깃들어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자료 중에서
▲ 어미새를 잃은 둥지를 가져다가 먹이를 먹이고 있는 한국 할아버지를 그린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둥지(1941)>,
illustration (C) Paul Jacoulet/ ADAGP, Paris-SACK, Seoul 2006 ⓒ
국립중앙박물관
아이들에게 고대역사유물을 보여주기 위하여 찾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따뜻한 이국인을 만나고 왔다.
이방인 폴
자쿨레의 따뜻한 시선 속에서 한국인들은 식민지 국민의 힘없고 어두운 모습보다는, 어미 잃은 새끼 새들이 굶어 죽을까봐 둥지를 가져다가 먹이를
먹여 지성으로 살려내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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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be Coreen En Costume
De Ceremonie. Seoul"
by Paul Jacoulet,
1934
"A Corean Girl" by Paul Jacoulet, 1935
"Trois Coreens.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35
"Marchand De Sel. Coree" by Paul Jacoulet,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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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Chenille Verte. Coree" by Paul Jacoulet,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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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kkan-zan.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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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Lettre Du Fils.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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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Repas Des Mendiants.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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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it De Neige. Coree" by Paul Jacoulet, 1939
|
"Les Pasteques Jo-hoku-ri, Coree" by Paul Jacoulet, 1939
|
"Le Tresor. Coree" by Paul Jacoulet,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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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Maitre Potier. Coree" by Paul Jacoulet, 1940
|
"Bergers De Hautes
Montagnes. Coree"
by Paul Jacoulet, 1941
|
"Le Nid. Coree" by Paul Jacoulet,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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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ns Les Jardins Reserves Du Palais.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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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Mariee. Coree" by Paul Jacoulet,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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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Bonze Errant. Coree" by Paul Jacoulet,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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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ete Du Coeur.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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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Fils Qui Vient De
Perdre Son Pere.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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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Vieux Manuscrits.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48
|
"Longevite. Moppo, Coree" by Paul Jacoulet, 1948
|
"Le Marie.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50
|
"Le Deux Adversaires (Gauche). Coree" by Paul Jacoulet, 1950
|
"Le Deux Adversaires (Droite). Coree" by Paul Jacoulet, 1950
|
"M. Keen Et M. Lee.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51
|
"Pour L'Hiver, Pouh-zan. Coree" by Paul Jacoulet, 1951
|
"Retour D'Un Banquet. Seoul, Coree" by Paul Jacoulet, 1951
|
"Le Genie San Noms. Coree" by Paul Jacoulet, 1953
|
"Vent Du Nord. Coree" by Paul Jacoulet, 1953
|
"Le Bons Piments Rouges. Johokuri, Coree" by Paul Jacoulet, 1954
|
"Le Patissier. Coree" by Paul Jacoulet, 1954
|
"La Blanchisseuse. Coree" by Paul Jacoulet, 1955
|
"Flocons De Neige. Pengyong, Coree" by Paul Jacoulet, 1956
|
"Le Banni. Sud Coree" by Paul Jacoulet,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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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Petits Voleurs (Gauche). Johokuri, Coree" by Paul Jacoulet,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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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 Petits Voleurs (Droite). Johokuri, Coree" by Paul Jacoulet,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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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Danseuse Coreene. Coree, Seoul" by Paul Jacoulet, 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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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자쿨레 | |
▶ 폴 자쿨레(Paul Jacoulet) 연보
- 1896년 파리 출생.
- 1899년(3세)
아버지가 프레드릭 자쿨레 동경외국어대학 교편을 잡으면서 일본으로 감.
- 1920년(24세) 재일 프랑스대사관 근무.
-
1921년(25세) 아버지 사망.
-1928년(32세) 어머니가 경성제국대학(현재 서울대학교) 의학교수 나카무라 히로시(中村拓)씨와
재혼하여, 어머니는 서울 거주.
- 1929, 1930, 1932, 1934, 1938년 서울 방문.
- 1931년(35세)
나영환(전남 영암 출신)을 조수로 맞음.
- 1934년 서울 미쓰코시백화점에서 ‘폴 쟈쿨레 판화전’을 개최.
- 1949년(52세)
나영환의 딸 나성순(현재 이름 이나가키 데레즈)을 양녀로 맞음.
-1954-1955년 세계일주를 하면서 전시회 개최.
-
1960년 일본 가루이자와 (輕井澤)에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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