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역에서 생활환경이 같은 마을 사람들이 그들의 삶을 위협하는 재앙을 멀리하고 마을의 화합과 번창을 기원하는 공동의 믿음을 마을신앙이라 한다.그리고 마을신앙은 무형의 정신작용이므로 형식 곧 제의를 통하여 드러나는데 즉 제의를 동, 당산제, 또는 부락제라고 한다.
동제로서 대표적인 제의는 서낭신·산신·용신·당산신·장승 및 솟대 등이다. 대체로 마을 뒷산 산정에 국사당, 산 중턱에 산신당, 동구 옆에 서낭당이나 장승, 솟대가 서 있는 것이 민속신앙의 전형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서낭당이 여타의 민간신앙들을 포괄하는 주된 신앙처로 산재하고 있으나 이것도 시대적 변화와 함께 서서히 소멸해 가는 실정이다.
동제당의 대표적인 명칭으로는 서낭당, 성황당, 산제당(山祭堂), 산신당(경기·충청), 당산(전라·경상), 본향당(本鄕堂), 포제단(胞祭壇:제주) 등으로 부르는데, 이들을 일컬어 서낭당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
동제의 종류에는 11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 곧 당산제, 서낭제·산신제·기우제·장승제·솟대제·찬제·단군제·용수제·보제·비제·무후사제 등이다. 이 중에서 우리나라의 대표적 동제는 서낭제이며, 다음으로 산신제, 당산제 등이다.
1. 서낭신앙
민간신앙 중에서 천신신앙과 산신신앙에 뒤이어 그 기원이 오래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 군현에 성황사나 성황단을 그리고 각 마을마다 서낭당을 모시고 제사를 드릴 정도로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는 대표적 민중전승인 서낭신앙은 모든 민속신앙이 그렇듯이 공리적인 신관(神觀)에 의한 현실적인 문제, 이를테면 마을수호·기원·초복·치병 등을 성취하려는 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서낭신앙이 오래도록 전승되고 널리 퍼져 있는 것은 신앙의 목적을 충족시키는 종교적 기능을 수행해 줄것으로 믿은 결과이며, 이로 말미암아 서낭제와 더불어 서낭굿이라는 민속제의가 형성되었다.
서낭신앙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는 당의 위치가 밖에서 들어오는 길가의 동구, 산록, 산이 없는 허(虛)한 곳임으로 보아 고대에 수렵 목축 농경장소를 천신에 의존해서 수호하려고 신의 거주처를 마련한 것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서낭신앙은 신당 형태와 신앙의 성격으로 보아 몽골의 '오보' 신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오보 신앙이 일차적으로 한반도에 들어와 산신 및 천신 신앙과 결합되어 서낭신앙이라는 보편적인 민속신앙 형태가 형성되었고, 거기에 중국의 '성황'신앙이 들어와 그 기능이나 명칭 등이 복합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서낭신앙은 천신·산신·오보와 중국에서 전래한 성황 등 4가지의 신앙 형태가 혼합된 것일지라도 근원적 본질은 신의 수직 이동체계에 따른 도식 곧 천신-산신(산왕)-서낭에서 보는 바와 같이 천신과 산신 신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천신에게 제사하던 천제단이나 천왕당은 국사당(국수당, 국시당) 또는 속칭 마루서낭당이라는 서낭신앙쪽으로 그 기능이 변화되었다. 마을의 뒤쪽에 있는 산정이나 사람들이 넘나드는 험한 고개마루에 제단을 만들어 놓고 천신에게 빌던 대로 국사당신이나 서낭신에게 개인적 소망이나 공동관심사를 기원하였다.
서낭의 근원은 천신과 산신이다. 그러나 서낭은 관념적인 이 두 종류의 신격 외에도 다양한 성격, 다양한 종류의 신격을 지니고 있다. 마을사람들은 마을을 이룩한 최초의 개척자, 덕망이 있던 씨족의 조상을 서낭신으로 모시며, 무엇보다도 무속신들 중 인간신의 분포도에서 다수의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한 많은 영혼'들을 신앙하여 오고 있다.
한편 각 군현마다 두었던 삼단 곧 사직단·성황단·여단 중에서 여단(여壇)은 억울하게 죽은, 한 많은 영혼들을 모신 제단으로서 이것은 우리의 전통적 무속신앙 전반에 관련되어 있는 사항으로서 이에 대한 고찰은 서낭신의 성격은 물론 한국 무속신들의 성격을 규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관건이 된다.
이처럼 서낭신은 지역에 따라 다양한 특성과 명칭 및 기능 등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크게 나누어 보면 강원도를 비롯한 산간지역에서는 산신계통의 신이며, 해안지방의 어촌에서는 해신이고, 대부분의 민간에서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그런데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서낭신은 나그네를 수호하는 노신(路神)으로서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천신이나 산신도 노신의 기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서낭신을 상정한 것은 한국인들이 신을 창조하는 데에는 근본관념인 '공간성' 곧 하늘에는 천신, 산에는 산신, 집에는 가신이라는 한계를 설정하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집을 떠난 나그네길에 나서면 자신들을 인도하고 보호하여 줄 신을 필요로 하였을 것이니, 주로 마을을 수호하는 신으로서 인식되고 있는 서낭신이 길가에 좌정하여 나그네들을 수호하는 노신(路神)의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2. 산신신앙 국조 단군이 수(壽)를 마친 후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은 우리 민족과 산신앙과의 관계를 시사하는 자료이다. 산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삶의 터전이며 인생의 귀의처이다. 그리고 산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의 거주지로서 신성의 영역이었으므로 외경의 장(場)이며 숭배의 대상이었다. 일례로 백두산을 등반하였을 때 지켜야 했던 금기사항을 살펴보면 한국인의 산에 대한 외경심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산의 성체를 더럽혀서는 안된다고 하여 대소변을 받는 변기를 들고 가도록 하는 것이라든지, 산행에서 대화를 할 때도 행여 산신령을 성나게 할까 보아 큰소리로 말하지 못하고 하고 속삭이듯 말하게 하였다.
산을 오를 때도 감히 '오른다'하지 못하고 반드시 '산에 든다'고 해야 하며, 정상에 올라섰을 때도 올랐다 하지 않고 내려섰다고 말해야 했다는 것이다. 백두산이 환웅천왕이 내려온 곳으로서 우리 민족의 원초적인 신시(神市)임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한국인의 산에 대한 각별한 신성성을 엿볼 수 있다.
산 자체를 신으로 여기거나 산에 인격적인 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제사하는 의식을 산제나 산신제라 하고, 신을 모셔 당집을 제당ㆍ산제당ㆍ산신당ㆍ산신각이라 한다. 우리나라 명산의 산신제로는 두타산ㆍ태백산ㆍ치악산ㆍ오대산 산신제가 있다. 치악산과 태백산의 산신제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나 오대산 산신제는 1984년, 설악산 산신제가 시작된 1966년부터 무사고 산행을 기원하기 위해 행사하였다.
산신에 대한 강한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은 산삼을 캐는 심메마니(山蔘採取人)들이다. 산삼채취의 여부는 산신이 좌우한다고 믿고 있는 채삼인들에게 있어서 산신의 존재는 절대적이다. 그러므로 부락별로 산신당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제당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있다. 자연부락으로서 산신당제를 지내고 있는 마을은 영동과 영서를 갈라놓은 태백산맥의 산간 부락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동해안 어촌의 남서낭은 산신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산신의 화상은 연로한 신선의 모습으로 표현되며, 상징 동물은 호랑이이다. 그러므로 옛날 호랑이의 피해가 심한 산간마을에서는 산신에 대한 제의를 통해 호랑이의 피해에서에서 벗어나고자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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