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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추산(魯鄒山)에서
인(仁)
율곡(栗谷) 선배(先輩) 기(氣) 빌리러
새벽바람 굽이 돌아 노추산에 왔습니다
얼음 녹은 시내의 은근(慇懃)은
성현 말씀 듣는 듯 하고
절벽 걸친 솔의 절개(節槪)는
님의 초상 보는 듯 하더니
설산(雪山) 하얀 순결에 행여 티 묻었을까
다시 눈을 뿌려 고이 덮어 주시니
못난 후배(後排) 반기시는 어짐이라 여깁니다.
의(義)
세상살이 쉽지 않아
산에 묻혀 눈에 묻혀 쉬려하며 오르는 길
절세절경 청아공기 눈과 코는 즐거우나
오르막 걸린 숨에 심장 다리 고달프니
희비(喜悲) 고락(苦樂) 한 살이 길
겹쳐 넘게 하더라도
옮음과 그름은 구별하여
한 길로만 가게 하소서
예(禮)
힘들여 너덜바위 건너뛰고
공들여 정상 턱 밑 첩첩 산중
배고프고 다리 풀려 주저앉고 싶은 터에
눈 덮인 누각하나 숨겨놓은 비경(秘境)일세
공부자(孔父子) 이성대(二聖臺) 앞에 서니
모질고 둔한 인생 고귀한 뜻 알까마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알지는 못하여도
사람 사는 도리야 옛이나 지금이나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라는
그 뜻이 경전이요 그 법이 예(禮)일지라
지(知)
정상에서 바라보니 너도 아래 그도 아래
하늘을 올려보니 나 또한 네 아래라
사람이 올라봐야 천주(天主) 발밑이거늘
어찌 그리 아옹다옹 잘난 놈이 저리 많나
사람들아!
노추산 마루에서 율곡과 마주앉아
세상을 내려보며 막걸리로 술 취하고
공자님 맹자님을 안주로 삼았으니
부자가 부러우랴 권세가 두려우랴?
내 큰 소리를 내어 하늘 뜻 외치느니
귀 있는 자여 듣느냐 못 듣느냐?
이천팔년 이월 이십사일 노추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