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초연구가 최진규 ◈ | ||
|
|
◈ 주요저서 |
|
약이되는 우리 풀, 꽃, 나무 제 1권 최진규 지음 / 한문화 / 2001년 8월 12,750원 / 304쪽 / 2223 x 152 mm (A5신)ISBN 8986481707 |
|
약이되는 우리 풀, 꽃, 나무 제 2권 최진규 지음 / 한문화 / 2001년 8월 12,750원 / 316쪽 / 2223 x 152 mm (A5신)ISBN 8986481715 |
내발로 떠나는 방방곡곡 약초산행 최진규 지음 / 김영사 / 2002년 3월 14,310원 / 402쪽 / 224 x 175 mm ISBN 8934908866 |
|
토종약초장수법 최진규지음/태일출판사/ 1995년 12월 4,800원 / 290쪽 / 210 x 148 mm (A5) ISBN 8981510245 | |
|
토종의학 암다스리기 김인택, 박천수지음 / 감수 최진규/ 태일출판사 / 1997년 4월 12,000원 / 467쪽 / 210 x 148 mm (A5) ISBN 8981510717 |
|
토종의학 난치병 다스리기 김인택, 박천수지음 / 감수 최진규/ 태일출판사 / 1997년 4월 12,000원 / 467쪽 / 210 x 148 mm (A5) ISBN 8981510717 |
|
발로찾은 향토명의 최진규 지음 / 청아출판사 / 1995년 7월 6,400원 / 456쪽 / 210 x 148 mm (A5) ISBN 8936804197 |
|
우리비경답사기 최진규 지음 / 태일출판사 / 1995년 12월4,800원 / 290쪽 / 210 x 148 mm (A5)ISBN 8981510245 |
|
홍화씨 건강법 이인우, 최진규 지음 / 태일출판사 / 1998년 3월8,500원 / 332쪽 / 210 x 148 mm (A5)ISBN 8981510768 |
|
산삼보다 나은 약도라지 요법 최진규, 정영철, 김관호 지음/ 자연의 향기 펴냄/ 10,000원/ 394쪽/ A5/ 1998년 10월 ISBN 89-88567-00-5 |
|
기적의 향토명의 최진규 지음 / 대산출판사(대산미디어) / 2002년 4월12,000원 / 325쪽 / 235 x 183 mmISBN 8937208873 |
|
◈ 출판사 서평 |
|
|
제목 [주간한국] 양의사든 한의사든 의사들이 우리 약초에 대해 제게 물어올 때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
|
“양의사든 한의사든 의사들이 우리 약초에 대해 제게 물어올 때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토종약초연구가 최진규 (39·한국토종약초연구학회 대표) 씨는 젊은 나이답지 않게 우리나라 산과 들에 자생하는 약초에 관한 한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는 박사들보다도 훨씬 연구가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95년 약초로 난치병을 치료하는 기인들을 소개한 ‘발로 찾은 향토 명의’(名醫)를 시작으로 작년에 낸 ‘토종 약초 장수법’ 에 이르기까지 토종 약초 관련서를 벌써 7권이나 냈다. 그 덕에 올해부터는 인천 가톨릭대 겸임교수로 위촉됐다. 최씨의 최종 학력은 대구 성광중학교 졸업. 그나마 가정형편이 어려워 다니는 둥 마는 둥 했다. 그는 경북 성주군 가천면 신계동 해발 800m 가야산 중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목기를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마을 어른들을 따라 산에서 나물 캐고 약초 캐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었다고 한다. 대구에 가서도 중학교에 다니면서 가구에 산수문양 등을 조각하는 일을 하는 틈틈이 주변 팔공산 , 유학산, 운문산 등을 찾아다녔다. “자연과 산과 식물을 좋아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광적이었습니다. 중국과 수교하기도 훨씬 전인 87년에는 백두산 약초를 연구하러 중국으로 밀항해 백두산 속에서 사슴을 잡아먹으며 3주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작년 12월에는 약초를 캐러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 다녀왔습니다.” 약초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7살때 2년간 전국을 무전여행하면서부터. 이때 약초를 채취하는 수도자나 기인 수백명을 만났고 그러면서 약초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게 됐다. |
|
우리나라 약초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같은 종류가 있다고 해도 향과 성분, 효능 등이 아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한의학에서 본초학을 하지만 대부분 중국 약초에 대해 중국인들이 기록해놓은 것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우리 약초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더덕만 해도 중국 더덕과 우리 더덕은 전혀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약초의 진가를 알게 됐습니다. 최씨는 작년 5월 서울 수운회관 1406호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으로 약초 연구 및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틈틈이 함초(염초)나 호깨나무 같은 것을 영양식품으로 개발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그의 꿈은 약초 관련서를 50권 정도 더 써서 우리 약초 연구를 집대성하고 약초 농장 겸 연구소를 세워 연구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 그는 지금까지 온 것도 ‘오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교를 제대로 못 다니며 설움도 많이 받고 갈 곳도 없고 인정 받지도 못합니다. 예를 들어 학위가 없다고 신종 식물을 발견해도 전문지에 논문을 기고 할 자격도 안줍니다. 저는 그래도 하고야 말겠다는 오기를 갖고 해냈습니다. 어릴 적 가난과 제대로 공부 못한 것에 대한 원망도 없습니다". |
|
약초연구가 최진규씨(37). 토종약초 채집과 연구를 위해 1년 중 6개월 이상을 산에서 보낸다. 국내에 자생하는 5,000여종의 나무와 풀의 「약 성분」을 모두 밝혀내는 게 그의 목표이자 희망. 10년 동안 전국의 명산을 떠돌며 약초를 채집하고 각종 민간처방전을 수집하고 있다. 『한국 땅은 신비한 약초가 모여있는 「약초 왕국」입니다. 흔히 잡초라고 무시하지만 그 풀잎, 뿌리마다 독특한 약효가 숨어 있어요』 최씨의 고향은 가야산 중턱인 경북 성주군 가천면. 해발 650m가 넘는 고지대여서 약초나 산나물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약초를 캐러 다녔던 그는 10여세때 벌써 초오, 천남성, 작약, 오미자 등 온갖 약초와 산나물을 구별할 줄 알았다. 최씨가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효능을 직접 체험했기 때문. 청년 시절 건강이 좋지않았던 최씨는 군 입대를 앞두고 하루에도 몇번씩 기절을 했다. 혈압이 210까지 올라가 군 복무까지 면제받았고 그는 여러 병원을 찾아다녔지만 혈압을 낮추는 근본적인 치료법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서 들었다. 그때 복용한 것이 「감나무 잎」과 「산국화 잎」. 어릴 적 약초꾼들에게 귀동냥한 지식이었다. 수개월 동안 꾸준히 달여먹은 결과 혈압은 제자리를 찾았고 그때부터 약초의 신비한 효능에 빠져들었다. 지난 87년부터는 2년 동안 전국을 섭렵하며 본격적으로 약초를 캐고 민간처방전을 수집했다. 『차는 한번도 타지 않고 도보로만 전국을 돌아다녔습니다. 여비가 떨어지면 농사일도 돕고 걸식, 걸숙도 수없이 했죠. 그때 만난 사람들이 의사자격증은 없지만 민간요법에 능한 「향토 명의」들이었습니다』 지난 91년부터 월간지 기자로 재직하면서 「향토 명의」 발굴 작업을 계속한 그는 「토종을 다시 본다」라는 칼럼을 쓰면서 현재까지 토종약초 연구에 매달리고 있다. 최씨는 「토종약초」를 체질에 따라 적절히 복용하면 난치병과 불치병을 어렵지 않게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토종이라도 「야생약초」라야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또 최근 수입되는 중국산 약초는 「토종약초」보다 효과가 떨어진다는 게 최씨의 주장. |
약초 채집 중 도감에 없는 신종 식물도 다수 찾아냈다는 최씨는 국내 식물을 도감으로 그리는 작업도 진행중이다. 최근에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약초꾼 최진규의 토종약초 장수법」(태일출판)을 펴냈다. /김준기자/ |
제목 [동학편집실 설향당] 풀과 꽃과 나무에서 생명을 만난다 | |||
| |||
| |||
풀과 나무들과 친해지게 된 것은 어떤 연유에서 입니까? | |||
| |||
| |||
| |||
| |||
제목 [이사람] (26) 약초꾼 최진규 --- 피플코리아 | |||
마니아~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 어느 한 가지 일에 평생을 미치면 적어도 자기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빈말이 아니었다. 약초꾼으로 평생을 살아온 최진규(44)씨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약초에 미쳐 평생을 산으로 돌다보니 약초에 관해서는 가장 잘 아는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부족한 점이 많다고 겸손해 한다. 약초가 인생의 전부인 그를 만나러 종로구 부암동 석파정으로 갔다.
원래 조선조 말기의 세도가 김흥근의 별장이었는데 흥선대원군이 집권후 자신의 별장으로 사용하였다는 석파정에 들어서자 수백년 된 소나무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가 머물러 있는 방이 바로 대원군이 거처하면서 차를 마시고 그 유명한 석화란을 치던 곳이라고 한다. | |||
석파정은 역사적으로 한 시대를 움직이는 사람들이 거쳐 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현재 소유주인 오 모씨가 사들였다. 그는 오씨와의 인연으로 3개월째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자격증 없는 민간의사. 그는 암, 에이즈 등 여러 종류의 난치병 환자 수천명을 살려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 집에 들어온 것도 그런 호의에 대한 보답이라고 생각한다. 전문 약초꾼이면서 전문 글쟁이. 그는 지금까지 10여권의 책을 썼다. 그가 쓴 책을 보면 ‘발로 찾은 향토명의’, ‘산삼보다 나은 약도라지 요법’ 등이 있다. 또 ‘토종의학 암 다스리기’, ‘약이 되는 우리 풀 꽃나무’, ‘약초산행’ 을 펴냈다. 위에서 알 수 있듯이 건강관련 서적이 주류를 이루고 풍경을 좋아하다 보니 감추어진 ‘우리비경 답사기’도 썼다. 어려서 문학과 그림을 좋아한 그는 뭘 할까 갈등 하다가 소설가, 시인이 되겠다며 신춘문예 도전도 해봤다. 그러다가 지금은 없어진 ‘시사춘추’ 전문기자로 4년간 활동하기도 했다. 정규직 학력이 전혀 없는 사람. 어려운 집안에서 태어나 약초를 채취하고 산에 다니기를 좋아한 그는 어쩐지 사람과 어울리는 자체가 싫었다. 그러면서 책을 좋아하다 보니까 장서가 2만권을 넘는다. 살아오면서 밥 먹고 숨쉬듯 책을 읽었다. 책을 좋아하고 그림을 좋아하고 미술에 관심이 많다 보니까 외국에 나갈 때마다 책만 사가지고 왔다. 어려서 위대한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집안 사정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우리집안은 끔찍한 질병의 희생자였어요. 아버지, 할아버지가 약초꾼이면서 이름을 날리신 분이었는데 아버지가 정신병을 앓으면서 풍비박산이 났지요. 아버지가 5대독자로 손이 몹시 귀한 집안인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돌아가셨거든요.” 그는 일생의 반을 우리나라 산만 다녔다. 중국에 가면 중국인도 잘 모르는 오지로만 찾아다니며 약초를 캤다. 아마존 정글을 헤매기도 했고, 유럽, 아프리카, 북미, 히말라야, 러시아, 티벳도 다녔다. 약초를 찾아서 세계를 다녔다. 96년 일간신문에 약초에 대해 연재를 했다. 당시 하루 2000통씩 문의전화를 받을 정도로 폭발적인 반응 속에 9개월간 연재하였다. 그런가 하면 월간 산 등 잡지에도 연재를 많이 했다. 그러다가 작년 말에 모든 연재를 끊어버렸다. 이유는 쉬고 싶어서.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병도 고칠 수 없는 것이 없고, 산삼 녹용 등 값 비싼 것이 좋은 약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흔한 풀이 가장 좋은 약초라고 말한다. 병이 흔하면 흔할수록 고칠 수 있는 약도 흔하게 널려 있다는 것이다. 자연의학은 풀에서 나온다. 풀과 나무들 속에 모든 약이 들어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현대의학이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항생제와 항암제에 의존하고 방사선 수술을 선호하는데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죽이는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자연의 풍경을 광적으로 좋아하다 보니 밥 먹고 잠자는 것도 잊고 사람들의 손이 타지 않은, 감추어진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간다. 젊은 시절 대부분을 절망과 좌절 속에서 지냈다. 문학을 하다 보니까 허무, 염세주의에 빠져 이 세상에 의지할 만 한 것이 없었다. 학력이 전무한 그가 학벌사회에서 살아갈 길이 깜깜하다 보니 자기에게 오려는 여자가 없을 것 같아서 혼자 살 작정을 했다. 그런데 운명의 여신이 그를 찾아왔다. 토종약초연구학회 회장. 의사, 한의사, 일반인, 주부 등 우리약초에 관심 있는 1천여명이 회원으로 있다. 그는 자연과 똑같은 상태에서 약초밭을 만들어 회원들에게 분할해서 그들이 관리하게 하고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약초문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곳이 그가 꿈꾸는 약초 문화 공동체의 본거지가 될 것이고 전국에 그런 약초원을 5군데 이상 둘 계획이다. 여러 지자체로부터 약초원을 만들어달라는 제의를 이미 받아 놓았다. | |||
| |||
그는 약초음식점 ‘디미방’을 인사동에 차려 운영하고 있다. 또 하나 ‘정죽’이라는 약초 죽전문점도 신문로에 열어 운영하고 있다. 그의 음식점은 화학조미료 안 쓰고, 멸치와 명태 외에는 고기를 절대로 안 쓴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환경운동 하는데, 자연을 깨끗하게 하기 이전에 먼저 내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게 가장 기본적인 환경운동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병을 치유하기에 너무 늦었을 때 약을 쓰되 반드시 천연물질로 된 약초를 쓰라고 권한다. 사람이 인공적으로 합성한 것은 그 구조가 불안정하기 때문에 인간에 치명적인 독소가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가공한 경우는 유전자 구조를 파괴하거나 변형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천연물은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일에 오래 몰두 하다보면 남들이 볼 수 없는 눈이 생기고, 긴 안목으로 전체를 꿰뚫어 볼 수 있는 통찰력이 생긴다는 약초꾼 최진규. |
제목 [주간한국] 양의사든 한의사든 의사들이 우리 약초에 대해 제게 물어올 때는 큰 보람을 느낍니다 | |
토종약초연구가 최진규 (45세'2004년 현재'·한국토종약초연구학회 대표) 씨는 젊은 나이답지 않게 우리나라 산과 들에 자생하는 약초에 관한 한 대학 강단에서 활동하는 박사들보다도 훨씬 연구가 깊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 |
우리나라 약초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에 같은 종류가 있다고 해도 향과 성분, 효능 등이 아주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한의학에서 본초학을 하지만 대부분 중국 약초에 대해 중국인들이 기록해놓은 것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우리 약초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더덕만 해도 중국 더덕과 우리 더덕은 전혀 다릅니다. | |
최씨는 작년 5월 서울 수운회관 1406호에 사무실을 내고 본격적으로 약초 연구 및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틈틈이 함초(염초)나 호깨나무 같은 것을 영양식품으로 개발하는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
제목 [food] 약초밥상, 보약 안부럽네5 | ||
| ||
디미방 역시 수년 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때 '약초음식점'이니 뭐니 해서 하도 요란한 통에 오히려 문지방 넘을 생각조차 안해 봤던 집이었다. 그러던 것이 우연히 발을 들여놓았다가 그날로 숨은 단골이 되었고 이 제는 그 집이 그냥 거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괜히 고마운 생각이 드는 반가운 밥집이 되고 말았다. 지금은 밥집 주인으로 더 알려진 최진규 씨는 약초 찾아 전국 명산대천 을 찾아다니는 소문난 약초꾼이다. 디미방에 찾아가도, 며칠에 한 번씩 들러 약초보따리를 풀어놓고는 휑하니 사라져버린다는 주인양반 얼굴을 보기는 어렵다. 밥상 위에서 만나게 되는 약초가 인사를 대신한다. | ||
| ||
|
악성 위장병 고치기 문의 010 5775 5091 |
'놀라운 공부 > 역사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역대왕실 도표 (0) | 2011.08.08 |
---|---|
[스크랩] 그 감동의 눈물 (0) | 2011.07.18 |
[스크랩] 남이장군시 (0) | 2011.05.12 |
[스크랩] 명의로 소문난 한의사 (0) | 2010.12.21 |
[스크랩] 이승만 박사 장례식(1953) (0) | 2010.0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