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혼과의 하룻밤 싸움
홍판수가 추천한 인물은 사직동에 인접한 필운대에 사는 전(前) 판서 이몽량의 아들 이항복(李恒福)이라는 20세의 청년이었다.
이 판서는 벌써 여러 해 전에 작고하고 이항복은 홀어머니 최씨의 자애와 엄격한 교훈 아래 호방 활달한 천품을 학문과 수양으로 도야하던 청년이다.
홍 장님은 이 판서 때부터 그 집에 출입해서 이항복의 인물 식견과 그의 앞날의 부귀공명이 혁혁할 것을 미리 통관했기 때문에 그의 복록을 빌어 김 진사의 화를 구하려고 했다.
김 진사의 증조모와 조모는 손자를 살리려는 일심으로 장님의 가르침대로 몸소 그 집을 찾아 이항복의 모친과 대면하고 전후사정을 말하고 나서 손자를 살려주기를 백 배 사정했다.
이항복은 본래부터 의협심이 강하고 최씨 부인 역시 적선하기를 좋아하는 성품이라 어려울 줄 알았던 소청이 용하게 용납되어, 이항복은 그날 저녁으로 김 진사의 집에 와서 죽어 가는 중병인을 껴안고 있게 되었다.
몇 시각이 지난 후, 돌연 창을 차는 음풍이 촛불을 명멸케 하더니 모골을 송연케 하는 귀기(鬼氣)가 바람과 함께 침입했다. 그러자 갑자기 김 진사가 몸부림을 치며 눈을 부릅뜨고 이를 악물며 게거품을 뿜고서 헐떡이기 시작했다.
‘옳다! 아마 이제부터가 내 활동할 시기인가 보다. 하여튼 기다려 보자.’
이항복은 더욱 정신을 가다듬고 환자를 꼭 붙들고 눈을 크게 뜬 채 촛불 건너 검은 그림자를 응시했다.
어느 듯 칼을 든 시커먼 원귀가 나타나 김 진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때마다 김 진사는 몸부림을 치며 고통스러워했다.
이항복은 더욱 힘차게 환자를 끌어안고 몸으로 가려주었다. 무서운 형상을 하고 달려들던 원귀는 김 진사의 멱살을 잡으려다가 이항복 앞에 와서는 발을 멈추고, 다시 물러서기를 십여 차례 했다. 드디어 원귀는 이항복을 향하여 큰 소리를 질렀다.
“이항복아, 부질없는 일을 하지 말고 그 사람을 속히 내게 내어다오. 만일 내 말에 복종하지 않으면 네게도 화가 미치리라.”
이항복은 이에 끄떡도 하지 않고 소리쳤다.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나는 부탁을 받아 이 사람을 살리려고 하니, 나까지 죽이든 말든 내 목숨이 있는 한, 이 사람을 네게 내주지 못하겠으니 마음대로 하라!”
원귀는 험상을 드러내고 이번에는 칼을 항복에게 겨누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항복은 태연히 부동한 채 늠름하게 버텼다.
원귀가 감히 이항복에게는 손을 대지 못했다. 어느 덧 시간이 흘러 닭이 울었다. 원귀는 칼을 던지고 이항복 앞에 엎드려 애통히 말했다.
“저 사람은 소인에게 속세의 원한이 있는 자이옵니다. 오늘을 지내면 영구히 보복할 날이 없거늘 장차 대감이 되실 분께서 돌연히 출현하여 소인의 일을 저지하시니 어찌 원통치 않으리요! 제발, 저 사람을 내어 주옵소서.”
그러자 항복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나는 너와는 하등의 은혜나 원한이 없는 동시에 이 사람과도 교분조차 없던 처지로다. 그러나 삼대요사(三代夭死)로 제사가 끊어지려는 이 집 내력과 주인 잃은 삼대 과부와 부인이 대신 속죄하려는 비참한 광경에 깊이 감동된 바 있어, 의(義)로써 이 사람의 보호를 승낙하고 그 책임을 인수했다.
그러니 내 목숨이 있는 한 이 사람의 신상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못하게 할 것이라. 그런데, 그대가 원한을 갚으려면 어찌 나를 죽이지 않느냐? 이제 와서는 너의 미운 대상이 이 사람이 아니라 내가 될 터인데….”
원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어르신이 이토록 소신의 일을 방해하시니 어찌하오리까. 소인이 아무리 원수 갚기에 급급할지라도 일국의 큰 주석이 될 분을 향해 칼날을 겨눌 수 없사오니 이제 소인은 물러가옵니다.
허나 어르신께서도 차후에는 극히 자중하셔서, 장래에 나라와 세상을 위해 몸을 아끼실 것이요, 경솔히 이런 일에 참견하지 마시기를 비옵니다.”
원귀는 하직을 고하고 방에서 나가며 대성통곡을 했다. 그리고는 달려나가면서 이렇게 외쳤다.
“오늘을 넘겼으니 다시는 원(寃)을 갚을 날이 없도다. 이것이 모두 평동 홍판수 놈의 부질없는 방해에서 생긴 일이니, 이놈을 대신 잡아다 분을 풀리라!”
이 때 김 진사는 전신이 굳어지고 사지가 얼음처럼 싸늘하게 되었으나, 오직 명문 근방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렇게 하여 김 진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게 되었고, 평동 홍판수는 그만 희생되고 말았다.
이후 선조 13년에 이항복과 김 진사는 알성별시에 우수한 성적으로 급제한다. 이항복·이덕형·김여물·오덕령·한준겸 등이 선발되었고, 당시 대재학이며 이조판서를 겸하던 율곡 이이 선생은 이들을 나라의 동량이 될 것이라며 임금께 적극 천거한다. 오성 이항복, 한음 이덕형과 더불어 급제자의 명단에 오른 김여물이란 사람이 바로 김 진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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