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란 놈은 해를 따라서 남북을 오가는 철새이다. 십 백여 마리가 한 무리가 되어 한가롭게 날며 조용히 모여서 물가에서 잠을 잔다. 잠을 잘 때는 보초 기러기로 하여금 사방을 살펴 지키게 하고는 그 속에서 대장 기러기들이 잠을 잔다. 사람들이 틈을 엿보아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면 즉시 보초 기러기가 알리고 여러 기러기는 깨어 일어나 높이 날아 올라가니 그물도 펼칠 수 없고, 주살도 던지지 못한다. 보초 기러기가 주인을 지키는 공은 그 무엇에도 비할 것이 없다. 사람들은 불을 가지고서 기러기를 잡는다.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가 항아리 속에 촛불을 넣고 불빛이 새지 않도록 감추어서 가지고 간다. 살금살금 다가가서 촛불을 조금만 들어 올린다. 보초 기러기가 놀라 울고 대장 기러기도 잠이 깬다. 그 때 바로 촛불을 다시 감춘다. 조금 후 기러기들이 다시 잠이 들면 또 전처럼 불을 들어 보초 기러기가 울도록 한다. 이렇게 서너 번 하는 동안에 기러기들이 깨어나 보면 아무 일이 없으니 대장 기러기가 도리어 보초 기러기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하여 쪼아 버린다. 그러면 다시 촛불을 들더라도 보초 기러기가 쪼일까 두려워서 울지 못한다. 이때 사람이 덮쳐서 한 마리도 남김없이 모조리 잡아 버린다. 아! 보초 기러기는 참으로 충직하고, 사람들의 꾀는 정말로 교활하며, 대장 기러기의 미혹은 심하기 그지없도다. 그러나 어찌 기러기만 이럴 뿐이겠는가! 사람도 또한 이와 같아서 편안함만 찾으며 고식적으로 대처하여 외적을 돌아보지 않고, 간교한 적의 꾀에 놀아나서 도리어 충성스럽고 어진 신하를 불신하여, 끝내 적의 독수에 당해도 깨닫지를 못한다. 크게는 망국(亡國)하고 작게는 패가(敗家)하니 이 또한 매우 미혹한 것이 아닌가? 슬프다! 무릇 사람이 되어서 그 주군이 위험을 당하는데도 구하지 않는 자들은 이 보초 기러기를 본다면 부끄러움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기러기가 비록 미물이지만 큰 것을 깨우쳐 주니 내가 이에 보초 기러기에 대한 이야기를 짓노라.
雁之爲物, 隨陽南北, 無常棲. 十百爲群, 閒飛靜集. 宿沙渚間, 則令雁奴四圍而警捕, 大者居其中. 人若伺, 殆少近, 則奴輒告之亟, 群雁警起, 飛翔高擧. 罿罻不能施; 弋人無所慕, 奴之衛主, 功鮮有儷. 人有以火探捕者, 候陰暗密藏燭於瓦罏中, 持棒者隨之. 潛行將及, 秉燭略擧. 奴卽驚叫, 大者亦寤. 便匿其火, 則須臾復定. 又如前擧燭, 奴又奔告, 如是者數四, 頻驚而無捕. 則大者反以奴爲不直爭啄, 人復擧燭, 則奴懼其啄不復驚. 人遂逼之, 一網打盡, 殆無遺類. 嗚呼! 奴之忠勤矣; 人之計狡矣; 雁之惑甚矣. 豈獨雁然! 人亦有焉. 偸安姑息, 不恤外侮. 受紿於奸狡, 反不信忠賢, 終必爲所中而莫之悟. 大則亡國; 小則敗家, 不亦惑乎? 哀哉! 且夫人之見其主阽危而不救者, 觀雁奴則庶可知愧. 此物雖小, 可以喩大. 吾於是乎作雁奴說. - 최연(崔演, 1503~1549), 「안노설(雁奴說)」,『간재집(艮齋集)』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