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다!”:
주역의 36번째 괘인 명이(明夷)괘는 주지하다시피 태양이 땅속으로 들어가 ‘어둠’을 상징하는 별로 암시가 좋지 않은 괘이다. 그러나 주역 괘중에서 절대적으로 길하고, 흉한 괘는 없다. 특히 시간 개념을 전제로 한다면 초효는 어떤 상황의 시초이며 상효(上爻)는 그 결말을 의미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길흉이 교차(交叉)하기가 십상인 것이다. 명이괘도 전체적으로는 해가 저문 암흑의 상(象)이기는 하지만 초효는 이제 막 해가 뜬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우선 그 初九의 괘사를 보자.
明夷 于飛에 垂其翼이니 君子于行에 三日不食하여 有攸往에 主人이 有言이로다. (해가 뜨고 지는 하루 중 이른 아침인데, 새가 나니 그 날개를 드리운 모습이고 군자가 길을 가는데 3일간 먹지 못하고 찾아가는 곳에서 주인이 말을 한다)
따라서 초효의 전반적인 흐름은 대낮같은 번영을 앞둔 새아침이기 때문에 일단 인내하고 노력하면 머지않아 융성의 시기를 맞는다. 그런 뒤에 점차 운세가 기울어지고 끝내는 흉액(凶厄)을 맞는다. [서지자는 새가 날아 멀리 떠나갔다가(君子于行) 다시 둥지로 돌아오듯이, 융성하기 시작하는 시기에 집을 떠났다가 떠나가 있는 곳에서 귀가(귀국)하라는 주인의 말씀을 듣고(有攸往 主人有言) 나중에 돌아온다]
이제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서례(筮例)를 살펴보자. 먼저, 『춘추좌씨전』의 숙손목자(叔孫穆子)에 관한 일화이다.
숙손목자(叔孫穆子) 이야기
노(魯)나라 삼경(三卿)씨 중 대대로 경상(卿相)을 차지해온 숙손(叔孫)씨 가문의 장자인 장숙(莊叔)은 숙손목자가 태어나자 인생運을 서해 명이괘의 초효를 얻었다. 이에 복관(卜官)이 “목자는 장차 ① 집을 떠나고 그런 뒤에 돌아와 가문을 계승하는 제주(祭主)인 자사가 될 것인 바(而歸爲子祠), ② 참언(讒言)자를 데리고 들어 올 것이고 이 참언자의 이름은 우(牛)일 것입니다. 그런데 목자는 굶주려 죽을 것입니다”고 풀이했다. 그의 일생은 실제 그와 같이 되었다.
즉 숙손목자가 장성했을 때 장형 숙손선백(先伯)이 임금 어머니의 정부(情夫)가 되어 조정을 주무르며 전횡하자 이를 피해 제나라로 망명했다. 도중에 경종(庚宗) 땅의 어느 여인의 집에 잠시 묵었다가 이 여인과 관계를 맺는다. 그는 제나라에 가서는 국강(國姜)이라는 여인과 결혼해 맹병(盟丙)과 중임(中任)이라는 두 아들을 낳았다, 그러던 중 장형 선백이 실권(失權)하면서 목자는 노나라에서 귀국하라는 연락을 받고 돌아와 숙손 가문을 계승했다. 이때 경종의 땅 옛 여인이 ‘우(牛)’라는 이름의 아들을 데리고 찾아온다. 목자는 우를 자기의 씨로 여겨 맞아들여 총애했으며 늙게 되자 우로 하여금 가문의 일을 맡아보게 했다. 그러자 우는 참언(讒言)을 반복하고 모사를 꾸며 두 적자 맹병과 중임을 죽이고 숙손마저 3일을 굶겨 죽였다.
① 명이의 내괘 리(離)는 해(日)이고 해의 수는 순(旬)을 뜻하는 열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십시(十時)의 세 번째인 평단(平旦), 즉 아침나절로 밝아지고는 있으나 아직 융성하지 못한 때(明而未隆)다. 또 십위(十位)로는 세 번째 경상(卿相)의 벼슬 중 자사(子祠)가 될 것으로 풀이한 것이다. 또한 명이의 지괘(之卦)인 겸(謙)괘로 가는 것은 리(離)의 상징인 비조(飛鳥)가 아침이라 화성(化盛)하지 못해 날개를 드리운 채 나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마치 해와 같은 가문의 군자가 떠나가는 것을 말하고, 세 번째 時인 아침이니 삼일을 굶는다고 말한 것이다.
② 리(離)는 불이고 離의 초효가 음효로 변한 간(艮)은 山이자 말(言)이다. 따라서 불이 산에 붙으면 산을 망치고, 말에 불으면 말을 망치니(敗言) 참언(讒言)이 된다. 그 참언자를 우(牛)라 한 것은 離의 괘사 畜牝牛吉에서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 상병화(尙秉和)에 의하면 산이 불타면 리(불)만 남는 고로 이름이 牛임을 안 것으로 보이며 어린 수소는 암소가 아니므로 불길한 것이다.(堅牛非牝牛故不吉) 삼일불식(三日不食)은 실제로 죽도록 3일을 굶거나 숙손목자처럼 실제로 3일을 굶다가 죽는 것, 또는 숙식(宿食)을 잊을 정도로 속을 태우는 일을 겪게 되는 것을 뜻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이야기
다음은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어느 재야 역학자가 2002년 초에 故노무현 대통령의 인생을 두고 筮하여 명이 괘의 초구를 얻었고 이를 2002년말 인용서(引用書)의 저자 황태연씨가 다음과 같이 풀이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에서 두 번 낙선하는 등 의(義)를 위해 녹(祿)을 불식(不食)하며 전전하던 중(君子于行), 저 ‘의불식(義不食)’*을 가상히 여겨 ‘바보’ 노무현을 연호하는 ‘노사모’의 갑작스러운 부름을 받고 대통령후보 경선에 나갔다가 주권자 국민의 지지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과 대통령 선거에 연승하여 나라의 제주(祭主)가 되었다.
그러나 대통령 취임과 함께 386 참언자들을 중용해 국정을 망치고 몰락한다. 끝내는 대통령으로서의 실정(失政)으로 인해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죽도록 고생만하고 정치적으로 곤궁해진 가운데 물러나 말년에 관재와 여론의 비판에 시달릴 우려가 있다.
* 공자는 "군자가 집을 떠나 정처없이 떠도는 것을 의로워 식록(食祿)을 향유하지 않기 때문이다
(象曰, 君子于行, 義不食也)"고 풀이했다. 즉 義 때문에 스스로 불의의 과실을 향유하지 않는
것이므로 정의가 회복되면 복귀의 부름이 있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周 무왕이 은나라
폭군 紂에 대해 혁명을 일으켜 타도되자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으로 은둔한 것도 ‘義不食’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 대통령에 관해 선거 時부터 재임시절까지 좋은 평가를 내린 적이 없다. 하지만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비명(非命)에 갈수밖에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마찬가지로 이렇다 할 업적이 없는 일부 전임 및 후임 대통령들에 비추어 너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의 운명도 이미 예정되었던 것일까?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자결하기 1년여前에 발간되었고, “요절”할 수도 있다는 여운을 남겨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1) 황태연, 『실증주역』, pp. 563~568 참조 (청계 刊, 2008)
2) 日中, 食時, 平旦, 鷄鳴(鷄鳴丑時), 夜半, 人定(밤 9~11시), 黃昏, 日入, 哺時(오후 3~5시), 日昳 등
3) 王, 公, 卿, 士, 皁, 輿, 隸, 僚, 臺 등
4) 尙秉和, 『周易古筮考』, 卷三 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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