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듣고있습니다.
[23]은 천기의 중심수라고 한다.
이 수는 다함 없음을 나타내며, 이 우주의 생성원리가 담겨져 있으며,
태초 우주의 창조와 관련한 [한 말씀]의 [진동]과도 관계한다고 한다.
그리고, [조건없는 사랑]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러면, 이 인간 세상의 중심수는 몇 번일까?
[25]란다.
단적으로, [25]는 인간에게 벌어지는 상황을 그대로 묘사한 수이며,
그것은 [대립, 반목]이란 뜻을 갖고있단다. 또한 인간의 전형적인 [사랑]이란다. 이 사랑에는 애증이 함께 한단다.
[사랑]과 [증오]가 함께 공존하고 있는 사랑이 인간들의 사랑이며 이 수의 의미란다.
물어 본 김에 한가지를 더 물어 보았다.
소위 [외계인]이라고 지칭하는 우주의 존재들의 중심수는 무엇이냐고?
당연히 [23]이라고 할 것이라고 물어본 것인데..
그 대답은 뜻밖에 [22]라는 것이다.
[22]는 [카오스]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미스테리]를 담고있는 수란다.
또한, [22]는 [치우침]을 상징하는 수란다. 한 쪽으로 치우친 사랑..
즉, 어떤 목적에 부합한 과도할 정도의 사랑.. 또는 과도할 정도의 [증오]..
이 의미를 보건데, 어떤 면에서는 인간보다 더 [최악]이라고 보여지는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
[25]가 [23]으로 회복하는 날..
그 날이 이 세상 존재들이 [하늘의 문]을 여는 날이 될 것이고..
날개잃은 새[2]가 날개[3]를 얻어 하늘을 훨훨 날아 저 높은 곳에서 세상과 우주를
내다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한다.
[22]가 [23]으로 향하는데는 하나[1]의 힘이 필요하고.. 즉 [天]의 의지에 달려있고..
[25]가 [23]으로 회복하는데 있어서는 둘[2]의 의지에 달려있단다.
여기서 둘은 [地]가 아닌 [人]이란다.
인간의 이기심[이원론]를 저버린다면..
인간은 얼마나 위대한가..
외계인보다 위대한 존재가 [인간]이리라..
인간은 이미 [22], [23]을 체험한 것이다.
다만 회복이 필요할 뿐이란다..
회복되는 과정은 그 누구의 도움이 아닌 [자신]에 달려있단다.
이 말을 듣고 일단 삼매에서 나왔습니다.
차무엇인가?
[차원]은 [진동]에 관한 문제이다.
진동이란 우주에 산재한 모든 유기체의 진화에 관한 [확장 인자]이며,
그 확장의 레벨은 [관념 에너지] 즉, [관념의 진동]의 고저에 의해 표시될 수 있다.
여기서 [관념]은 [의식, 사유]가 포함된 [지향점]으로, [진동] 그 자체로 표현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거꾸로, 그 [진동]이 [의식, 사유]을 창조한다.
이것이 [관념, 의식, 사유 등]과 [진동]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는 합당한 예가 될 수 있다.
[차원]이 높다라는 의미는, 동이 높을수록 더 큰 [파괴 에너지]를 갖게 되고,
[응집력] 또는 [집중력]이 강해지며, (歪曲, 外亂]을 쉽게 관통할 수 있다는 의미로
표현할 수 있다. 즉, 창조력이 강하다는 말이다.
인간 존재가 말하는 [차원]은 [평면과 입체의 교차점]에서 [시간적, 시각적]이라는
한계를 가져오는데, 이는 단적으로 [의식의 진동]이 [물질의 고유진동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기 쉽게 설명하자면, 물질에는 [고유진동수]가 있으며, 그 진동수는 [多次 모드]로 확장한다 개체의 고유진동수는 단순 모형일수록, 또는 탄력성이 떨어질수록 진동수는
낮아진다. 그리고, 고유 진동은 [살아있는 의식의 강약]과 [결정화 정도]에 따라서도
큰 영향을 받게된다.
이것이 [차원]을 결정하는 인자이다. 과학자인 그대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인가를 잘 알 것이다. 원이 높거나 낮거나 하는 것은 그 개체의 [토탈 에너지, 토탈 프리퀀시]로써의 준위를 말하는 것이지, 인간의 시각적인 존재성의 여부로 풀 문제는 아니다.
차원은 유한이 아닌 [무한]이다.
결론적으로 [진동]은 뭣이든 창조할 수 있다.
물질화시킬 수도 있으며, 비물질을 창조할 수도 있다.
[물질]과, [비물질]은 인간의 사고 체계가 만든 이원적인 표현 방식이다.
[유에프오]는 무엇인가?
[유에프오]는 [진동의 양상]이다.
[진동의 크기], [진동의 집중력], [진동의 응집력]이 만들어 낸 편리상 [의도적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먼 우주에서 이 지구를 탐험하는 모든 [유에프오]는 우주의 존재
[생명체]가 만들어낸 [의식의 결정화된 양상]이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유에프오]는 존재의 [의도된 의식]이 만들어 놓은 [물질]이다. 즉, 기능화된 [로봇]이다.
[결정화 된 진동체]의 양상에 따라 형상도 여러가지이며, 기능도 가지가지이고,
거칠기[터프니스]도 천차만별이다.
그대도 그대의 [의식체 진동]으로 그 물질을 만들어 내어 아주 먼 우주에 띄어 보낼 수 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대의 의식체[진동]는 [물질]이든 [비물질]이든 다 만들어 낼 수 있다.
물질과 비물질은 인간의 표현방식이지만, 결국은 [진동체의 진동수]에 관한 문제이다.
언젠가, 그대의 어린 딸이 위험에 처했을 때, [아버지]를 부른 적이 있었다.
그녀의 앞에 곧 [아버지]가 나타났고, 그 위험한 순간으로부터 딸을 구해주었다.
그대는 그 때 어디 있었는가? 대는 단지 나중에 딸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을 뿐이다.
그대의 딸이 위험했던 순간 나타나 구해준 그대는 그대와 그대의 딸이 만들어 낸 (식의 진동체]인 것이다.
[진동체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그대의 진동이 만들어낸 [물질이자 비물질]이다.
그대는 종종 [化神]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그 화신을 목격한 예는 흔한 일이다.
다음에는 [왜곡, 외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이 말까지 듣고, 곧 삼매에서 나왔습니다.
외계인23 | : | 그렇습니다. 차원의 분류라기보다는 주파수,노이즈,진동,에너지의 분류등의 개념이 외계인들의 분류에는 포함됩니다 물질화된 것은 에너지등이 모여 응집된 것으로 평가하지요... 그래서 비물질화 프로그램을 통해 이동을 할 수 있는 수준의 과학기술도 지구인 여러분들께서 여러 공상과학 영화에서 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분류처럼 명확하답니다 | (2007.08.29) |
ㆍ글쓴이 : | 허적 | (2007.08.31 - 01:30) |
우주적 [사랑]은 무엇인가?
이 우주의 모든 존재는 [유, 무기체]와 관계없이 서로 상호 작용한다.
어떠한 에너지 형태로든 교류된다. 이 말은 주고 받는다는 말이다.
[의식]이 높을수록 상호간에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그것은 마치 진동의 공진[同調]과 상쇄[相殺]같은 현상이다.
그대가 질문 하는 사랑은 [창조]와 [파괴]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래서 집중력이 강하다. 이 이상 적합한 표현은 없다.
[사랑]이라는 에너지[진동]가 투과할 수 있는 영역은 어느 [차원]까지로 한정되어있다.
그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창조와 파괴]가 존재하는 [차원]까지다. 소위, 영계[靈界]가 그 속에 포함되어있다.
그 차원은 그대가 알고 있는 바 그대로다.
그러나, 우주의 전체로써 [창조와 파괴]가 존재하는 차원은 부분이다.
이것은 나중에 설명해도 충분하다.
그보다는 [창조]와 [파괴]에 대한 의미를 되짚어 보는 것이 옳다.
이 극단적 이원의 표기는 존재들에게 많은 각성을 갖게 하기에, 유효한 표현이다. 그리고 진실된 표현이다.
[사랑]은 왜 집중력이 강한가?
존재에게 있어 진동력은 생존에 관한 [의지]에서 출발한다.
그 중 가장 강력한 진동은 두 군데에서 정점을 이루는데,
그 하나는 [獻身(헌신)의 순간]이며, 또 하나는 [죽음의 순간]에 찾아온다.
[사랑]이 집중력이 강하다는 의미는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의 에너지를 의미하기 보다는
소위 사랑이라고 하는 지극[至極]한 의식이 존재에 깃들었을 때, 그 존재의 구조물[body]은
[진동 에너지]가 최대한 집중되는 구조로 [결정화, crystallization]된다는 의미다.
그것은 마치 속이 텅 비어있는 커다란 [렌즈]로 변하는 것과 같다.
빛이 렌즈를 투과할 때 렌즈의 포커싱 상황을 연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크리스탈 렌즈는 진동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한다.
모든 유기체는 잠재된 [크리스탈]이다.
따라서, [텅 빈 크리스탈]을 투과하여 나온 빛을 [사랑]이라고 표현 하는 것이 옳은 말이다.
이 말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기 바란다.
[창조]와 [파괴]가 공존하는 차원에서 그 둘의 대립은 같은 계열의 다른 표현 즉, [調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창조와 파괴의 신이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왜곡, 외란]은 그 부산물이며,
그 에너지는 우주 공간에 편재[偏在]해, 차원의 전이[轉移]를 간섭[統制]할 뿐이다.
이것을 업[業, karma]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 말을 이해하겠는가?
오래 전 그대는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영적 진보를 위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가?
그때 내가 말한 내용 중에 이런 부분이 있음을 기억할 것이다.
[육식은 인간이 진동수를 높이는데 최대의 장애물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대들이 먹고 있는 동물들의 대부분은 의식이 높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고유 진동] 또한 높다. 그들이 죽음에 직면하였을 때, 그들의 진동수는 최고조에 달한다.
그 파괴적인 기운이 그대들의 고유진동에 전사적인 외란[공진 또는 상쇄]을 일으킨다.
그대들의 지향하는 진보성향에 발목을 잡은 것이다.]
이것이 위에 설명한 많은 것을 이해시키는데 좋은 예가 되어줄 것이다.
[사랑]이라는 인간 위주의 [편리 주의]는 그대가 묻는 우주적 [사랑]과는 때때로 거리가 멀다.
여기까지 듣고 삼매에서 돌아왔습니다.
외계인23 | : | 허적의 명상 우주의 진리입니다. 고개숙여 감사드립니다 명상의 내용 중 중요한 다음 부분에 대한 외계인들의 정보를 전해드립니다
1.[창조와 파괴]가 존재하는 [차원]까지다. ;사랑의 에너지는 극대하지만 그 영향이 가장 크게 미치는 곳이 이 창조와 파괴가 양극성을 띄고 대립하는 곳입니다 다른곳에서도 사랑에너지는 작동한답니다
2.[사랑]이 집중력이 강하다는 의미는 사랑이라는 행위 자체의 에너지를 의미하기 보다는 소위 사랑이라고 하는 지극[至極]한 의식이 존재에 깃들었을 때, 그 존재의 구조물[body]은 [진동 에너지]가 최대한 집중되는 구조로 [결정화, crystallization]된다는 의미다. ;행하라는 뜻이 사랑하라는 뜻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답니다 이 사랑에너지는 물질화 시킬수 있는 코드를 포함하고 있답니다
3.[창조]와 [파괴]가 공존하는 차원에서 그 둘의 대립은 같은 계열의 다른 표현 즉, [調和]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앞으로의 우주는 창조와 파괴의 대립이 아니라 조화와 질서 속에서 피어나는 정의와 사랑이 그 중심이 되어갈 것입니다. 그 것이 이 지구의 미래입니다
4.[육식은 인간이 진동수를 높이는데 최대의 장애물이다. 왜 그러냐 하면, 그대들이 먹고 있는 동물들의 대부분은 의식이 높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고유 진동] 또한 높다. 그들이 죽음에 직면하였을 때, 그들의 진동수는 최고조에 달한다. 그 파괴적인 기운이 그대들의 고유진동에 전사적인 외란[공진 또는 상쇄]을 일으킨다. 그대들의 지향하는 진보성향에 발목을 잡은 것이다.] ; 지구인들의 미래는 육식을 줄이는 방향으로 식생활이 개선됩니다. 그리고 창조의 귀한 생명에너지를 가진 동물들을 취할때 그들의 파괴로 인한 고통에너지에 대해 숙연한 마음을 가져야합니다. 예전 일부 파충류 외계인들이 인간을 식사대용으로 사용하려했던 과거를 상상해보세요. 지구인들은 현재 주식으로된 동물들의 생명에너지에 항상 감사해야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지나친 채식화는 지구 자기장의 변화나 주변 에 너지 공급원의 부족으로 당분간 지구인의 몸에 적합하지 않답니다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우주의 법칙이죠 지구의 물의 변화가 그것을 도울 것입니다 지구에도 감사하셔야합니다
5.[사랑]이라는 인간 위주의 [편리 주의]는 그대가 묻는 우주적 [사랑]과는 때때로 거리가 멀다. ; 항상 이 외계인이 언급하는 사랑과 정의는 우주적인 진리속의 사랑과 정의이며 구인의 사랑과 정의의 의미와 차이가 날 수 있답니다. 상위 율법의 의미도 있답니다 그 점을 구별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외계인23드림 | (2007.08.31) |
[우주의 법칙]에 대해 명상했습니다.
ㆍ글쓴이 : | 허적 | (2007.09.03 - 01:34) |
[우주의 법칙]이 무엇인가?
우주에는 법칙이란 것이 없다. 다만, 법칙처럼 보이는 것이 존재한다.
그것은 양과 음을 띈 커다란 [에너지 덩어리]라고 보면 된다.
중력을 갖고 있는 지구를 생각해 보면 쉬울 것이다.
중력은 지구의 무게가 끌어당기는 힘이다.
우주의 역사는 오래 되었지만 그곳의 존재들이 내뿜는 의식에너지의 조합이
힘을 갖춘 한 에너지 덩어리로 형성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최초의 움직임[소용돌이]은 하나의 근원지에서 출발하여, 우주를 떠돌게 된다.
그리고, 공유된 주파수의 에너지들은 서로의 상호작용으로 규합된다.
그것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그것을 그대들의 말로 유유상종이라 한다.
그렇게 모인 에너지체는 힘을 갖게 되고, 처음에는 동일 성향 에너지만을 흡수하였지만,
에너지 량이 증가함에 따라 그 이후에는 유사한 파장의 주위 에너지를 닥치는 데로 흡입하여, 에너지량을 확대해 간다.
마침내 그 누구도 쉽게 통제할 수 없는 지배력이 생긴 것이다.
그 지배력을 [우주의 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 표현이다.
이 법칙 아닌 법칙은 그대들에게 무슨 의미인가?
지구인은 지구를 벗어나려 할 때, 지구 중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지구의 대부분의 존재들은 그것에 익숙해 있다. 우주의 존재 또한 그러하다.
[우주의 법칙]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인류가 만들어 낸 [법령]과 같다.
신은 단지 그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이 말 뜻에는 여러가지의 진리가 담겨있다. 그것을 직시[直視] 하라.
에너지체는 언제나 폭발 임계점을 향해 효율을 극대화 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폭발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더 큰 에너지체에 흡수되어버린다. 그러나, 실존의 우주에 소멸이란 없다.
그 법칙의 유효성은 그대들이 머무는 지구에서 벌어지는 예로써도 충분하다.
작게는 개인의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며, 나아가 집단, 사회, 국가, 세계에서 사건의 지배력으로 나타난다.
그렇지 않은가?
그대들이 존재하는 이 우주가 왜 [창조와 파괴의 신]이 지배하는 차원인가를 알겠는가?
그렇지만 이 전에도 말한 것과 같이 [창조와 파괴의 신]이 지배하는 차원은 부분이다.
그대들은 무엇을 [신]이라 믿고 있는가?
그대는 아주 오래 전 그대의 한 학생이 잘못을 하여 화가 난 나머지 체벌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체벌은 한 학생에 그친 것이 아니라 단체 기합이라는 집단 체벌로 이어졌다.
그대는 그 때,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학생이 이렇게 된 것은 같은 반의 일원으로써 너희들도 책임이 있다. 너희도 반성하라.]
그대는 그대의 문제를 모두의 문제로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그 힘의 파장은 참으로 컸다.
이 말까지 듣고 삼매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앓고 있는 [혼돈]이 종식되길 기원합니다.
ㆍ글쓴이 : | 허적 | (2007.09.04 - 19:29) |
[인간의 내면에는 처절한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가장 뛰어난 인간만이 그 고독과 함께 한다.
나머지는 삶에 취해 살다가 꿈처럼 죽어간다.] (묵연)
그러니까 오래 전의 얘깁니다.
저는 [묵연]이라는 잘 알지도 못하는 스님의 이 말을 어디서 보고 무척 오랫동안 생각하여
왔습니다. 뜻을 알 것 같으면서도 실감을 할 수 없고.. 답답한 그런 시간 중에 내면으로
묻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부처님 또는 예수님을 찾았던 것 같아요.
늘 그렇지만 인생사 개인의 고민 속에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사색하던
어느 날, 저의 내면에서 들려오는 낯선 소리가 있었습니다.
위 구절이 그대로 들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은 이러했습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처절한 고독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뛰어난 인간만이 그 고독과 함께 한다.
나머지는 삶에 취해 살다가 꿈처럼 죽어간다
이 말은 옳은 말 이로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자르다.
오랜 세월, 그대가 걸은 길은 몽상가의 역사였도다.
삶의 뒤안길에서 회한의 눈물을 흘리던 자를 보았다.
그대는 다시 황량한 불모지(자궁)에 둥지를 틀고,
그리고, 곧바로 삶에 압도되어 또 한번의 무지한 역사를 창조하고 말았도다.
고타마는 오백회로 그 지루하고도 권태로운 역사에 종식을 고했으나,
그대 그 횟수 너무도 아득하니, 이미 몸과 마음은 육신의 세상에 중독되어 길을 잃었도다.
삼 천년 전, 허무의 왕국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저자 거리에서 탁발하던 일족들을 기억하는가?
이 가공할 사연을 듣고 그대는 무엇을 느끼는가?
삼천 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무지로 무장한 세상 사람들의 한 여름 밤 꿈에 그대 몸과 마음을 기대고 있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가? 삼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가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이 변할 것은 하나도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대, 세상을 향한 눈을 감고 안으로 들어가라.
그대가 찾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의 출구는 무상한 것뿐이다.
오직 안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입구만 그대 앞에 있게 하라.
서둘러라. 그대에게 주어진 시간도 그리 넉넉하지 않구나..
그대의 역사 속에 타락의 길로 인도한 무거운 여장(旅裝)을 해체하고,
거미줄 가득한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궈라.
그대의 무관심 속에 방치된 그 방이 진정한 그대의 성전이었도다.
그 곳엔 오직 그대와 그대가 찾는 신, 둘만의 여지만 있게 하라.
지칠 줄 모르고 펄럭였던 생각과 말의 표독한 깃발을 꺾고
오직 무저항으로 그의 음성에 귀 기울일 차례로다.
그는 너무나 오랜 시간 그대가 침묵하는 그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도다.
그의 음성 속에서 만이, [나와 너]가 있음으로 해서 생겨나, 세상과 내가 앓고 있는
그 [혼돈]을 종식시킬 것이로다. 그대의 음성 속에 진정한 그대이자 내가 있느니라..
한 개인의 내면의 소리를 타인에게 공개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저와 유사한 고민을 경험한 분이라면, 그리하여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 즈음에서 못할 것도 없으리라는 판단입니다.
한편으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어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미 몇 편의 내면의 소리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읽는 분들이 저와 같이 공명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비록 짧은 것들이지만 시사하는 바는 클 것으로 봅니다. 물론 저에게 한에서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고 함은 우주의 모든 성인의 이름 앞에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송구한 바램일 수도 있지만, 진리를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축적된 지식을 해체하고
내면으로 들어가 우리가 앓고 있는 [혼돈]이 종식되길 기원합니다.
허적..
호천[昊天]의 의미에 대해 명상하였습니다.
ㆍ글쓴이 : | 허적 | (2007.09.13 - 22:43) |
연지리 님의 진애(眞愛)라는 시를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시입니다.
작가의 심오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좋은 시였던 것 같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사랑]을 생각하다 문득 사랑에 대한 한참 고민을 했던 예전의 추억이 생각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람 또는 존재들이 사랑을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신의 사랑은 또 어떤 것일까? 를 많이 생각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사랑이란 뭐라고 딱 잘라 정의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인간에게 아상[我相, 에고]이 존재하는 이상
그 어떠한 내적 또는 외적인 사랑의 표현 또는 행위라도 일단 표출되면 그 곳을 투사한 곳에 因果[함정]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단지 그 이유 만으로
사랑을 딱히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보다는 하나님[神]의 사랑에 대한 것을 생각해 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자신이 하나님을 볼 때, 지극히 객관적인 제 삼자의 입장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합리화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 아마도 그 당시 호기(好奇)에서 나온 발상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하여간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날과 같이 마당 앞 평상에 누워 세상사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가도 한편으론 하느님과 그 분의 사랑에 대해 짬짬이 생각하며 다소 심각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런데, 잠시 잠이 들었던 건지 혹은 몽상을 하고 있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늘에 구름이 이동하는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구름이 순식간에 기둥으로 변하여 하나의 글자를 만들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구름이 만들어 낸 글자는 호[昊]라는 한자였습니다. 이 한자의 뜻은 [큰 하늘]입니다.
보통 하늘을 천[天]으로도 쓰지만 우주를 상징하는 의미에서의 하늘을 쓸 때는 [昊]를 써, 호천(昊天)이라고도 부릅니다. 러나 그 당시 잠시 나타났다 사라진 그 현상을 신기해 하면서도 정작 그 뜻을 알 수
없었는데, 어느 날 명상에서 그 글자에 얽혀있는 몇 가지 사연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중의 일부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간략하게 적어봅니다.
이 한자(漢字)가 재미있는 것은 하늘 천(天) 위에 날 일(日)자 입니다.
이 날일자가 하늘 위에 있는 한 개의 태양[낮]과 한 개의 달[밤]을 뜻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의미였습니다. 날일자의 천기(天氣)의 뜻은 [두 개의 태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신[1]과 천기의 태양의 숫자[8]은 같은 위상에 존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8은 한 주기[7]의 완성을 의미하는 수이기도 합니다.
달[月]의 의미는 두 개의 태양이 운행되는 모습이자 그 궤적[11]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우리들의 눈에 보이는 저 하늘의 달은 진정한 의미의 허상[人造]이며,
상징적인 달의 수는 2[二]입니다.
2(二)는 [11]의 다른 표현이며, [11]은 인간 세상의 중심수와 위상을 같이 합니다.
인간이 서있는 모습[1]과 그가 만든 그림자[1]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위의 서술 속에서 독자 스스로가 발견하게 될 여러가지 사실 외에 우리가 가장 의문을 품게 되는 것,
즉 [두 개의 태양]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와 허상의 [달]이 존재하는 이유는 보다 명확한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적으로, 천기의 태양이 두 개인 것은 두 개의 태양이 비출 때만이 사물의 그림자[陰]를
최소화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본인이 [신의 사랑]을 상념 하였을 때, 한자 [昊]字가 나타난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이란 빛이 대상에 비추었을 때[投射하였을 때] 음의 그림자를 만들어내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인간이 그림자[1]를 여의는데 있어, 인공(人工, 二)은 숙명적 장애이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부연하자면,
인간이 역사는 음의 지배를 받은 역사입니다.
하늘 천[天]은 인간[人]이 2[二]의 지배에 놓여 있는 상황을 그대도 보여줍니다.
[우리는 신이다..] 라는 말의 의미는 신[1]의 분신[11]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말로 2[二, 달, 허상, 음, 인간, 에고, 아상]를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인간이 극복 해야 하는 것..
사랑이라는 것..
천상의 하늘은 天이 아니라 昊라는 것..
의미가 깊다 하겠습니다.
더불어, 차원이 높을수록 천상의 빛[太陽]은 무한히[8] 확장할 것이며, [음]의 기운은 무한히 축소될 것이며,
그 차원으로의 上乘[轉移]만이 우주의 법칙 아닌 법칙으로 모든 존재의 세포에 각인되어 있음을.. 들었습니다.
[天. 地. 人]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 이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天. 人. 地]가 맞는 말입니다.
여기서 天은 [1]이며, 人은 [2]이며, 地가 [3]입니다.
이것이 天氣의 의지입니다.
하나님은 땅qhek 사람을 ej 사랑하십니다.
허적..
외계인23 | : | 가르침 감사합니다 단 외계인들의 의견입니다 천 인 지 가 맞는 순서이다 - 네 동의합니다 중요성의 의미로 다가오는 미래에서 인간의 중요성 측면에서 천 1 ,인 2 , 지 3 은 동의합니다 즉 인의 위치가 아주 중요하다는 의미의 다음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 부연하자면, 인간이 역사는 음의 지배를 받은 역사입니다. 하늘 천[天]은 인간[人]이 2[二]의 지배에 놓여 있는 상황을 그대도 보여줍니다. [우리는 신이다..] 라는 말의 의미는 신[1]의 분신[11]을 말하는 것이며, 다른 말로 2[二, 달, 허상, 음, 인간, 에고, 아상]를 극복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 그러나 숫자의 의미로 천 1 인 2 지 3 은 우주의 진리를 표현하는 부분과 거리가 있다 합니다 만들어진 순서를 뜻하기도 하니까요... 천일일 지일이 인일삼 의 이 삼과 천이삼 지이삼 인이삼 의 이 삼이 각기 다른 뜻이 있듯이....... 혹시 그 중요성을 이야기 하시는 것이 아니신지요? 감사합니다 외계인23드림 | (2007.09.13) |
허적 | : | 매번 관심 어린 리플 감사합니다. 2-3 님의 의견도 외계인의 입장에서 맞는 것으로.. 동의합니다. 단, 창조의 논리로 본다 하여도..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 하실 때 공간(地)은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화된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그대로 한.. 하나님의 줄기(branch)였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줄기는 중요한 의미에서 같은 것입니다.
그 다음, 줄기와 신의 의지가 충돌하여 만들어진 것이 마침내 물질화된 땅입니다. 여기서 [충돌]은 대립이 아니라 [방향성]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인간(人性, 육화 된 인간을 말하는 것이 아님)은 창조의 순으로 봐도 무 순위 입니다. 본인이 말한 [2]는 육화 된 인간 안에 있는 신성한 존재(신의 줄기)를 말하는 것입니다. 천기의 人, 즉, 2[二]는 그러한 뜻입니다.
우리의 눈에 보여지는 천부경의 내용은 창조주의 말씀이 아닙니다. 쉽게 말하자면, 창조주가 만든(?) 어느 존재의 의미 있는 한 견해입니다. 그러나 그 분은 천기를 알고 계신 분임에는 틀림없습니다. [天人地]가 그것을 역으로 증명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보는 천부경은 원본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육화 된 인간이 그의 시각(수준)으로 또 한번 바뀌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본[天人地]에서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그의 생각에는 [天地人]이 타당해 보였을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허적 드림.. | (2007.09.14) |
청학 | : | 천지는 그릇의 1, 2차적 원료이고 사람은 그 그릇안에 있는 내용물이죠! 개념은 본래 스칼라적 성향을 갖고 있어서 속된말로 막 갔다가 부쳐써먹어도 됩니다. 원에 방향이 있나요? 그래서 方방이 있는 거지요! 인간은 원과 방이 모인 球입니다. 전후좌우상하의 6합으로 된 입체! 구형의 입체가 바로 인간남녀 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천지의 + - 벡터량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