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옛글 모음

동이보감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5. 8. 7. 15:23

 

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잡병편

제1장 진단학의 기초

심병(審病)

병을 진찰하는 방법

앞에서 하늘, 땅, 인간과 질병 사이의 관계를 논하였다면, '심병(審病)'문(門)에서는 질병을 진단하는 원리와 방법을 설명한다. 여러 진단법 중 망진에 관한 내용을 주로 다루며, 다른 문(門)에 흩어져 있는 진단법을 한군데에 모아 정리하였다. 한편, 진맥에 관한 내용은 이어지는 '맥진'문(門)에서 상세히 다룬다.

척 봐서 병을 아는 의사가 가장 훌륭하다

『동의보감』에서는 환자를 진찰하는 방법으로, 사진(四診)이라고 부르는 네 가지를 든다. 환자를 겉으로만 보고 병을 알아내는 망진(望診)이 그 첫째로, 이에 능한 의사를 신의(神醫)라 부른다. 둘째는 환자의 목소리를 들어보거나 냄새를 맡아보아서 병을 알아내는 문진(聞診)으로, 이에 능한 의사를 성의(聖醫)라고 한다. 셋째는 환자에게 직접 물어보아서 병을 알아내는 문진(問診)으로, 이에 능한 의사를 공의(工醫)라고 한다. 넷째는 맥을 잡아보아 병을 알아내는 절진(切診)으로 이에 능한 의사를 교의(巧醫)라고 한다.

이를 볼 때 『동의보감』에서는 척 봐서 병을 아는 의사가 가장 수준이 높고, 맥을 잡아 병을 아는 의사는 가장 수준이 낮은 것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중간에는 몸에서 나는 냄새와 소리로 병을 아는 의사와 물어서 병을 아는 의사가 있다. 이 진단법들 사이에 등급을 나눌 수 있기는 해도 이 방법들은 서로 보완 관계에 있다. 그래서 『동의보감』은 의사는 모름지기 이 모든 방법에 다 통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병을 진찰하는 원리

여러 가지 진찰법은 함께 쓰인다. 『동의보감』에서는 먼저 얼굴빛을 보고 맥을 짚어서 음증(陰證)과 양증(陽證)을 가르고, 이어 얼굴빛이 맑은가 흐린가를 보아서 병이 있는 부위를 알아내며, 마지막으로 숨쉬는 것과 목소리를 들어보고 아픈 부위를 알아내라고 말한다. 『동의보감』은 『내경』을 인용하며 진찰의 원리[診察之道]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다섯 가지 색깔을 눈으로 보아 세밀하게 읽어낼 수 있다. 얼굴빛과 맥을 보고 종합하여 진단해야 틀림이 없다. 맥의 상태를 짚어보고 눈의 정명(精明, 눈구석에 있는 혈자리)을 살피고, 다섯 가지 색깔을 보아서 오장의 기운이 실한지 허한지, 육부가 튼튼한지 약한지, 몸이 든든한지 쇠약한지 알아낼 수 있다. 이를 참작하여 죽겠는지 살겠는지를 판단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오장과 연관된 다섯 가지 색깔, 얼굴빛, 눈의 정명 등 세 가지이다.

오장의 상태는 몸 겉에 다섯 가지 색깔로 드러나며, 그것은 간-청색, 심장-적색, 비-황색, 폐-백색, 신-흑색이라는 대원칙을 따른다. 『동의보감』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심장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색깔은 주사(朱砂)를 싼 흰 비단 같고, 폐와 관련 되어 나타나는 색깔은 주홍 물건을 싼 흰 비단 같으며, 간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색깔은 감빛 물건을 싼 흰 비단 같고, 비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색깔은 하눌타리를 싼 흰 비단 같고, 신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색깔은 자줏빛 물건을 싼 흰 비단 같다. 이것이 오장의 기운이 겉으로 나타난 색깔이다.

얼굴은 한의학의 진단에서 매우 중요하다. 얼굴은 인체 내부의 상태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얼굴에서는 부위에 따라서, 또는 얼굴에 드러난 색깔에 따라서 각각의 병증과 생사를 헤아리며, 얼굴 부위 중 특별히 를 명당(明堂)이라 하여 중시한다.1)

눈은 오장의 정명이 모이는 곳이라 하여 진단학에서 그 어느 것보다도 중시한다. 눈에 나타난 색깔에 따라 오장의 병을 헤아린다. 얼굴에서와 마찬가지로 눈에 적색이 나타나면 심장에 병이 있음을 의심한다. 또한 백색이 나타나면 폐, 청색이 나타나면 간, 황색이 나타나면 비(脾), 흑색이 나타나면 신(腎), 황색이면 가슴속에 병이 있음을 의심한다.2)

이러한 색깔의 차이를 잘 판별하느냐 못하느냐가 바로 능력있는 의사냐 아니냐를 나타내준다. 진찰을 잘하는 의사는 환자에게 나타나는 색깔을 그냥 소홀히 넘기지 않는다.

여러 가지 병기

망진 이외에도 문진(問診)과 문진(聞診)도 진단학에서 매우 중요하다.3) 특정 신체 부위의 거칢과 윤택함, 차가움과 뜨거움도 병과 관련되며, 말을 더듬는다든지 머리를 흔들면서 말하는 것도 모두 병과 관련된다. 기침이 난다거나, 눈 아래가 붓는 것, 오줌 색이 누런 것, 눈이 누런 것, 먹어도 가 고픈 것 등도 병과 관련된다. 이처럼 『동의보감』은 여러 가지 단편적인 병기를 소개하지만, 손목의 척부(尺部)를 보아 병을 진단하는 방법, 손바닥을 보아 병을 진단하는 방법, 『내경』에서 말하는 열아홉 가지 병기(病機), 음성과 정신 상태로 병을 짐작하는 법, 머리·잔등·허리·무릎·뼈의 상태로 병을 아는 법 등에 관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특기한다.

손목의 척부를 보아 병을 아는 법
손목의 척부 상태를 보아 병을 판단할 수 있다. 척부는 손목의 가로 무늬 에서부터 팔꿈치의 가로 무늬까지의 안쪽 피부를 말한다. 척부가 매끈매끈하고 윤기가 나는 것은 풍증이고, 척부가 깔깔한 것은 풍비중이며, 척부가 거칠어서 마른 고기 비늘 같은 것은 수기(水氣)로 일음(溢飮)4)이 생긴 것이다.

척부가 몹시 달아오르고 맥이 펄펄 뛰는 것은 온병이고, 척부가 싸늘하고 맥이 약한 것은 기운이 약한 것이다. 그리고 팔꿈치 뒤 의 관절 부분 주름진 곳에서부터 아래로 3~4촌 내려간 부위가 뜨거운 것은 장 속에 벌레가 있음을 나타낸다.

손바닥을 보아 병을 아는 법
손바닥이 달아오르는 것은 뱃속이 뜨거운 것이고 손바닥이 싸늘한 것은 뱃속이 찬 것이다. 손바닥 어제(魚際)의 흰 살에 퍼런 핏줄이 일어서는 것은 위 속이 찬 것이다.

열아홉 가지 병기
• 풍으로 몸이 흔들리고 어지러운 증상들은 모두 간병(肝病)에 속한다.
• 찬 기운으로 오그라드는 병들은 모두 신병(腎病)에 속한다.
• 숨을 헉헉거리고 답답해하는 증상들은 모두 폐병(肺病)에 속한다.
• 습기로 퉁퉁 붓는 병은 모두 비병(脾病)에 속한다.
• 열기로 정신이 흐릿하면서 근육이 오그라드는 병은 모두 화병(火病)에 속한다.
• 아프면서 가렵고 허는 병은 모두 심병(心病)에 속한다.
• 궐증(厥證, 기운이 거슬러 올라가서 생기는 증상들)과 변비와 설사는 모두 하초병(下蕉病)에 속한다.
• 늘어지는 병과 천식과 구토는 모두 상초병(上焦病)에 속한다.
• 이를 악물고 떨며 정신이 빠져나간 것 같은 병은 모두 화병에 속한다.
• 경병(痙病, 힘줄이 땅기는 병)으로 목이 뻣뻣해지는 것은 모두 습병(濕病)에 속한다.
• 기운이 치밀어 오르는 것은 모두 화병에 속한다.
• 배가 불러올라 커지는 병은 모두 열병(熱病)에 속한다.
• 조급증과 미쳐서 날뛰는 것은 모두 화병에 속한다.
• 갑자기 뻣뻣해지는 것은 모두 풍병(風病)에 속한다.
• 배가 팽팽하게 불러 올라서 두드리면 북소리 같은 소리가 나는 것은 모두 열병에 속한다.
• 붓고 마디가 우리하면서 시리고 잘 놀라는 것은 모두 화병에 속한다.
• 근육이 뒤틀려 어그러지는 병과 오줌이 뿌연 병은 모두 열병에 속한다.
• 오줌이 맑으면서 투명하고 차가운 것은 모두 한병(寒病)에 속한다.
• 구역질과 신물을 하는 것, 갑자기 설사를 몹시 하면서 뒤가 무거운 것은 모두 열병에 속한다.

음성 또는 정신 상태와 질병
오장은 속을 지키는 것이다. 속이 기로 그득하고 오장이 기로 가득 차 기가 지나쳤을 때 무서움을 당하였거나 말소리가 방에서 나는 것 같으면, 이것은 가 습기(濕氣)를 받았기 때문이다. 말소리가 약하고 하루종일 한 말을 다시 또 하는 것은 기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입은 옷을 거두지 못하면서 좋은 말이건 못된 말이건 막하며 친한 사람과 낯선 사람을 가려보지 못하는 것은 정신이 착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몸 외부 상태와 질병
머리는 정신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머리를 숙이고 깊은 곳을 보는 것 같으면 정신이 나가려는 것이다. 은 가슴의 부(府)로 등이 굽어 어깨도 따라 굽어지는 것은 가슴이 무너지려는 것이다. 허리는 신(腎)의 부로 허리를 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장차 신이 상하려는 것이다.

무릎은 힘줄의 부이다. 굽혔다 펴기를 잘하지 못하거나 걸어다닐 때 구부러지는 것은 힘줄이 상하려는 것이다. 뼈는 골수가 들어 있는 창고이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서 있지 못하거나 걸어다닐 때에 몸을 흔드는 것은 골수가 상하려는 것이다. 이런 때에 몸이 튼튼하면 살고, 튼튼하지 못하면 죽을 수 있다.

병은 오사를 구별해야 한다

오장은 각각 주관하는 것이 다르다. 간은 다섯 가지 색깔을 주관하고, 심장은 다섯 가지 냄새를 주관하고, 비는 다섯 가지 맛을 주관하고, 폐는 다섯 가지 소리를 주관하고, 신은 다섯 가지 진액을 주관한다. 다섯 가지 색깔이란 퍼런 색깔, 붉은 색깔, 누런 색깔, 흰 색깔, 검은 색깔이다. 다섯 가지 냄새란 노린내, 단내, 향기로운 냄새, 비린내, 썩은내이다. 다섯 가지 맛이란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이다. 다섯 가지 소리란 외치는 소리, 말소리, 노랫소리, 울음소리, 신음소리를 말한다. 다섯 가지 진액이란 눈물, 땀, 입 밖으로 흐르는 침[涎], 콧물, 입 안에 고여 있는 침[唾]이다. 이 관계를 표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구분색깔냄새소리진액

푸른색

노린내

신맛

외치는 소리

눈물

붉은색

탄내

쓴맛

말소리

노란색

향내

단맛

노랫소리

흐르는 침

하얀색

비린내

매운맛

울음소리

콧물

검은색

썩은내

짠맛

신음소리

입 안의 침

 

 

오장 상호간에 상생과 상극의 관계가 성립되는데, 『동의보감』에서는 그러한 관계 때문에 생긴 병을 특별히 오사(五邪)라고 부른다. 오사는 허사(虛邪), 실사(實邪), 적사(賊邪), 미사(微邪), 정사(正邪) 등이며, 구체적으로는 중풍(中風), 상서(傷暑), 음식노권(飮食勞倦), 상한(傷寒), 중습(中濕)을 가리킨다.5)

오장은 각기 주관하는 부속 기관들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라도 기운이 끊어지면 그 주관하는 부속 기관들이 죽고 만다. 그러므로 오장 각각의 기운이 끊어진 증상들을 잘 판별해야 한다. 땀이 나고 머리털이 축축하며 계속 숨이 찬 것은 폐기(肺氣)가 먼저 끊어진 것이다. 양기만 홀로 남아 있어서 몸이 연기에 그슬린 것같이 되고 을 곧추 뜨며 머리를 흔드는 것은 심기(心氣)가 끊어진 것이다. 입술이 파랗게 되고 다리가 침습하며 땀이 나는 것은 간기(肝氣)가 끊어진 것이다. 입술 둘레가 검게 되고 유한(柔汗, 기름 같은 땀)이 나며 몸이 노랗게 되는 것은 비기(脾氣)가 끊어진 것이다. 대소변이 나가는 줄 모르고 미친 소리를 하며 눈을 치뜨고 곧추 보는 것은 신기(賢氣)가 끊어진 것이다.

오장의 음기와 양기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 끊어졌는지 아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만일 양기가 먼저 끊어지고 음기가 후에 없어지면 반드시 몸이 벌겋게 되면서 겨드랑이와 명치가 따뜻해진다.

기·혈·담·화-또 다른 네 가지 질병의 기준

질병은 기로 인한 병[氣病], 혈로 인한 병[血病], 담 때문에 생긴 병[痰病], 화 때문에 생긴 병[火病]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기는 양에 속하여 상초(上焦)를 지배하고, 혈은 음에 속하여 하초(下焦)를 지배한다. 기와 혈은 상호 보완적으로 인체의 생리 활동을 영위하므로 상호대칭적으로 병의 양상이 나타난다. 기병과 혈병을 구별하는 가장 일반적인 기준은 기병에는 물을 마시지만 혈병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것은 열이 상초의 기분(氣分)에 있으면 갈증이 나지만, 하초의 혈분(血分)에 있으면 혈 가운데 수분이 있어서 갈증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혈병 때에는 늘 끓인 물로 양치하려는 증상을 보인다. 모든 혈병은 낮에는 가볍고 밤에는 무거워진다. 이것은 밤이 음에 속하는 시간이므로 음인 혈과 음인 밤 시간이 겹쳐 중음(重陰, 겹친 음)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담은 인체에 군더더기로 존재하는 비생리적인 액체를 말한다. 이것이 병을 일으키는 기전(機轉)은 앞서 '담음(痰飮)'문에서 말한 바 있다. 담에 의해 일어난 담병은 나름대로 특징이 있다. 모든 담병은 음식을 적게 먹지만 피부의 색깔은 정상이다.

화(火)는 몸 안에서 활동하는 뜨거운 기운을 말한다. 이것은 원기를 태워버리므로 '원기의 도적[元氣之賊]'이라고 부른다. 모든 화병은 성질이 급해지고 조열이 심한 증상을 띤다.

진찰에는 기준이 잘 서야 한다

갓 생긴 병과 오래 된 병을 가려라
갓 생긴 병과 오래 된 병을 가려내는 것은 진찰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이다. 이 소약(小弱)하면서 삽(澁)하면 병이 오래 된 것이고, 맥이 활부(滑浮)하면서 빠르면 갓 생긴 병이다. 맥이 소(小)하지만 얼굴빛이 변하지 않은 것은 갓 생긴 병이고, 맥은 제대로 뛰지만 얼굴빛이 변한 것은 오래 된 병이다. 즉, 여기서 진찰의 대원칙은 오래 된 병은 맥과 얼굴빛이 둘 다 변한 상태로 표현되고, 갓 생긴 병은 그러한 변화가 아직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치료할 수 있는 증상과 치료가 어려운 증상을 가려라
의사는 모름지기 치료할 수 있는 증상과 치료하기 어려운 증상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병을 치료할 때에는 빛깔과 윤기, 맥이 실한가 약한가, 갓 생긴 병과 오래 된 병을 잘 살펴서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치료할 수 있는 경우는 다음과 같다. 형기(形氣, 몸과 기운)가 조화되어 있을 때, 얼굴에 윤택한 빛이 나타날 때, 맥이 사철과 부합될 때, 맥이 약하고 활(滑)하여 위기(胃氣)가 있을 때 등이다.

치료하기 어려운 경우는 다음과 같다. 형기가 조화되지 않을 때, 얼굴빛이 윤택하지 못하고 어두울 때, 맥이 실하고 단단할 때, 맥이 사계절에 맞지 않을 때 등이 그것이다. 맥이 사계절과 맞지 않게 나타난다는 것은 봄에 폐맥, 여름에 신맥, 가을에 심맥, 겨울에 비맥이 나타남을 말한다. 이 맥들은 도중에 끊어지면서 침(沈)하고 삽(澁)해진다.

시간에 따른 병의 경중을 헤아려라
모든 병은 밤과 낮에 따라 병의 경중이 달라진다. 따라서 의사는 시간에 따라 심해지고 가벼워지는 병의 양상을 알고 있어야 당황하지 않는다.

병이 낮에 심해졌다가 밤에 가벼워지는 것은 양병(陽病)이다. 이것은 기가 병든 것이지 혈이 병든 것은 아니다. 밤에 심해졌다가 낮에 가벼워지는 것은 심한 음병(陰病)이다. 이것은 이 병든 것이지 기가 병든 것은 아니다. 낮에 열이 나다가 밤이 되면 안정되는 것은 양기가 양분(陽分)에서 성해진 것이다. 밤에 오한이 나다가 낮에 안정되는 것은 음혈이 음분(陰分)에서 성해진 것이다. 낮에는 안정되었다가 밤에 열이 나면서 안달복달하는 것은 양기가 아래로 내려가 음분에 들어간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열이 혈실(血室)에 들어갔다고 한다. 밤에 안정되었다가 낮에 오한이 나는 것은 양분에 음기가 들어 간 것이다.

병이 나을 시간도 미리 알 수 있다. 가령 밤중에 생긴 병은 다음날 한낮이 되어야 낫고, 한낮에 생긴 것은 밤중에 가서 낫는다. 한낮에 생긴 병이 밤중에 낫는 이유는 양이 음을 만나면 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밤중에 생긴 병이 한낮에 낫는 것은 음이 양을 만나면 풀리기 때문이다.

죽을 시간도 미리 알 수 있다. 구후(九候)6)의 맥이 다 침세(沈細)하면서 끊어지는 것이 음증인데, 이것은 겨울이 주관하기 때문에 밤중에 죽을 수 있다. 맥이 성(盛), 조(躁), 천(喘), 삭(數)한 것은 양증인데, 이것은 여름이 주관하기 때문에 낮에 죽을 수 있다. 한열병(寒熱病, 몸이 추웠다 더웠다 하는 병)으로는 아침에 죽을 수 있고, 열중(熱中)과 열병으로는 한낮에 죽을 수 있다. 풍병으로는 해질 무렵에 죽을 수 있고, 수병으로는 밤중에 죽을 수 있고, 맥이 드문드문 뛰다가 잠깐 동안 삭해지거나 더디게 뛰다가 잠깐 동안 빨라지는 것은 진(7~9시), 술(19~21시), 축(1~3시), 미(13~15시)의 시간에 죽을 수 있다.

이렇듯 음기가 성한 것, 양기가 성한 것, 춥다가 열이 나는 것, 속이 열한 것, 풍병, 수병, 맥이 더뎠다 빨랐다 하는 것 등을 『동의보감』에서는 칠진(七診)이라고 부른다.

죽을 징후를 잘 헤아려라
환자가 죽을 것을 미리 알려주는 징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 병이 나으려고 할 때에 눈가가 누렇게 된다(위기가 돌기 때문이다).
• 눈두덩이 갑자기 꺼져 들어가는 것은 반드시 죽는다(오장의 기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 눈, 입, 코가 검게 되었다가 그것이 입 안으로 퍼지면 열에 일곱은 죽는다(신기가 위기를 억누르기 때문이다).
• 얼굴빛이 노랗고 눈이 퍼렇게 된 것은 술을 많이 마셔서 풍사가 위에 들어갔다가 온 몸에 퍼진 것이다(목이 토를 억누른 것이다).
• 얼굴빛이 검게 되고 눈이 허옇게 된 것은 명문의 기가 몹시 상한 것이므로 8일 만에 죽을 수 있다(정신이 없어진 것이다).
• 얼굴빛이 멀리서 보면 퍼렇고 가까이 가서 보면 검은빛 같은 것은 살리기 힘들다(간과 신의 기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 얼굴빛이 벌거며 눈이 허옇고 숨이 몹시 찬 것은 10일이 지나야 죽겠는지 살겠는지 알 수 있디(심기가 폐를 억누른 것이다).
• 얼굴이 검고 누렇게 되면서 허연 빛이 눈으로 들어가거나 입과 코로 퍼지면 죽을 수 있다(신장의 기가 비장을 억누른 것이다).
• 얼굴이 퍼렇게 되고 눈이 노랗게 된 것은 약 이틀이 지나서 죽을 수 있다(간기가 비기를 억누른 것이다).
• 눈에 정기가 없고 잇몸이 검으며 얼굴이 허옇고 눈이 검게 된 것도 역시 죽을 수 있다(폐기와 신기가 끊어진 것이다).
• 입이 물고기 입같이 되어 다물지 못하고(비기가 끊어진 것이다), 숨을 내쉬기만 하고 들이쉬지 못하는 것은 위험하다(간과 신의 기가 끊

어진 것이다).
• 헛소리를 하거나 말을 하지 못하고 썩은 냄새가 나는 것은 오래 살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심기가 끊어진 것이다).
• 인중 부위가 편편해지고 잔등이 퍼렇게 되면 3일 만에 죽을 수 있다(간기가 비기를 억누른 것이다).
• 양쪽 뺨이 빨갛게 되는 것은 심병이 오래 된 것인데, 이때 입을 벌리고 숨을 힘들게 쉬는 것은 생명을 보존하기 힘들다(비와 폐의 기가 끊

어진 것이다).
• 발등과 발가락과 무릎이 몹시 부으면 10일을 살기가 힘들다(비기가 끊어진 것이다).
• 목 뒤의 힘줄이 늘어나면 죽을 수 있다(독맥의 기가 끊어진 것이다).
• 손바닥의 금이 없어지면 오래 살지 못한다(심포의 기가 끊어진 것이다).
• 입술이 퍼렇게 되고 몸이 차지면서 오줌이 저절로 나가고(방광의 기가 끊어진 것이다), 음식을 싫어하면 4일 만에 죽을 수 있다(간기가

끊어진 것이다).
• 손발톱이 검으면서 퍼렇게 되면 8일 만에 죽을 수 있다(간과 신의 기가 끊어진 것이다).
• 등뼈가 아프고 허리가 무거워서 굽혔다 폈다 하기 힘든 것은 뼈의 기운이 끊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5일 만에 죽을 수 있다(신기가 끊어진

것이다).
• 몸이 무겁고 붉은 오줌이 잠시도 멎지 않는 것은 힘살의 기운이 끊어진 것을 말해주므로 6일 만에 죽을 수 있다(비기가 끊어진 것이다).
• 손발톱이 퍼렇게 되고 성만 내는 것은 힘살의 기운이 끊어진 것으로 9일 만에 죽을 수 있다(간기가 끊어진 것이다).
• 머리털이 삼대같이 꼿꼿해지면 한나절이 지나서 죽을 수 있다(소장의 기가 끊어진 것이다).
• 옷을 어루만지면서 헛소리를 하면 10일 만에 죽을 수 있다(심기가 끊어진 것이다).

의사의 능력은 무엇보다도 병을 치료하는 능력으로 평가된다. 그런데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우선 환자가 앓고 있는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면 치료는 거기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병의 원인을 정확히 알았더라도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치료할 수 있는 병과 치료할 수 없는 병을 분별하는 것은 의사의 능력을 판단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의사는 질병의 경과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 환자의 병세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아는 의사는 실력있는 의사이다. 고대 그리스 의학에서는 특별히 예후를 중요시하여, 의사의 실력은 그가 환자의 예후를 얼마나 정확하게 예측하느냐로 평가되었다.

참조어
천지운기, 변증, 진맥

각주

  1. 1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외형」편 '얼굴'문을 볼 것.
  2. 2 진단학적 기초로 눈을 살피는 자세한 내용은 「외형」편 '눈'문(門)을 볼 것.
  3. 3 『동의보감』에서는 말하는 망진(望診)은 요즘 의학에서 말하는 망진과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하다. 오늘날의 망진이라 하면 몸 겉에 나타난 모든 현상을 보아 병을 진단하는 것을 뜻하는 반면에, 『동의보감』에서는 오행 체계가 작동되는 범주의 것만을 주로 망진의 대상으로 여긴다. 따라서 얼굴을 다섯 부위로 나눈다거나, 얼굴이나 눈동자 등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색깔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몸 겉의 현상은 망진보다는 오히려 문진(問診) 또는 문진(聞診)의 대상으로 간주한다.
  4. 4 일음(溢飮)
    담음이 사지로 흘러들어가 땀이 나오지 않으면서 온 몸이 무겁고 아픈 것.
  5. 5 오사(五邪)를 갈라 보는 방법은 이렇다. 오행의 상생상극 관계에서 뒤로부터 온 것은 허사(虛邪)이고, 앞으로부터 온 것은 실사(實邪)이고, 자기가 이기지 못하는 것에서부터 온 것은 적사(賊邪)이고, 자기가 이기는 데서부터 온 것은 미사(微邪)이며, 자기 자체가 병든 것은 정사(正邪)이다.
    이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중풍으로 심병(心病)이 생겼다면 허사가 되고(어머니 격 되는 것이 아들 격 되는 것을 해한 것), 더위먹은 병은 정사가 되며(자체의 병), 음식노권으로 생긴 것은 실사가 되고(아들 격 되는 것이 어머니 격 되는 것을 해한 것), 상한으로 생긴 것은 미사가 되고(처 격 되는 것이 남편 격 되는 것을 해한 것), 중습으로 생긴 것은 적사가 된다.'는 것이다. 다른 장기의 병도 이와 같이 설명할 수 있다.
  6. 6 구후(九候)
    인체에 존재하는 아홉 군데의 맥진이 가능한 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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