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우리역사 바로알기

주류 식민사학자들의 피해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5. 9. 16. 10:10

=조폭? 이런 주장이 나온 이유

[서평] 황순종의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정은균 2014.10.12

 

 

지난 10일 <한겨레>는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 옛 정신문화연구원)이 2015년 광복 70돌을 맞아 펴낼 예정인 <대한민국 발전사>의 연구 및 저술 책임자를 보수 성향 학자 일변도로 채우고 있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대한민국 발전사>는 "초중등학교의 한국사 교과서에 현대사 서술의 근거로 제공한다"는 방침 아래 제작되는 저작물이라고 한다.

이 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발전사>의 연구 분야와 연구 책임자는 이배용 한중연 원장이 직접 선정한다고 한다. 이 원장은 2012년 대선에서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새누리당 근현대사 역사 교실의 자문역을 맡았다. 보수 정치색이 짙은 역사학자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수적인 역사학자들은 대체로 친일(파)에 우호적이고 독재를 미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대한민국 발전사>의 전체적인 내용도 그렇게 채색되지 않을까. 이를 바탕으로 서술되는 초중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 발전사>가 진보-보수 간 '역사전쟁'의 방아쇠를 당기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식민사학자들의 민낯 샅샅이 파헤친 역사 비평서

작년 교학사 역사 교과서 파동 이후 역사 연구와 서술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문제는 총성 없는 역사전쟁이 비단 현대사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대사 분야가 특히 그렇다.

그간 고대사학계에서는 식민사학의 논리가 '통설'이라는 이름으로 지배 이론이 되고, 그 지배 이론으로 무장한 식민사학의 후예들이 학계의 주류 행세를 해 왔다. 이에 따라 식민사관은 우리나라 주류 사학계 전체에 깊이 스며들어 역사 왜곡의 근본 원인이 되고 있다. 이 책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은 그 식민사학자들의 민낯을 샅샅이 파헤치고 있는 역사 비평서다.

저자가 고발하는 식민사학자들의 폐해는 심각하다. 저자에 따르면 일제의 어용 역사연구단체라 할 수 있는 조선사편수회 출신 이병도는 해방 후 서울대 국사학과를 장악해 제자들에게 일제 식민사학을 그대로 주입시킨다. 이에 따라 이기백, 김철준, 이기동, 노태돈, 송호정 등으로 이어지는 서울대 학맥이 한국 고대사 분야 식민사학의 주류가 된다. 이는 서울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이병도와 함께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던 신석호가 고려대와 성균관대 사학과에 재직하면서 여기도 또한 식민사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연세대도 해방 후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용재 백낙준을 계승한 반면 일제 식민사관과 치열하게 맞섰던 위당 정인보 선생의 역사관은 방기했다. 이병도와 신석호는 국사관(현 국사편찬위원회)도 장악했고 또한 임시중등국사교원양성소도 장악해 여러 대학과 국사관에서 계승한 일제 식민사학을 교사들에게 그대로 주입시켰다. 그래서 해방 70여 년이 되도록 일제 식민사관이 사회 각계에서 주류로 행세하고 있는 것이다. (56쪽)

저자는 주류 식민사학자들을 조폭에 비유한다.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자신들과 다른 견해를 가진 학자들의 진출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행태가 조폭들과 다르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이는 저자의 말처럼 일방적인 짐작에 따른 비방이 아니다. 최재석 교수는 대표적인 식민사학 논리인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꾸준히 비판한 원로 사회학자다. 그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연구 논문이 역사 관련 여러 학회와 연구소로부터 8번이나 접수를 거절당했다고 털어놓았다고 한다. 서강대 총장을 지낸 서강대 사학과 교수 이종욱도 몇 년 동안 논문 게재를 거부당하고 책 출판도 거절당했다고 고백했다.

식민사학자들의 말 바꾸기 비판하고 나선 저자

식민사학자들의 행태는 과연 그들이 학자로서의 소양과 양심을 가졌는지에 대해서도 의심하게 만든다. 고대사학계의 쟁점 중 하나는 서기전 2세기 초에 설치된 한사군, 특히 낙랑군의 위치 비정이다. 저자에 의하면 그동안 식민사학자들은 중국 고대 사료가 한사군의 위치를 한반도 북부로 비정한 것처럼 사기를 쳐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나라가 한반도 서북부에 한사군을 설치했다는 1차 사료는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저자는 중국 고대 사료들이 낙랑군의 위치를 일관되게 요동으로 표기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식민사학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이 아무 근거가 없는 거짓임이 밝혀지자 말바꾸기를 시도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그동안 식민사학자들은 고조선이 평안남도 일대에 걸쳐 있던 소국이었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평양 일대에서 시작했다가 그곳에서 망했다는 것이었다. … 그 전에도 만주 지역에서 고조선 관련 유물이 있다는 사실은 알려지고 있었지만 이는 아무 상관없었다. 조직 폭력배의 방식으로 국내 학계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으니 이런 사실을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이면 그뿐이었다. 그러나 중국의 문이 열리면서 만주 일대에서 고조선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을 더 이상 숨기기 어려워졌다. 고조선이 평남 일대의 소국이었다는 식민사학의 성스러운 구절을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자 식민사학자들은 고민 끝에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이란 것을 만들어 기존 식민사학을 유지하기로 마음먹었다. (162~163쪽)

저자에 의하면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은 단국대 역사학과 서영수 교수가 주창한 이후 서울대 국사학과 노태돈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서영수 교수는 연나라 장수 진개의 침략으로 진번(한사군의 하나)이 요동 지역으로부터 황해도 지역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고조선의 중심지가 평양이 아닌 요동에 있었기에 진번이 평양 남쪽 황해도로 쉽게 옮겨갔을 것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주장이 아무런 문헌 사료적 근거도 없는 순수 창작이라고 비판한다. 서영수 교수가 논거로 끌어들이고 있는 <한서>의 어느 구절에도 진번이 황해도로 옮겼다는 진술은 없다고 한다. 서영수 교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해도도 별로 높지 않은 것 같다.

서영수는 역사 사료를 찾아보는 대신 머릿속 공상에 몰두하다보니 이 시대의 요동, 즉 옛 요동의 위치가 지금의 랴오둥(요동)과 다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진개가 침략한 요동은 지금의 랴오둥이 아니라 베이징 부근이라는 사실 또한 알 리 없다. 이런 실력으로 평생을 우려먹으면서 동북아역사재단 같은 기관의 국민 세금을 자신과 제자들의 식민사학 전파 용도로 마음대로 쓰면서 국고를 축내는 것이다. (167쪽)

식민사관의 어두운 이면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까닭

저자는 식민사학자들이 우리 문화 발전에 주체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타율성론과, 우리 역사에 내적 발전이 결여되어 있는 정체성론을 집요하게 주장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사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은 우리 민족에게 근대 사회로 발전할 수 있는 내적 역량이 없으므로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아야 발전할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타율성론은 우리에게 열등의식을 안겨주는 심리적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그 적폐가 매우 크다.

타율성론과 정체성론의 망령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한국적십자사 신임 김성주 총재가 2000년대 초반 인천의 한 교회에서 행한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에 대해 '일본 사람이 나쁜 게 아니라 우리의 문제였다'고 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신앙 강연을 빙자해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했다는 의심 때문이리라.

나는 당시 김 총재가 작심하고 일제 식민지배를 미화하려고 하지는 않았으리라 믿고 싶다. 문제는 김 총재처럼 역사의식이 뒤틀려 있다는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식민사관의 어두운 이면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총성 없는 역사전쟁에서 식민사관의 논리가 승리하게 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ㅣ황순종 지음ㅣ만권당

 

 

왜 우리는 고조선 대신 한사군을 외워야 했는가? 국사 수업의 비밀이 낱낱이 밝혀진다!

『사기』에서 『수경』까지, 철저한 1차 사료의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의 거짓을 폭로하고 식민사학자의 정체를 까발린 진짜 한국사!


한국사가 백척간두에 섰다! ‘일제의 식민 지배는 한국인에게 축복이다’, ‘일본과 한국은 조상이 같다’, ‘기왕에 지배당할 바엔 조상이 같은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낫다’. 듣기만 해도 피가 거꾸로 치솟는 이런 말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우리 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엉터리 주장이다. 하지만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주장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면 믿겠는가?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그동안 역사 관련 문헌 사료와 정보를 독점하고 ‘소설’ 수준의 주장을 해온 국사학자들이 학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며 국민들을 농락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전파하는 충격적인 현실을 고발하고,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자들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식민사학자, 그들의 가면을 벗긴다

필자는 식민사학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진리가 늘 이기거나 영원하다고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허위나 악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이다. 아직도 이 땅의 고대사 체계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허위와 악의 결정이다.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이를 알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현명한 국민이 늘어날 때 허위와 악은 심판받고 무너질 것이다. - <머리말에 갈음하여> 전문

간도는 원래 중국 땅이었고, 독도는 일본 땅이 될 것인가? 이대로 가다가는 간도는 원래부터 중국 땅이었고 독도는 이제 일본 땅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로 중국과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역사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억지와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자행되는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역사관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 올바른 역사 인식이 다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진짜 한국사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속 시원한 책이 나왔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짧지만 비장함마저 감도는 ‘머리말에 갈음하여’를 통해 책의 성격과 집필 이유에 대한 선명한 선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경기중·고, 서울대를 거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초일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평생을 이른바 ‘주류’로 살아온 저자가 왜 주류 사학에 반기를 들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이 땅의 고대사 체계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허위와 악의 결정”이며, “필자는 식민사학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된 정보로 국민은 현혹시키고 있는 ‘얼굴은 한국인, 정신은 극우 일본인’인 이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우리 역사를 축소, 폄하하기에 여념이 없는 참혹한 현실이 지은이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한 것이다.

충격적인 진실, 식민사학은 왜 한사군을 중시하는가?

중학교 국사 시간의 추억을 되살려보자. 고조선과 한사군에 대해 배울 때 우리가 달달 외워야 하고 시험에 꼭 나왔던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위치였다. 왜 우리 국사 교과서는 반만년 역사 중에 불과 몇 십 년, 길어야 몇 백 년 존속했던 한사군을 그토록 중시해야만 했을까?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을 읽으면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듯한 진실을 ?닫고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고조선 대신 한사군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기획이며, 그들의 노림수는 우리 민족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며 중국(한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서 비로소 발전했다, 즉 우리 민족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일제가 택한 전략이 우리 역사의 축소와 왜곡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해방 이후에도 주류 사관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이란, 한마디로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우리 민중이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3·1운동 이후에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되어 대대적으로 읽히자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전략적으로 우리 역사 왜곡, 날조를 진행시켰는데, 그것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왔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크게 2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식민사관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쟁점별 식민사관 비판이다.
1부에서는 식민사관의 계보, 즉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하여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다. 살아서 일본인 역사학자에게 ‘사랑’받고 죽어서도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로 떠받들리는 이병도를 비롯하여 신석호, 이기백, 노태돈, 서영수, 송호정 등 현재 주류 국사학계와 강단을 장악하고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무늬만 한국인’ 사학자들이 줄줄이 지면에 소환된다.
2부와 3부는 식민사학의 주장을 쟁점별로 조목조목 비판한다. 가장 크게 훼손한(자료가 많이 없으므로 조작이 쉽고, 근원부터 부정, 축소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고조선과 삼국 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쟁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 평양설, 패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강)와 갈석산의 위치 비정 등이 왜 엉터리인지, 왜 엉터리일 수밖에 없는지를 문헌 고증을 통한 ‘근거를 가지고’ 반박한다.

역사는 소설이 아니다, 식민사관은 사료에 근거해서 답하라!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에서 충격적인 대목은 또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워왔던 ‘절대적 교리(?)’ 수준의 역사 지식이 전혀 근거가 없거나, 심지어 사료를 조작하여 만들어낸 ‘소설’ 수준의 왜곡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 나라가 설치한 군현인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한사군 한반도설’ 등인데,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이런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 일어났던 당대를 살아갔던 중국 사관들이 작성한 『사기』, 『수경』, 『후한서』, 『산해경』 등의 고대 문헌 구절을 제시하며 조목조목 논박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우연히 한국 고대사에 흥미를 느껴 혼자서 역사와 한문 공부를 시작한 한 역사연구가가 역사 서술의 기본인 당대의 역사서들을 들춰보다 다다른 ‘한국 고대사의 진실과 식민사관의 폐해’에 대한 비장한 결의의 결과물이다. ‘역사가 바로 서야 민족이 바로 선다’는 절대적인 명제가 흔들리는 오늘,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는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고 기억해야 할 ‘진짜 한국사’에 눈을 뜨게 해줄 역사서로 부족함이 없다.

 

 

 

 

 

황순종,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폴리뉴스] 2014.09.03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역사 저술가 황순종 씨가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이라는 책을 5일 출간한다. 부제는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이다.


저자는 “나는 진리가 늘 이기거나 영원하다고 믿지 않는다. 내가 믿는 것은 허위나 악은 언젠가 반드시 무너진다는 것이다”라며 “아직도 이 땅의 고대사 체계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허위와 악의 결정이다”고 이 책을 저술한 이유에 대해 밝혔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이를 알았으면 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며 “현명한 국민이 늘어날 때 허위와 악은 심판받고 무너질 것이다”고 올바른 역사 저술에 대한 평소 소신을 드러냈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1부 ‘식민주의 사학의 계보’, 2부 ‘고조선의 발자취를 찾아서 ‐ 쟁점별 식민사학 비판1’, 3부 ‘삼국 초기의 역사와 일본 ‐ 쟁점별 식민사학 비판2’ 등으로 구성돼 있다.

 

출판사인 만권당은 이 책에 대해 ‘우리 국사 교과서는 반만년 역사 중에 불과 몇 십 년, 길어야 몇 백 년 존속했던 한사군을 그토록 중시해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에 대한 대답은 “고조선 대신 한사군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기획이며, 그들의 노림수는 우리 민족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며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서 비로소 발전했다, 즉 우리 민족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였음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이다. 그러면서 “말하자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일제가 택한 전략이 우리 역사의 축소와 왜곡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해방 이후에도 주류 사관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고 설명한다.

식민사관은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일제 압제에 항거해 일어났던 3·1운동 이후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돼 대대적으로 읽히자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전략적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과 날조를 진행한다. 그것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저자 황순영 씨는 195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과 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경제과에 입학했고, 대학 재학 중 행정고등고시 14회에 합격해 과학기술부 등에서 28년 동안 근무했다. 미국 디트로이트 대학에서는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2년 첫 책 <동북아 대륙에서 펼쳐진 우리 고대사>를 썼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그의 두 번째 역사 저술서이다.

 

 

 

 

식민사관에 포위된 국사, 우리 안의 식민사관+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민중의소리] 2014.09.05

 

 

일제 시대의 식민사관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사회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배경을 밝힌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일제가 우리 민족혼을 말살해 한국인의 정신까지 개조하려 했던 역사를 소개하는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아직도 식민사관을 따르는 후예들이 한국에 버젓이 살아있다고 토로하는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이다.

식민사관은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3·1운동 이후,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돼 대대적으로 읽히자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 역사 왜곡, 날조라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내세웠다. 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역사학을 폄훼하고 서양의 역사학을 들먹이면서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식민사관은 해방 후에도 수정되거나 사라지지 않았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식민사관을 따르는 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하수인으로 동원된 한국인 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다.

책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큰 틀에서 보면 이병도라는 인물을 교집합으로 식민사관과 거짓된 한국사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현재 국사책에 나오는 역사 기술의 관점에 식민사관이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테면 학교에서 고조선은 신화이며, 한사군은 한반도에 설치됐고, 신라는 4세기 내물왕 때에야 겨우 국가의 꼴을 갖췄다고 가르친다는 것. 이 책의 저자 이덕일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강단에 서서 그런 설을 당당하게 전파하고 있다고 까발린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한 뒤 식민사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는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낸다.

또한 저자는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극우 일본의 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사학계의 추악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 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한국 고대사인데 고조선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간, 그리고 삼국 시대가 빠지고 가야와 삼한이 들어간 놀라운 책)을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증식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식민사학자들의 비열한 작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자세도 무시해온 사학계의 실상을 폭로한다.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왕따시켜 왔는지 관련자들의 적나라한 증언을 제시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식민사관에 찌든 국사 수업의 비밀을 낱낱이 밝힌다. 철저한 1차 사료의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의 거짓을 폭로하고 식민사학자의 정체를 까발린다.

이 책은 그동안 역사 관련 문헌 사료와 정보를 독점하고 ‘소설’ 수준의 주장을 해온 국사학자들이 학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전파하는 충격적인 현실을 고발하고,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자들의 실체를 낱낱이 소개한다.

예를 들면 저자 황순종은 중학교 교과서에서 고조선 대신 한사군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자체 발전 능력이 없는 우리 민족이 중국(한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서 비로소 발전했다, 즉 우리 민족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 말하자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일제가 택한 전략이 우리 역사의 축소와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사료를 조작하고, 사실을 왜곡한 식민사관이다. 대표적인 예는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삼국사기>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 나라가 설치한 군현인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한사군 한반도설’이다. 이에 저자는 <사기>, <수경>, <후한서>, <산해경> 등의 고대 문헌 구절을 제시하며 이러한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식민사관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쟁점별 식민사관 비판이다.

‘식민사관의 계보’에서는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해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다. 살아서 일본인 역사학자에게 ‘사랑’받고 죽어서도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로 떠받들리는 이병도를 비롯해 신석호, 이기백, 노태돈, 서영수, 송호정 등 현재 주류 국사학계와 강단을 장악하고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사학자들이다.

이어 ‘쟁점별 식민사관 비판’에서는 식민사학의 주장을 쟁점별로 조목조목 비판한다. 가장 크게 훼손한(자료가 많이 없으므로 조작이 쉽고, 근원부터 부정, 축소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고조선과 삼국 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쟁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 평양설, 패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강)와 갈석산의 위치 비정 등이 왜 엉터리인지, 왜 엉터리일 수밖에 없는지를 문헌 고증을 통한 근거로 반박한다.

 

 

 

 

 

"조선총독부가 만든 역사관이 왜 우리를 지배할까?" [노컷뉴스] 2014.09.05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의 교회 강연으로 관심이 높아진 '식민사관'을 다룬 저서가 잇따라 출간됐다. 만권당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이란 책을 동시에 출간했다.

'문제적' 역사학자 이덕일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저/만권당 간/408쪽/18,000원)>이란 저서를 통해 식민사관이 지배했던 역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역사,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식민사관과 총성 없는 독립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그동안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 온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다면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3·1운동 이후에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되어 대대적으로 읽히자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 역사 왜곡, 날조라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사·국어는 혼"이라는 박은식 선생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일제도 깨달았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내세우며,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사마천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역사학을 무시(하고 이른바 '근대 역사학'이라며 서양의 역사학을 들먹이며 한국사 죽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에 하수인으로 동원한 한국인 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였다. 이병도는 일본 역사학자들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자랑스럽게 증언하기까지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가 한국인 역사학자를 '사랑'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주장을 일본인이 하는 것보다 같은 한국인의 입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하면 훨씬 잘 먹히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이런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이 심어 놓은 사관, 즉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심지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극우 일본의 사관을 전파하기까지 하고 있는 사학계의 추악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본문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 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을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 증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식민사학자들의 비열한 작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자세도 무시해온 사학계의 실상을 폭로한다. 자신들과 다른 관점, 즉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왕따시켜 왔는지를 낱낱히 증언했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황순종 저/만권당 간/336쪽/15,000원)>은 경기중·고, 서울대를 거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초일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평생을 이른바 '주류'로 살아온 저자가 쓴 글이다.

그가 왜 주류 사학에 반기를 들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이 땅의 고대사 체계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허위와 악의 결정"이며, "필자는 식민사학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된 정보로 국민은 현혹시키고 있는 '얼굴은 한국인, 정신은 극우 일본인'인 이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우리 역사를 축소, 폄하하기에 여념이 없는 참혹한 현실이 지은이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한 것이다.

중학교 국사 시간의 추억을 되살려보자.


고조선과 한사군에 대해 배울 때 우리가 달달 외워야 하고 시험에 꼭 나왔던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위치였다. 왜 우리 국사 교과서는 반만 년 역사 중에 불과 몇 십 년, 길어야 몇 백 년 존속했던 한사군을 그토록 중시해야만 했을까?

고조선 대신 한사군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기획이며, 그들의 노림수는 우리 민족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며 중국(한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서 비로소 발전했다, 즉 우리 민족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일제가 택한 전략이 우리 역사의 축소와 왜곡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해방 이후에도 주류 사관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은 크게 2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식민사관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쟁점별 식민사관 비판이다.

1부에서는 식민사관의 계보, 즉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하여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다. 살아서 일본인 역사학자에게 사랑'받고 죽어서도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로 떠받들리고 있는 이병도를 비롯하여 신석호, 이기백, 노태돈, 서영수, 송호정 등 현재 주류 국사학계와 강단을 장악하고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무늬만 한국인' 사학자들이 줄줄이 지면에 소환된다.

2부와 3부는 식민사학의 주장을 쟁점별로 조목조목 비판한다. 가장 크게 훼손한(자료가 많이 없으므로 조작이 쉽고, 근원부터 부정, 축소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고조선과 삼국 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쟁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 평양설, 패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강)와 갈석산의 위치 비정 등이 왜 엉터리인지, 왜 엉터리일 수 밖에 없는지를 문헌 고증을 통한 '근거를 가지고' 반박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에서 충격적인 대목은 또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워왔던 '절대적 교리(?)' 수준의 역사 지식이 전혀 근거가 없거나, 심지어 사료를 조작하여 만들어낸 '소설' 수준의 왜곡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 나라가 설치한 군현인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한사군 한반도설' 이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은 이런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 일어났던 당대를 살아갔던 중국 사관들이 작성한 <사기>, <수경>, <후한서>, <산해경> 등의 고대 문헌 구절을 제시하며 조목조목 논박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황순종 [부산일보] 2014.09.06

 

 

한국사 장악한 식민사학자는 누구인가

낙랑, 진번, 임둔, 현도! 어릴 적 국사 시간에 외웠던 이름이다. 고조선과 한사군에 대해 배울 때, 우리가 달달 외워야 하고 시험에 꼭 나왔던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위치였다. 왜 2천 년도 더 후에 반만년 역사 중에 불과 몇십 년, 길어야 몇백 년 존속했던 한사군을 그토록 중시해야만 했을까?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여기에 답한다. 이런 논리를 만든 것은 조선총독부 때문이었다고. 그 이유는 뻔했다. 이 민족과 이 땅을 영구히 차지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의 이유를 말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에서 총 들고 싸우거나 일제에 혹독한 고민을 받고 감옥에서 죽어갈 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일본인들로부터 인격적 대우를 받았던 이병도, 신석호 같은 매국적들이 해방 후에도 한국사를 장악한 결과"라고. 책은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해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소환, 비판한다. /만권당/336쪽/1만 5천 원.

 

 

 

 

 

매국노 식민학자가 날조한 한국사…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 [서울경제] 2014.09.12

한사군 한반도설·실증사학 앞세워 고대사 무시. 조선총독부 역사 왜곡에 이병도 등 사학자 동조 "후계자들 학계 주류로 남아 식민사관 전파" 비판

■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황순종 지음, 만권당 펴냄)
■ 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덕일 지음, 만권당 펴냄)



#장면1=중국에서 추진하는 동북공정 가운데 주요 이슈중의 하나는 적어도 고대 진ㆍ한나라때는 한반도 북부가 그들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만리장성은 황해도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중국 사서에도 없는 내용을 그들이 어떻게 알까. 바로 국내 사학자들이 근거를 대줬다. 일제식민지 시기 조선사학계의 태두로 불린 이병도와 그의 후계자들이 한사군 한반도설을 주장했고 이를 중국이 따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면2='실증사학'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라는 것은 유적ㆍ유물로 증명돼야 한다는 것인데 독일의 랑케가 원조이고, 일본을 거쳐 일제 시기에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에 따르면 단군신화나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게 된다. 랑케는 국가형성의 역사가 짧은 독일 사람이다. 고대 로마제국과 싸운 게르만족 이야기를 빼면 실질적으로 독일사는 10세기 전후에서 시작된다. 랑케의 실증사학은 중국이나 한국같은 역사가 유구한 나라보다는 역사가 역시 짧은 일본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8ㆍ15 해방후 7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식민지 잔재가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역사학계는 그 정도가 심하다.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과 함께 조선역사 개조작업, 이른바 식민사관 구축에 앞장선 이병도와 그의 후계자들이 서울대 등 국내 역사학계의 주류로 남아있으면서 이런 식민사관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식민사관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책 2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관료출신 황순종의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이다.

식민사관을 한마디로 하면 일제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일제가 식민사관 구축에 나선 것은 3ㆍ1운동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높아지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 이후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과 날조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이병도 등 일부 사학자가 이에 동조 주도했다. 요체는 우리 민족이 자체발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하고 그것이 한국민족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의 절정은 중국이 고조선 영토에 세웠다는 한사군 문제다. 우리 역사의 시작이 한사군이라는 '중국 식민지 정권'이고 이런 '선진 문물'을 통해서야 비로소 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는 논리다.

중국 한나라때의 유물이 지금의 평양에서 발견된 것을 이유로 한사군 가운데 핵심인 낙랑군이 이곳 평양에 존재한 것이 맞다는 것이 기존 학계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덕일은 이에 대해 반박한다. 평양에서 지금껏 발견된 유물은 모두 후한 시기인 2~3세기의 것으로,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것으로 중국측 '사기'에 기록된 기원전 108년과는 200여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른바 실증사학을 따른다 해도 평양의 낙랑군이 한 무제가 세운 한사군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反) 식민사관을 목표로 하면서도 두 권의 저자는 시각을 달리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식민사관의 계보를 알리고 쟁점별로 비판을 한다. 1부 식민사관의 계보에서는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해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비판한다. 2·3부는 식민사관의 주장을 쟁점별로 비판한다. 그들이 가장 크게 훼손한 고조선과 삼국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쟁점을 주로 다룬다. 낙랑 평양설, 패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강)와 갈석산의 위치를 논한다.

이에 대해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식민사관과의 전쟁중에 있음을 강조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들마저 여전히 식민사관, 일본의 극우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것을 고발한다.

해방 70년 동안 역사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많이 변했다. 현재 스스로 식민사관에 빠져 있다는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역사를 공부하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민사관이 우리의 의식과 지식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조작을 사실(史實)로 주장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넘어서야 할 과거가 이 책들에 나와 있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황순종 지음 | 만권당 펴냄 | 336쪽 | 15,000원) [독서신문] 2014.09.16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우리 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한 엉터리 주장들이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도 버젓이 오가고 있다. 이 책은 그동안 역사 관련 문헌 사료와 정보를 독점하고 ‘소설’ 수준의 주장을 해 온 국사학자들이 학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전파하는 충격적인 현실을 고발하고,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자들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황순종 / 만권당) [MBN] 2014.09.18



이 책은 그동안 역사 관련 문헌 사료와 정보를 독점하고 '소설' 수준의 주장을 해온 국사학자들이 학계에서 주류로 행세한 사실을 고발합니다.

이들은 국민들을 농락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전파했습니다.

저자는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자들의 실체를 파헤쳤다고 설명합니다.

 

 

 

일제치하가 축복이라니 [전남일보] 2014.09.18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l황순종 저 | 만권당 | 1만5000원

'일제의 식민 지배는 한국인에게 축복이다', '일본과 한국은 조상이 같다', '기왕에 지배당할 바엔 조상이 같은 일본에게 지배당하는 것이 낫다'. 듣기만 해도 피가 거꾸로 치솟는 이런 말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가 우리 민족의 혼을 말살하기 위해 역사를 왜곡하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엉터리 주장이다.

하지만 해방 70년이 지난 지금도 이런 주장들이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면 믿겠는가? 이대로 가다가는 간도는 원래부터 중국 땅이었고 독도는 이제 일본 땅이 되어버리지 않을까 우려스러울 정도로 중국과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역사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일본의 억지와 동북공정이라는 중국의 역사 왜곡이 국가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자행되는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역사관을 갖고 대처해야 할 것인가? 올바른 역사 인식이 다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지금, 진짜 한국사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속 시원한 책이 나왔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그동안 역사 관련 문헌 사료와 정보를 독점하고 '소설' 수준의 주장을 해온 국사학자들이 학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며 국민들을 농락하고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전파하는 충격적인 현실을 고발하고,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자들의 실체를 낱낱이 까발린다.

'역사가 바로 서야 민족이 바로 선다'는 절대적인 명제가 흔들리는 오늘날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은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는 국민이라면 반드시 알고 기억해야 할 '진짜 한국사'에 눈을 뜨게 해줄 역사서로 부족함이 없다.

 

 

 

 

조선총독부의 역사 날조 [대구일보] 2014.09.25

낙랑, 현도, 임둔, 진번.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시험에 꼭 출제된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우리는 반만년 역사 중에 불과 몇 십년, 길어야 몇백년 존속했던 한사군을 그토록 중시해야만 했을까.
이 책에 그 답이 있다. 책에 따르면 이런 논리를 만든 것은 조선총독부다. 그 이유는 뻔했다. 이 민족과 이 땅을 영구히 차지하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여기에 덧붙여 또 하나의 이유를 얘기한다.
“독립운동가들이 만주에서 총 들고 싸우거나 일제에 혹독한 고민을 받고 감옥에서 죽어갈 때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하면서 일본인들로부터 인격적 대우를 받았던 이병도, 신석호 같은 매국적들이 해방 후에도 한국사를 장악한 결과다”고.
책은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해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소환, 비판한다. 또한 신민사학이 주장하는 낙랑 평양설, 패수와 갈석산의 위치 비정 등을 문헌 고증을 통한 근거를 가지고 반박한다.

 

 

 

 

 

'거리의 인문학'의 가능성 또는 한계 [교수신문] 2014.10.06

[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 이연도 서평위원/중앙대 교양학부·철학

 

 

현대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인 펑유란(馮友蘭)은 중국철학사를 크게 子學時代와 經學時代로 구분했다. 자신의 독창적인 학설과 학파를 형성한 시기가 자학시대이고, 선현이 남긴 경전을 공부하고 이를 발전시킨 시기가 경학시대라는 것이다. 그 구분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지만, 이에 따르면 춘추전국시대와 漢代부터 淸末까지는 내용적으로 분명하게 나뉜다. 이상적 사회의 건설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다시 얘기하게 된 것은 근현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해진다. 펑유란은 이 시기를 ‘제자백가의 부활’이라고 부르고, 패러다임의 전환기였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한다.

 

요즘 우리 사회의 학술지형이 크게 바뀌는 느낌이다. 상당수의 학자들이 대학보다는 재야에서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독창적인 주장을 담은 저작들이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바야흐로 官學의 시대에서 民間學의 시대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시기인 듯싶다. 최근 나온 책 중에서 얼핏 눈에 들어오는 작품들만 하더라도,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임건순, 서해문집, 2014), 『생각의 시대』(김용규, 2014),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황순종, 만권당, 2014) 등 있다. 이들 작품들은 모두 대학 밖에서 활동하는 학자들이 쓴 것으로, 언론의 주목과 함께 그 내용 역시 상당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출판사에서 이들의 책을 낸 이유도 대학의 연구자들이 제기하기 어려운 담대한 주장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이런 지형 변화는 예고된 것이었다. 현재 대학들의 업적 평가는 논문을 위주로, 그 기준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논문보다 시간과 품은 훨씬 많이 들고, 그 성과는 논문 한 편과 별반 다를 게 없이 취급되는 저서를 쓰는 교수는 드물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교수나 시간강사의 경우는 그 상황이 더 말할 것도 없다. 언제 올지 모르는 전임의 기회를 준비하느라 기준 논문 편수를 유지하다 보면, 저술 작업은 육체적·정신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여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대학에 몸을 담고 있다 보면, 이런저런 학계의 인연과 관계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대학이라는 틀에서 자유로운 재야 학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한국의 주류 사학계, 구체적으로는 서울대와 고려대의 역사학과 ‘師團’을 구체적인 실명을 들어 비판하고 있다. 쓰다 소키치와 스에마쓰, 이나바 등의 식민사관 창도자들과 와세다대, 경성제국대 국사학과 등의 학연으로 엮인 이 ‘사단’의 굳건한 의리가 한국현대사 정립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 신랄하게 파헤친 이런 책을 대학의 연구자가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필자의 말대로 이들 ‘사단’은 여전히 대학과 연구소들, 동북아연구재단 등의 기구와 조직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편,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쓸 수 있다는 것. 이 역시 재야 인문학자의 권리다.

 

“국가는 경찰과 군대로 대변되는 폭력을 독점한 존재로, 국민에게서 세금을 거둬갑니다. 그것도 강제적으로 거둬가지요. 그래서인지 가끔 국가가 깡패 같기도 합니다. 실제 폭력을 휘두르는 깡패가 돈을 갈취할 때 세금이란 말을 즐겨 쓰지요. 무정부주의자도 국가를 깡패라고 부릅니다. 정치학자도 국가에 깡패적 속성이 있다는 것을 에둘러 표현하지만 인정하는 사람이 많고요. 용산참사나 광주민주화운동 등의 사례에서 국가는 깡패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곤 했지요. 또 언제 그때처럼 깡패가 되어 선량한 국민을 쥐어 팰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임건순이 그의 책 『제자백가, 공동체를 말하다』에서 한 말이다. 이런 솔직한 표현을 대학 교수가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은가.

 

거리의 인문학자가 늘어난 이면에는 대학의 구직란이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일찌감치 본인의 진로를 대학이 아닌 시민사회로 결정한 학자들이 늘어났다는 현실적 아픔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앞으로 대학에 적을 두지 않은 새로운 제자백가의 시대가 한동안 유행할 것으로 보인다. 현 정부가 ‘시민인문강좌’ 등의 관련 사업에 지원을 늘린 것도, 역설적으로 이런 추세를 뒷받침하는 현실적 조건이 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거리의 인문학 붐을 일으킨 직접적인 계기가 된 인물은 얼 쇼리스다. 그의 사후 최근 출간된 『인문학의 자유다』(박우정 옮김, 현암사, 2014)는 그런 점에서 참고할 만한 책이다. 그의 인문학 운동에서 주목할 점 중의 하나는 그가 청년들을 교육의 주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클레멘트 코스의 교육목적이 공동체 속에서 자유로운 시민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이 그 교육의 중심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 등장한 ‘폭식투쟁’이나 ‘서북청년단 재건’과 같은 사건들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얼마나 위험한 정신 상태에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점에서 이 책은 거리의 인문학, 시민인문학 운동이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할지, 중요한 실마리를 준다.

 

대학의 틀을 벗어난 거리의 인문학자들이 많아지는 것이 좋은 현상일까. 그렇다고도 또 그렇지 않다고도 답하기 어렵다. 다만 분명한 점은 하나 있다. 그 주장의 대담함과 함께 학문적 정확성 또한 갖춰져야 한다는 것. 이 점이 담보되지 않으면, 우리 시대의 인문학 붐은 생각보다 훨씬 일찍 사그러들 위험이 있다. 공자가 일찍이 경계한 말씀.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종잡을 수 없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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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KBS 이사장의 황당한 역사관.."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 [기자협회보] 2014.09.24

 

 

이인호 KBS 이사장이 이사장으로 선출된 이후에도 편향왜곡된 역사관을 거침없이 드러내며 논란을 빚고 있다. 심지어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을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라고 강변하기도 했다.

24일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 따르면 이인호 이사장은 지난 23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우리 역사 바로보기-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 강연회 연사로 참석해 "공산주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 부르조아 세력을 약화시켜야 되는데, 친일파 청산이 내세우기 가장 좋은 명분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이승만 박사가 박헌영을 만나 '소련과 손을 끊고 나와 손을 잡고 하자'고 제의했으나 박헌영이 거절했다"며 "그때 박헌영이 '친일파 청산부터 해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그건 결국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친일파 청산을 위한 반민특위를 해산시킨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감옥에 있는 동안 서양책을 엄청나게 읽고 서양의 학문을 쌓아서 프린스턴대에서 국제정치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이라며 "그 시대에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봐도 특출하게 동서양의 학문을 다 꿰뚫어볼 수 있는 인물"이라고 칭송했다.

일제 강점에 대해서도 "동양에서 일본이 한국을 차지하는 것은 러시아가 한반도를 차지하고 부동항을 차지하는 것보다 낫다는 게 서양열강의 합치된 의견"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민희 의원은 "해방 직후 공산주의 세력을 포함한 좌익은 물론 민족주의 우익진영에서도 최우선적인 민족적 과제로 내세웠던 '친일파 청산' 요구를 '소련의 지령에 따른 공산주의자들의 분열책동'으로 폄훼하는 심각한 역사왜곡이 아닐 수 없다"며 "그의 주장대로라면 건국 이후 결성된 반민특위조차도 결국 소련의 지령과 공산주의자들의 분열책동에 따라 이뤄진 것이 되고, 끊임없는 방해와 정치공작으로 결국 반민특위를 무산시킨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를 옹호하는 것이 된다"고 비판했다.

이어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 노력조차 '소련의 지령'으로 폄훼하고 공산주의 세력의 분열책동이라며 이념적 낙인을 찍는 인물이 어떻게 공영방송 KBS의 이사장 자리에 있을 수 있나"라며 "이인호 씨가 자신의 역사관을 마음껏 드러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학자로 돌아 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친일파 청산, 소련의 '지령'이었다"

이인호 KBS 이사장 전경연 강연서 '왜곡된 역사관' 설파 파문 / 유성애 2014.09.24

 

 

이인호 KBS 이사장(79·전 서울대 명예교수)이 공영방송 이사장으로 선출된 후에도 친일파 청산 노력을 '소련의 지령'이라며 폄훼하는 등 편향되고 왜곡된 역사관을 드러내는 발언을 해 파문이 일 것으로 보인다.

친일파의 후손이자 보수 뉴라이트 성향으로 알려진 이 이사장은 과거에도 '친일·독재 미화'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를 옹호하거나 문창극 전 총리후보자의 교회 강연에 "감동받았다"는 지지 발언을 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은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인호 KBS 이사장이 23일 열린 강연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미화했으며, 해방 직후 행한 친일파 청산에 대해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라며 폄훼했다"고 밝혔다.

최 의원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23일 오후 7시 전국경제인연합회(아래 전경련)가 주최하는 '우리 역사 바로보기-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 강연회에 연사로 나서, '세계사적 격랑 가운데의 대한민국-대한민국의 본질을 찾아서'라는 주제로 강연하던 도중 이승만 전 대통령을 미화·칭송하고 친일파 청산 노력에 대해서는 깎아내리는 듯한 발언을 했다.

<오마이뉴스>가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당시 녹취파일에 따르면 이 이사장은 해방 후 친일파 청산에 대해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었다며 "(당시) 공산주의 입장에서 보면 민족주의 부르주아 세력을 약화해야 되는데 (여기서) '친일파 청산'이 내세우기 가장 좋은 명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여기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과거에 도전하기 위해 한학에 통달"했으며 "그 시대에서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봐도 특출하게 동서양의 학문을 다 꿰뚫어볼 수 있는 인물"이라고 미화하는가 하면, 독립 등 당시 상황을 국제 관계에 의한 산물로만 보는 듯한 발언을 했다.

일제 식민치하 시절과 관련해 "그때 우리는 우리 운명의 주인이 아니었다"며 "중국이라는 대국의 그늘에서 대중국 황제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살아오다가 (…중략…) 중국이 세계열강 앞에서 굴복하고 무너지니 우리는 그 가운데 어쩔 줄 몰랐고, 재빨리 근대화 노선을 걸었던 일본의 먹이가 되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일본이 패망하니 우리가 해방... 전체는 강대국 의지에 의해서 결정돼"

이 이사장은 이어 당시 해방에 관해 설명하면서 "일본이 연합군에 의해서 패망을 하니까 우리(나라)가 해방됐고, 그때 어떻게 틈을 타서 다시 독립 국가로 태어날 선택의 여지를 조금, 조금 가질 수 있었다"며 "'조금' 가지게 됐을 뿐이지 어디까지나 전체는 강대국의 의지에 의해서 결정된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에 대해 "이 이사장의 주장은, 결국 일제가 조선을 침략해 식민지로 삼은 것과 해방이 된 것 모두 국제적 역학관계에서 이뤄졌으며 우리 민족으로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는 것"이라며 "학자인 '이인호 교수'는 얼마든 이렇게 주장할 수 있지만, 공영방송 KBS의 이사장이 이런 일방적이고 편향된 역사관을 갖는 것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인호 이사장은 이날 강연에서 최근 상황에 대해 발언하기도 했다. 그는 여기서 "제가 뜻밖에 KBS 이사장 자리에 가게 됨으로써 도마 위에 올라있다"며 "정치적으로 감각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자리 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 의원은 이에 대해 "(이런 발언은) 이길영 전 이사장 사퇴 후 일사천리로 진행된 '이인호 이사장 추대' 과정이 뜻밖에 이뤄진 낙하산 인사였음을 방증하는 것이자, 자신의 역사관을 드러내는 발언이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도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 의원은 "해방 직후 친일파 청산 노력조차 '소련의 지령'으로 폄훼하고 공산주의 세력의 분열책동이라며 이념적 낙인을 찍는 인물이 어떻게 공영방송 KBS의 이사장 자리에 있을 수 있나"라며 "이인호씨가 자신의 역사관을 마음껏 드러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나 학자로 돌아갈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KBS이사회 사무국 관계자는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강연 참석은) 이사장님의 개인 일정으로, KBS 이사회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며 "현재로써는 강연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고 답했다.

전경련이 "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고취하기 위해" 준비한 해당 강연은 지난 16일부터 매주 화요일 저녁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리며, 이 이사장을 비롯해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위원 등 주로 보수 성향의 뉴라이트 인사·학자들이 연사로 참여하고 있다.

 

 

 

[원희복(선임기자)의 인물탐구]이인호 KBS 이사장… 친일 할아버지 극복 못하고 양지만 좇은 변신의 처세가 [주간경향] 2014.10.08

최근 오드리 헵번이라는 영화배우 이름이 인터넷 포털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이미 타계한 1950~1960년대 서양 영화배우가 뜬금없이 화제 인물로 등장한 이유는 바로 이인호 KBS 이사장 때문이다. 그는 9월 23일 전경련 주최 ‘우리 역사 바로보기’ 강연회에서 “해방 직후 박헌영의 친일파 청산은 소련의 지령 때문”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다.

이 발언은 친일청산 문제에 색깔을 들이댄 ‘새로운 이론’이어서 논란이 컸다. SNS 상에서는 “그러면 친일파 등용은 미국 지령이었냐?” “보수주의자 드골이 나치 부역자 처벌한 것도 소련의 지령이었나?” “이인호 이사장 임명은 아베의 지령에 의한 것인가?” 등등 각종 패러디와 비아냥이 넘쳐났다. 다른 한쪽에서는 친일파 조부 때문에 공직에 임용될 수 없다는 것은 현대판 연좌제라는 반박도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학자 전우용씨가 결정적 어퍼컷을 날렸다. 전씨는 9월 25일 “오드리 헵번은 나치당원이었던 아버지 대신 속죄하기 위해 평생 봉사하며 살았습니다”라며 “부끄러움을 인정하는 역사가 고결한 사람을 낳고, 부끄러움을 덮는 역사가 파렴치한을 낳습니다”라고 비판했다. 전씨는 특히 “오드리 헵번이 나치당원이던 아버지의 명예를 지키겠다고 나치를 두둔했다면, 그의 가문은 치욕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며 “죄 지은 조상을 두둔하는 건, 가문의 명예를 지키는 일이 아니라 가문 전체에 대대로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기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할아버지 이명세, 친일파인명사전에
여기서 이 이사장의 할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의 할아버지 이명세(李明世·일본식 이름 春山明世·1893~1972)는 조선시대 성균관에서 유학을 가르치던 종3품 관리였다. 고종은 1887년 성균관을 경학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894년 아예 폐지했다. 그러나 일제는 1911년 일왕의 하사금으로 경학원을 부활시켰다. 목적은 유교를 바탕으로 조선인을 황국신민화하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일제는 조선 유림의 연합체인 조선유도연합회라는 관변단체를 만들어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케 했다.

이명세는 바로 이 경학원의 사성(司成·관리)과 조선유도연합회 상임이사를 지냈다. 특히 이명세는 1942년 일제가 조선에서 시행한 징병제를 찬양하는 한시와 글을 발표하고, 강연을 다니는 등 매우 적극적인 친일행각으로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파 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하지만 해방 후 이명세는 성균관대학교 이사장을 하는 등 단죄되기는커녕 영화를 누렸다.(이인호 이사장의 외가쪽 할아버지 이석희는 구한말 규장각 부제학을 지내고 한일병합 후인 1911년 경기 양평으로 낙향해 살았다)

역사학자로서 해방 후 친일청산 문제를 잘 알고 있는 이 이사장이 “친일청산은 소련의 지령”이라는 말을 하자 같은 역사학자인 전용호씨가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을 비유해 비난한 것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이사장을 조선시대 ‘간신 유자광’에 비유하며 매우 신랄하게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9월 25일 성명을 내고 “명색이 학자 출신인데 최소한의 양식마저 저버린 저 노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며 “마치 연산군 때 무오사화를 일으켜 숱한 무고한 선비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간신 유자광의 현신을 보는 듯하다”고 비판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그를 간신 유자광에 비유한 이유로 ‘역사를 악용했다는 점, 권력에 유착했다는 점, 반대세력을 무고했다는 점’ 세 가지를 들고 있다.

소련역사 연구로 하버드 박사 취득
이 이사장은 1936년생으로 올해 만 78세다. 은퇴시기도 한참 지난 나이에 다시 주요 공직을 맡으며 세간의 주목을 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이 이사장은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사학과를 다니다 미국 웰슬리대로 유학한 뒤 하버드대에서 ‘소련 18세기 사상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최초의 한인 여성박사다. 그가 미국에서 소련 역사를 공부할 당시인 1950~60년대는 냉전적 분위기가 극심할 때로 한 시사평론가는 “이인호씨가 이때 미국에서 소련 역사로 박사학위를 딴 것은 1970년대 한국군이 참전한 베트남에서 한국 역사로 박사학위를 딴 것과 비슷하다”고 비꼬았다.

이 이사장은 1967년부터 컬럼비아대학 등에서 겸임교수를 하다 1972년 귀국, 고려대에서 강의했다. 서울대로 자리를 옮긴 것은 1979년이다. 그는 서울대 교수 시절 나름 진보적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이 시기 러시아 혁명과 인텔리겐차의 역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영국 마르크스주의 계열 역사학자의 초청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특히 1986년 역사문제연구소가 만들어질 때는 강만길, 이만열 등 진보적 역사학자들과 함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다. 역사문제연구소는 이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 작업으로 나타났고, 이런 인연으로 1996년 2월 핀란드 대사에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핀란드 대사 시절이던 1998년 1월 그는 남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사건으로 1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제자 황인욱의 석방을 촉구하는 탄원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3월 그를 러시아 대사에 지명했다. 당시 그의 러시아 대사 지명에 대해 다양한 우려가 제기됐다. 거친 러시아 외교무대에서 여성이 버틸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문제지만 1950년대 냉전시기에 반공지도자를 양성했던 하버드대에서 소련사를 전공한 인물이라는 점이 논란이 된 것이다.(실제 자신도 이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고 훗날 실토했다) 하지만 여성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입장이던 김대중 대통령은 그를 러시아 대사로 임명했다.

이 대사는 부임 후 3개월도 안 돼 한·러 외교관계에서 최악의 갈등국면을 초래했다. 그해 7월 러시아는 스파이 활동을 이유로 한국의 조성우 참사관을 추방했고, 한국도 주한 러시아 참사관을 맞추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때 이 대사는 국정원과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해 참사관의 추방 이유도 몰랐고, 게다가 러시아 외교부에 불려갔을 때도 러시아의 모욕적인 언사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류에 따라 자신의 행동 부정하기도
당시 외교부 관계자는 “외교마찰은 기본적으로 우리 측이 러시아의 최근 기류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데서 온 것으로 판단된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였다. 부임 3개월 만에 이 대사의 경질이 거론됐지만, 김 대통령은 박정수 외교통상부 장관을 경질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이는 김대중 정부의 첫 번째 외교적 패배이며, 국제적 망신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이인호 대사는 이후 1년여 동안 더 대사직을 수행했다.

2000년 공직에서 물러난 이 이사장은 이후 특별한 활동이나 튀는 발언은 없었다. 하지만 사회적으로 역사 바로세우기, 즉 친일청산 운동이 불거지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 이사장은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할아버지 이명세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자, 본격적인 뉴라이트 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도 ‘유혈사태’로 폄훼하고,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역사문제연구소의 역사 바로세우기는 ‘대한민국 전복행위’로 규정했다. 특히 러시아 대사를 지냈음에도 대북문제에 대해 냉전적 입장으로 돌아서고, 자신을 공직에 임명했던 김대중 정권에 대한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상자기사 참조)

이러한 변신 끝에 그는 자신의 경력과 무관한 KBS 이사장이 됐다. 이 이사장은 취임하자마자 방송법에 따라 공개하도록 돼 있는 이사회 속기록 공개를 거부하고, 이사회가 프로그램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송계에서는 이를 방송 통제와 역사왜곡에 나서려는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이 이사장의 행보에 대해 “한때 진보 역사학계를 기웃거렸던 그가 뉴라이트의 대부로 화려하게 변신하며 역사왜곡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면서 “문민정부에서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양지만을 찾아 다녔다”고 평가했다. 역사를 전공한 이 이사장의 인생사에 대한 냉혹한 비판이다. 무엇보다 이 이사장은 자신이 한 행동도 시류에 따라 부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의 변신 과정을 보면 친일파 할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요인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오드리 헵번이 훌륭히 극복하며 오히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던 바로 그길을 가지 못하고 거꾸로 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평생 드넓은 세계사를 조망했지만 정작 좁디좁은 집안의 역사를 극복하지 못한 ‘불운한 역사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제부터인가 방송매체가 정부에 장악됐다”(이인호 어록)

“지금 다시 조명되는 제주 4·3사태라든가, 여수·순천 사건이라든가 그런 것이 공산당의 체제전복 시도에서부터 비롯됐다는 것은 명명백백 역사에 다 나오는 사실이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주최 강연·2006.1.19)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가로 끝나야 할 분이다. 살아 생전 대한민국 체제에 반대한 사람을 어떻게 대한민국과 결부시킬 수 있는가.” (건국60주년기념사업준비위원회 공동준비위원장 인터뷰·2007)

“식민지 시기에 임시정부가 수립됐다고 그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수 있겠는가. …건국의 기준은 나라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느냐에서 찾아야 한다. 건국의 기원을 상해 임시정부까지 올리는 것은 정신사적에서만 유효하다.” (한국일보·2008.7.6)

“KBS의 ‘이승만 2부작’(2008년 8월 방송)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긍정적인 측면은 묵살하고 부정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거대한 역사왜곡을 감행했다.” (동아일보·2008.9.8)

“언제부터인가 우리 언론은 방송매체가 정부에 장악되고 좌파정권의 도구가 되고 신문과 방송이 갈라지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불상사를 나타내고 있다.” (‘좌파정권 재등장 반드시 막아야 한다’ 대한언론인회 이인호-송복 특별대담·2009.12.11)

“한강의 기적은 이승만 시대의 유산을 활용한 덕분이다. 4·19 세력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질서라는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훼손하려 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이승만과 4·19는 같은 세력이다.” (중앙선데이·2011.4.17)

“백년전쟁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 때 일을 많이 왜곡해서 다루고 있다. 이런 역사 왜곡도 국가안보 차원에서 주의 깊게 봐야 할 것 같다.” (청와대 원로 오찬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2013.3.13)

“역사청산위원회라는 것들이 해서는 안 될 짓을 모두 했다. 제주 4·3사건, 광주사건, 모든 것을 정부가 잘못했고 정부에 항거해서 일어난 소위 민(民)이 국민이고 그쪽이 헌법기관이다, 이따위 식의 조사보고서나 재판 결과들이 나왔다, 대한민국 전복은 이미 그때부터 공공연하게 시작됐고, 정부가 앞장을 서고 돈을 댔던 것이다.”


“(문창극 총리 내정자의) 교회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 (문씨가) 낙마한다면… 저는 솔직하게 이 나라를 떠날 때라고 강하게 느낄 것이다.” (TV조선 ‘시사기획 판’에 출연·2014.6.19)

“이승만 박사가 박헌영을 만나 ‘소련과 손을 끊고 나와 손을 잡고 하자’고 제의했으나 박헌영이 거절했다. 그때 박헌영이 ‘친일파 청산부터 해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그건 결국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 때문이다.” (전경련 주최 ‘우리 역사 바로보기-진짜 대한민국을 말하다’ 강연·2014.9.23)

“방송은 독립성·공공성을 보장해야 되기 때문에 이사들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논평도 비평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 (KBS 첫 이사회 발언·2014.9.17)

약력
1936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학과·미국 웰슬리대학 사학과 졸업. 미국 하버드대 박사.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겸임조교수. 고려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핀란드 대사관 대사. 주러시아 대사관 대사.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서울대 명예교수. 아산정책연구원 이사장. KBS이사회 이사장.


 

 

역사전쟁 포진 끝낸 보수… 이승만 미화, 공세 예고 [주간경향] 2014.10.08

ㆍ이인호 KBS이사장의 현대사학회 등 핵심 역사연구기관 모두 장악… “친일 조상 옹호-이승만 옹호-박정희 찬양으로 이어질 것”


“그가 권위주의적이고 강력한 지도자인 건 맞지만 독재를 한 적은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이인호 KBS 이사장의 평가다. 지난해 7월 한 개신교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이사장은 4·19 혁명과 이 전 대통령의 하야에 관해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타도했다고 과장하기 시작한 것은 종북세력의 입김이 들어가면서부터다”라고 말했다. 지난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주최 강연에서는 “친일파 청산은 소련에서 내려온 지령”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에 따르면 ‘친일 청산’이나 ‘독재 타도’는 소련이나 종북세력의 구호에 불과하다

 

이 이사장이 국영방송사의 이사장 자리에 앉은 직후, 이승만 정권 시절 백색폭력으로 활개를 치던 서북청년단을 재건하겠다는 움직임이 나왔다. 시점이 절묘하다.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해 9월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키자”고 발언한 지 1년 만이다. 지난해 9월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에서 교학사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고 밝힌 김 의원은 이젠 집권당 대표로 위상이 몰라보게 높아졌다.

보수진영이 우파 역사학계와 손잡고 벌이는 ‘역사전쟁’을 위한 진용은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고 있다. 비록 ‘일본의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이 문제가 돼 문창극 전 국무총리 후보자는 사퇴했지만 문 전 후보자의 강연에 감동받았다는 이 이사장은 무사히 KBS 이사장 직위에 올랐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내용이 문제가 된 ‘근·현대사 대안교과서’를 만든 박효종 서울대 명예교수도 6월 방송통신심의위원장에 임명됐다.

정부와 여당 전폭적 지원 받아


연구지원금이라는 돈줄을 쥐고 역사학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3대 핵심 역사연구기관도 보수진영이 이미 장악을 끝낸 상태다. 주축세력은 이른바 뉴라이트로 분류되는 한국현대사학회의 설립 및 활동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한 인물들이다. 유영익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과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은 각각 현대사학회에서 상임고문과 창립준비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는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중앙선대위 의장이었던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이 원장에, 현대사학회 초대 회장인 권희영 교수가 대학원장에 임명됐다.

역사학계와 역사단체들에서는 정부와 여당의 전폭적 지원에 힘입어 보수진영이 역사문제에 관해 보다 공세적으로 나오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주요한 쟁점은 이승만·박정희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로 집중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가운데 현 시점에서 키워드가 될 인물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다. 북한에 대한 남한 정부의 정통성을 옹호하며 ‘대한민국 정통성’을 강조하는 우파 역사학계의 입장에서는 이승만 정권 당시 정부 내 요직에 그대로 자리 잡았던 친일 경력 인사들이 정통성 주장을 위협하는 아킬레스건이 되어 왔다.

사실 그간 이인호 이사장을 비롯한 현대사학회 구성원들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건국 대통령’ 혹은 ‘국부’로 재조명하는 취지의 작업을 계속해 왔다. 다만 보수진영 내에서도 정치권과 현대사학회 사이에 이 전 대통령의 재임 시 독재 여부에 관해서는 확실한 공감대가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11월만 해도 김무성 대표조차 “이승만 대통령이 건국이라는 치적에도 불구하고 독재는 비판받아야 한다”며 한 발 빼는 모양새를 취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이념투쟁을 바라보는 장기적 관점에서는 보수진영 내부의 이견이 해소되고 합의가 빠르게 만들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건국의 주체’인 이 전 대통령을 부각시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일이 현 정권 들어 청와대를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통일논의와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작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역사적으로 재평가하는 일에 바로 뛰어들기는 부담스러운 정치권과 우파 역사학계가 선택한 우회적 방안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상권 덕성여대 사학과 교수는 “이승만 정권의 비호 아래에서 반공이란 명분으로 테러를 주도한 서북청년단을 이 시점에서 재건하겠다고 하는 움직임이 나오듯 정권의 비호 하에 이승만 정권을 옹호하는 움직임까지 부활하는 모양”이라며 “이러한 광기가 횡행하는 사회가 나오는 것에는 정권을 비롯해 이인호 이사장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민을 역사변혁 주체로 인정 안 해


이준식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이인호 이사장도 친일파의 거물이었던 조부를 옹호한 끝에 친일파가 부역한 이승만 정권까지 옹호하는 데로 나아간 것”이라며 “그러한 옹호의 움직임은 결국에는 조만간 박정희 정권에 대한 찬양으로까지 이르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역사교과서 논쟁에서는 큰 성과를 보지 못한 보수진영과 우파 역사학계가 방송이나 인터넷 등 대중과 접촉하는 매체를 통해 보다 일상적인 차원에서 여론 주도작업에 들어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박근혜 대통령은 한편으로 일본 자민당에서 취했던 장기집권 전략처럼 역사왜곡 전략을 본격화하는 것처럼 보인다”면서 “방송과 언론을 통해 왜곡된 역사관을 전파함으로써 보수 정치세력의 영역을 넓히려는 의도가 우려되지만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1%도 안 됐던 것과 같이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에 단호히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학계 연구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과 여기에 근거한 ‘건국 대통령 만들기’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 있다고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근대화를 주도한 일본의 식민지배세력에서부터 이승만 정권으로 이어지는 건국세력의 활동을 떠받드는 이면에 일반 국민들을 무력하게 지배권력을 따르기만 하는 존재로 보는 시각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홍락 한일장신대 교수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입장은 기층민중을 역사 변혁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시각을 버림으로써 현실을 비평하는 과제를 스스로 상실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지적했다.

“(민주주의의) 아무런 기초도 없던 나라에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세워진 것은 기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이 의지로 밀어붙인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아서 쟁취한 것이 아니다.” 이인호 이사장은 전형적인 식민지 근대화론의 시각에서 해방 이후의 한국 국민에 대해 평가했다. 스스로 쟁취하지 않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독재정권이 빼앗아도 된다고 읽히는 것은 과도한 해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