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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5. 9. 16. 10:15

문창극·이인호의 궤변, 어떻게 만들어졌나

[서평] 역사학자 이덕일의 <우리안의 식민사관> / 정은균 2014.09.20

 

 

얼마 전, 서울대 교수 출신인 이인호 한국방송(KBS) 이사장이 조부의 친일 경력에 대한 궤변성 해명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조부가 친일파라면 일제 시대 중산층이 모두 친일파라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지난 16일 국민TV <뉴스K>는 2006년과 2013년에 행한 강연에서 이 이사장이 정부 차원의 과거사 규명 활동을 "대한민국 전복 활동"으로 폄훼한 사실을 지적했다.

<중앙일보> 주필 출신으로 지난 6월에 국무총리 내정자로 지명된 문창극씨는 과거 서울의 한 대형 교회에서 한 강연 때문에 낙마했다.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 지배는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유력 일간지의 주필이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서 식민사관에 입각한 것으로 보이는 강연을 했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한 종편 방송에 출연해 문씨의 강연에 대해 "감동받았다"라며 극찬했다고 한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그들의 '소통'은 각별한 데가 있다. 대다수 평범한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역사 정서와 너무나도 동떨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식민사관 문제 날카롭게 파헤치고, 옛 식민사학자 문제 직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식민사관이 지배하는 우리 현실을 통해 '해방되지 못한 역사'를 다룬 책이다. 이 이사장이나 문씨 같이 역사의식이 '특별한' 사람들의 여전한 정신적 토대가 되고 있는 식민사관의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다. 살아 있는 식민사학자(의 후예)들의 실명을 거론하고 있는 데서 저자가 식민사관의 문제를 얼마나 심각하게 여기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이 책 저변에 깔려 있는 저자의 문제 의식은 "역사 침략은 영토 침략의 전초전"이라는 표현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는 한국이 굳이 태국이나 필리핀 역사를 왜곡할 리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영토 침략의 속셈이 없으면 역사 침략에 나설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중국이나 일본이 아무 이유 없이 한국 고대사 침략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중·일의 역사 침략은 각각 '동북공정'과 '식민사관' 등으로 통칭된다. 저자의 날카로운 붓끝을 따라가면서 이들 역사 침략의 문제를 하나하나 짚어보자.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 침략 야욕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안이다. 문제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국민 세금으로 만든 조직인 동북아역사재단(아래 동북아재단)이다. 저자는 2012년 6월 19일 경기도교육청 소속 역사 교사 17명이 각종 연구 자료 등을 참고해 제작한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라는 자료집에 대한 동북아재단의 비판을 신랄하게 꼬집는다.

동북아역사재단이 그 이름처럼 동북공정에 맞서는 이론을 연구하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조직이었다면 경기도교육청 선생님들도 고맙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동북아역사재단이 동북공정 국내 지부라는 사실은 이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152쪽)

저자는 동북아재단의 역사 인식이 갖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 '간도 문제'라고 본다. 저자는 동북아재단이 간도가 과거 조선 영토였다는 문서나 지도가 나오면 광분해서 비난하기 바쁘다며 날선 언어로 비판한다. 동북아재단이 '간도 영유권'이란 용어만 나오면 적대감을 드러낸다면서 그들의 역사 관점이 정확하게 매국·매사로 일관되어 있다고 꼬집는다.

저자는 동북아재단의 관점이 갖는 또 다른 문제점을 고조선과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평양이었다는 것, 곧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보는 데에서 찾는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북부는 중국사의 영역이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와 같은 논리의 출발점에 일제 식민사학이 자리 잡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동북공정의 핵심은 한나라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세웠다는 식민 통치 기구 한사군의 중심지인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기>의 서술에 나오는 '수성현'을 황해도 수안군으로 규정하고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끌어들이고 있는 점이다.

중국 동북공정의 뿌리도 일제 식민사학에 맞닿아 있는 이유

수성현을 수안군이라고 처음 주장한 이는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키치라고 한다. 이 논리를 추종해 낙랑군의 황해도 수안군설을 식민사학계의 정설로 만든 게 일제 식민사학의 태두인 두계 이병도다. 이러한 사실들에 두루 근거해 저자는 중국 동북공정의 뿌리도 일제 식민사학에 맞닿아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중·일 역사 침략의 밑바탕에 일제 시대에 정립된 식민사학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저자에 따르면 일제 식민사학은 나름의 사관을 탄탄히(?) 갖추고 있다. '일선동조론'과 '한국사 정체성론' 같은 논리적 토대가 있다. 일선동조론은 한국인이 미개하므로 같은 조상을 둔 일본이 지배해주는 것이 한국인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것이 '한국사 타율성론'으로도 불리는 한국사 정체성론이다. 한국인들은 독자적으로 역사나 사회를 발전시킬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논리적 토대를 바탕으로 나온 '한사군 한반도설', '임나일본부설' 등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식민사관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전자는 '고조선 한반도설'로, 후자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으로 이어진다. 쓰다 소키치와 이나바 이와키치 등의 일본인 학자들이 창안하고, 해방 후에 제자인 이병도를 정점으로 이 땅의 여러 식민사학자들이 이 이론들을 그대로 추종하거나 변형시켜 식민사관을 유지해오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은, 고대 일본이 임나일본부를 통해 한반도 남부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 <일본서기>의 기록을 뒷받침하기 위해 나온 것이다. 관련 내용이 오로지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을 정설로 굳히기 위해 삼국시대 정사(正史)인 <삼국사기> '신라본기' 기록을 가짜로 모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인 것이다.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이 두 식민사학자(쓰다, 이나바)가 창안한 이론을 따서 '한강 이북에는 중국 식민지인 한사군이 있었고, 한반도 남부에는 일본의 식민지인 임나일본부가 있었다'는 식민사관의 큰 틀을 만들었다. (178쪽)

일제 시대 이후 형성되기 시작한 식민사학자들의 계보는 면면하고 탄탄하다. 특히 반민족적인 식민사관으로 무장하고 특정 학맥 카르텔로 똘똘 뭉친 고대사학계의 '마피아'들은 '전횡'으로 불러도 좋을 정도로 그 폐해가 심각해 보인다. 최근까지 한국 고대사학계에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을 인용해 논문을 작성하면 그 자체가 게재 탈락 사유였다고 한다. 곧이 들리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다.

저자는 2013년 5월부터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부설사업단(사업단)이 발주한 연구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사업단은 외부 평가단을 통해 저자의 한 결과물(<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이론 비판>)에 딴지를 걸면서 프로젝트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저자는 이 상황을 "평가단이 자신에게 식민사학으로 전향하라면서 예산을 깎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학계가 총론으로는 식민사관을 비판한다고 말하면서도 각론으로 들어가면 식민사관 일색임을 강조하면서 드는 사례들이다.

프랑스는 4년간(1940~1944)의 나치 점령 기간 중 나치 협력자들을 색출해 최소 1만 명에서 최대 4만 명 정도를 처형했다. 구속된 사람만도 15만 명이었다. 해방 후 우리는 한 단 명의 매국노도 처형하지 못했다. 잠시 움츠러들었던 친일파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권력의 전면에 재등장하면서 이후 펼쳐지는 부조리한 한국 현대사의 숙주 노릇을 하게 된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 쉽게 없어지지 않는 이유다.

현재 국회에는 이회영(1867~1932) 선생의 손자인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대표 발의로 '일제 식민 지배 옹호 행위자 처벌 법률안'이 발의되어 있다고 한다. 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궤변을 일삼는 수많은 '문창극'과 '이인호'의 입을 다물게 하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ㅣ이덕일 지음ㅣ만권당

 

 

왜 아직도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역사관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한반도 한사군설,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 임나일본부설…….
해방되지 못한 한국사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조선총독부 관점 vs 독립 운동가 관점.

우리 역사를 읽는데 위와 같은 두 가지 관점이 있다면 당신은 어떤 관점에서 한국사를 배우고 싶은가? 아니,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관점에서 배워야 하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어느 관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답이 너무나 뻔한 어리석은 질문이라고 생각하는가? 해방 70여 년이 지난 지금, 각급 학교 현장에서 가르치는 국사의 관점은 우리의 순진한 기대를 여지없이 배반한다. 고조선은 신화이며 한사군은 한반도에 설치되었고, 신라는 4세기 내물왕(17대 왕) 때에야 겨우 국가의 꼴을 갖추었다고 배운다.
두 관점의 가장 큰 논점은 2가지다. ‘한사군의 위치는 어디인가?’와 ‘『삼국사기』초기 기록 불신론’이라는 주제가 그것이다. 조선총독부 관점, 다른 말로 식민사관이라고 불리는 관점은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이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교수’ 직함을 달고 강단에 서서 그런 설을 당당하게 전파하고 있다.

식민사학자, 그들의 가면을 벗긴다

그러나 식민사학계에 봄날은 갔다. 우리 시대 최고의 ‘문제적’ 역사학자 이덕일이 역사를 향해 포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역사,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식민사관과 총성 없는 독립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그동안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온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한 논쟁적인 책이다.
그렇다면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3·1운동 이후에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되어 대대적으로 읽히자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 역사 왜곡, 날조라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사·국어는 혼”이라는 박은식 선생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일제도 깨달았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내세우며,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사마천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역사학을 무시(!)하고 이른바 ‘근대 역사학’이라며 서양의 역사학을 들먹이며 한국사 죽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에 하수인으로 동원한 한국인 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였다. 이병도는 일본 역사학자들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자랑스럽게 증언하기까지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가 한국인 역사학자를 ‘사랑’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주장을 일본인이 하는 것보다 같은 한국인의 입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하면 훨씬 잘 먹히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식민사학,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무한증식하다

그리하여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이런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이 심어 놓은 사관, 즉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심지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극우 일본의 사관을 전파하기까지 하고 있는 사학계의 추악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본문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 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한국 고대사인데 고조선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간, 그리고 삼국 시대가 빠지고 가야와 삼한이 들어간 놀라운 책이다)을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증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4장에서는 식민사학자들의 비열한 작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자세도 무시해온 사학계의 실상을 폭로한다. 자신들과 다른 관점, 즉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왕따시켜 왔는지 관련자들의 적나라한 증언이 제시된다.

응답하라, 식민사학!

지은이는 통탄한다.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자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역사학자들이 존경받고 최고의 역사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하고 말이다. 그리고 ‘실증’이라는 미명 하에 식민 통치 지배자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난도질해온 식민사학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는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재야’ ‘전공자가 아니다’ 등으로 무조건 무시하고, 토론을 하자 하면 눈 감고 귀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비열한 식민사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제안한다. 토론을 하자고. 그늘에 숨어서 국민 세금 축내지 말고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면 정정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문헌 사료에 근거한 학술적인 토론을 해보자고 말이다. 고조선이 신화인지 사화(史話)인지, 한사군이 정말로 한반도에 설치되었는지, 고조선이 평양으로 중심을 이동했는지, 연구 성과와 문헌 사료에 자신이 있다면 토론 제안에 지금이라도 ‘응답하라, 식민사학!’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 만권당. 408쪽. 1만8천원) [연합뉴스] 2014.09.03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에 대한 주류 역사학계의 관점을 '식민사관'이라며 비판해 온 저자가 그간 주장해 온 내용을 책으로 펴냈다.

책은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이 그간 한국 주류 역사학계에서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전파한 식민사학자라고 비판하면서 이같은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사회 각 분야에서 확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덕일, ‘우리 안의 식민사관’ [폴리뉴스] 2014.09.03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이덕일 한가람녁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책을 4일 출간한다. 부제는 ‘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이다.


이 소장은 머리말을 통해 “식민사학자들과 그 추종자들은 그동안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학자들을 온갖 수단을 써서 매도하고, 공격해서 학계에서 추방하거나 매장시켜 왔다”며 “공개 학술 세미나에서 ‘단재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라고 말한 한 학자는 지난 정권에서 한국사 관련 예산을 연간 250억원씩 집행하는 사업단 단장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힌다.

이어 그는 “뤼순감옥에서 쓸쓸하게 옥사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 이들에게는 정신병자이자 또라이였던 반면 이병도는 국사학계의 태두이자 최초의 근대적 역사학자로 떠받들어졌다”며 “상황이 일변해서 일본의 극우파들이 다시 이 땅을 침략하는 상황이 재연되면 이들은 어느 쪽에 설 것 같은가. 시절이 하 수상한 이 시점에서 이 문제를 더 이상 침묵 속에 가둬둘 수 없는 까닭이 여기 있다”고 이 책을 집필에 이유에 대해 밝혔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1장 ‘전쟁 중인 두 사관’, 2장 ‘동북아역사재단이 던진 질문’, 3장 ‘한국 고대사는 늘 현대사였다’, 4장 ‘식민사관의 생존 비법’, 5장 ‘식민사관 해체의 길’로 구성돼 있다.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출판사 만권당은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며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면서 설명한다”고 이 책의 특징에 대해 밝혔다.

만권당은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을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증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소개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세금 10억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펴낸 영문 서적은 한국 고대사를 다루고 있지만 고조선 내용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가 있고, 삼국시대가 빠지고 가야와 삼한이 들어가 있다.

숭실대에서 사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소장은 1997년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를 시작으로,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이성계와 이방원>, <정도전과 그의 시대>,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1, 2>, <조선 왕 독살 사건 1, 2>, <이회영과 젊은 그들>, <정조와 철인 정치의 시대 1, 2>, <조선 왕을 말하다 1, 2>, <윤휴와 침묵의 제국>, <사도세자가 꿈꾼 나라>,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 전사>, <근대를 말하다>, <내 인생의 논어, 그 사람 공자>,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이덕일의 고금통이 1, 2> 등 50여 권의 저서를 집필했다.


 

 

 

식민사관에 포위된 국사, 우리 안의 식민사관+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민중의소리] 2014.09.05

 

 

일제 시대의 식민사관이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사회에 튼튼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배경을 밝힌 책 두 권이 출간됐다.

일제가 우리 민족혼을 말살해 한국인의 정신까지 개조하려 했던 역사를 소개하는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아직도 식민사관을 따르는 후예들이 한국에 버젓이 살아있다고 토로하는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이다.

식민사관은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3·1운동 이후, 박은식 선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돼 대대적으로 읽히자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 역사 왜곡, 날조라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내세웠다. 또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역사학을 폄훼하고 서양의 역사학을 들먹이면서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식민사관은 해방 후에도 수정되거나 사라지지 않았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식민사관을 따르는 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에 하수인으로 동원된 한국인 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다.

책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큰 틀에서 보면 이병도라는 인물을 교집합으로 식민사관과 거짓된 한국사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해방되지 못한 역사, 그들은 어떻게 우리를 지배했는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현재 국사책에 나오는 역사 기술의 관점에 식민사관이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테면 학교에서 고조선은 신화이며, 한사군은 한반도에 설치됐고, 신라는 4세기 내물왕 때에야 겨우 국가의 꼴을 갖췄다고 가르친다는 것. 이 책의 저자 이덕일은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교수’라는 직함을 달고 강단에 서서 그런 설을 당당하게 전파하고 있다고 까발린다.

아울러 저자는 한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한 뒤 식민사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는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낸다.

또한 저자는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극우 일본의 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사학계의 추악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 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한국 고대사인데 고조선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간, 그리고 삼국 시대가 빠지고 가야와 삼한이 들어간 놀라운 책)을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증식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저자는 식민사학자들의 비열한 작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자세도 무시해온 사학계의 실상을 폭로한다.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왕따시켜 왔는지 관련자들의 적나라한 증언을 제시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 이병도와 그 후예들의 살아 있는 식민사관 비판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식민사관에 찌든 국사 수업의 비밀을 낱낱이 밝힌다. 철저한 1차 사료의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의 거짓을 폭로하고 식민사학자의 정체를 까발린다.

이 책은 그동안 역사 관련 문헌 사료와 정보를 독점하고 ‘소설’ 수준의 주장을 해온 국사학자들이 학계에서 주류로 행세하며 국민의 세금으로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전파하는 충격적인 현실을 고발하고, 철저한 사료 고증을 통해 식민사학자들의 실체를 낱낱이 소개한다.

예를 들면 저자 황순종은 중학교 교과서에서 고조선 대신 한사군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 이유는 자체 발전 능력이 없는 우리 민족이 중국(한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서 비로소 발전했다, 즉 우리 민족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기 위해서라는 것. 말하자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일제가 택한 전략이 우리 역사의 축소와 왜곡이라는 지적이다.

이 책이 소개하는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사료를 조작하고, 사실을 왜곡한 식민사관이다. 대표적인 예는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삼국사기>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 나라가 설치한 군현인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한사군 한반도설’이다. 이에 저자는 <사기>, <수경>, <후한서>, <산해경> 등의 고대 문헌 구절을 제시하며 이러한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식민사관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쟁점별 식민사관 비판이다.

‘식민사관의 계보’에서는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해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다. 살아서 일본인 역사학자에게 ‘사랑’받고 죽어서도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로 떠받들리는 이병도를 비롯해 신석호, 이기백, 노태돈, 서영수, 송호정 등 현재 주류 국사학계와 강단을 장악하고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사학자들이다.

이어 ‘쟁점별 식민사관 비판’에서는 식민사학의 주장을 쟁점별로 조목조목 비판한다. 가장 크게 훼손한(자료가 많이 없으므로 조작이 쉽고, 근원부터 부정, 축소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고조선과 삼국 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쟁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 평양설, 패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강)와 갈석산의 위치 비정 등이 왜 엉터리인지, 왜 엉터리일 수밖에 없는지를 문헌 고증을 통한 근거로 반박한다.

 

 

 

 

 

"조선총독부가 만든 역사관이 왜 우리를 지배할까?" [노컷뉴스] 2014.09.05

 

 

문창극 국무총리 지명자의 교회 강연으로 관심이 높아진 '식민사관'을 다룬 저서가 잇따라 출간됐다. 만권당이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이란 책을 동시에 출간했다.

'문제적' 역사학자 이덕일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저/만권당 간/408쪽/18,000원)>이란 저서를 통해 식민사관이 지배했던 역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역사,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식민사관과 총성 없는 독립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그동안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 온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렇다면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3·1운동 이후에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되어 대대적으로 읽히자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 역사 왜곡, 날조라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국사·국어는 혼"이라는 박은식 선생의 말씀이 진리라는 것을 일제도 깨달았던 것이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므로 일본이 식민 지배를 해주어야 발전할 수 있다는 얼토당토 않은 주장을 내세우며, 우리 역사를 축소, 훼손시키는 데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사마천 등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동양 역사학을 무시(하고 이른바 '근대 역사학'이라며 서양의 역사학을 들먹이며 한국사 죽이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그 프로젝트에 하수인으로 동원한 한국인 학자가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라 불리는 이병도였다. 이병도는 일본 역사학자들이 자신을 "사랑했다"고 자랑스럽게 증언하기까지 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 역사학자가 한국인 역사학자를 '사랑'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의 주장을 일본인이 하는 것보다 같은 한국인의 입을 통해서 우회적으로 하면 훨씬 잘 먹히리라는 것은 누가 봐도 명백하다.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한 일제의 이런 '한국사 축소, 왜곡' 전략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그들이 심어 놓은 사관, 즉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왔을 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전히 주류로 버젓이 행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심지어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극우 일본의 사관을 전파하기까지 하고 있는 사학계의 추악한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본문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하나하나 구체적인 사건을 제시하면서 설명한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 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을 둘러싼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그리고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고발 등을 통해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 증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식민사학자들의 비열한 작태,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로서의 최소한의 기본자세도 무시해온 사학계의 실상을 폭로한다. 자신들과 다른 관점, 즉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왕따시켜 왔는지를 낱낱히 증언했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황순종 저/만권당 간/336쪽/15,000원)>은 경기중·고, 서울대를 거쳐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초일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평생을 이른바 '주류'로 살아온 저자가 쓴 글이다.

그가 왜 주류 사학에 반기를 들었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아직도 이 땅의 고대사 체계는 일제 조선총독부가 만든 허위와 악의 결정"이며, "필자는 식민사학의 가장 큰 피해자는 국사를 배우는 학생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거짓된 정보로 국민은 현혹시키고 있는 '얼굴은 한국인, 정신은 극우 일본인'인 이들이 국민의 눈과 귀를 막고 우리 역사를 축소, 폄하하기에 여념이 없는 참혹한 현실이 지은이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한 것이다.

중학교 국사 시간의 추억을 되살려보자.


고조선과 한사군에 대해 배울 때 우리가 달달 외워야 하고 시험에 꼭 나왔던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의 위치였다. 왜 우리 국사 교과서는 반만 년 역사 중에 불과 몇 십 년, 길어야 몇 백 년 존속했던 한사군을 그토록 중시해야만 했을까?

고조선 대신 한사군을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일제 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기획이며, 그들의 노림수는 우리 민족이 자체 발전 능력이 없으며 중국(한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서 비로소 발전했다, 즉 우리 민족의 근원을 뿌리째 뒤흔드는 어처구니 없는 주장을 한 것이다.

말하자면 식민 통치의 일환으로 일제가 택한 전략이 우리 역사의 축소와 왜곡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것이 해방 이후에도 주류 사관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은 크게 2가지를 이야기한다. 하나는 식민사관의 계보이고, 다른 하나는 쟁점별 식민사관 비판이다.

1부에서는 식민사관의 계보, 즉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하여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다. 살아서 일본인 역사학자에게 사랑'받고 죽어서도 '한국 역사학계의 태두'로 떠받들리고 있는 이병도를 비롯하여 신석호, 이기백, 노태돈, 서영수, 송호정 등 현재 주류 국사학계와 강단을 장악하고 식민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무늬만 한국인' 사학자들이 줄줄이 지면에 소환된다.

2부와 3부는 식민사학의 주장을 쟁점별로 조목조목 비판한다. 가장 크게 훼손한(자료가 많이 없으므로 조작이 쉽고, 근원부터 부정, 축소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으므로) 고조선과 삼국 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쟁점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낙랑 평양설, 패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강)와 갈석산의 위치 비정 등이 왜 엉터리인지, 왜 엉터리일 수 밖에 없는지를 문헌 고증을 통한 '근거를 가지고' 반박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에서 충격적인 대목은 또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워왔던 '절대적 교리(?)' 수준의 역사 지식이 전혀 근거가 없거나, 심지어 사료를 조작하여 만들어낸 '소설' 수준의 왜곡이라는 놀라운 사실이다.

대표적인 것이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을 믿을 수 없다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과 한 나라가 설치한 군현인 한사군이 한반도 내에 있었다는 '한사군 한반도설' 이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 얼굴>은 이런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역사적 사실이 일어났던 당대를 살아갔던 중국 사관들이 작성한 <사기>, <수경>, <후한서>, <산해경> 등의 고대 문헌 구절을 제시하며 조목조목 논박한다.


 

 

일제가 날조한 역사관 추종하는 '史피아' 낱낱이 비판 [세계일보] 2014.09.05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만권당/1만8000원


한국 역사 연구의 기원은 고대로까지 소급되지만, 현대적 의미의 역사학이 정립된 것은 일제강점기 이후다. 일본 학자들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정체성론'이니 '일선동조론'이니 하는 주장을 폈다. 이른바 '식민사관'이다. 그 맞은편에 '민족사관'이 있었다. 신채호, 박은식 등의 학자는 독립의 한 방편으로 치열하게 역사를 연구했다. 해방이 되고 학계를 장악한 것은 '실증사관'을 내세운 학자들이었다. 실증사관의 선두에는 '역사학계의 태두'로 꼽히는 이병도가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뚜렷하다. 실증사관이 식민사관의 영향력 아래 성장했고, 그 결과 지금도 식민사관은 청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제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이병도의 제자들이 한국 사학계를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한·중·일 간의 '역사 전쟁'이 한창인데, 역사 왜곡에 맞서야 할 우리 학계가 식민사관에 여전히 물들어 있다는 주장은 사뭇 충격적이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기 위해 설립한 동북아역사재단에 대한 비판에서 저자의 시각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2012년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을 예로 든다. 당시 재단은 경기도교육청의 자료집이 단군신화를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서술한 것 등을 오류로 지적했다. 저자는 "(경기도교육청의 자료집은) 대한민국의 관점, 한민족의 관점을 유지하고 있는데 재단은 일본 및 중국의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는 식민사관의 핵심을 '한사군 한반도설'과 '고조선 한반도설'로 정리하며 "이 땅의 여러 식민사학자들이 이 이론을 그대로 추종하든지 조금 변형시켜서 현재까지 식민사관을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총론으로는 식민사관을 비판하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여지없이 식민사관을 읊어대는 이중적 행태가 일반화되었다"는 주장까지 전개한다.

저자의 시각은 날카롭게 벼린 칼 같다. 주요 학자의 실명 거론에 주저함이 없는 데서는 피튀기는 싸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저자가 대중적 글쓰기로 가장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학자라는 점에서 책이 얼마나 호응을 얻을지가 관심을 모은다. 역사학계를 이끌고 있는 학자들을 '사피아'로 한데 묶어 거칠게 비난하는 글에 불편함을 느낄 독자도 있을 듯하다.


 

 

식민사학의 가면을 벗기다 [내일신문] 2014.09.05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 이덕일 지음 / 1만8000원

 

 

우리 시대 최고의 '문제적' 역사학자 이덕일이 역사를 향해 포문을 열었다. 역사, 좀더 엄밀히 말하면 식민사관과 총성 없는 독립 전쟁을 선언한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온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 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해 많은 논쟁거리를 주는 책이다.

조선총독부 관점과 독립운동가 관점의 가장 큰 논점은 2가지다. '한사군의 위치는 어디인가'와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이라는 주제가 그것이다.

지은이는 "조선총독부 관점, 다른 말로 하면 식민사관이라고 불리는 관점은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이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고 주장한다"며 "그런 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교수' 직함을 달고 강단에 서서 그런 설을 당당하게 전파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번창하는 식민사관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지난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세금 10억원을 들여 발간한 한국 고대사 관련 영문 서적의 문제점(고조선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갔으며, 삼국시대가 빠지고 가야와 삼한이 들어간 내용), 풍납토성 초축 연대와 수정 시도라는 행태 고발 등을 제기한다.

식민사관이 21세기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증식하고 있음을 비판하고 있다.

지은이는 "미국이나 프랑스 등에서는 자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역사학자들이 존경받고 최고의 역사학자라는 평가를 받는데, 왜 우리는 그렇지 못한가" 통탄한다.

그리고 '실증'이라는 이유로 식민 통치 지배자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왜곡해온 식민사학자, 반론을 제기하는 학자는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재야' '전공자가 아니다' 등으로 무시하고, 토론을 하자 하면 눈 감고 귀 막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식민사학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제안한다.

그늘에 숨지말고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면 정정당당하게 공개적으로 문헌 사료에 근거한 학술적 토론을 해보자고 말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 만권당 펴냄) [서울신문] 2014.09.06

 

 

저자는 방대한 문헌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이 변형시킨 한국사의 원형을 되살리는 노력을 경주해 온 역사학자다. 한국 상고사와 고대사에 대한 주류 역사학계의 관점을 ‘식민사관’이라며 비판해 온 그는 우리 민족혼 말살을 위해 조선총독부가 앞장서 꾸며낸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수정되지 않고 면면히 이어져 왔으며 21세기 대한민국에도 무한 증식하고 있다고 고발한다. 그는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이 그간 한국 주류 역사학계에서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전파한 식민사학자라고 비판한다.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식민사관이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는 현실을 구체적인 사건들을 제시하면서 조목조목 문제점을 지적한다. 식민사관의 문제를 제기하는 ‘재야’ 학자들을 식민사학 카르텔이 어떻게 매장하고 배척해 왔는지 적나라한 증언으로 책은 마무리한다. 408쪽. 1만 8000원.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 [조선일보] 2014.09.06

 

 

우리 민족의 혼을 말살하려 했던 일제의 한국사 왜곡 및 축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권당, 1만8000원.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부산일보] 2014.09.06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 온 식민사학자들을 비판한다. 저자는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식민사관과 총성 없는 독립 전쟁을 선언했다. 만권당/408쪽/1만 8천 원.

 

 

 

우리 스스로 왜곡한 민족혼 [한겨레] 2014.09.12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408쪽, 1만8000원)

대한민국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는 오랜 논쟁거리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식민사학'에 대한 반론을 대대적으로 제기한다. 저자는 그동안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서 전파한 식민사학자들이 있다며 이들을 실명으로 비판한다.

 

 

 

 

역사가 되어버린, 일본의 계략 [대전일보] 2014.09.12

'우리 안의 식민 사관' 이덕일 지음·만권당·408쪽·1만8000원

 

 

어느 나라인들 역사가 중요치 않겠느냐만, 특히 대한민국에서 역사는 늘 '핫 이슈'다. 자신들의 치부를 인정하지 않으려 수시로 우리 민족 상처에 소금을 뿌려대는 일본과 그 넓은 땅덩이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호시탐탐 굶주린 늑대처럼 남의 영토를 넘보는 중국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다간 '눈뜨고 코 베일'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 놓인 우리에게 역사학자 이덕일이 던지는 문제 의식은 따끔하다. 어쩌면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착실히 공부 해왔던 사람일수록 더더욱 뒤통수를 맞은 느낌일 것 같다.

신간 '우리안의 식민사관'은 조선 총독부에서 만든 역사관이 깊게 뿌리 내리고 있는 현실을 지적한 책이다. 저자 이덕일은 우리 역사교육의 뿌리를 추적해 무엇이 잘못 됐는지, 무엇부터 문제인지를 진단하고 비판한다.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로 인정받는 것은 '실증사관'이다. 문제는 이것이다. 실증사관의 선두에 선 이병도가 일제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실증사관이 식민사관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받았을지 짐작 가능한 부분이다. 또한 그의 제자들이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로 남아있다는 점은 여전히 우리가 식민사관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조선총독부가 우리의 역사를 축소, 왜곡한 이유는 간단하다. 그들은 우리 민족이 스스로 미개하다 생각하기를 바랐다.

그들의 바람대로 우리는 우리 민족이 스스로의 힘이 아닌 한나라(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발전했다고 배워왔으며, 한나라가 고조선 땅에 설치했다는 한사군을 고조선보다 더 중요하게 공부해왔다. 심지어 고조선을 실체가 불분명한 신화로 치부하거나 임나가 실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교육받은 사람들도 적지 않다. 역사적 '사실' 보다는 일본의 '바람'에 맞춰서.

온 국민을 경악하게 했던 문창극 후보자의 식민사관은 이런 역사 교육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고등 교육을 모두 받았으며 몸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른다는 사람이 "게으른 민족의 DNA 때문에 식민지 지배를 받게 됐다"는 등의 역사관을 부끄러움 없이 주장할 수 있단 말인가. 통탄할 일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의 계보를 밝히고 '역사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비판하는 것과 식민사학의 주장이 왜 틀렸는지 문서 고증을 통해 조목조목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야말로 '독이 오른' 저자는 실명 공개도 서슴지 않는다. 식민사관을 토대로 우리 역사를 쥐락 펴락 하고 있는 학자들의 실명과 그들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학문적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저자는 강한 어조로 "식민 사학은 전혀 극복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식민 사학은 극복되었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는 그대로 식민사학자로 분류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다소 거친 비난에 눈살을 찌푸릴 독자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불편한 것은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눈감아 줘서는 안되는 현실이다.

공개 학술 세미나에서 "단재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라고 말한 학자가 지난 정권에서 한국사 관련 예산을 매년 250억원씩 집행하는 사업단 단장을 지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고 운영되는 동북아역사재단은 오히려 동북공정에 부응하는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저자의 주장을 단지 '비주류 학자의 시선 끌기'로 치부하기에는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도 속 쓰리다.

 

 

 

 

매국노 식민학자가 날조한 한국사… 아직도 득세하고 있다 [서울경제] 2014.09.12

한사군 한반도설·실증사학 앞세워 고대사 무시. 조선총독부 역사 왜곡에 이병도 등 사학자 동조 "후계자들 학계 주류로 남아 식민사관 전파" 비판

■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황순종 지음, 만권당 펴냄)
■ 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덕일 지음, 만권당 펴냄)



#장면1=중국에서 추진하는 동북공정 가운데 주요 이슈중의 하나는 적어도 고대 진ㆍ한나라때는 한반도 북부가 그들의 영토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고 만리장성은 황해도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중국 사서에도 없는 내용을 그들이 어떻게 알까. 바로 국내 사학자들이 근거를 대줬다. 일제식민지 시기 조선사학계의 태두로 불린 이병도와 그의 후계자들이 한사군 한반도설을 주장했고 이를 중국이 따른 것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장면2='실증사학'이라는 것이 있다. 역사라는 것은 유적ㆍ유물로 증명돼야 한다는 것인데 독일의 랑케가 원조이고, 일본을 거쳐 일제 시기에 조선으로 들어왔다. 이에 따르면 단군신화나 삼국사기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게 된다. 랑케는 국가형성의 역사가 짧은 독일 사람이다. 고대 로마제국과 싸운 게르만족 이야기를 빼면 실질적으로 독일사는 10세기 전후에서 시작된다. 랑케의 실증사학은 중국이나 한국같은 역사가 유구한 나라보다는 역사가 역시 짧은 일본에서 호응을 받고 있다.

8ㆍ15 해방후 7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제식민지 잔재가 사회 곳곳에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역사학계는 그 정도가 심하다. 일제시대 일본인 학자들과 함께 조선역사 개조작업, 이른바 식민사관 구축에 앞장선 이병도와 그의 후계자들이 서울대 등 국내 역사학계의 주류로 남아있으면서 이런 식민사관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식민사관을 밝히려는 의도에서 책 2권이 동시에 출간됐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과 관료출신 황순종의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이다.

식민사관을 한마디로 하면 일제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일제가 식민사관 구축에 나선 것은 3ㆍ1운동으로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가 높아지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선총독부는 1920년대 이후 문화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적이고 전략적으로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과 날조를 진행시켰다. 그리고 이병도 등 일부 사학자가 이에 동조 주도했다. 요체는 우리 민족이 자체발전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하고 그것이 한국민족의 발전에 도움이 됐다는 결과로 이어진다.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의 절정은 중국이 고조선 영토에 세웠다는 한사군 문제다. 우리 역사의 시작이 한사군이라는 '중국 식민지 정권'이고 이런 '선진 문물'을 통해서야 비로소 국가를 이룰 수 있었다는 논리다.

중국 한나라때의 유물이 지금의 평양에서 발견된 것을 이유로 한사군 가운데 핵심인 낙랑군이 이곳 평양에 존재한 것이 맞다는 것이 기존 학계의 의견이었다. 하지만 이덕일은 이에 대해 반박한다. 평양에서 지금껏 발견된 유물은 모두 후한 시기인 2~3세기의 것으로,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것으로 중국측 '사기'에 기록된 기원전 108년과는 200여년이나 차이가 난다. 이른바 실증사학을 따른다 해도 평양의 낙랑군이 한 무제가 세운 한사군은 아니라는 것이다.

반(反) 식민사관을 목표로 하면서도 두 권의 저자는 시각을 달리한다.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은 식민사관의 계보를 알리고 쟁점별로 비판을 한다. 1부 식민사관의 계보에서는 조선총독부가 기획한 역사 날조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거기에 적극 협조해 일신의 영달을 꾀한 '매국노' 식민사학자들을 비판한다. 2·3부는 식민사관의 주장을 쟁점별로 비판한다. 그들이 가장 크게 훼손한 고조선과 삼국시대의 역사를 둘러싼 쟁점을 주로 다룬다. 낙랑 평양설, 패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이었던 강)와 갈석산의 위치를 논한다.

이에 대해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식민사관과의 전쟁중에 있음을 강조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들마저 여전히 식민사관, 일본의 극우사관을 전파하고 있는 것을 고발한다.

해방 70년 동안 역사에 대한 우리의 관점도 많이 변했다. 현재 스스로 식민사관에 빠져 있다는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것은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역사를 공부하는 국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식민사관이 우리의 의식과 지식에 얼마나 침투해 있는지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조작을 사실(史實)로 주장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넘어서야 할 과거가 이 책들에 나와 있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 [국제신문] 2014.09.12

 

 

저자는 조선총독부가 만들어 지금까지 우리나라 역사의 주류를 차지하는 식민사관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식민사학자의 실명을 거론하며 그들의 행적을 비판한다. 〈만권당·1만8000원〉

 

한국 주류사학계는 왜 일본 식민사관에 침묵하나 [한겨레] 2014.09.14

우리 안의 식민사관ㅣ이덕일 지음ㅣ만권당·1만8000원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ㅣ황순종 지음ㅣ만권당·1만8000원

 

일제 식민사관을 비판해온 최재석 고려대 명예교수 2011년에 낸 자서전 <역경의 행운>에서 한국 주류 사학계를 향해 이런 질문을 던졌다.

“백수십년 전부터 일본 고대사 학자 거의 전부가 달라붙어 고대 한국을 일본의 식민지였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시종 입을 다물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달라. 고대사 학자라면 여기에 대해 한마디 정도의 논평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 질문에 누가 응답했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전범자들을 ‘일본의 평화·번영의 주춧돌이 된 순직자’로 기리면서 야스쿠니 신사를 버젓이 참배하고 독도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진실을 우롱하며 재무장을 부르짖고 있는 기저에는 한·일 고대사에 대한 전도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고대사는 곧 현대사”라며 일제 식민사관에 대적해온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보면, 한국 주류 사학계는 식민사관의 비판자이기는커녕 그 공모자다.

앞서 이 소장은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2009)에서 일본과 한국 주류 사학계의 주장을 당대의 중국 사료 등 1차 사료들을 토대로 무너뜨리면서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식민사관에 여전히 함몰돼 있는 한국 사학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실명을 거론하며 비판 강도를 한층 더 높인다. “한국 (식민)사학계의 조선총독부 추종이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황순종씨의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 역시 자국 역사를 배반하고 있는 한국 주류 사학계의 ‘정설’을 실명 비판으로 뒤집는다.

실명으로 식민사학자들을 비판하다

한국 사학계는 과연 일제 식민사관을 넘어섰을까? 대다수 학자들은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식민사관 해체 작업에 앞장서온 비주류 학자들은 ‘총론만 그럴 뿐 각론은 여전하다’며, 한국 사회의 실패와 파행의 뿌리가 거기에 있다고 진단한다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이고, 세 자로 말하면 또라이입니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펴냄)이 인용한 어느 공개 학술회의장에서 나온 발언이다. ‘일베’ 수준의 청중이 아니라 한국학진흥사업단 단장으로 1년에 250억원이라는 막대한 한국사 관련 예산권을 쥐고 있었고, 문제 많은 교학사 교과서 대표집필까지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이란다. 더 놀라운 건 그런 말을 듣고도 그 자리에 있던 많은 역사학자들이 가만히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소장은 “프랑스 같으면 당장 감옥에 갔을 이런 극우 파시스트 매국노”가 주류의 한 갈래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했다.

한국 근대 최고의 역사학자요 타협을 몰랐던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는 1936년 2월 중국 뤼순의 일제 감옥에서 옥사했다. 동시대인 1944년 6월, 나치에 저항한 프랑스 역사학자 마르크 블로크는 게슈타포 손에 총살당했다. <역사를 위한 변명>을 쓴 블로크나 <조선혁명 선언>을 쓴 단재나 외부 파시스트 세력의 침탈에 맞서 한 손에는 역사학, 또 한 손에는 총을 들고 싸우다 숨진 점에선 같았으나, 각자의 조국에서 단재는 ‘또라이’ 취급을 당하고 그 자손은 곤궁 속에 흩어졌으며 블로크는 위대한 민족주의자로 칭송받고 있다. 또 다른 열렬한 프랑스 애국주의 역사가 쥘 미슐레나 미국의 민족주의 사가라 할 프레더릭 터너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으며, 독일의 레오폴트 폰 랑케도 그랬다. 이덕일은 프랑스나 독일, 미국의 민족주의는 남의 나라를 침탈한 역사를 지닌 민족주의임에도 그런 평가를 받는데, 침략에 맞서 싸운 저항 민족주의자 단재가 자국 주류 사학계로부터 여전히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냐고 물었다.

이덕일, 그리고 <식민사관의 감춰진 맨얼굴>(만권당 펴냄)을 낸 황순종씨 따르면, 전부 다라고 할 순 없겠지만 한국 주류 사학계 핵심 인물들은 학문적·인격적 스승으로 떠받들었던 쓰다 소키치, 이마니시 류, 이나바 이와키치, 스에마쓰 야스카즈 등 일본 사학계 주류를 형성한 식민사관 창도자들의 이론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지금도 하늘처럼 떠받들고 있다.

식민사관 창도자들과 연줄을 통해 도제관계로 엮인 한국사학의 ‘태두’ 이병도와 고려대 인맥의 신석호
주류 사학계의 내로라하는 ‘사단’은 여전히 스승들에 대한 의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덕에 한반도 북부가 중국 영토였고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뻗어있었다는 동북공정은 순항하고 있다

이덕일은 일제 식민사관의 핵심 문제를 한사군의 한반도 비정(比定)과 임나일본부설 두 가지로 압축한다.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에, 여전히 의문에 싸인 일본 야마토 조정 시대 진구황후라는 역시 실체가 불분명한 여성이 이끄는 군대가 신라를 정벌하고 이후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하고 6세기 중반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이다. 오직 <일본서기>에만 등장하는 이 얘기를 역사적 사실로 만들기 위해 일본의 식민주의 사학자들은 김부식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이 날조됐다는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설’을 만들어 퍼뜨렸다. 그리하여 식민주의자들은 서기전 1세기에 건국됐다는 <삼국사기>의 신라·고구려·백제 관련 기록을 믿을 수 없다며 그 건국연대를 4~5세기로 끌어내렸다. 그리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갖추고 있던 백제·신라가 7세기에야 국가 형태를 갖춘, 게다가 나당 연합군에 대패해 쫓겨간 왜에 조공하고 신하의 예를 갖췄다는 식으로 동아시아 고대사를 자기들 마음대로 재구성했다. 아베 정권 행보를 봐도 알 수 있듯이 이건 현재형이다.

그런 역사날조를 주도한 사람들이 바로 쓰다와 이마니시, 이나바, 스에마쓰 등이었다. 이들 식민사관 창도자는 이와 함께 서기전 108년 한 무제가 설치했다는 낙랑·진번 등 군현(한사군)이 평양을 중심으로 한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는 한사군 한반도설을 ‘정설’로 유포했다. 이덕일이 <한국사, 그들이 숨긴 진실> 등에서 이미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진서> 등 당대의 중국 1차 사료들을 토대로 한사군 한반도설이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는 걸 구체적으로 논증했지만, 일제 식민사관 창도자들은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단 한 가지의 증거”도 제시한 적이 없단다.

그럼에도 쓰다와 스에마쓰, 이나바 등 식민사관 창도자들과 와세다대 등의 학연, 일제의 조선사 왜곡 대본영이라 할 조선사편수회, 경성제국대 국사학과 등의 연줄을 통해 도제관계로 엮인 한국사학의 ‘태두’이자 서울대 인맥의 원조 이병도와 고려대 인맥의 신석호, 그리고 이번 책들을 통해 실명 비판 대상이 된 한국 주류 사학계의 내로라하는 그들의 ‘사단’은 여전히 학문과 인격의 스승들에 대한 의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그 덕에 한반도 북부가 중국 옛 영토였고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뻗어 있었다는 동북공정은 순항하고 있다. 실명 비판의 대상이 된 주류 사학자들은 이병도, 신석호, 이선근, 김원룡, 김용덕, 김정배, 김철준, 한우근, 송호정, 노태돈, 서영수, 이기백, 이광린, 김현구, 이기동, 정재정 등이다.

황씨는 조선총독 사이토 마코토의 조선인 교육 시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들어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케 한다.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무능과 악행 등을 들춰내고 확장해서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 청소년들이 그들 조상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며,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든다.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때 일본의 사적, 일본의 인물, 일본의 문화를 소개하면 동화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자민족 허무주의와 열패감, 강자 예찬으로 치달은 박정희와 문창극들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이들과 후예들이 여전히 대학과 연구소들,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구과 조직, 그리고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등을 장악하고 국민의 세금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면서 나라의 근본을 좀먹고 있다고 두 사람은 주장한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아시아경제] 2014.09.16

 

 

역사학자 이덕일이 국내 식민사학자들에 정면으로 도전장을 던졌다. 이 책은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고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온 식민사학자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한다. 저자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고 주장하는 식민사학 카르텔이 자신들과 다른 관점을 지닌 학자들을 어떻게 매장해 왔는지 관련자들의 증언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식민사학계에 문헌 사료에 근거한 학술적인 공개토론도 제안한다. 이덕일 지음/만권당/1만8000원.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 | 만권당 펴냄 | 408쪽 | 18,000원) [독서신문] 2014.09.16

 

 

그동안 대한민국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조선총독부의 관점으로 대한민국 역사를 바라본 그 관점을 강단에 서서 전파해온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벗겨내며 대담하게 문제를 제기한 논쟁적인 책이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덕일 / 만권당) [MBN] 2014.09.18



'문제적' 역사학자 이덕일이 포문을 열었습니다.

저자는 식민사관과 총성 없는 독립전쟁을 선언했습니다.

저자는 식민사학자, 예를 들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을 실명으로 비판하고 그들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벗겨 내며 문제를 제기합니다.

 

 

 

동북아역사재단 vs 재야 사학계 한국 고대사 논쟁 뜨거운데… [서울신문] 2014.09.18

 

 

한국 고대사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재야 사학계는 “기존 학계가 일제 강점기 조선사편수회의 그늘에서 여지껏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연일 불만을 토로한다.

갈등은 동북아역사재단과 재야 사학계의 관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최근 펴낸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에는 ‘동북아역사재단이 던진 질문’이란 대목이 등장할 정도다.

책 속 재단은 반국가적 조직으로 묘사된다. 한 해 200억원 가까운 국고로 운영되는 조직이 파벌과 개인의 영욕에 휩싸여 제대로 된 좌표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이 꼽은 대표적인 사례는 2012년 9월 불거진 경기교육청과 재단 간의 역사교육 오류 논쟁. 당시 재단은 경기지역 역사교사들이 민족적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펴낸 자료집을 놓고 ‘단군신화는 역사적 사실이 아닌 신화’, ‘간도는 간도협약 이전 우리 영토 편입 사실이 없다’, ‘백두산정계비는 국제법적 인식 등장 전이라 적용하기 어렵다’, ‘대조영은 진국왕’ 등의 반박을 내세우며 시정을 권고했다.

고대사 인식을 놓고 학계에서 첨예하게 이해관계가 엇갈린 부분이 ‘실증주의’란 명제 아래 큰 고민 없이 일방적으로 뭉개진 셈이다. 이 소장은 “외교부 출신인 재단 고위 인사가 경기교육청 자료집에 분노해 반박을 지시했고, 서울대 국사학과 출신 연구원이 반박문건을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관련국(중국)의 역공을 받을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재단은 지난 3월에도 10억원의 국고를 지원해 발간한 ‘하버드대학교 한국학연구소’의 한국 고대사 논문들이 논란을 키운 바 있다. 재단 측이 한나라가 한반도의 옛 고조선 땅에 세웠다는 ‘한사군’을 기정사실화하자 이에 반발한 재야 사학계가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를 발족시켰다. 당시 재단 측은 “상고사 연구를 활성화해 팀을 구성할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재단의 상고사 연구인력은 지난 1일에야 기존 1명에서 2명으로 충원됐을 뿐이다.

논란은 재단이 한반도를 둘러싼 역사·영토 문제를 화해와 번영을 위한 평화적 관점에서 접근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권위를 세운다며 특수성보다 보편성, 배타성보다 개방성을 내세워 조작이나 다름없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제 침략사관에 제대로 맞서지 못한다는 인상을 풍겼기 때문이다.

아울러 교육부 산하인 재단의 인적구성이 외교부·교육부·국정원 등 국가기관은 물론 학계 출신까지 다양해 내부적으로 역사문제에 대한 공통된 의견을 추려내기 힘들어 보인다.

감사원은 최근 국가예산 유용 등의 혐의로 재단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다. 재야학계의 공익감사 청구에 따른 것이다. 재단은 “외부세력의 재단 흔들기가 심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감사를 재단의 역할과 위상을 제고하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사는 아직 ‘식민사관’에서 해방되지 못했다 [광주일보] 2014.09.19
우리 안의 식민사관ㅣ이덕일 지음<만권당·1만8000원〉

 

" 조선의 청소년들은 자국의 모든 인물 역사에 대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다” -조선 총독 사이코 마코토의 말 중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것을 심어 놓았다. 그들 스스로 “조선 조상의 무능, 악행을 들추고 과장해 후손들에게 가르쳐라”며 16년 동안 만들어 낸 16권의 ‘조선사’가 그 증거다.

이를 통해 일본 제국주의는 보편적인 정치적 논쟁을 ‘당쟁’으로, 엄연한 역사인 고조선을 ‘단군신화’로, 자신들이 침략한 나라를 특정 성씨들의 집단에 불과한 ‘이씨조선’(이조)으로 만들어버렸다.

무서운 것은 이 같은 ‘식민사관’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점이다. 역사학자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 식민사관에 젖은 우리 역사 학계에 돌을 던졌다. 이 소장은 신간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통해 한국 역사학계를 장악한 채 식민사관의 편에 서서 역사를 흐려 온 식민사학자들을 고발하고 있다.

저자가 말하는 식민사관은 크게 두 가지다. 한사군의 위치와 임나일본부의 진위 여부다. 아직도 이런 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교수’ 직함을 달고 강단에서 식민사관을 부르짖고 있다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말뿐이 아니라, 식민사관을 전파해 온 사학자들의 이름도 책에 등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병도,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등이 임나일본부가 한반도 남부를 실제로 지배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임나일본부설은 일제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거짓 역사다.

일본이 심어 놓은 대포보다 더 무서운 거짓 역사가 이들에 의해 현대까지 이어지고, 되풀이되고 있는 건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슬픔이다.

실제 동북아역사재단이 10억원의 세금을 쓰며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책에는 고조선이 빠지고 한사군이 들어가 있다. 또 삼국시대가 빠지고 가야와 삼한이 들어간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 담겼다.

저자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식민사학자들이 학자로서의 기본 자세를 무시하고 ‘식민사학 카르텔’을 만들어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매장하는 과정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그리고 통탄한다. 미국이나 프랑스는 자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학자들을 존경하는데 우리는 왜 그렇지 못하는지에 대해.

또 묻는다. 조선총독부의 관점, 독립 운동가의 관점 중 당신은 어떤 관점에서 한국사를 배우고 싶은지를. 해방 70여 년이 지난 지금, 각급 학교에서 가르쳐야 하는 역사가 무엇인지를 저자는 진지하게 묻는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 만권당/ 408쪽/ 1만8천원 [영남일보] 2014.09.20


식민사관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시선이 아니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말한다. 일제의 압제에 항거하여 들불처럼 일어났던 3·1운동 이후에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가 은밀히 유통되어 대대적으로 읽히자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높아지는 것을 우려한 조선총독부는 엄청난 돈을 들여 우리 역사 왜곡, 날조라는 전략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주류를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관을 향하여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우린 아직 일본의 식민지, 중국의 속국이다 [시사IN] 2014.09.23

 

 

"하나님은 왜 이 나라를 일본한테 식민지로 만들었습니까 하고 우리가 항의할 수 있겠지, 속으로. 아까 말했듯이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야. 너희들은 이조 500년 허송세월 보낸 민족이다. 너희들은 시련이 필요하다."

문창극 전 총리 후보자의 발언은 자학적 식민사관을 보여준 대표적인 발언이었다. 문 후보자의 이 강연에 대해 이인호 신임 KBS 이사장은 "강연을 보고 감동받았다.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이라고 두둔했다.

내년이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지 70년이 된다. 우리는 우리 안의 식민주의를 많이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모두들 식민사관을 두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 말하면서도 각론에서는 식민사관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식민사관이 이렇게 뿌리를 깊이 내린 것이 조선 후기 지배집단인 노론의 사관과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사관이 결합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조선사편수회 등 일제의 식민사학 구축에 협력한 학자들이 광복 이후에도 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전수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런 식민사관이 심지어 교육부 산하 동북아역사재단까지 그대로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에 맞서야 하는 동북아역사재단이 중국이 동북공정을 하면서 쓰는 기본 논리와 일본 극우파의 논리와 같은 주장을 한다. 한사군이 한반도 안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조선총독부에서 전파하던 식민사관 그대로다."

이런 식민사관에 대비되는 민족주의 사관은 그동안 실증적이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 소장은 100년 동안의 역사전쟁을 되짚으며 이를 실증적으로 반박한다. "박은식ㆍ신채호ㆍ이시영ㆍ김교헌ㆍ이상룡과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한 손에 총을 들고 싸웠지만 다른 한 손에 붓을 들고 싸운 역사학자였다. 김교헌의 경우 성균관 대사성과 규장각 부제학을 역임한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이상룡은 전통적인 사관 집안이었다. 한문 지식이 월등했던 이들은 중국 고대 문헌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집필했다."

'사피아(역사+마피아)' 구조 깰 수 있을까

이 소장은 민족주의 사관이 실증적이지 못하다는 데 맞서 식민사관을 계승한 주류 사학계가 오히려 실증적이지 못하다고 역공한다. "역사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팩트(사실)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 팩트를 파악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1차 사료다. 한사군의 위치와 관련해 동시대에 기록된 중국의 사서는 모두 중국 쪽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식민사관에 찌든 학자들은 이를 부정한다. 3~4세기까지의 삼국사기 초기 기록도 불신한다. 1차 사료를 부정하는 것이 실증적 태도인가?"

이 소장은 노론 권신들이 일본에 국권을 내놓을 때 논리가 식민사관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고 주장한다. 노론이 중국을 섬겼듯 식민사학 학자들은 일본을 섬기고 일본 시각에서 우리 고대사를 바라본다고 그는 평가한다.

이 소장은 지난 3월 설립된 '식민사학 해체 국민운동본부'의 학술위원장을 맡았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을 깨는 것이 총성 없는 역사 독립전쟁이라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를 기록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는 아직 일본의 식민지이고 중국의 속국이다. 독립국가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 광복 이후 학계가 식민사관을 계승한 학자들에게 장악되면서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이 '사피아(역사+마피아)' 구조를 반드시 깨야 한다."

 

 

 

 

"나라는 해방 돼도 역사는 해방 안 돼" [노컷뉴스] 2014.09.23

식민사학자 이병도 후학, 주류 역사학계 장악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4년 9월 22일 (월)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덕일 (한가람 역사 문화연구소장)

◇ 정관용> 시사자키 3부 시작합니다. 우리 역사 속 과제 중 하나. 식민사학의 청산이죠. 오랜 숙원이지만 좀체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식민사관이 개선되지 않는 원인을 한국의 역사 집필을 담당하고 있는 주류 한국사학자로 지목, 실명까지 거론하며 통렬한 비판을 하신 분이 있습니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의 저자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모시고 관련 얘기 나눠보겠습니다.

- 재야 학자? 제도권에 못 들어갔다기 보다는 스스로 안 하겠다는 생각, 학교에 원서 내 본적도 없어, 식민 사관 문제를 이야기하려면 학계 밖에 있어야 하는 시스템.

- <우리 안의 식민사관>에서 '우리'는 한국사회, 식민사관의 핵심은 조선 총독부 사관의 관점으로 우리를 바라보는 것, 영원한 식민지배하기 위해 나타난 식민사관 아직도 청산 안 돼.

- 식민 vs 민족 사관의 핵심 쟁점은 한국 고대사에 대한 해석, 식민사관은 한국사를 반도에 가두는 것, 민족사관은 우리 역사를 광대한 대륙, 해양사로 보는 것.

- 고대사 핵심 쟁점은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4군의 위치가 어디냐, 한반도 남부의 임나일본부가 존재했느냐 하는 것, 식민 사관 입장을 뒷받침하는 고대 사료 존재하지 않아.

- 고조선을 평안남도 일대의 작은 소국이라고 주장, 중국 고대 사료와 유물이 광활한 제국이라고 증명되자 이동설이라는 변형이론 창조, 요동에 있다가 평양으로 이동해서 망했다는 주장.

- 식민사학, 여러 장의 지도를 그려놓고 가야를 '임나'라고 표시, 과거에는 우회적으로 주장하다가 이제는 노골적으로 말하는 상황,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믿으면 안 된다고 주장.

- 우리학자가 알아서 식민사관 추종하는 이유? 뿌리가 잘 못된 것. 해방 후에 조선사편수회 출신이 완벽하게 학계를 장악, 식민사관이 나쁘지 않다는 종교적 신념가지고 있어.

- 동북아역사재단도 동북공정에 동조하는 행위 지속적으로 하고 있어, 일종의 확신범…여러 군데에서 지원해주는 배후가 있어, 감사원 감사, 정책 감사가 아니라 예산 감사만 되지는 않을까 걱정.

- 사피아(역사학계 마피아)가 존재해, 해방 이후에 무수히 많은 비판을 받으면서도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강력한 카르텔, 이병도 밑으로 후학들이 주류 역사학계를 장악하고 있어.

- 교학사 집필위원 중 한 사람, '신채호는 네 글자로 말하면 정신병자다'라는 발언하기도, 일본 제국주의에 서있는 인물이기 때문에 이런 발언. 단재는 국수주의자가 아닌 아나키스트.

 

 

"난 임나일본부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한겨레] 2014.10.07

김현구, 이덕일 책관련 반박문 보내 "일본의 가야 지배? 내 연구 왜곡. 사과·책 판매 중단 않을땐 고소"
이 소장 "김 교수, 공개토론 해보자"


역사학계 원로인 김현구 고려대 역사교육과 명예교수가 한-일 고대사에 관한 자신의 글을 비판한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의 최근 저서를 두고 사과와 책 판매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문제가 된 책은 이덕일 소장이 최근 출간한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 펴냄, 2014). 김 교수는 이 소장이 이 책에서 '임나일본부설'과 관련해 자신이 발표한 연구 내용을 왜곡하거나 허위 주장을 해 명예를 심하게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한겨레>와 통화에서 "변호사를 통해 이덕일씨 쪽에 내용증명으로 반박문을 보냈다"면서 이 소장 쪽이 합당한 조처를 취하지 않을 경우 고소까지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반박문을 보면 김 교수는 <우리 안의 식민주의>가 자신의 책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창비 펴냄, 2010)에 대해 "'김현구는 임나일본부가 실제로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고 쓴 인물이다' (338쪽)라든가 '백제를 야마토조정의 속국이라고 주장한다' (345)는 등 책 어디에도 없는 허위 사실로 김현구를 마치 <일본서기>를 바탕으로 한 일본학자들의 '임나일본부설'을 뒷받침하고 있는 식민사학자로 매도하고 있다"며 이 소장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김 교수는 자신의 책 내용은 "야마토 정권은 임나와는 직접적인 교류조차 없었고, 주로 백제와 교류를 했는데, 백제와 야마토 정권과의 관계는 백제가 야마토 정권에게 선진문물을 제공하고 야마토 정권은 백제에게 군사적인 원조를 제공하는 특수한 용병관계였다는 것"이라며 오히려 "한국 학자의 책으로는 일본 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한 유일한 저서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내 책은 일본의 기구를 의미하는 임나일본부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다"면서, 야마토와 고구려·백제·신라·가야(일본학자들은 임나로 표기)간의 사신 왕래에 관한 <일본서기> 기록 인용은 야마토와 백제와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긴밀했음을 보여주고, 야마토가 임나를 통해 백제와 신라까지 지배했다는 스에마쓰 등 식민사관 학자들의 주장이 잘못됐음을 예시하기 위한 것인데, 이를 마치 야마토에 대한 한반도 쪽 왕국들의 조공관계를 입증하는 사실로 제시했다는 식으로 이 소장이 논지를 완전히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임나일본부설은…>에서 김 교수는 백제 장군 목라근자가 서기 369년 가야7국을 평정했고, 서기 382년 외부 침입을 받은 가야를 구원했으며, 이후 그의 아들 목만치 등 목씨 성을 지닌 백제인들이 가야를 지배했다는 <일본서기> 기록을 토대로 "스에마쓰가 근거로 삼는 <일본서기>에 의하는 한 적어도 야마토 정권이 임나를 근거지로 백제와 신라를 간접 지배했다는 설은 성립될 수 없을 것" (133)이라고 썼다. 그는 고구려가 남하하면서 백제를 대대적으로 압박한 서기 475년 일본에 간 목만치가 일본 조정 실력자였던 '소가만지'와 동일인물인 것으로 추정하며, <일본서기>가 그를 왜인으로 둔갑시키고 백제-야마토의 역학관계까지 뒤집어 오히려 일본이 가야를 직접 지배하고 백제·신라를 간접 지배한양 왜곡했다고 봤다.

김 교수는 반박문에 이런 내용을 14개항의 질문으로 따로 정리해 이 소장에게 답변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소장은 7일 자신의 주장을 철회할 뜻이 없음을 밝히고 "김 교수에게 지상 논쟁 등 공개 토론을 벌일 것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의 책은 일제시대 형성된 식민사관이 여전히 우리 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며 실명으로 여러 역사학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주류학계 고대사 연구, 식민사학 반복하고 있다” [세계일보] 2014.10.08

 

 

비주류 학자 이덕일씨 출간 책서 비판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에서 만난 이덕일 소장은 단호했다. “(한사군이 평양에 있었다고 보는 주류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1차 사료의 근거가 없다.”

그는 “자기들의 주장과 다르면 ‘재야’라고 치부하고, 정신병자로 몰아 죽였다”며 주류 학계의 배타성을 거칠게 지적하기도 했다. 이 소장은 주류 학계의 고대사 연구가 일제강점기 식민사학을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대표적인 학자다. 이런 주장을 담아 최근 ‘우리 안의 식민사관’(만권당)을 발간했고, 주류학자들을 실명으로 비판했다.

책은 파열음을 내고 있다. 비판의 대상이 된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는 “허위 주장을 담아 나를 식민사학자인 것으로 매도했다”며 이 소장의 사과, 책의 판매·배포 중지 등을 요구했다. 응하지 않을 경우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이 소장의 주장, 두 학자의 대립은 고대사를 둘러싼 주류, 비주류 간 해묵은 논쟁, 감정 싸움의 양상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최근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부, 정치권에서 비주류 학설에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사군 위치와 임나일본부설을 둘러싼 논란

비주류 학자들이 제일 큰 문제로 지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있었다고 보는 ‘한사군 한반도설’이 하나다.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고대 한반도는 중국의 강역이 되어 동북공정에 대응할 논리가 없어진다고 주장한다.

다른 하나는 ‘임나일본부설’이다. 고대 일본이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주장인데,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과 연결된다. 일제의 학자들은 임나일본부의 존재를 기술하지 않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불신론을 적용하면 삼국의 실질적인 국가체제 성립 시기는 4세기까지 늦춰져 한국 고대사의 발전이 그만큼 더뎠다는 의미가 된다.

비주류 학자들은 이런 주장이 정설로 굳어진 근원을 역사학계의 ‘태두’로 꼽히는 이병도에게서 찾는다.
식민사학 정립의 한 축이었던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이병도와 그의 서울대 출신 제자들이 학계를 장악하면서 식민사학의 영향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인식이다.

한 중견 역사학자는 “불신론을 견지하는 학자들 대부분이 서울대 출신이고, 그들의 인맥, 학맥을 따지면 그 끝에 일본인 학자들이 있다”며 “고대사 연구가 지금도 일제강점기 때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그들과 다른 이론을 주장하면 학교에서 자리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비주류 학계에 대한 높아진 관심

이 소장은 주류 학자들이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만들어 식민사학의 논리를 지금까지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장의 인식이 과장되었다고 보는 학자들도 주류의 철옹성 같은 지위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한다. 최근 정치권, 정부에서 비주류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가고 있는 흐름은 이런 점에서 주목된다. 국회의 동북아역사왜곡대책특별위원회가 대표적인 경우다. 특위는 서강대 이종욱 석좌교수, 인하대 남창희 교수 등 비주류적 관점을 가진 전문가들을 초청해 회의를 열었다. 나선화 문화재청장도 지난 7월 특위에 참석해 최신 고고학 성과를 반영하는 것에 소극적인 주류학계의 풍토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특위 위원장을 대리하고 있는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실 관계자는 “비주류 학자들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줘야 한다는 게 특위 위원들의 생각”이라며 “특위는 예산편성권이 없지만 관련 상임위의 심의 과정에서 (비주류 학자들을 위한 예산을 우선 배정하는 등의 조치에) 힘을 실어줄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위는 주류, 비주류의 주장을 모두 담은 책을 만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비주류 학자들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지만 학문적 역량의 부족, 서툰 문제 제기 방식 등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진흥사업단의 역사기초자료 번역작업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업단은 학문적 다양성의 확대를 위해 역사기초자료 번역작업에 대한 문호를 최근 몇 년 사이 대폭 개방했지만 비주류 학자들의 역량 부족 때문에 작업은 대개 주류 학자들의 차지가 됐다.

막무가내식 주장을 일삼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립기관 소속의 한 연구자는 “주류 학계를 비판하고, 고대 한국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목적 의식이 너무 앞서는 경우가 많다”며 “검증을 하라고 하면 감정적으로 흐르고 하니까 교수들이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다. 비주류 학자들이 자극적인 주장을 펼치면서 혼란에 빠뜨린 부분들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덕일 "식민사학자들아, 학맥이 양심보다 중요하냐 ?" [아시아경제] 2014.10.13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53)은 "한국 주류 사학계는 식민사관의 공모자"라고 규정한다. 이 소장은 최근 '우리안의 식민사관'(만권당 출간)이라는 저술을 통해 한국 사학계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이번 책에서는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태두로 알려진 이병도와 그의 학맥을 실명으로 거론, 파장이 만만치 않다. 대한민국 역사학계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신석호, 서영수, 노태돈, 송호정, 김현구 등의 학문적 태생에서 현재까지의 행적을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 이 소장은 이들이 식민사학자들로 학맥을 통해 역사 왜곡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고 있다고 단정한다.

이 소장은 "이들도 식민사관이 근거 없다는 걸 안다. 학맥이라는 시스템이 이들을 식민사학자로 만들었다"고 거침없이 지적한다. 이어 "이들에게 역사 연구 예산을 100% 쏟아붇고 있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 한 식민사관을 극복할 길이 없다"며 "더 이상 국민 세금으로 식민사관을 재생산하는 현실을 막아야 한다"고 개탄한다. 최근 김현구 고려대 명예교수가 일부 언론을 통해 '식민사학자'로 매도당했다며 반론을 요청한 것과 관련, 이 소장은 '공개토론할 것'을 제안한다.

이 소장은 "(김 교수는) 내게 단 한쪽의 반론문도 보내지 않았다. 당연히 언론 플레이로 본다. 그가 저술한 책에는 용어만 다를 뿐,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글이 버젓이 있는 데도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토로한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식민사관에 대항하다 죄절했다. 워낙 뿌리 깊은 학맥, 인맥을 이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총독부만 없지, 역사관은 그 때와 다를게 없다"고 지적한다.

이 소장은 석, 박사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식민사관과 대항해온 사학자다. 어느 덧 식민사관에 대한 비판은 그의 필생의 업이 됐다. 이 소장은 "주류학자들은 비주류학자들의 문제 제기가 감정적이라니 역량이 부족하다느니 갖은 구실을 붙여 공론을 피한다"며 "이제라도 역사적 사실관계, 검증된 자료 등을 놓고 제대로 토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어 "식민사학자들이 장악한 역사연구기관에 국민 세금을 몰아주지 말고, 민관합동심의위원회를 통해 역사연구 과제를 선별, 국민의 이익이 맞게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번 책이 출간되자 거명된 학자들 중에는 고소·고발, 책 판매 중단, 사과 요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에 이 소장은 "오히려 고소·고발하기를 바란다"고 맞선다. 법정이든, 토론장이든 국민들이 보는 앞에서 얘기하자는 의견이다.또한 폐쇄적인 학맥속에 숨어 카르텔을 형성, 왜곡을 일삼지 말라고 경고한다.

"해방 70여 년이 지난 지금, 학교에서 고조선은 신화이며 한사군은 한반도에 설치됐고, 신라는 4세기 내물왕(17대 왕) 때 국가의 기틀을 세웠다고 가르친다. 심지어는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이게 식민사관의 요점이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를 중국은 동북공정의 이론적 근거로 삼는다. 그들은 우리가 반론하면 '너희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지 않느냐'고 따질 지경이다."

이 소장은 "지금 학계를 장악하고 있는 식민사학자들은 우리의 관점으로 역사를 보지 않고 엄청난 국가 예산을 가져다 쓰면서 역사 왜곡, 날조, 전파를 계속하고 있다"며 "(식민사학자들은) 학맥과 거짓이 학자적 양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냐"고 반문한다.

"식민사관은 동북아역사재단을 비롯한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독버섯처럼 번창하고 있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과 동북아역사재단을 둘러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 동북아역사재단이 국민 세금 10억원을 들여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라는 곳과 함께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의 영문 서적, 식민사관 해체 국민운동본부와의 공방, 풍납토성 초축 연대의 수정 시도라는 비열한 행태 등은 식민사관이 21세기 우리 사회 곳곳에서 무한증식하고 있다는 증거다."

이 소장은 "우리 역사가 식민통치자의 관점으로 유린 당한 현실에서 후손들이 무엇을 배우고 익히겠는가"라고 한탄한다. 또한 "식민사학자들은 이제라도 비열한 학문 태도를 버리고 최소한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자세를 지키라"며 "더 이상 식민사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들을 매장하고, 배척하는 일을 중단하라"고 촉구한다.

한편 이 소장은 객관적 사료에 근거, 대중들이 접하기 쉬운 새로운 형태의 역사서를 집필해 왔다.

저서로'운부 1·2·3','사도세자의 고백','우리 역사의 수수께끼1ㆍ2권' '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오국사기', '고조선은 대륙의 지배자였다', '고구려는 천자의 제국이었다', '조선 최대 갑부 역관', '조선 선비 살해 사건', '왕과 나',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사', '정도전과 그의 시대' 등 다수가 있다.

 

 

 

“식민사관 통용되는 현실 비정상 … 주인의 관점으로 역사 봐야” [광주일보] 2014.10.16
광주일보 리더스아카데미 - 역사학자 이덕일 ‘주인의 역사관과 노예의 역사관’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는 사관, 특히 식민사관이 학계의 주류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역사학자 이덕일(53)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우리 안의 식민사관’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생각해봐야 할 주제라고 강조했다.

14일 오후 광주시 서구 라마다플라자광주호텔 5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광주일보 리더스아카데미 강좌에서 이 소장은 ‘주인의 역사관과 노예의 역사관’를 주제로 역사에 대한 올바른 관점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이 소장은 “일본 극우파로 대변되는 식민사관이 해방이후에도 청산되지 않고 버젓이 통용되는 현실은 비정상적인 것”이라며 “식민사관이나 제국주의를 찬양하는 세력은 실정법으로 처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이 말하는 식민사관은 크게 두 가지인데, 한사군의 위치와 임나일본부의 진위 여부다. 그는 “중국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평양)에 있었다는 ‘한반도 북부설’은 조선총독부의 논리”라며 “이 같은 관점을 따를 경우 고대 한반도는 자연스럽게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만약 그렇게 되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논리가 사라지게 될 뿐 아니라 자칫 북한이 붕괴되면 중국이 원래 자신의 영토였다는 주장을 내세워 ‘접수’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한 가지인 ‘임나일본부설’은 고대 일본이 한반도에 진출해 백제, 신라, 가야를 지배했다는 관점인데, 사실은 일제가 한반도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거짓 역사라는 것이다.

이 소장은 “그런데도 식민사관이 이어져온 것은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한 쓰다 소키치라는 학자와 조선사편수회에서 활동한 그의 제자 이병도 때문”이라며 “이후 그의 제자들이 학계를 장악하면서 이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사군이나 임나일본부설은 모두 중국과 일본을 대변하는 제국주의 논리라는 것이다. 이 소장은 이어 “그런데도 동북아역사재단이 10억원을 지원받아 펴낸 ‘한국 고대사’ 관련 6권에는 한사군의 한반도 위치설 등 일제 조선사편수회의 시각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고 주장했다.

강연을 하는 동안 이 소장은 1차 사료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의 중요성을 수차례 언급했다. 당시의 독립운동가인 신채호, 박은식, 김교헌, 김승학 같은 이들은 모두 역사학자였으며 철저한 주인의 역사관을 견지했다고도 덧붙였다.

미국이나 프랑스는 자국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학자들을 존경하는데 아직까지 우리는 그렇지 못한 실정이라는 것이다. 그보다 진영논리와 결부돼 색깔논쟁으로 비화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마지막으로 이 소장은 “노예 역사관을 말하는 이들은 외형은 한국인인데 머릿속은 일본이나 중국 사람과 다름없는 이들”이라며 “21세기는 더 이상 식민사관이 아닌 주인의 관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덕일 “해방 이후에도 식민사관은 계속되고 있다” [채널예스] 2014.11.12

『우리 안의 식민사관』 이덕일

지난 11월 3일, 서울 대학로 벙커1에서 『우리 안의 식민사관』 출간기념 이덕일 저자의 강연회가 열렸다. 책은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조선총독부 관점 vs 독립 운동가 관점’로 나눠 한사군의 위치 등을 놓고 식민사관이 주류로 통용되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이에 저자는 이날 ‘주인의 역사관과 노예의 역사관(우리 안의 식민사관)’이라는 주제로 지금의 주류 역사관을 사실로 받아들일 근거가 있는지, 그것이 잘못됐다면 누가 주입했는지 알아보자고 주장했다.

이이의 ‘10만 양병설’은 사실일까

이덕일 저자는 ‘10만 양병설’부터 꺼냈다. 임진왜란에 앞서 율곡 이이가 주장한 것으로 알려진 이것은 지금 일부 교과서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이가 1만 양병도 주장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문헌을 보면, 이이가 군대 양성을 반대한 기록은 있으나 찬성한 기록은 없다. 이이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진짜 10만 양병을 주장했다면, 그는 국방비 증액을 말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이는 복지비 증액을 말한 분이다. 국방비 증액과는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그런데 마치 10만 양병을 한 것처럼 돼 있다. 그의 제자들이 창작해서 전파한 것이다.”

그렇다면 없는 이야기가 왜 300년이 지난 교과서에 게재된 것일까. 그는 누가 교과서를 만들었는지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인조반정을 일으킨 서인이 이후 노론으로 바뀌었고, 이들 서인-노론 세력이 일제강점기는 물론 해방 이후까지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들의 역사관을 주입하고 있다.

“이들의 역사관이 식민사관이다. 이것을 관통하는 뿌리가 사대주의다. 노론의 역사관은 중화 사대주의며, 일제 식민사관은 중국 대신 일본을 넣은 것이다. 두 사관의 공통점은 주체가 남이 되고, 남을 높이는 것이다. 남을 높이는 진짜 목적이 뭘까? 내부의 권력을 장악하기 위함이다. 이 시스템을 놓치면 안 된다.”

즉 조선 후기부터 지금까지 관통하는 사관이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이라는 것. 일본(조선총독부) 관점에서 역사를 서술하고 바라보는 식민사관이 아직 청산되지 않은 것은 물론 점점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한사군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는 세계 어디에서도 한국 고대사만큼 현대적 분쟁의 소재가 된 적이 없었다며 한국 고대사는 늘 현대사였다고 말했다. 일본이 3세기 전 한국을 영구히 지배하기 위해 이것을 이용했고, 지금도 중국이 동북공정을 위해 이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의 영토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일제강점기는 영토 전쟁의 시기이면서 역사관을 가지고 치열하게 싸운 역사 전쟁의 시기였다. 영토는 외형상 찾았으나 역사관은 찾지 못했다. 우리나라가 과연 독립국가일까. 역사관이 종속된 국가가 독립국가인지 물어봐야 한다. 조선총독부 관점에서 교육 받고 있다면 진정으로 해방됐는지 물어봐야 한다.”

핵심은 두 가지다. 한사군의 위치와 임나일본부의 존재 여부다. 한사군은 한반도 최초의 국가라는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의 행정구역 중 하나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사군은 고대판 총독부인 셈이다. 그는 초등학생을 비롯해 우리가 이것을 왜 배워야 하는지 의문을 표했다. 한사군의 위치와 관련, 조선총독부는 한반도에 있었다고 주장하나 독립운동가들은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식민사학의 한일 계보를 보면, 쓰다 소키치가 식민사관의 큰 틀을 그리고, 이나바 이와기치가 세부 내용을 채웠다. 이병도 서울대 교수가 이나바 이와기치의 제자다. 여기에 맞서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역사학자였다. 역사학의 관점에서 독립운동의 동기가 나온다. 독립운동가를 말할 때 식민사학자들은 자신들은 근대학문을 한 실증주의자이고, 독립운동 역사학자들은 봉건주의자라고 주장했다. 제대로 의문제기를 하지 않아서 지금까지 이것이 통용됐다.”

독립운동가들은 나라가 왜 망했는지 문제의식을 갖고 공부를 하다 보니, 중화(유학) 사대주의 때문에 망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우리가 품어왔던 ‘단일민족론’이 좋은 뜻이 아님을 알았다.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만든 단일민족론은 중국의 관점에서 서술됐다는 것. 중국 문헌이 우리를 동이, 동호라고 우리를 일컫는데, 이는 동쪽의 ‘오랑캐’를 뜻했다. 저자는 이를 ‘겨레 위, 겨레 호’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숭명 사대주의에 빠진 사학자들이 우리가 중국 한족과 같은 민족이라며 단일민족을 내세웠다는 것.

“일본은 동아시아 학문 전통에서 변방에 있던 나라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 힘을 길러 대한제국을 점령하고 내친 김에 중국까지 넘본다. 그 과정에서 이론이 필요했고, 한국을 정벌하는 논리인 ‘정한론’을 만들었다. 일본의 학문 전통이 약하니 랑케라는 유럽 사학자를 끌어들여 역사를 왜곡했다. 실증주의라는 명목으로 한국사를 식민사관의 관점에서 보도록 만들었다.”

식민지근대화론이 지배하는 역사

해방 이후에도 식민사관은 바뀌지 않았다. 식민지를 벗어났음에도 한사군이 중국 하북성에 있었다는 주장은 힘을 얻지 못했다. 저자는 BC108년에 설치된 한사군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는 당대 역사서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역사서에는 한사군의 설치 여부를 다룬 것이 없기에 중국의 역사서나 지리서를 보면, 어디에도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었다고 서술돼 있지 않다고 그는 부연했다.

“조선총독부와 현재 한국의 식민사학자들은 한사군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가 대동강 유역이라고 주장했다. 독립운동가들은 이와 달리 중국 하북성 노룡현에 낙랑군 조선현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더 웃긴 것은 동북아역사재단에서 하버드대학에 10억 원을 들여 6권의 영문서적을 냈는데, 1권이 고조선이 아니다. 한사군이 첫째 권이다. 총독부 관점 그대로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도 없고, 삼한이 있다. 삼국 건국도 서기 4~5세기라고 하는데, 『삼국사기』상 BC 1세기에 건국됐다는 것과 다르다.”

그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역사 서술 관점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북아공정이나 일본 극우파의 역사왜곡에 대응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받는 곳임에도 조선총독부의 관점에서 책을 낸 것에 문제를 제기한 것. 내용에서도 한사군을 다섯 군데 표기해 놨으며, 낙랑을 중국어로 표기했다. 또 낙랑군을 평양이라고 게재했는데, 이는 조선총독부의 조선사편수회 주장과 일치한다는 것.

“동북아역사재단은 조선총독부의 역사관을 그대로 계승한다. 조선총독부의 조작된 사진을 그대로 인용한다. 식민사학은 고조선 중심지가 이동했다고 주장한다. 결론은 항상 같다. 조선총독부 논리 그대로다. 교과서는 연나라 사람 위만이 철기를 가져왔다고 서술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자체적으로 철기를 생산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가져왔다는 얘기다. 이는 거짓이다.”

그는 식민사관이 주장하는 한국사의 ‘정체성 논리’를 꺼냈다. 자체적으로 역사발전을 하지 못하기에 식민 지배를 받거나 해외로부터 문물과 문명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곧 식민지 근대화론의 뿌리와 통한다.

“우리에게는 예부터 자발적인 역사 발전, 문화 발전의 능력이 없다는 얘기다. 지금에서도 식민사관은 점점 심화되고 있다. 임나일본부도 허구다. 일부 학자들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중반부터 있었다는데, 일본 유적을 조사해보면 일본은 6세기까지 철을 만들지 못했다. 철도 못 만드는데 어떻게 바다를 건너 식민지를 개척한다는 이야기인지 말이 맞지 않는다. 8세기까지도 신라에서 배를 제공하지 않으면 중국까지 가지도 못했다.”

우리 안의 식민사관ㅣ이덕일 저 | 만권당
조선총독부 관점, 다른 말로 식민사관이라고 불리는 관점은 한사군의 위치가 한반도이고, 삼국사기 초기기록을 부정하고 고대에 한반도 남부를 임나일본부가 지배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런 설을 추종하는 사람들이 버젓이 ‘교수’ 직함을 달고 강단에 서서 그런 설을 당당하게 전파하고 있다.

[광복 70년을 말하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경기신문] 2015.01.01

“독립운동은 대한민국 정통성… 식민사관 척결만이 미래 담보"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처칠 총리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같은 맥락의 말을 남겼다. 역사는 왜 그토록 중요한가. 세계적 역사학자인 에드워드 헬릿 카의 말을 빌리자면 역사가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역사 왜곡에 분노하면서도 당장 하루 밥벌이가 먼저인 우리에겐 먼 이야기다. ‘국영수’가 전부였던 청소년에겐 부담스럽다. 그래서인지 한국사는 광복 70년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수난시대다.

이와 관련 도전적인 역사학자로 꼽히는 이덕일 (사)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일침을 놓는다. “역사가 서야 모든 것이 바로 선다”며 “한국사회의 식민사관 척결”만이 새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그는 특히 “독립운동가로부터 대한민국이 탄생했다”며 우리나라의 정통성 바로 세우기를 강조한다. 광복 70년, 새 역사의 출발선에서 어떻게 시작할 지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민주화를 광복 70년간 이룬 결실로 꼽지만, 최근 민주화 퇴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과거 패러다임으로 돌아가서는 안된다. 현재 민주주의의 문제는 엘리트 정치인과 그들을 선택하는 국민에게 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상당한 공부로 시대적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정계에 진출해야 한다.

그렇게 진출한 정치인이 판을 짜야하는데, (그들이 지금처럼)발전한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도 양쪽으로 갈린 잘못된 정치적 지형에서 지역감정 혹은 특정 정치 프레임에 갇혀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다. 선택의 기회를 확대하는 정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지역감정’의 역사적 출현 시기는.
해방 이후 제3공화국이다. 길지 않다. 문제는 지역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사람들은 질이 좋지 않다는 것이다. 반드시 집권하기 위해 인구가 많은 곳에서 지역감정을 일으키게 되어 있다. 그 자체가 ‘정신병’이다. 모든 사람은 다 똑같다.

사람을 놓고 지역감정, 신분, 남녀, 빈부 등의 차별적 생각을 하는 것이 어떻게 정상인가. 우리 사회가 그것을 정신병으로 인식하지 않고 오히려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고 하니, 문제다.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던지 차별을 선동하는 것에 대해 법적인 제재를 가하는 시스템을 논의해야 한다.

-2017년부터 한국사가 수능 필수 과목이 됐다. 우문이지만 ‘승자의 기록’이라 불리는 역사, 왜 공부해야 하나.
역사는 실제로 승자가 많이 남긴다. 그러나 누가 썼는 지 알고 바르게 해석하면, 이 시대의 역사학자들이 비판 능력을 갖춰 바라보면, 승자들이 은폐하려던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 역사학자들의 바른 해석을 통해 역사를 바르게 알면, 과거의 일을 통해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잘못,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국가의 정통성을 바로 세워 주체적으로 살 수 있다. 문제는 국사 교과서다. 달리 말하자면, 식민사관이 문제다. 해방된 지 70년인데도 여전히 교과서가 조선총독부 관점에서 서술돼 있다.

-역사 교과서의 문제, 구체적으로 짚어달라.
식민 통치자의 시선으로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여전히 정리 안됐다. 그렇게 보면 결국 대한민국은 탄생해서는 안되는 나라였다.

식민지배 시절에 경제발전이 이뤄져 좋다고 긍정하는 관점이 있는 한,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한, 대한민국의 탄생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꼴이다. 식민지배 긍정론을 펴자니 안먹힐 것 같아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등장시키고 이것이 우리의 정치적 좌우싸움인 것처럼 서술한다. 혼란을 일으키니 성공한 것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자. 일본이 전쟁에 나서면서 전진기지인 우리나라에 전쟁을 위한 공장 몇개를 지은 것이다. 패망하면서 끝났다. 만약 이런 논리가 근대화론이라면 경제발전을 위해 전 인류는 전쟁을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를 조금만 더 하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비논리적인 것을 받아들이는 정치인이라면 일본가서 정치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정통성은 어떻게 봐야 하나.
좌우를 막론하고 독립운동에 의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정해야 한다. 1948년을 건국절로 정하겠다는 주장은 독립운동의 정통성에서 비롯된 대한민국을 깡그리 부인하는 것이다. 1910년 나라가 망했을 때 이완용 뿐만 아니라 노론이라는 집권당이 나라를 팔아먹었다.

숙종 때 소론과 노론으로 갈라지는데 이후 250여 년 이상 노론이 세도정치, 일당 독재 체제로 망국을 향했다. 노론은 인조반정, 조선 왕이 중국 황제의 신하라는 논리를 인정했다. 조선 후기 정치, 경제, 권력을 모두 장악한 노론은 또 일본에 집단적으로 나라를 팔아 먹었다. 집권당은 나라를 팔아먹는데 가담하고 막대한 돈을 벌었다.

반면 소론, 남인 등 야당 재야 세력들은 재산과 일가족,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만주 운동을 전개했다. 이들은 1911년 삼권분립을 지향하는 민주공화제를 선택했다. 1919년 3.1절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것은 이미 1911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독립운동은 망한 대한제국을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 삼권분립에 의한 새로운 민주운동이었다. 곧, 건국의 뿌리다. 독립운동가가 없었으면 대한민국은 탄생조차 못했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통계도 없이 죽어간 20여만명의 피의 대가로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근본 뿌리를 제대로 알려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대책은.
한국의 잘못된 뿌리를 찾아보면 일제 식민지배에 갇혀 있는 것이 많다. 교육도 그렇다. 현재 교육 시스템의 원 뿌리를 찾아보면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것이다. 일본의 경성제국대학 시스템이 요체다. 일본의 제국대가 1류라면, 한국에 세운 제국대는 2류ㆍ3류가 되는 시스템이다.

왜 식민지에 대학을 세웠나. 식민지의 청년들이 희망이 전혀 없으면 독립운동에 나서기 때문에 바늘구멍을 하나 준 것이다. 이 같은 교육시스템은 상호 경쟁하며 서로 적으로 여기게 한다.

극소수만 성공할 수 있는 이 교육 시스템이 해방 후에도 전혀 청산되지 않은 결과 한국사회 행복지수가 형편없어진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수준이 바닥인 이유다. 세계 여러나라의 교육이 우리의 2, 3세가 미래사회의 동력이 될 수 있도록 키운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비인간적으로 처절하게 위로 올라가야 하는, 남은 못올라오게 만드는 정신병적인 교육 시스템이다. 이 구조 자체를 해체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수능 영어 단어 수를 몇 자 줄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 아니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돈을 많이 벌어도 공허해진다. 역사관과 척할에 따라 가치있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영구히 점령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해체하지 않은 채 발전한 사회에서 전근대적인 시스템이 충돌하며 끊임없이 문제를 만든다. 식민지배를 위한 교육 시스템을 인간을 위한 것으로 바꿔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교육과 정책 방향에 대한 판단은.
한국사 교육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선 긍정적이다. 하지만 내용은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한국사의 근현대사를 바라볼 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탄생을,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으로 흘러가면 안된다. 해방 이후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함께 껴안아야 한다.

민주화를 폄하할 경우 사회 갈등만 극도로 심해질 뿐이다. 자꾸 잘못된 인사를 요직에 진출시키려다보니 소모적 논쟁이 불필요하게 일어난다. 교과서도 특정 세력에 맞게 서술한 것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고 정통성을 갖춘, 건전한 중도 세력이 중심이 돼 좌우까지 포함하는 역사서술이 이뤄져야 한다.

-다른 역사학자들과 많이 부딪힌다. 그 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사람은 자기가 그 길을 갈 것인가, 가지 않을 것인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러나 결정했다면 그 외의 모든 것을 감수하고 가야한다. 그 과정에서 아집은 버려야 한다. 만약 내가 틀렸다고 인식할만한 사료를 제시하면 인정하고 갈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있다.

나는 그저 독립운동가 여러분들이 하셨던 말씀을 빌려서 할 뿐이다. 뒤에서 비난하는 행위도 안다. 잘못된 것에 휘둘려 내가 돌아가는 것은 곤란하다. 기본, 기초가 정확하다면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싸울 것은 싸우고 지켜야 한다.

-결정하면 지킨다는 원칙, 새해에도 이어질까.
해왔던 대로 공부하고, (내)일상이 참 단조롭다. 다만 새해에는 더 이상 식민사관이 우리사회와 같이 갈 수 없도록 하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식민사관이)청산되기보다 더 심해지고 있다. 공론화시켜서 반드시 청산해야겠다. 내 할 일은 그것이다.

우리 모두는 새해에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았으면 싶다. (그것을 위해)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내가 아닌 공동체에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대화가 있는 똘레랑스가 형성되길 바란다. 이 세상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잘못된 조상의 문제는 옹호하지 말고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날 낳아준 것은 고맙지만 정치적 행적은 찬성하지 않겠다고 단절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잘못된 역사관을 청산하고 제대로 된 역사관을 수립하는 것은 모든 사회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본다. 역사관이 바로 서면 모두 바로 선다 .

 

 

 

 

 

[인터뷰│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식민사관 학자들이 국정교과서 밀어붙여" [내일신문] 2015.02.09

역사를 좌·우 개념으로 보면 위험 … 식민사관 척결이 최우선 과제

 

 

대한민국은 해방 7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역사논쟁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역사교과서 주도권을 놓고 벌이는 날선 공방에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집권 초기 "좌편향 문제가 있다"며 '균형잡힌 교과서'를 주문했다. 이어 화답이라도 하듯 지난해 8월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청문회에서 "역사는 한가지로 가르쳐야 한다"며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불씨를 지폈다.

역사논쟁의 핵심인 한국고대사, 중국 동북공정, 식민사관 등에 대해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게 들어봤다. 인터뷰라기보다 한국역사 전반에 대한 강의였다. 역사논쟁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식민사관을 척결해야만 우리역사가 바로 설 수 있다고 했다. 해방된지 70여년이 지났지만 우리사회에 깊게 뿌리내린 식민사관과 그 추종자들을 걷어내지 않고는 올바른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몸은 해방이 되었지만, 정신은 아직도 식민사관에서 해방되지 못한 민족’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국의 역사를 언제부터, 어떤 관점에서 살펴봐야 하는가.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정확하게 재조명하지 않고는 올바른 역사를 논할 수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의 탄생은 독립운동가로부터 비롯됐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부터 우리나라 정통성을 바로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를 광복 70주년이라며 건국을 해방으로 보는데 이는 큰 오류다. 이완용 일당이 나라를 팔아먹자 전국의 수많은 유학자와 사대부들이 집단 망명을 한다.

조선 숙종 때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정치는 250여 년 이상 노론의 일당독재로 이어졌다. 인조반정과 조선 왕이 중국 황제의 신하라는 논리를 인정한 노론은 조선 후기 정치 경제 권력을 장악했다. 이 조직이 일본에 집단적으로 나라를 팔고, 막대한 돈과 권력을 대가로 받아 챙겼다.

반면 중국으로 건너간 망명자 대부분은 주자학을 유일사상으로 숭배하던 노론에 의해 이단으로 몰린 양명학자(강화학파)들이었다. 이들은 1911년 삼권분립을 지향하는 민주공화제를 선택했다. 1919년 3.1절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것도 이미 1911년에서 시작된 것으로 건국의 뿌리로 보아야 한다. 일제와 맞서 독립을 외치며 죽어간 20여만명의 피의대가로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역사를 조선총독부 역사관과, 독립운동가 역사관으로 분명히 구분해야 하는 것이다.

이 소장은 건국을 해방 이전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에 여러 증거를 제시했다. 우선 ‘우리안의 식민사관(이덕일 지음)’이라는 책을 인용했다. “중국으로 건너건 민족사학자들은 1911년 4월 중국 삼원보 추가가 뒷산인 대고산에서 경학사(耕學社)를 탄생시킨다. 낮에 밭 갈고 밤에 공부하는 민단 자치조직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정부였다. 이상룡은 훗날 ‘정부(경학사)의 규모는 자치를 명분삼고 삼권 분립은 문명국에 준거했네’라며 시로 회상했다.

이 소장은 “이 경학사가 이듬해 독립운동가들이 삼권 분립에 의한 공화제로 발전시켜 나갔다”고 설명했다. 이후 경학사는 신흥무관학교를 세웠고, 무장투쟁 못지않게 국사교육을 중요과목으로 가르쳤다. 교재는 이상룡이 지은 ‘대동역사’로 만주를 단군의 옛 강역으로 기술한 역사서였다.

만주 무장투쟁의 지도자이자 역사학자였던 이상룡 선생은 1911년 1월 5일 경북 안동 임청각을 떠나 망명길에 오르면서 망명 기록인 ‘서사록’을 썼다. 서사록에는 “심양 이남이 조선 땅으로 이미 삼한이라는 나라가 있었으며 한사군의 땅은 압록강 이서를 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고 적혀있다. 이는 조선총독부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한사군 한반도설’을 미리 예견이라도 한 것처럼 말한 대목이다.

∎역사문제를 왜 좌우 이념논쟁으로 끌고 가나.


식민사관론자들은 ‘식민지 근대화론’을 드러내놓고는 말하지 못한다. 반일 감정이 큰 국민 정서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을 등장시켜 좌-우, 진보-보수 싸움으로 부추기는 것이다. 식민사관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독립해서는 안 되는 나라 아닌가? 역사 사실에 대한 논리가 부족하니까 민족사학이나 비주류 역사학으로 몰아 부친다.

식민사관은 프랑스 역사로 치면 나치가 옳았다는 식인데, 프랑스 국민들이 나치 편을 드는 사람을 어떻게 하겠는가. 해방 후 친일 청산을 못한 결과가 오늘 한국역사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식민사학자들은 ‘신채호는 네 자로 말하면 정신병자고, 세자로 말하면 또라이’라고 매도했다. 지난 정권 공개 학술 세미나에서 한국사 관련 사업단 학자가 한 말이다. 이 단체는 한국사 관련 예산을 년 250억원씩 쓰는 곳이다. 신채호선생에 대한 평가가 이정도니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제대로 조명하겠는가. 식민사관론자들이 돈과 권력을 쥐고 활개 칠 수 있는 배경이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 역사에서 바로잡아야 할 주요 대목은 무엇인가.

우선 ‘한사군의 위치는 어디인가?’와 ‘임나일본부는 실제로 있었는가?’에서 식민사관 문제를 짚어볼 수 있다. 조선총독부가 이 두 문제를 집요하게 왜곡했기 때문이다.

한사군은 고대판 한나라 조선총독부다. 핵심은 한나라가 한사군을 어디에 설치했는가 하는 것인데,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한사군이 평양이나 대동강 유역에 존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 동북공정과 맥을 같이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부터 조선총독부 역사관과 독립운동가 역사관이 부딪히는 것이다.

국사시험에 ‘다음 중 한사군이 아닌 것은?’ 해놓고 ‘낙랑 임둔 진번 현도’ 중 하나를 빼고 부여나 동예 등을 넣었다. 학생들은 한사군에 대해 낙랑 임둔 진번 현도를 달달 외웠고, 낙랑의 위치는 평양이나 대동강 유역이라고 답해야 했다. 이는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가르치는 내용 그대로였다. 해방 후 초대 문교부 장관을 지낸 자가 조선통독부의 사랑을 받은 이병도 아닌가. 또 하나는 고대 일본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쪽에 임나일본부라는 식민통치기구를 설치하고 식민 지배를 했다는 주장인데 이것 역시 고대판 일본 총독부인 셈이다.

이는 대한제국이 일제에게 망한 후부터 110여 년간 지속된 싸움으로, 조선총독부에서 식민사관학자들에게 전승됐다. 식민사학자들은 일제식민통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임나일본부를 학교에서 직접 가르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앞세워 삼국 초기 역사를 지웠다. 대신 그 자리에 삼한이 있었다고 가르쳤다. 결국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초기 역사는 사라진 것이다.

식민사학자들은 팩트를 조작하거나 꾸준히 왜곡시켰다. 이런 현상은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국어학계서도 나타났다. 이인직의 ‘혈의누’가 대표적인 사례다. 1910년 이완용의 비서로 나라를 팔아넘기는데 비밀협상을 주도한 이인직을 선각자로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혈의 누’는 청일전쟁으로 곤경에 처한 조선처녀를 일본군이 구해줬다는 내용으로, 자주독립과 신교육 사상을 담은 정치소설이다. 여기에서 ‘자주’ 조선이 청나라 지배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로 일본 극우파의 시각이다.

∎최근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데, 청소년들한테 역사를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교학사 교과서 채택률이 거의 0에 달하자 식민사관 학자들이 나선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는냐, 검인정으로 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다만 역사 교과서를 누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나가느냐 하는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 주문대로 ‘균형 잡힌 교과서’ ‘믿을 수 있는 역사교과서’가 만들어진다면 얼마나 좋겠나. 정통성과 객관성을 담보한 역사책이라면 국정화로 하다가 검인정으로 가도 문제가 없다고 본다. 다만 우리역사의 관점의 차이를 얼마나 좁히고 팩트에 근거해 정확하게 기술해 내느냐의 문제다.

권불 5년이다. 정권이 바뀌면 폐기처분될 정책을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국민정서를 배제하고 올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는 없다. 학생 교사 등 역사 서술학자 등을 외면하고 특정 한쪽 관점만 담겠다는 것은 엄청난 저항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역사문제를 좌-우 싸움으로 몰고 가는 것은 독립운동을 부정하는 것이고 대한민국 헌법 정신을 위배하는 것이다. 독립운동과 3.1운동을 계승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결국 식민사관은 헌법을 위반하는 것으로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히게 될 것이다.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는데, 역사교육 방향을 어떻게 잡아가야 하나.

우선 정치권력 간섭에서 벗어나는 2012년 6월 19일 경기도교육청 자료집 사건을 다시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일선 역사 교사들이 만든 ‘동북아 평화를 꿈꾸다’라는 자료집에 대해 동북아역사재단이 발목을 잡았다. 언론과 동북아역사재단은 경기도교육청 자료집이 단군신화를 정사로 묘사하거나 만주의 간도를 조선 땅이라고 기술하는 등 기초적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고 지적하며 교육부가 나서 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동북아역사재단 공문에 대해 ‘우리부 불수용’으로 처리해 관심을 끌었다. 교육부가 동북아재단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은 것인데 식민사관에 대해 나름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교육 시스템의 뿌리는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것으로 비인간적인 경쟁구도다. 이 식민지배 교육시스템을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인간교육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했다. 영국 처칠 총리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최근 미국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집단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우리는 일본 정부가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주의에 의한 성 착취의 야만적 시스템 하에서 고통을 겪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일본과 다른 국가의 역사교과서 기술을 억압하려는 최근의 시도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고 밝혔다. 한국 식민사학자들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내가 전국교장연수 초청강연에서 질문을 했다. 주변국이 한국을 다시 침략한다면 제자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고. 총을 들고 싸우라 할 것인가, 이완용처럼 나라를 팔아먹으라고 할 것인가 판단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역사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