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學의 학문적 탐구 과제인 易道는 變化之道이다. 그러므로 圖書와 六甲을 통하여 曆數原理를 闡明한 『正易』이나 曆數原理를 객관화하여 卦爻에 담긴 卦象原理로 表象한 『周易』을 막론하고 變化(易)와 관련된 개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易道는 현상 사물을 超越한 形而上的 存在이다. 그러므로 變化之道인 易道는 현상 사물의 物理的 變化 法則이 아니라 人格的 存在의 次元 變化 原理이다. 그런데 次元은 세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變化를 이루는 두 세계가 先天과 后天이다. 따라서 變化之道는 先后天 變化 原理이다. 天道의 내용인 曆數 原理는 閏曆의 세계인 先天에서 正曆의 세계인 后天으로 變化하는 先后天 變化 原理이다. 그러므로 天道를 人間 主體的으로 自覺함으로써 밝혀지는 性命之理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이다. 그런데 性命之理의 自覺을 통하여 天地의 道를 人間 主體的으로 自覺한 존재는 聖人과 君子이다. 그러므로 先后天 變化 原理는 聖人과 君子의 문제로 집약되어진다. 즉 先后天 變化 原理는 곧 天變人化 原理인 것이다 聖人은 先天的 存在로 後天的 存在인 君子를 위하여 天道를 主體的으로 自覺하여 그것을 밝히는 동시에 人道를 밝혀서 君子를 기르는 存在이다. 즉 聖人은 聖人之道를 담은 經典을 著作하여 後世의 君子들을 위하여 天道와 人道를 闡明하는 존재이다. 반면에 君子는 聖人이 남긴 經典을 통하여 人道를 主體的으로 自覺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實踐 具現하는 存在이다. 즉 先天的 存在인 聖人은 后天 世界를 밝히고 後天的 存在인 君子는 先天의 聖人이 미리 밝힌 세계를 實踐 具現하는 것이다. 따라서 先后天 變化 原理는 先天的 存在인 聖人과 後天的 存在인 君子의 合德 原理이다. 聖人과 君子의 合德은 君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君子가 聖人이 著作한 經典을 통하여 自身의 本來性의 自覺과 더불어 그것과 一體化된 天道를 自覺하여 그것을 現實에서 實踐具現함으로써 聖人과 君子가 合德되는 동시에 先天과 后天이 合德된다. 즉 天地合德, 天人合德, 神人合德, 神物合德이 聖人과 君子의 合德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주제분야 : 東洋哲學, 易學, 儒家 哲學. 주 제 어 : 易道, 變化之道, 圖書와 卦爻, 先天과 后天, 聖人과 君子 1. 序論 易學의 학문적 탐구 과제인 易道는 變化之道(變化原理)이다. 그러므로 圖書와 六甲을 통하여 曆數原理를 闡明한 『正易』이나 曆數原理를 객관화하여 卦爻에 담긴 卦象原理로 表象한 『周易』을 막론하고 變化(易)와 관련된 개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그런데 易道는 현상 사물을 超越한 形而上的 存在이기 때문에 현상 사물의 物理的 變化 法則이 아니라 인격적 존재의 次元 變化 原理이다. 즉 하나의 次元에서 다른 次元으로의 變化 原理가 바로 易道인 것이다. 次元은 세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變化를 이루는 두 세계를 易學에서는 先天과 后天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易道는 先后天 變化 原理이다. 『正易』에서는 “圖書原理는 后天에서 先天으로의 變化이며, 天地의 道는 旣濟에서 未濟로의 變化이다.”고 하여 圖書 原理를 先后天 變化 原理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先后天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즉 “后天은 先天에서 政事하니 그것을 나타내는 水火旣濟卦이며, 先天은 后天에서 政事하니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火水未濟卦이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旣濟卦와 未濟卦의 내용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임을 알 수 있다. 『周易』에서 先后天이 언급된 것은 “(聖人이) 天보다 먼저 (말씀으로 그 原理를 闡明)하여도 天이 (聖人의 말씀을) 어기지 않으며, (君子가 聖人의 말씀을 통하여 밝혀진 天地의 道를 쫓아서) 天보다 뒤에 하여도 天時를 받들어 行한다.”는 단 한 곳뿐이다. 그러나 “先否後喜”, “先迷後得”, “先號咷而後笑” 등과 같은 先后天 변화를 상징하는 개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重卦를 구성하는 內外卦의 關係, 上經과 下經의 關係, 三易 八卦圖의 關係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가 전제되어 있다. 易道의 내용이 先后天 變化 原理임에도 불구하고 先后天 原理가 易學의 중심 문제로 제기된 것은 宋代의 邵康節에 이르러서이다. 그는 易學을 宓犧의 先天學과 文王의 後天學으로 구분하고 說卦의 第三章을 八卦에 의하여 圖象化하여 宓犧 先天 八卦圖로 그리고 第五章을 八卦에 의하여 圖象化하여 文王 後天 八卦圖로 규정하였다. 邵康節에 의하여 제기되어진 先后天論은 그대로 易學界에 受容되어 오늘날에도 그의 理論을 定說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邵康節의 先后天 原理는 易學의 근본문제인 曆數原理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하면 邵康節의 先后天 原理는 先后天 原理의 本來的 意義를 드러내어 밝히는데 실패하였다. 이처럼 先后天 原理가 올바로 이해해되어지지 못하였다는 사실은 곧 漢代 以後의 易學史가 易道 自體를 문제삼아서 그 본래적 의의를 밝혀내지 못하였음을 뜻한다. 그런데 天道의 내용인 曆數 原理가 先后天 變化 原理이기 때문에 그것을 人間 主體的으로 自覺함으로써 밝혀지는 性命之理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天地의 道가 인간의 性命之理로 主體化되기 때문이다. 性命之理의 自覺을 통하여 天地의 道를 人間 主體的으로 自覺한 존재는 聖人과 君子이다. 그러므로 先后天 變化 原理는 聖人과 君子의 문제로 집약되어진다. 즉 先后天 變化 原理는 곧 天變人化 原理인 것이다. 『正易』에서는 “天地가 日月이 없으며 빈 껍데기와 같으며, 日月이 至人이 아니면 헛된 그림자와 같다.”라고 하여 天道가 결국 聖人과 君子의 인간 문제로 集約됨을 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周易』에서도 “진실로 그 사람이 아니면 易道가 헛되이 행하여지지 않는다.”라고 하여 天道의 先后天 變化가 인간의 先后天 變化의 문제임을 논하고 있다. 이에 本稿에서는 다시 先后天 變化 原理를 문제삼아서 漢代 以後 드러내지 못했던 本來的 意義를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하여 제2장에서 邵翁의 先后天論을 살펴보고 제3장에서 圖書와 卦爻의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고찰한 후에 제4장에서 先后天의 主體的 存在인 聖人과 君子를 통하여 先后天 變化 原理를 고찰한 후에 제5장에서 君子의 性命之理를 중심으로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살펴보고 제6장에서 結論을 도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하여 先后天 變化 原理의 本來的 意義가 밝혀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서 曆數原理의 本來的 意義를 이해할 수 있는 土臺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된다. 2. 邵翁의 先后天論 漢代 以後 先后天의 문제를 理論 體系化하여 본격적으로 제기한 學者는 宋代의 邵雍이다. 그는 先后天을 學問과 연관시켜서 先天 易學과 後天 易學으로 규정하였는데 先后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즉 “先天의 學은 心이고 後天의 學은 그 자취이다..”는 것이다. 여기서 心은 天地의 心이자 聖人의 心이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天은 하나를 中으로 삼아 體用이 나누어지고 사람은 마음으로부터 經綸이 일어난다. 天人에 어찌 둘의 뜻이 있으리요? 道는 헛되이 행하여지지 않으며 다만 人間에게 있다.”는 주장에서 잘 드러난다. 그런데 “天地의 心은 萬物을 生하는 根本이다.” 그러므로 天地의 心과 하나인 人間의 心은 곧 天地 萬物의 存在 根據가 된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의 몸은 天地가 있는 연후에 비로소 존재하지만 心은 天地가 나타나기 이전부터 있어서 天地는 나로부터 나온 것이다.”고 하였다. 萬物을 生成하는 근본으로서의 天地의 心은 곧 太極이다. 그러므로 人間의 마음 역시 太極이다. 따라서 萬物을 생성하는 근본으로서의 太極이 體가 되어 萬物의 生成이라는 用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先天學은 體인 心을 표상한 學問이며, 後天學은 그 用인 心의 자취를 表象한 學問이라고 하겠다. 즉 文字가 없이 오직 八卦, 重卦를 그려서 그 本體인 心, 太極을 表象한 伏羲의 易學은 先天學이며, 伏羲가 그린 圖象에 言辭를 붙여서 太極의 四象 作用을 表象한 文王의 易學은 後天學이다. 邵翁이 자신의 先后天論을 제기하는 根據는 十翼의 說卦篇 第三章과 第五章으로 第三章을 八卦에 의하여 圖象化하여 伏犧 先天 八卦圖로 규정하고 第五章을 八卦에 의하여 圖象化하여 文王 后天 八卦圖로 규정하였다. 그리고 先天 八卦圖를 설명하면서 “先天의 學은 心法이다. 그러므로 圖가 모두 中으로부터 시작된다. 萬化, 萬事는 心으로부터 生한다. 圖에 비록 文字가 없으나 내가 종일 말을 해도 이 圖象을 벗어나지 않는다. 대개 天地 萬物의 理가 그 가운데 모두 있다. 先天圖는 中을 중심으로 순환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中이 心 즉 太極임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즉 “天地의 根本은 中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므로 乾坤이 자주 변해도 中을 떠나지 않는다. 사람은 天地의 中에 거쳐하며 心은 사람의 가운데 거쳐한다.”는 것이다. 文王 八卦圖에 대하여서는 “至極하도다, 文王의 易을 지음이여! 그 天地의 用을 얻었음인가? 그러므로 乾坤이 작용하여 地天泰가 되고 坎離가 작용하여 水火旣濟가 된다...이로써 天時에 應하고 地方에 應하였다. 王의 治經大法이 이로부터 다 드러난다.”고 하였다. 그런데 邵雍의 先后天論을 보면 先天과 后天을 作易者인 伏犧와 文王을 중심으로 그들의 學問을 구분하는 개념으로 사용하였을 뿐 先后天의 存在論的 根據를 전혀 밝히지 못하였다. 다시 말하면 先后天의 문제를 天道의 내용인 曆數原理의 측면에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先后天論을 통하여서는 圖書原理와 卦爻原理를 論理性이 일관되게 이해할 수 없다. 邵翁 역시 漢代 以後의 易學者들과 마찬가지로 易道 自體를 문제삼아서 그 本來的 意義를 밝히지 못하고 현상 사물에 매달려서 그 屬性을 파악하는데 急急하였던 것이다. 그 점은 그의 數와 象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君子는 易經의 象, 數, 辭, 意를 玩味해야 한다. 意가 있으면 반드시 言이 있고, 言이 있으면 반드시 象이 있으며, 象이 있으면 반드시 數가 있다. 象이 生하면 言이 드러나며, 言이 드러나면 意가 드러난다. 象數는 물고기를 잡는 통발과 토끼를 잡는 그물과 같으며, 言意는 물고기와 토끼와 같다. 물고기와 토끼를 얻으면 통발과 그물은 잊어도 괜찮다. 그러나 통발과 그물을 버리고 물고기와 토끼를 잡고자 한다면 그것을 얻음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그가 象과 數를 형상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象은 形으로부터 이루어지며, 數는 質로부터 이루어지고, 名은 言으로부터 형성되며, 意는 그 用에서 이루어진다. 天下의 數는 理致로부터 이루어지니 理致를 어기면 術數에 빠진다. 세상 사람들이 數를 가지고 術數에 빠지기 때문에 理致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象과 數를 形而下的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비록 理致를 말하고 있지만 自然 科學的 法則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3. 圖書와 卦爻의 先后天 變化 原理 『正易』에서는 正易 八卦圖를 제시하여 易學 본래의 後天 세계를 드러내었을 뿐만 아니라 先后天 變化 原理가 易道의 본래적 내용임을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正易 八卦圖에 의하면 後天 세계는 神物, 神人, 天地, 天人이 合德된 도덕적 세계이다. 그것은 形而下의 현상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陰陽의 分離 生長이 극단에 이르러서 그 次元이 전환됨으로써 인간의 道德性을 매개로 형이상의 세계와 형이하의 세계가 合德된 세계이다. 즉 伏羲 八卦圖에 의하여 표상된 始生의 현상 세계가 文王 八卦圖에 의하여 표상된 인간의 本來性을 중심으로 구축된 道德 世界로 生長하여 正易 八卦圖에 의하여 표상된 인간의 本來性을 매개로 形而上과 形而下의 세계가 合德된 세계가 된다. 그러므로 三易 八卦圖를 중심으로 先后天 變化를 살펴보면 形而下의 萬物的 次元에서 形而上의 道德的 次元으로의 變化가 바로 先后天 變化임을 알 수 있다. 또한 『正易』에서는 “圖書의 原理는 後天에서 先天으로서의 變化 原理를 표상한다.”고 논하고 이어서 “河圖는 未濟의 象으로 倒生逆成하니 先天의 太極이 드러나고, 洛書는 旣濟의 數로 逆生倒成하니 後天의 无極에 이른다.”라고 하여 圖書 原理가 곧 先后天 變化 原理임을 밝히고 있다. 즉 圖書가 나타내는 倒逆의 生成 作用 原理가 바로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變化와 後天에서 先天으로의 變化 原理인 것이다. 그러므로 太陰과 太陽의 倒逆 生成 作用을 논하면서도 그것을 先后天의 變化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圖書에 의하여 표상된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살펴보자. 曆數 原理의 내용은 十五 尊空 原理를 體로 하여 이루어지는 四曆 變化 原理이다. 즉 十五 天地의 合德에 의하여 日月이 分生하고 分生한 日月이 成長하여 合德함으로써 十五 天地가 尊空 歸體되는 것이 曆數原理의 내용이다. 이러한 曆數原理를 四曆 變化 原理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用九 原曆에서 用八 閏曆이 出生하여 用七 閏曆으로 成長하고 그것이 다시 用六 正曆으로 변화한다. 그런데 用八曆과 用七曆은 각각 陰陽으로 나누어지는 閏曆이며 用六曆은 陰陽이 合德된 中正曆이다. 그것은 用九曆에서 用八曆으로 用八曆에서 用七曆으로의 變化와 用七曆에서 用六曆으로서의 變化가 그 質이 다름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用八曆과 用七曆이 運行하는 세계와 用六曆이 운행하는 세계가 質的으로 다름을 의미한다. 『正曆』에서는 用八 閏曆과 用七 閏曆의 時代를 先天으로 그리고 用六 正曆의 시대를 后天으로 구분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先天은 五를 體로 하여 六에서 九를 향하여 逆으로 작용하는 用八의 세계이다. 陰陽이 어그러지기 때문에 윤달을 사용하여 陰陽을 合德시킨다. 後天은 十을 體로 하여 九에서 五를 향하여 順으로 작용하는 用六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陰陽이 合德되어 中正이 된다. 위의 내용을 보면 先天은 用八의 閏曆이 운행되어지는 세계이다. 用八曆은 三白七十五度의 原曆에서 分生한 三百六十六度의 閏曆으로 三百五十四度의 陰閏曆과는 十二度의 差異가 있다. 그것은 日月의 運行과 陰陽의 曆數가 一致하지 않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十二度가 모여서 한 달이 되는 약 三年에 한 번씩 윤달을 넣어서 陰陽의 閏曆을 一致시킨다. 用八曆이 生長한 三百六十五와 四分度之一日의 用七曆 역시 陰陽이 分離된 閏曆이기 때문에 윤달을 사용하여 陰陽의 曆을 一致시킨다. 이처럼 陰陽의 曆이 서로 나누어져서 運行하는 閏曆 時代가 先天이다. 반면에 用七曆이 長成한 用六曆은 三百六十의 中正曆이다. 따라서 인위적인 조절에 의하여 陰陽을 合德시킬 필요가 없다. 이처럼 陰陽 合德曆인 正曆이 運行되어지는 세계를 后天이라고 한다. 따라서 曆數原理의 내용인 四曆 變化 原理는 先天에서 后天으로 變化하는 先后天 變化 原理이다. 그런데 先天의 閏曆과 后天의 正曆은 그 體用이 다르다. 즉 先天은 五를 體로 하여 이루어지는 逆生倒成 作用의 世界이며, 后天은 十을 體로 하여 이루어지는 倒生逆成 作用의 세계이다. 즉 先天은 逆生倒成의 太陰 政事가 중심이며, 后天은 倒生逆成의 太陽 政事가 중심이다. 이러한 先后天의 體用에 대하여 『正易』에서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先天은 方을 體로 하여 圓이 用이기 때문에 二十七朔만에 윤달을 사용한다. 後天은 圓을 體로 하여 方을 用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三百六十의 正曆이 운행되어져 바르다. 위의 引用文을 보면 先天은 方을 體로 하여 圓으로 작용하며, 后天은 圓를 體로 하여 方으로 작용함을 알 수 있다. 圓과 方은 道德의 측면에서는 天道가 圓이며 地德이 方이고, 度數의 측면에서는 天度가 圓이며 地數가 方이다. 그러므로 先天은 地德, 地數가 體가 되어 天度, 天道가 작용하는 시대이며, 后天은 天道, 天度가 體가 되어 地德, 地數가 작용하는 시대이다. 따라서 先后天 變化는 곧 體用의 變化임을 알 수 있다. 先后天의 體用 變化를 四曆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先天은 三百六十의 中正曆이 體가 되고 十五 天地가 각각 九와 六으로 나누어져서 작용하게 된다. 즉 九度는 律呂 度數가 되어 曆數 生成의 마디를 규정하고 六度는 閏度數가 되어 用八曆을 형성시킨다. 이 用八曆이 生長하여 다시 用七의 閏曆이 이루어진다. 반면에 后天에서는 九와 六이 合德되면서 十五가 體가 되고 三百六十의 中正曆이 用이 된다. 즉 先天은 體五用六의 逆生倒成 作用이 중심이 된 시대로 體十用九 作用과는 나누어져서 작용하나, 后天은 體十用九의 倒生逆成 작용이 중심이 된 시대로 體五用六 作用과 合德되어 作用한다. 그런데 十五 天地의 작용이 物理的 天地로 나타내고 天地의 合德에 의하여 日月의 작용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先后天 變化는 日月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正易』에서는 “天地는 日月이 없으면 빈 껍데기와 같다.”고 하였다. 본래 太陰은 時間에 따라서 盈虛消長을 반복하지만 太陽은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恒常하다. 그것은 太陰과 太陽의 性情이 다르기 때문이다. 즉 “太陽이 恒常한 것은 性品이 완전하여 理致가 곧기 때문이고 太陰이 消長하는 것은 數가 채워짐에 따라서 氣가 비워지기 때문이다.” 太陰은 氣가 중심이 되어 작용하며, 太陽은 理가 중심이 되어 작용하기 때문에 太陰은 盈虛消長하나 太陽은 恒常한 것이다. 이러한 太陰과 太陽의 작용을 『正易』에서는 先天과 后天으로 규정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盈虛는 氣의 작용으로 先天이며, 消長은 理의 작용으로 后天이다. 后天의 道는 屈伸하며, 先天의 政은 進退한다. 進退의 政事는 달의 가득 차서 비워지는 현상으로 나타나며, 屈伸의 道는 달의 소멸되었다가 자라나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위의 내용을 보면 先天은 氣가 중심이 되어 작용하며, 后天은 理가 중심이 되어 작용함을 알 수 있다. 先天은 나아갔다 물러나는 政事로 그것은 달이 滿月이 되었다가 작아져서 그 모습이 사라지는 현상으로 나타나며, 后天은 굽혔다가 펴는 政事로 그것은 달이 작아졌다가 자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先天은 后天에서 政事하고 后天은 先天에서 政事한다.” 그러므로 先天의 氣의 作用에 의하여 十六一에서 三十日까지의 盈虛하는 후보름 현상이 나타나며, 后天의 理의 작용에 의하여 초하루에서 十五日까지의 消長하는 선보름 현상이 나타난다. 이러한 日月의 作用에 의하여 時候氣節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正易』에서는 天地와 日月의 德分으로 朞數가 生成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天地와 日月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先后天 變化는 인간이 아니면 완성되지 못한다. 『正易』에서 “日月이 聖人과 君子라는 이상적 인격체가 아니면 헛된 그림자와 같다”.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따라서 天地 日月의 先后天 變化原理를 人間 主體的으로 自覺하였을 때 先后天 變化 原理는 學易 君子의 心性 內面에서 이루어지는 聖人과 君子의 合德 原理가 된다. 즉 先天은 聖人에 의하여 天道와 人道가 闡明되어짐으로써 君子가 길러지는 세계이며, 後天은 聖人이 이미 밝혀 놓은 天道가 君子에 의하여 人道로 실천 구현되어지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先后天의 變化는 聖人의 세계에서 君子의 세계로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聖人은 이미 자신의 天命을 奉行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에 先后天 變化의 문제는 君子의 문제로 귀결된다. 즉 자신의 本來性을 自覺하기 위하여 易道를 배우고 익히는 君子의 세계가 先天이며, 學易을 통하여 本來性을 自覺하고 더불어 天地之道를 自覺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歷史的 使命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君子의 세계가 後天이다. 따라서 先后天 變化는 물리적 세계의 변화가 아니라 聖人이 밝힌 道가 君子에 의하여 自覺되어져서 君子의 德으로 변화하는 것이다. 즉 君子의 마음이 聖人의 道와 일치됨으로써 그것이 德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로 先后天 變化인 것이다. 그러므로 『正易』에서는 先后天 變化를 學易 君子의 관점에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陰을 抑制하고 陽을 받들어 善養하는 것은 先天의 心法을 배우는 것이며, 陽을 고르고 陰을 맞춤은 것은 后天의 性理의 道이다. 先天은 心法을 배우고 익히는 때로 氣를 抑制하고 理를 尊養하여 理氣가 合德되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后天은 이미 陰陽이 合德된 세계이기 때문에 性이 드러난 情이 그대로 理에 맞는다. 지금까지 圖書를 중심으로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다음에는 圖書가 合德된 六甲 原理의 측면에서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살펴보자. 『正易』에서는 先后天 變化를 九二錯綜과 三五錯綜으로 나타내고 있다. 九二錯綜과 三五錯綜을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六甲의 構造와 性格에 대하여 살펴보자. 六甲 度數에는 先天을 표상하는 三十六度와 后天을 표상하는 二十四度가 合德되어 있다. 이처럼 先天과 后天이 三十六度와 二十四度로 구분되어지는 까닭은 用九用六 原理에 의한 것이다. 즉 用九 原理를 표상하는 九數에 四象 作用 原理를 표상하는 四數를 相乘하여 三十六이 형성되며, 用六原理를 표상하는 六數에 四象 作用 原理를 표상하는 四數를 相乘하여 二十四가 형성된다. 이 三十六度와 二十四度가 合德됨으로써 六十度數가 형성된다. 따라서 六甲 度數는 用九用六의 合德에 의한 十五 天地의 合德體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六甲 度數를 통하여 표상된 六甲原理를 神明原理라고 한다. 神明은 天地의 合德體로서의 天地의 人格性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六甲度數에서 先天의 三十六度와 后天의 二十四度는 庚子를 중심으로 구분된다. 즉 甲子에서 己亥까지의 三十六度는 天道를, 庚子에서 癸亥까지의 二十四度는 地德의 作用을 표상한다. 그러므로 甲子에서 庚子로 變化하는 것이 先天에서 后天으로의 變化이며, 庚子에서 甲子로 변화하는 것이 后天에서 先天으로의 變化이다. 이러한 先后天 變化를 甲子와 庚子를 중심으로 나타낸 것이 九二 錯綜 原理와 三五 錯綜 原理이다. 즉 甲子의 앞선 세 度數인 先甲三日과 뒤의 세 度數인 後甲三日을 통하여 天道를 규정하고, 庚子의 앞선 세 度數인 先庚三日과 뒤의 세 度數인 後庚三日을 통하여 地德을 규정한 것이다. 『周易』의 山風蠱卦에서는 “蠱는 크게 亨通하니 大川을 건넘이 이로우니 先甲三日하고 後甲三日이니라.”라고 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孔子는 “先甲三日 後甲三日은 마친 즉 다시 시작하여 그침이 없는 天道의 運行 原理를 나타낸다.”라고 하였다. 이는 先后甲三日이 天道를 표상하고 있음을 뜻한 것이다. 반면에 重風巽卦에서는 “바르면 吉하여 후회가 없어서 이롭지 않음이 없다. 처음이 없고 끝이 있으니 先庚三日하며 後庚三日이면 吉하리라.”고 하였다. 先后庚三日을 終卽有始와 달리 无初有終으로 규정한 것은 先后庚三日이 地道를 표상함을 뜻한다. 重地坤卦의 文言에서는 “陰이 비록 아름다움이 있으나 그것을 머금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니 王天下의 事業에 참여하여도 감히 스스로 완성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地道이며 妻道이며 臣道이기 때문이다. 地道는 감히 스스로 완성하지 않으며 대신하여 그 마침이 있을 따름이다.”고 하여 地道가 无初有終의 原理임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 보면 先后庚三日은 地道를 표상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先甲三日은 辛酉, 壬戌, 癸亥이며 後甲三日는 乙丑, 丙寅, 丁卯이고 先庚三日은 丁酉, 戊戌, 己亥이며 後庚三日은 辛丑, 壬寅, 丁卯이다. 先後甲三日과 先後庚三日의 관계를 살펴보면 先甲三日의 시작은 後庚三日의 끝이며 先庚三日의 시작 역시 後甲三日의 끝이다. 그러므로 甲子에서 庚子로의 변화는 辛酉에서 丁酉로의 變化이다. 그것은 先天에서 后天으로의 변화로 그것을 數에 의하여 나타내면 辛九가 丁二로 변화함으로 이를 九二錯綜이라고 한다. 반면에 後庚三日의 다음 干支는 甲辰이며 後甲三日의 다음 干支는 戊辰으로 庚子에서 甲子로의 변화는 甲辰에서 戊辰으로의 변화이다. 이를 數를 통하여 나타내면 甲三에서 戊五로의 변화로 그것을 三五 錯綜이라고 한다. 이러한 三五錯綜은 곧 后天에서 先天으로의 변화이다. 九二 錯綜 原理와 三五錯綜 原理는 閏曆이 正曆으로 변화하는 원리와 原曆에서 閏曆이 生長하는 原理로 그것은 歲首의 변화로 나타난다. 즉 九二錯綜 原理에 의하여 先天의 寅月 歲首가 卯月 歲首로 변화함으로써 正曆이 운행되는 後天 세계가 전개된다. 반면에 三五 錯綜 原理에 의하여 後天의 正曆이 운행되어지는 세계를 목표로 한 寅月 歲首의 先天 閏曆 세계가 전개된다. 이처럼 九二 錯綜에 의하여 寅月 歲首가 卯月 歲首로 바뀌고 三五 錯綜에 의하여 寅月 歲首가 형성되는 것은 三五 錯綜과 九二 錯綜이 月建을 세우는 歲首 原理에 있어서는 三元頭 原理와 五元頭 原理임을 뜻한다. 즉 三五 錯綜 原理에 의하여 先天의 甲己年에는 三元頭 原理에 의하여 甲子, 乙丑을 거쳐서 丙寅이 歲首가 된다. 반면에 九二 錯綜 原理에 의하여 後天의 己甲年에는 癸亥, 甲子, 乙丑, 丙寅을 거쳐서 丁卯가 歲首가 된다. 『正易』에서는 先后天을 歲首 原理인 三元과 五元과 연관시켜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水火旣濟여 火水未濟로다. 旣濟未濟여 天地三元이로다. 未濟旣濟여 地天五元이로다. 天地地天이여 三元五元이로다. 이를 보면 旣濟에서 未濟로의 변화가 三元 原理에 의하여 이루어지며, 未濟에서 旣濟로의 변화가 五元 原理에 의하여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三元 原理는 天地否의 先天 原理이며, 五元 原理는 地天泰의 後天 原理이다. 즉 先天은 三元數 原理에 의하여 형성된 寅月 歲首의 세계이며, 後天은 五元數 原理에 의하여 형성된 卯月 歲首의 세계이다. 그러므로 『正易』에서는 九二 錯綜과 五元數를 연관시켜서 논하고 三五 錯綜과 三元數를 연관시켜서 논하고 있다. 歲首의 變化는 晦朔弦望의 변화를 초래한다. 즉 辛酉가 丁酉로 변화하는 九二 錯綜 原理에 의하여 陰陽의 閏曆이 合德됨으로써 先天의 子午 復上月이 癸未, 癸丑 초하루의 皇中月로 바뀐다. 반면에 甲辰이 戊辰으로 변화하는 三五 錯綜 原理에 의하여 戊辰, 戊戌 초하루의 復上月이 운행되어진다. 九二錯綜 原理에 의하여 先天의 戊辰 초하루에서 壬午의 보름 다음에 이어지는 癸未 十六日에서 丁酉 그믐까지의 十五度가 尊空 歸體되어 戊戌이 第十六日이 되면서 壬子가 그믐이 되고 癸丑이 초하루가 된다. 그리고 丁卯가 十五일 戊辰이 十六日이 되고 壬午가 그믐이 된다. 그러므로 癸未가 다시 초하루가 되고 丁酉가 보름이 되면서 戊戌은 十六日이 된다. 반면에 三五錯綜 原理에 의하여 戊辰 초하루에 壬午 보름 癸未 十六日에 丁酉 그믐이 된다. 그리고 戊戌 초하루에 壬子가 보름 癸丑이 十六日이 되며 丁卯가 그믐이 된다. 그런데 天地 日月이 閏曆의 先天과 正曆의 後天으로 구분되어져서 先天에서 後天으로 변화하는 까닭은 만물을 낳아 길러서 완성시키고자 하는 天地의 本性에 의한 것이다. 十五 天地의 自己 分化에 의하여 陰陽이 分生하여 生長하는 때가 先天으로 그것이 四曆의 變化에서는 閏曆의 出生과 生長으로 표상된다. 그리고 分生한 陰陽이 成長하여 合德됨으로써 十五 天地의 뜻을 代行하고 十五 天地는 다시 空의 위치로 돌아가서 十五가 尊空된 세계가 後天으로 그것이 四曆 變化에 있어서는 陰陽 合德曆인 正曆이 운행되어지는 세계이다. 그런데 閏曆과 正曆의 관계를 보면 正曆을 바탕으로 閏曆이 始生하고 閏曆이 長成하여 正曆이 된다. 즉 後天에서 先天으로서의 變化가 閏曆의 始生이며,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變化가 閏曆에서 正曆으로의 변화이다. 이러한 先后天의 관계를 『正易』에서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先天은 後天의 政事로 나타나니 그것을 나타내는 卦가 水火旣濟卦이고, 後天은 先天의 政事로 나타나니 그것을 나타내는 卦가 火水未濟卦이다. 위의 내용을 보면 旣濟卦와 未濟卦의 관계를 통하여 先后天의 關係를 알 수 있다. 즉 後天 原理에 근거하여 先天의 政事가 이루어지고 先天 原理에 근거하여 後天의 政事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先后天 變化 原理를 卦象으로 표상하고 있는 것이 旣濟卦와 未濟卦이다. 앞에서 圖書를 중심으로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어서 曆數原理를 객관화하여 卦象으로 표상한 卦爻를 중심으로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살펴보자. 『周易』에서는 六爻 重卦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즉 “六爻 重卦는 終始 變化 原理를 始終의 時位에 의하여 나타내고 있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易의 글됨이 始에 근원하여 終에 도달하는 것이 그 本質이다.”고 하였다. 이를 보면 卦爻는 終始 變化 原理와 始終 變化 原理를 表象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終始 變化 原理를 始終의 變化 原理로 표상한 것이 六爻 重卦인 것이다. 그런데 始는 先天을 나타내며, 終은 後天을 나타낸다. 따라서 終始 變化 原理는 後天에서 先天으로의 變化 原理이며, 始終 變化 原理는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變化 原理이다. 이렇게 보면 卦爻 易學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가 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終에서 始로의 變化 즉 後天에서 先天으로의 變化를 生이라고 하며, 始에서 終으로의 變化 즉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變化를 成이라고 한다. 따라서 天地가 그 德性에 의하여 天道를 운행시킴으로써 만물을 생성하는 현상은 곧 先后天 變化에 다름 아니다. 『周易』에서 “天地의 위대한 德性은 만물을 낳고 길러주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동시에 “萬物의 生成이 곧 變化”라고 규정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면 卦爻에서는 先后天 變化 原理를 어떻게 표상하고 있는지 三易 八卦圖와 重卦 및 序卦 原理를 중심으로 살펴보자. 三易 八卦圖는 文王 八卦圖가 표상하는 人間 本來性을 상징하는 五皇極을 중심으로 先天을 나타내는 伏羲 八卦圖와 後天을 나타내는 正易 八卦圖로 구성된다. 이러한 三易 八卦圖의 관계는 伏羲 八卦圖가 生의 원리를 표상하는 반면에 文王 八卦圖는 長의 原理를 표상하고 正易 八卦圖는 成의 원리를 표상함으로써 繼代 關係를 이룬다. 즉 伏羲 八卦圖의 세계에서 文王 八卦圖의 세계를 거쳐서 正易 八卦圖의 세계로 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文王 八卦圖는 伏羲 八卦圖가 나타내는 先天에서 正易 八卦圖가 나타내는 後天으로의 변화 과정을 나타내고 있다. 따라서 三易 八卦圖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가 근본 내용임을 알 수 있다. 六爻 重卦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가 근본 내용이다. 하나의 重卦에서 內卦는 先天을 표상하며, 外卦는 後天을 상징한다. 그런데 內卦의 終은 三爻이며 外卦의 始는 四爻이다. 그러므로 內卦에서 外卦로의 變化는 三爻에서 四爻로 변화하는 終始 變化이다. 반면에 外卦의 終은 上爻이며 內卦의 始는 初爻이다. 그러므로 上爻에서 初爻로의 변화를 통하여 外卦에서 內卦로의 變化인 終始 變化가 표상된다. 이렇게 보면 內卦에서 外卦로의 변화를 통하여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변화가 표상되며, 外卦에서 內卦로의 변화를 통하여 後天에서 先天으로의 변화가 표상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卦爻 易學은 易道를 空間性의 原理로 표상하기 때문에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변화를 나타내는 三爻에서 四爻로의 變化가 중심 내용이다. 『周易』에서 “그 道가 甚大하여 曲盡하게 萬物을 生成하여 하나도 남김이 없으나, (君子가) 그 終始를 두려움으로 대하는 까닭은 허물이 없고자 함이니 이를 일러 易道라고 한다.”라고 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六十四卦의 序卦 原理 역시 先后天의 終始 變化 原理를 표상하고 있다. 그런데 六爻의 構成 原理와 六十四卦의 序卦 原理가 동일하다. 따라서 六十四卦의 序卦를 六爻卦의 構成 原理에 의하여 이해할 수 있다. 六十四卦를 六爻卦로 還元하여 나타내면 水天需, 天水訟卦는 初爻가 되며, 澤雷隨, 山風蠱卦는 二爻가 되고, 重水坎, 重火離卦는 三爻가 되며, 山澤損, 風雷益卦는 四爻가 되고, 重風巽, 重澤兌卦는 五爻가 되며, 水天需, 天水訟卦는 다시 上爻가 된다. 그런데 三爻를 나타내는 坎離와 四爻를 나타내는 損益卦의 사이에 家人睽蹇解의 陰陽 合德門이 있어서 陰陽의 合德과 分生을 표상하고 있으며, 四爻를 나타내는 損益과 五爻를 나타내는 巽兌 사이에 困井革鼎의 胞胎宮이 있어서 陰陽이 合德됨으로써 형성된 새로운 生命을 표상하고 있다. 즉 坎離에서 損益卦를 통하여 終始 變化 原理가 陰陽의 合德 原理로 표상되고 있는 것이다. 4. 先後天의 主體的 存在인 聖人과 君子. 앞에서 曆數 原理의 내용이 先后天 變化 原理이며, 卦爻 原理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를 根據로 하여 형성되었음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曆數 原理를 卦象 原理로 표상한 까닭은 人道를 드러내어 밝히고자 함이다. 다시 말하면 曆數 原理인 時間性의 原理를 空間性의 原理로 客體化하여 卦象으로 표상한 까닭이 人道를 드러내어 밝히고자 함이다. 曆數 變化 原理는 先后天 變化 原理가 그 내용이다. 따라서 曆數 原理를 客體化하여 卦象으로 표상한 卦爻는 先后天 變化 原理를 人道로 표상한 것이라고 하겠다. 卦爻에 의하여 易道를 표상하고 있는 『周易』에서는 先天과 後天을 人間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天보다 앞서 하여도 天이 어기지 않으며, 天보다 뒤에 하여 天時를 奉行한다. 여기서 先天과 後天은 앞의 세계와 뒤의 세계라는 의미가 아니라 天道의 運行에 앞서 그것을 原理로 밝힘과 이미 밝혀진 天道를 그 運行의 때에 맞추어서 받들어 行함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先天하고 後天하는 主體는 人間이다. 다시 말하면 天道의 운행에 앞서 미리 天道를 原理로써 밝히는 존재도 人間이며, 밝혀진 天道를 主體的으로 自覺하여 人道로써 실천 구현하는 存在도 人間이다. 그렇기 때문에 先后天의 문제를 人間을 중심으로 논한 것이다. 따라서 先后天 變化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人間의 문제로 主體化시켜서 이해하여야한다. 즉 先后天 變化 原理를 人道의 측면에서 이해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모두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 卦爻에서는 先后天 變化 原理를 人道의 측면에서 어떻게 나타내고 있는지 살펴보자. 三易 八卦圖에서 先天의 세계를 나타내는 伏羲 八卦圖와 後天의 세계를 나타내는 正易 八卦圖가 구분되어지는 기준점이자 伏羲 八卦圖가 正易 八卦圖로 변화하는 매개를 나타내는 文王 八卦圖의 中心 本體는 인간의 本來性을 상징하는 五皇極이다. 이는 先后天 變化의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고 하겠다. 즉 伏羲 八卦圖의 세계가 正易 八卦圖로 변화하는 것은 文王 八卦圖에 의하여 표상되었듯이 人間의 本來性을 自覺하고 그것을 실천 구현함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先后天 變化는 天道의 先后天 變化가 人道의 變化를 통하여 완성되어지는 天變人化인 것이다. 自身의 本來性을 自覺하고 그것을 실천 구현함으로써 天變人化에 참여하는 존재는 聖人과 君子이다. 그러므로 卦爻 易學의 내용은 聖人之道와 君子之道이다. 즉 卦體는 聖人之道를 내용으로 하며, 爻用은 君子之道를 내용으로 한다. 다시 말하면 聖人之道를 體로 하여 이루어지는 用으로서의 君子之道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 卦爻이다. 이 점은 內卦와 外卦의 관계를 통하여 先后天 變化를 표상하고 있는 六爻 重卦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先天을 상징하는 內卦의 中爻인 二爻는 君子를 표상하며, 外卦의 中爻인 五爻는 聖人을 표상한다. 이는 先后天을 막론하고 聖人과 君子라는 人格體가 中心이 됨을 뜻한다. 六十四卦의 序卦 原理 역시 先后天 變化 原理를 표상하고 있으며 그 내용은 聖人之道와 君子之道이다. 즉 君子가 자신의 本來性의 自覺과 더불어 聖人之道를 自覺함으로써 成德이 되어 그것을 王道 政治를 통하여 百姓들에게 베풀어서 天下를 道德의 세계로 완성시키는 原理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六十四卦의 내용은 君子가 聖人과 合德됨으로써 형성된 盛德을 통하여 君子와 百姓이 合德됨으로써 天下가 道德의 세계로 化成되는 原理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六十四卦의 序卦 原理는 聖人, 君子의 合德 原理를 體로 하여 이루어지는 君子, 百姓의 合德 原理가 그 내용이다. 이렇게 보면 先后天 變化 原理는 聖人과 君子를 중심으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先天은 十五 聖統이 전개되어지는 시대이다. 즉 十五 尊空 原理에 의하여 十五 聖統이 人類 歷史上에서 전개되는 시대가 先天인 것이다. 그러므로 先天의 歷史는 聖統의 展開史와 一致하게 된다. 『周易』에서 聖統을 王道 政治의 實踐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人類 社會의 發達史로 論하고 있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데 聖統은 곧 聖人之道의 傳授 系統인 道統이다. 그것은 聖統에 참여한 聖人이 인류 역사상에 誕降한 까닭이 天道와 人道를 드러내어 밝히는데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先天은 聖人에 의하여 易道가 闡明되어지는 시대이다. 반면에 後天은 聖人이 미리 밝힌 天道가 운행되어지는 동시에 天道에 順應하는 人道가 행하여지는 시대이다. 그런데 人道를 실천 구현하는 존재는 君子이다. 그러므로 後天은 君子의 시대라고 하겠다. 즉 君子가 天道를 主體的으로 自覺하여 人道로 깨닫고 그것을 실천 구현한 세계가 바로 後天인 것이다. 先天의 聖人이 이미 밝힌 내용은 後天의 君子가 장차 실천 구현해야할 人道와 그 존재 근거로서의 天道이다. 그리고 後天의 君子가 실천 구현할 人道는 先天의 聖人이 그 존재 근거인 天道와 더불어 이미 밝혀놓은 것이다. 이처럼 先天의 聖人이 人道와 그 존재 근거인 天道를 밝힘으로써 後天의 君子를 成德된 존재로 길러주며, 後天의 君子는 聖人이 말씀으로 남겨놓은 人道를 실천함으로써 聖人의 일을 완성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聖人과 君子는 天地의 관계이자 師弟의 관계이고 夫婦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山風蠱卦에서는 “아버지의 일을 자식이 주관한다. 그러므로 자식이 있으면 돌아간 아버지가 허물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이 때의 父子는 聖人과 君子를 상징하는 개념이다. 그런데 君子에 의하여 聖人之道가 完成된다. 그러므로 成德 君子가 존재할 때 비로소 聖人의 일이 完成되어 허물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天地가 合德되는 위치는 地이며, 師弟가 合德되는 것은 弟子의 마음 안에서이고 夫婦가 合德되는 위치는 남편이 아닌 아내이다. 마찬가지로 聖人과 君子의 合德은 君子의 心性 內面에서 이루어진다. 先天의 聖人은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天命을 완수하고 돌아갔으며 남은 것은 君子가 易學을 연구함으로써 聖人之道를 통하여 天地之道를 自覺함으로써 聖人과 合德이 되고 그것이 바탕이 되어 天人이 合德된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따라서 聖人과 君子의 合德으로 집약되는 先后天 變化 原理는 결국 君子의 문제가 된다. 六爻卦의 構成 原理를 살펴보면 先后天 變化가 君子의 문제임이 잘 드러난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內卦는 先天을 표상하고 外卦는 後天을 표상함으로써 內卦에서 外卦로의 變化를 통하여 先后天 變化 原理가 표상된다. 그런데 先天의 主體的 存在를 상징하는 內卦의 中爻인 二爻는 聖人을 표상하지 않고 君子를 표상하며, 後天의 主體的 存在를 상징하는 外卦의 中爻인 五爻는 君子를 표상하지 않고 聖人을 표상한다. 이는 『周易』이 先天이 아닌 後天의 관점에서 易道를 표상하고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君子의 관점에서 易道를 표상한 것이 『周易』인 것이다. 즉 先天은 君子의 成德을 목표로 聖人이 天道와 人道를 밝힘으로써 君子를 기르는 때이며, 後天은 君子에 의하여 聖人之道가 행하여지는 때이다. 따라서 先天은 君子의 시대이며 오히려 後天에 이르러서 君子를 통하여 聖人之道가 드러나게 된다. 그러므로 內外卦의 관계를 통하여 표상되는 先后天 變化는 결국 君子의 先后天 變化 原理로 표상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면 君子의 문제로 집약되어진 先后天 變化는 무엇인가? 先天은 君子가 經典을 통하여 전하여진 聖人之道를 연구하는 때이다. 즉 聖人이 밝힌 天道와 人道를 배우고 연구하여 그것을 자신의 主體性과 一體化시켜서 自覺하고자하는 과정이 바로 先天인 것이다. 반면에 後天은 君子가 자신의 本來性을 自覺하는 것과 더불어 天地之道를 自覺함으로서 成德되어진 세계이다. 따라서 先后天 變化는 天地之道의 君子 主體的 自覺을 통하여 이루어진다고 하겠다. 즉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變化는 君子의 心性 內面에서 이루어지는 主體的 自覺이 그 契機가 된다. 『正易』에서 “陰을 抑制하고 陽을 받드는 것은 先天의 心法의 學問이며, 陽을 고르고 陰을 맞추는 것은 後天의 性理의 道이다.”라고 한 것은 先后天의 성격을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면 君子의 心性 內面에서 이루어지는 先后天 變化를 이해하기 위하여 先后天 變化의 契機가 되는 天道의 人間 主體的 自覺에 대하여 살펴보자. 易道가 君子에 의하여 主體的으로 自覺되어지는 과정을 보면 天道에 順應하고자하는 뜻을 세우고(立志) 그것을 바탕으로 經典에 나타난 聖人의 말씀을 통하여 闡明되어진 天地의 道를 心性 內面에서 窮究하여(窮理) 자신의 主體性과 一致시켜서 自覺함(盡性)으로써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진 歷史的 使命(天命)을 自覺(至命)하게 된다. 따라서 易道가 人間 主體的으로 自覺되는 과정은 立志와 窮理, 盡性 그리고 至命(和順於道德而理於義하며 窮理盡性하여 以至於命하나니)의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立志는 窮理와 盡性 그리고 至命에 이르기 위한 근본 바탕이다. 즉 立志를 바탕으로 窮理와 盡性, 至命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立志는 易道를 主體的으로 自覺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면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이다. 立志는 일차적으로 변하지 않는 뜻을 세움을 의미한다. 즉 마음 가운데 절대로 변할 수 없는 中心 本體를 세워서 언제나 마음이 그 中心을 향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周易』에서 “君子가 변함이 없는 方所를 세운다.”고 한 것은 君子의 立志를 뜻한다. 이처럼 立志가 된 君子의 마음은 純粹하고 한결같아서 언제나 精誠스럽다. 그런데 마음의 中心 本體가 될 수 있는 것은 形而上의 根源的 存在인 易道이다. 따라서 立地는 마음이 언제나 道로 모아져서 변함이 없음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러한 君子의 立志에 대하여 『周易』에서는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天은 따르는 자를 도우며, 聖人은 믿는 자를 돕는다. 그러므로 君子는 聖人을 스승으로 삼아 聖人의 말씀을 통하여 드러난 天道를 믿고 그것을 따르고자 생각하며 또한 어진 사람을 숭상한다. 立志가 이루어지면 理致를 窮究하고 그것을 통하여 自身의 主體性을 自覺하는 窮理와 盡性이 필요하다. 즉 “天地의 本性으로서의 道德性에 和順하여 事物을 義롭게 다스리고자 하는 뜻을 세우고 易經에 闡明되어진 天·地·人 三才의 本性으로서의 性命之理를 窮究하여 마침내 자신의 本來性을 自覺(和順於道德而理於義하여 窮理盡性하여)”하는 것이다. 君子의 窮理와 盡性은 聖人에 의하여 밝혀진 易理를 바탕으로 이 이루어진다. 즉 君子는 聖人이 易經을 통하여 밝혀놓은 易理를 硏究함으로써 그것을 통하여 自身의 本來性을 自覺하게 된다. 그러므로 『周易』에서 “君子는 聖人의 말씀을 통하여 德을 닦아서 主體性을 세운다.”고 하였다. 德을 닦아서 主體性을 세운다는 것은 “邪慝한 마음을 막아서 本來性을 보존하는 것”을 말한다. 山天大畜卦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君子가 先聖人의 말씀과 말씀을 실천한 行爲를 많이 알아서 그것을 바탕으로 그 德을 쌓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처럼 聖人의 말씀을 통하여 理致를 窮究하는 것에 대하여 繫辭上篇에서는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논하고 있다. 君子가 그 거처에 있을 때는 卦象을 보고 繫辭를 玩味하며, 움직일 때는 象의 變化를 보고 그 占을 玩味한다. 이는 君子가 고요할 때나 움직일 때를 막론하고 聖人의 말씀을 담고 있는 易經으로서의 『周易』의 卦爻象과 繫辭를 통하여 理致를 窮究해야 함을 나타낸 것이라고 하겠다. 즉 君子의 삶 자체가 易經에 담긴 易道의 窮究 그 자체가 되어야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易經에는 天道와 人道의 내용은 물론 天道와 人道의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그러므로 易經을 통하여 易理를 窮究함으로써 自身의 本來性을 自覺할 수 있다. 즉 易經에서 제시되어진 易理를 자신의 本來性과 一體化시켜서 自覺하게 되는 것이다. 理致의 窮究를 통하여 自身의 主體性이 自覺되어지면 主體性의 存在 根據 역시 自覺되어진다. 즉 窮理 盡性을 통하여 自身의 主體性으로 內在化한 人格的 存在의 뜻을 自覺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 주어진 人格的 存在의 뜻은 곧 歷史的 使命(天命)이 된다. 따라서 窮理 盡性을 통하여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 즉 歷史的 使命을 깨닫게 된다고 하겠다. 이처럼 人格的 存在로부터 주어진 自身의 存在 根據로서의 歷史的 使命을 自覺하는 것을 天命에 이름(至命)이라고 한다. 主體性의 自覺을 통하여 人格的 存在인 天의 意志 즉 天으로부터 자신에게 주어진 명령인 天命을 自覺하게 되고 이를 통하여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인 이른바 人道를 自覺하게 되는 것이다. 君子가 天地之道를 주체적으로 自覺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歷史的 使命 즉 人道를 自覺하였을 때 실천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다. 君子가 자신의 존재 근거로 自覺한 人道를 실천 구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本來性의 自覺과 더불어 歷史的 使命을 自覺한 君子에 의하여 天道가 人道로 실천 구현됨으로써 비로소 天變人化가 완성된다. 즉 王道 政治를 통하여 天地가 合德되고 神人이 合德되며 人物이 合德되고 神物이 合德된 道德的 세계가 전개된다. 이처럼 君子의 人格性을 매개로 神物이 合德됨으로써 형성된 道德的 세계가 後天 세계이다. 따라서 先后天 變化는 君子가 자신의 本來性을 自覺함과 더불어 天地之道를 自覺함으로써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 구현함으로써 완성된다. 5. 君子의 性命之理와 先后天 變化 原理 앞에서 先后天 變化가 君子의 心性 內面에서 이루어짐을 살펴보았다. 先后天 變化는 君子가 先天 聖人의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本來性을 自覺하는 것과 더불어 天地之道를 自覺함으로써 聖人과 合德하는 것이 그 內容이다. 즉 先后天 變化 原理는 聖人과 君子의 合德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先后天 合德 原理가 그 내용인 것이다. 그런데 君子가 君子일 수 있는 所以는 性命之理이다. 따라서 君子의 心性 內面에서 이루어지는 先后天 變化는 性命之理의 문제라고 하겠다. 즉 君子가 性命之理를 自覺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 구현함으로써 비로소 先天 聖人이 말씀을 통하여 밝힌 後天이 완성되는 것이다. 君子의 性命之理는 仁禮義知의 四德을 내용으로 한다. 四德 가운데서 仁과 知는 性이며 禮와 義는 命이다. 그런데 仁, 知의 性과 禮, 義의 命은 體用의 관계이다. 즉 仁이 體가 되어 禮로 드러나고 知가 體가 되어 義가 드러난다. 이처럼 仁知의 性이 禮義의 命으로 드러나는 契機는 天道의 君子 主體的 自覺이다. 즉 君子가 자신의 本來性과 天道를 一體化시켜서 主體的으로 自覺하고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 구현함으로써 君子의 歷史的 使命이 完成된다. 이와 같이 君子가 仁知의 性을 自覺하여 禮義의 命을 완수함으로써 밝혀진 세계가 後天이다. 따라서 君子의 性命之理로 밝혀지는 先后天 變化는 性의 自覺과 命의 實踐이라는 두 측면에서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自覺의 문제는 앞에서 이미 논하였기 때문에 命을 중심으로 自覺되어진 性을 현실에서 실천 구현하는 문제를 중심으로 先后天 變化를 논하고자 한다. 君子가 실천해야 할 命의 내용인 禮와 義는 인간을 만나는 原理와 사물을 다스리는 原理이다. 즉 禮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神이 관계 맺는 원리이며, 義는 人間과 事物이 만나는 原理이다. 그런데 사물은 인간과 달리 비인격적 존재이기 때문에 만남의 대상이 아니라 다스림의 대상이다. 따라서 義는 사물을 다스리는 원리이다. 禮에 의하여 맺어지는 아름다운 만남의 세계는 家庭이며, 義에 의하여 모든 사물이 그 용도에 따라서 다스려짐으로써 物이 이롭게 되는 아름다운 세계는 國家이다. 다시 말하면 禮는 인격적 사회인 家庭을 다스리는 原理이며, 義는 宜로운 사회인 國家를 다스리는 原理이다. 따라서 君子에 의하여 禮義가 행하여지는 사회가 바로 後天이다. 『周易』에서는 禮義가 행하여지는 後天 世界를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天地가 존재한 연후에 萬物이 있고 萬物이 존재한 연후에 男女가 있으며 男女가 존재한 연후에 夫婦가 있고 夫婦가 있는 연후에 父子가 있으며 父子가 있는 연후에 君臣이 있고 君臣이 있는 연후에 上下가 있으며 上下가 있음으로써 禮義가 행하여질 곳이 있다. 위의 내용은 天地, 萬物, 男女의 物的 次元에서 夫婦, 父子, 君臣의 인격적 次元으로 變化하는 원리를 나타내고 있다. 즉 君子之道가 生長하는 原理를 六十四 重卦의 卦序를 중심으로 나타낸 것이다. 따라서 이 부분은 君子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先天에서 後天으로의 變化를 표상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런데 夫婦, 父子, 君臣의 세계를 形而上의 道와 形而下의 事物의 세계가 모두 드러남으로써 그 本末과 終始가 밝혀진 上下의 세계로 규정하고 上下의 질서를 통하여 비로소 禮義가 행하여진다고 하였다. 이는 夫婦, 父子, 君臣의 上下 관계로 드러나는 後天 세계가 바로 禮義의 세계임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앞의 인용문에서도 드러나듯이 夫婦와 父子의 세계는 家庭이며, 君臣의 세계는 國家이다. 다시 말하면 夫婦와 父子, 君臣의 인격적 上下 관계로 드러나는 禮義의 세계가 바로 家庭과 國家인 것이다. 그러므로 風火家人卦에서는 後天 세계를 家庭을 중심으로 논하고 있다. 즉 聖人과 君子가 合德됨으로써 형성된 道德的 世界를 家庭의 측면에서 禮를 중심으로 나타낸 것이 風火家人卦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家人은 女子가 집안에서 바르게 위치하고 男子가 밖에서 바르게 위하여 男女가 바르니 그것이 天地의 大義이다. 家人에는 嚴君이 있으니 父母를 이른다. 父母가 父母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며 兄이 兄답고 아우가 아우다우며 남편이 남편답고 아내가 아내다우면 家道가 바로 서고 家道가 바로 서면 天下가 定하여진다. 위의 내용을 보면 家庭을 구성하는 기본 단위인 男女로부터 시작되고 있다. 男女가 成長하여 合德됨으로써 夫婦가 된다. 이를 男子가 밖에서 제 자리를 지키고 女子가 안에서 제 자리를 지킨다고 하였다. 그런데 男과 女는 聖人과 君子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夫婦는 君子가 聖人과 合德된 상태를 표상한다. 六爻卦에서는 聖人과 君子의 合德이 外卦의 中爻인 五爻와 內卦의 中爻인 二爻의 合德을 통하여 표상되고 있다. 즉 先天을 나타내는 內卦와 後天을 나타내는 外卦의 中爻를 통하여 聖人과 君子의 合德이 表象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女正位乎內 男正位乎外’는 內卦의 中爻에 의하여 표상되는 君子와 外卦의 中爻를 통하여 표상되는 聖人과의 合德을 뜻한다고 하겠다. 이처럼 君子가 聖人과 合德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 근거로서의 天地 父母의 人格性을 自覺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어서 夫婦가 合德함으로써 제 위치를 지키는 것이 天地의 大義라고 언급한 후에 家庭에서는 嚴君이 있으니 父母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이는 男女가 合德하여 인격적 존재가 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존재 근거인 父母의 뜻을 自覺하게 됨을 뜻한다. 다시 말하면 聖人과 君子가 合德됨으로써 비로소 天地 父母의 뜻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 이처럼 聖人을 통하여 이미 밝혀진 天地 父母의 뜻이 君子에 의하여 주체적으로 자각되어지고 실천 구현되어짐으로써 비로소 天地 父母가 尊空된다. 따라서 家人에 嚴君이 있다는 것은 君子에 의하여 十五 尊空이 完成됨을 뜻한다. 즉 君子가 聖人과 合德됨으로써 成德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의 존재 근거로서의 天地 父母의 뜻을 自覺하고 그 뜻을 받들어 行함으로써 聖人에 의하여 시작된 十五 尊空이 完成되는 것이다. 그런데 君子와 聖人의 合德을 통하여 형성된 家人의 세계는 父母가 父母답고 자식이 자식다우며 兄이 兄답고 아우가 아우다우며 男便이 男便답고 아내가 아내다움으로써 家道가 바로선 세계이다. 이처럼 家道가 바로 섰을 때 인격적 세계로서의 天下가 전개된다. 즉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다운 국가 사회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인용문에서는 家道가 바로 서면 天下가 定하여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家道가 바로 선 세계를 표상하고 있는 부분을 보면 父父, 子子 등과 같이 하나의 글자를 겹쳐서 名과 實의 관계를 통하여 나타내고 있다. 이는 家庭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이 그 名에 걸맞게 실다움으로써 名과 實이 서로 부합된 세계가 바로 禮義가 행하여지는 後天 세계임을 뜻한다. 孔子는 家道가 바로 세워짐으로써 구축된 天下를 名과 實이 符合된 正名된 세계로 규정하고 있다. 즉 君子의 德이 부모가 되었을 때는 부모다움으로 자식이 되었을 때는 자식다움으로 부부가 되었을 때는 부부다움으로 형제가 되었을 때는 형제다움으로 나타남으로써 형성되는 正名된 세계가 家道가 바로 선 禮義의 세계인 것이다. 이처럼 家道가 바로 서면 國家 역시 바로 서게 된다. 따라서 政治 역시 正名에 다름 아니다. 왜냐하면 政治 原理 역시 가정을 다스리는 원리와 같이 禮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孔子에게 “선생님께서는 어찌 정치를 하지 않으십니까?” 라고 묻자 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書經』에서 孝에 대하여 말하기를 ‘부모에게 효도하며 형제간에 우의가 있으니 능히 이를 정치에 베풀 수 있다.’고 하였으니 이 또한 정치를 행함이다. 어찌 관직을 갖고 관청에 나가는 것만이 정치라고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따라서 君子에 의하여 家道가 세워진 세계가 政治가 행하여지는 正名된 세계이다. 그러므로 孔子는 “政治는 正名이다.”고 하여 家道를 바로 세우고 바른 정치를 행하는 것이 모두 正名이라고 하였다. 孔子는 正名이 필요한 까닭을 백성을 중심으로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名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人道를 벗어나며 말이 人道를 벗어나면 天下의 百姓들을 道德的 存在로 변화시키는 君子의 事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君子의 事業이 이루어지지 못하면 禮樂과 같은 文物 制度가 興作되지 못한다. 禮樂이 興作하지 못하면 刑罰이 형평성을 잃게 된다. 刑罰이 형평성을 잃게되면 百姓들이 手足을 둘 곳이 없게 된다. 그러므로 君子는 일정한 地位를 얻으면 반드시 그 地位에 알맞은 말을 하고 말을 하면 반드시 行할 수 있다. 君子는 그 말을 함에 있어서 苟且한 바가 없다. 위의 내용을 보면 名의 正과 不正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名을 正하고 不正하는 主體는 政治의 主體인 君子이다. 그러므로 引用文의 결론 부분에서 君子의 名과 言行을 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名의 正과 不正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君子가 그 때의 사회적 지위에 알맞은 德位를 가졌을 때 正名이 되며 그렇지 못할 때 名이 바르지 못한 것이다. 君子는 天道를 자신의 本來性과 一體化시켜서 主體的으로 自覺함으로써 자신에게 주어진 歷史的 使命을 自覺하게 된다. 이처럼 君子가 자신의 歷史的 使命을 自覺하였을 때 天地의 道가 君子의 德으로 變化하게 된다. 그러므로 歷史的 使命을 自覺한 君子는 곧 成德 君子이다. 그런데 君子의 使命은 때에 장소에 따라서 그 구체적인 내용이 변화하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君子가 처한 위치에 따라서 그 구체적인 命이 달라지는 것이다. 君子가 爲政者가 되었을 때 그 때의 君子의 使命은 올바른 정치를 행하는 것이다. 이를 일러 ‘名之’라고 하였다. 즉 命을 현상적 측면에서 ‘名之’로 표현한 것이다. 君子는 命을 받으면 반드시 그에 合當한 말을 하고 말을 하면 반드시 行하게 된다. 즉 君子는 言行을 통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使命을 행하는 것이다. 君子의 言行에 의하여 禮樂과 文物 制度가 행하여지는 禮義의 세계가 전개될 때 백성들은 비로소 그 거처해야할 바를 알아서 살아가게 된다. 즉 成德 君子가 현실적 使命을 가졌을 때 그 말이 天道에 順應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天下를 化成하는 일이 이루어지며 그것을 통하여 禮樂이 興作하게 되고 禮樂이 興作하면 刑罰이 的中하여 백성들이 인격적 지평에서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보면 君子가 正名하는 수단은 言行임을 알 수 있다. 『周易』에서는 君子의 言行에 대하여 “言行은 君子의 樞機이니 天下를 움직이는 所以이다.”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君子가 그 거처에서 하는 말이 선하면 천리 밖에서도 응하니 하물며 가까운 곳에 있어서랴! 君子가 그 거처에서 하는 말이 不善하면 가까운 곳에서도 어기나니 하물며 천리밖에 있어서랴! 君子의 말은 몸에서 나와서 백성들에게 더하여지며, 君子의 행동은 가까운 곳에서 시작하여 멀리서 드러난다.”라고 하였다. 君子의 正名된 言行 즉 天下를 變化시키는 言行은 易道에 부합되는 言行이다. 『周易』에서는 君子의 言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즉 “易經(『周易』)에는 聖人의 道가 넷이 있다. 말을 하고자하는 자는 言辭를 숭상하고, 움직이고자 하는 자는 卦爻의 變化를 숭상하고, 기구를 제작하고자하는 자는 卦象을 숭상하며, 卜筮者는 占을 숭상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君子의 言行은 易道를 실천 구하는 수단임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하면 君子의 言行을 통하여 人道가 행하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君子의 말에는 道가 담겨있고 行動에는 恒常性이 있다.”고 하였다. 君子의 말에 法則이 있고 行動에 恒常性이 있다는 것은 말은 未來 志向的으로 이루어지고 行爲는 過去 志向的으로 이루어져야함을 뜻한다. 즉 말은 반드시 人道를 內容으로 하고 行爲는 人道를 具體化하는 行爲여야 한다. 『周易』에서는 易道에 符合하는 君子의 言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君子가 曆數 原理에 비겨서 그에 順應하는 말을 하고 卦爻 原理를 통하여 聖人과 의논하여 行動한다. 이처럼 擬義하여 言行을 드러내기 때문에 天下를 化成시킨다. 君子의 言行은 曆數 原理와 卦象 原理에 비추어서 順應하는 것이야 한다. 다시 말하면 君子의 言에는 天道가 담겨 있어야 하고 行動은 時空上에서 人道를 구체화함이어야 한다. 이러한 君子의 言行이 時空上에서는 時義性에 符合되는 言行으로 드러난다. 『周易』에서는 이러한 君子의 言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때가 움직일 때면 움직이고 때가 머물 때면 머물러 動靜에 그 때를 잃지 않으면 그 道가 빛나고 밝다. 이를 보면 君子의 言行은 時宜性에 알맞아야 함을 알 수 있다. 즉 時宜性에 알맞은 君子의 言行은 곧 道를 실천 구현하는 言行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君子의 言行을 통하여 人文 세계가 전개된다. 다시 말하면 君子의 言行을 통하여 形而上의 道를 구체화한 禮樂, 文物 制度가 드러남으로써 비로소 道가 達行되어지는 세계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形而上의 神, 道가 形而上的 존재로 존재하고 形而下의 事物이 사물로써 존재함으로 三才가 모두 定位된 세계이다. 6. 結論 지금까지 易學의 先后天 變化 原理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易道의 내용은 四曆의 變化 原理로 그것은 閏曆에서 正曆으로의 변화이다. 즉 閏曆의 세계에서 正曆의 세계로의 변화가 四曆 變化의 내용인 것이다. 閏曆의 세계와 正曆의 세계는 다른 세계로 易學에서는 閏曆의 세계를 先天으로 正曆의 세계를 后天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天道의 내용인 사역 변화 원리는 곧 先天에서 后天으로 변화하는 先后天 變化 原理가 그 내용이다. 그런데 先后天 變化 原理는 先天에서 後天으로 변화하는 시간적 移行 原理가 아니라 先后天의 合德 原理이다. 즉 先天 原理와 後天 原理의 合德을 통하여 先天에서 后天으로서의 變化가 이루어지는 것이 先后天 變化 原理다. 따라서 先后天 變化는 物理的 時間上의 事件이 아니라 人格的 存在의 合德 原理이다. 다시 말하면 道德的 變化가 바로 先后天 變化의 내용인 것이다. 人格的 存在의 合德原理로서의 先后天 變化 原理는 君子와 聖人의 合德을 매개로 하여 人格的 存在인 天地와 人間이 合德되는 天人 合德 原理이다. 즉 天人이 合德成道되는 것이 先后天 變化 原理이다. 그러므로 先后天 變化는 先天의 주체적인 聖人과 后天의 主體的 存在인 君子가 合德成道하는 原理이다. 이처럼 聖人과 君子의 合德은 君子의 心性 內面에서 이루어진다. 즉 君子가 聖人이 易經을 통하여 밝혀놓은 性命之理를 自覺하고 더불어 그 存在根據로서의 天地의 性情을 自覺함으로써 비로소 人格的 存在인 天地와 人間의 合德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本來性을 自覺하고 동시에 자신의 存在根據로서의 天地의 性情을 自覺한 君子 는 王道政治를 실천 구현하여 백성과 合德하게 된다. 君子가 구축한 王道 政治가 구현되어지는 세계는 天地의 本性으로서의 道德性이 행하여지는 세계이다. 즉 禮義가 행하여지는 道德的 世界가 바로 君子가 王道 政治를 통하여 구현한 先后天 合德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先后天 變化가 이루어지는 세계는 君子를 통하여 聖人之道가 현실에서 실천 구현되어진 세계이다. 다시 말하면 君子의 性命之理가 王道 政治를 통하여 널리 실천 구현되어진 道德的 世界인 것이다. 따라서 易道의 根本 原理로서의 先后天 變化 原理는 인격적 존재인 君子가 聖人과 合德됨으로써 聖人이 易經을 통하여 밝힌 曆數原理를 性命之理로 自覺하여 그것을 현실에서 실천 구현하는 先后天 合德 原理이다.
[출처] 易學의 先后天 변화 원리 - 이 현 중(충남대)|작성자 송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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