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조선과 중국의 관계
고조선과 당시 중국 왕조들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단군세기』는 고조선이 초대 단군 때부터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순임금 때 중국은 국가의 존망이
고조선과 당시 중국 왕조들의 관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단군세기』는 고조선이 초대 단군 때부터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순임금 때 중국은 국가의 존망이
달린 대홍수를 당하였다. 그 전에 고조선의 도움으로 보위에 오른 순은 9년 동안 계속된
물난리를 고조선의 도움으로 해결하였다.
그 결과 순은 정치적으로 더욱 고조선에 예속되었다.
고조선은 회수와 태산 지역(회대淮垈)의 제후들을 평정하고 그곳에 설치한 분조分朝를
순으로 하여금 감독하게 하였고, 현 산동성 교남시의 낭야성에 감우소監虞所(우순의 정치를 감독하는 곳)를 설치하여 순으로부터 분조에 관한 일을 보고 받았다.
낭야성은 번한의 2세 왕 낭야가 산동지역에 있던 성을 개축한 것이다. 낭야는 단군왕검이
번한의 초대 왕으로 임명한 치두남蚩頭男(치우천황의 후손)의 아들이다. 단군은 서방 한족을 제지하고자, 한족이 두려워하던 치우천황의 혈통을 번한의 통치자로 세웠다.
『서경』「순전舜典」을 보면 “사근동후肆覲東后”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단군세기』의 기록으로 볼 때 “사근동후”라는 구절은 ‘순임금이 동방의 천자를 알현하였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마땅하다. 『예기』 「곡례曲禮」편에 의하면, ‘근覲’은 “천자가 병풍을 등지고 서면, 제후들이 북쪽을 향해서 천자를 알현하는 것[天子當依而立, 諸侯北面而見天子曰覲]”을 말한다. 또한 ‘근’은 1년 중 가을에 천자를 알현하는 것이다(봄에 천자를 알현하는 것은 ‘조朝’). 그리고 『이아』의 주註에서는 ‘근’을 ‘하현상下見上(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뵙는 것)’이라
풀이한다. 이 세 가지의 ‘근’은 모두 제후가 천자를 배알하는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사근동후는 제후 순이 동방의 천자인 단군천황을 알현한 것이다. 중국사의 원류가 동이였다는 중국의 여러 기록을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사마천의 『사기』를 보면
自黃帝至舜禹皆同姓而異其國號(사마천사기)
☞황제로부터 순임금 우임금에 이르기까지 모두 국호는 다르나 성은 같다하여
동이혈통임을 밝히고 있다
風土記云 舜東夷之人生姚丘(풍사기)
風土記云 舜東夷之人生姚丘(풍사기)
☞풍사기에 이르기를 순임금은 동이사람으로 요구에서 태어났다.
그러면 결국 그 조상 황제까지 전부 동이족이란 내용이다.
『맹자(孟子)』 이루장구(離婁章句) 하편에,
『맹자(孟子)』 이루장구(離婁章句) 하편에,
(舜生於諸風, 移於負荷, 卒於名條, 東夷之地, 舜東夷之人也 ☞순은 제풍에서 나고, 부하로 옮겼으며, 명조에서 죽었는데, 동이의 땅이고, 순은 동이인이다(맹자)
중국의 고전 굴원 『초사』의 내용이다
황제 (黃帝)는 백민 (白民) 에서 태어나고...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라고 하였고 “肅慎之國在白民北(산해경),그런데 산해경에는 백민의 북쪽에 숙신의 나라가 있다라고
중국의 고전 굴원 『초사』의 내용이다
황제 (黃帝)는 백민 (白民) 에서 태어나고...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라고 하였고 “肅慎之國在白民北(산해경),그런데 산해경에는 백민의 북쪽에 숙신의 나라가 있다라고
하였다. 숙신은 고조선인데 만주원류고에는 금나라가 숙신의 땅에서 일어났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黃帝生白民 自屬東夷(帝繫史記제계사기) 《사기(史記)》의 원문을 살펴보기로 한다. '黃帝生於白民……自屬東夷……帝堯起黃帝至佶子五世號唐堯' (史記卷 13에서)
☞황제 (黃帝)는 백민 (白民) 에서 태어나고...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기로 한다
순임금(舜)은 동이인(東夷人)이다.창의(昌意)는 황제헌원씨의 아들이다.
창의(昌意)로부터 7세가 순(舜)이다.
다음은 고사변(古史辯)으로 전7권으로 된 방대한 문헌으로, 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황제 (黃帝)는 백민 (白民) 에서 태어나고...그는 동이東夷족에 속한 사람이다.
사마천의 『사기』를 보기로 한다
순임금(舜)은 동이인(東夷人)이다.창의(昌意)는 황제헌원씨의 아들이다.
창의(昌意)로부터 7세가 순(舜)이다.
다음은 고사변(古史辯)으로 전7권으로 된 방대한 문헌으로, 현대 중국의 사학자들이
공동으로 편찬한 책으로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昊), 제준(帝俊), 제곡(帝嚳), 제순(帝舜), 소호(少昊), 그리고 [설]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如太호之卽帝俊帝곡帝舜少호之卽설 近人기得明證 『고사변古史辯』
중국의 학자 서량지徐亮之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동이東夷는 은나라 사람과 동족이며, 그 신화 역시 근원이 같다.
태호(太昊), 제준(帝俊), 제곡(帝嚳), 제순(帝舜), 소호(少昊), 그리고 [설] 등이 같다고 하는 것은 근래의 사람들이 이미 명확히 증명하는 바다.』
東夷與殷人同族 其神話亦同源 如太호之卽帝俊帝곡帝舜少호之卽설 近人기得明證 『고사변古史辯』
중국의 학자 서량지徐亮之는 『중국사전사화中國史前史話』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전부터 은나라와 주나라에 이르기까지 동이족의 활동 범위는 실로 포괄적임을 알 수
있다. 이는 지금의 산동성 전부와 하북성의 발해연안, 하남성의 서북, 안휘성의 중북부 지역, 호북성의동쪽, 그리고 요동반도(요녕성)와 조선반도 등 광대한 구역이며 산동반도(산동성)가 그 중심지역이다.』
우禹가 세운 하나라(BCE 2205~BCE 1766)도 역시 고조선에 예속되었다. 우는 아버지 곤이 치수에 실패하여 순임금에게 처형당한 후 그 뒤를 이어 나라의 치수사업을 맡아보던
우禹가 세운 하나라(BCE 2205~BCE 1766)도 역시 고조선에 예속되었다. 우는 아버지 곤이 치수에 실패하여 순임금에게 처형당한 후 그 뒤를 이어 나라의 치수사업을 맡아보던
사공司空 신분이었다. 우는 순을 대신하여 도산회의에 참석하여 고조선의 태자 부루에게서 오행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받았고, 이 비법으로 홍수를 해결하고 인심을 얻어 나중에
하나라를 열게 되었다.
사공 우가 금간옥첩을 받아간 것과 관련된 기록은 『오월춘추』, 『역대신선통감』,
사공 우가 금간옥첩을 받아간 것과 관련된 기록은 『오월춘추』, 『역대신선통감』,
『응제시주』, 『세종실록』, 『동국여지승람』, 『동사강목』, 『묵자』 등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중국이 중화주의 사관으로 쓴 『오월춘추』는 부루 태자를 창수사자蒼水使者라
말하여 은인의 실체를 감추었고 또한 창수사자가 우의 꿈에 나타나 비법을 알려 준 것으로 기록하여 우가 순전히 자신의 현몽으로 국난을 해결한 것으로 왜곡하였다.우는 산꼭대기에 올라가 하늘을 바라보며 울부짖다가 잠이 들어, 꿈에 붉은 색으로 수놓은 비단 옷을 입은
남자를 만났는데, 스스로 “나는 현이의 창수사자로다”라고말하였다
[禹乃登山, 仰天而嘯, 因夢見赤繡衣男子, 自稱:玄夷蒼水使者].
조선 시대의 『응제시주』와 『세종실록』 「지리지」는 ‘우가 도산에서 제후들과
조선 시대의 『응제시주』와 『세종실록』 「지리지」는 ‘우가 도산에서 제후들과
회동할 때 태자 부루를 보내 조회하게 하였다’라고 하여 고조선이 오히려 중국의
속국이었던 것처럼 주객을 전도시켜 기록하였다. 至禹會諸侯塗山, 檀君遣子夫婁朝焉
(『응제시주』);至禹會塗山, 遣太子夫婁朝焉(『세종실록』「지리지」).
개국 시조 때부터 고조선의 은덕을 입은 하나라는 마지막 군주 걸桀에 이르기까지
개국 시조 때부터 고조선의 은덕을 입은 하나라는 마지막 군주 걸桀에 이르기까지
내내 고조선을 상국으로 모셨다. 고조선의 은덕을 잊지 못한 우는 임종을 앞두고,
부루 태자가 치수법이 적힌 금간옥첩을 내려 준 도산(지금의 절살성 회계산)에 자신을
묻어 달라고 유언하였다
命群臣曰:“吾百世之後,葬我會稽之山”(『오월춘추』「월왕무여외전越王無余外傳」).
命群臣曰:“吾百世之後,葬我會稽之山”(『오월춘추』「월왕무여외전越王無余外傳」).
하나라에서 상나라로 중원의 왕조가 교체될 때에도 고조선의 힘이 작용하였다. 상나라의
초대 임금인 탕이 하나라 임금 폭군 걸을 정벌하고자 하였을 때, 13세 흘달단군이 처음에는 걸을 지원하였으나 걸의 포악한 정치가 개선되지 않자 결국 탕의 손을 들어 주었다.
상나라의 왕통은 동이족이다. 상나라의 시조인 설契의 어머니가 제비 알을 삼키고 설을
상나라의 왕통은 동이족이다. 상나라의 시조인 설契의 어머니가 제비 알을 삼키고 설을
낳았다는 난생설화는 전형적인 동이족 탄생 설화이다. 상나라의 개국공신인 이윤伊尹도
동이족 출신이다. 이윤은 고조선 11세 도해단군 때의 국사國師인 유위자有爲子에게서
신교의 대도문명을 배워 상나라의 제도와 질서를 정립하였다. 동이족이 세운 나라인 상나라는 동북방을 존숭하였다. 상나라 말기의 도읍지였던 하남성 안양시 은허 유적에서 출토된
궁전, 성벽, 무덤 등 모두가 동북방을 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동북은 삼신이 머무는 땅(
『태백일사』 「신시본기」)이고, 상나라의 동북방에 고조선이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초기의 상나라는 고조선을 문화의 조국으로 받들었으나, 12세 하단갑 때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았고, 22세 무정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고조선의 변방을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초기의 상나라는 고조선을 문화의 조국으로 받들었으나, 12세 하단갑 때부터 조공을 바치지 않았고, 22세 무정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고조선의 변방을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21세 소태단군과 22세 색불루단군이 상나라를 쳐서 대파하였다. 패전을 거듭하던
상나라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약 100년 후에 결국 멸망하였다.
상나라 다음으로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주周나라는 일반적으로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창건자인 문왕과 무왕 부자父子는 그들의 시조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이족 출신이다. 무왕은 자신의 힘만으로 상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많은 병력과
상나라 다음으로 550년 동안 중원을 지배한 주周나라는 일반적으로 한족漢族이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창건자인 문왕과 무왕 부자父子는 그들의 시조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동이족 출신이다. 무왕은 자신의 힘만으로 상나라를 무너뜨릴 수 없었다. 많은 병력과
전차를 보유한 상나라 군대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동이족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였다. 다수의 동이인이 무왕에게 협조했는데 강태공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무왕은 주나라
건국을 도운 강태공을 산동반도 지역에 있는 제나라의 제후로 봉했다. 그 이유는 강태공의 공적에 대한 포상이기도 하지만 동이족 출신인 강태공이 주 왕실에 비협조적인 산동지역
동이족을 다스릴 적임자였기 때문이다
'놀라운 공부 > 우리역사 바로알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방색 (0) | 2017.01.09 |
---|---|
환단고기 세계 북콘서트 유튜브 영상 (0) | 2017.01.09 |
일만 년의 세계사를 지배해온 한민족의 정신문명사 (0) | 2016.11.02 |
아메리카로 이동한 우리민족 (0) | 2016.04.17 |
서양제국주의 국가들의 역사연구 방식... (0) | 2016.04.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