洞玄靈寶定觀經註
동현영보정관경주
經名:洞玄靈寶定觀經註。原不題撰者,經文約出於南北朝末或隋唐之際。又據徒跋,註文當係唐代道士泠虛子撰。底本出處:《正統道藏》洞玄部玉訣類。參校本:《雲笈七籤》卷十七。
경명 : 동현영보정관경주. 원래, 제목으로 찬한 것이 아니고, 경문은 대략 남북조말 혹은 수당의 때에 나왔다. 또 도(徒)의 발문에 의거, 주문(註文)을 주관하여 묶어 당나라 시대의 도사 냉허자(冷虛子)가 찬(撰)하였다. 원본출처는 <정통도장>동진부 옥결류이다. 교정본에 참고한것은 <雲笈七籤>권17이다
洞玄靈寶定觀經註
동현령보정관경주
冷虛子註
냉허자주
靈者,神也,在天曰靈。寶者,珍也,在地曰寶。天有靈化,神用不測,則廣覆無邊;地有衆寶,濟養羣品,則厚載萬物。言此經如天如地,能覆能載,有靈有寶,功德無窮,證得此心,故名靈寶。定者,心定也,如地不動。觀者,慧觀也,如天常照。定體無念,慧照無邊,定慧等修,故名定觀。
영(靈)은 신(神)이며, 하늘에 있으면 영(靈)이라 한다. 보(寶)는 진(珍)이며, 땅에 있으면 보(寶)라고 한다. 하늘에는 영(靈)의 조화가 있으며 신묘한 쓰임은 헤아릴 수가 없으니, 곧 널리 덮어 가려도 끝이 없고, 땅에는 많은 보배가 있어서 만물을 도와서 기르니, 곧 만물을 두터이 실어주는 것이다. 이 경에서 말하는 것은 하늘과 같고 땅과 같으니, 능히 덮어주고 능히 실어주어서, 신령함이 있게하고 보배로움이 있게하니, 공덕이 무궁하고, 이 마음을 깨쳐 얻으면 그러므로 이르기를 영보라고 한다. 정(定)이란 마음이 안정되는 것이며, 땅과 같이 부동하는 것이다. 관(觀)이란 지혜로 살피는 것이니, 하늘이 항상 비추는 것과 같은 것이다. 정(定)은 무념(無念)을 체(體)로 하여 혜(慧)가 비추어 끝이 없으니, 정혜(定慧)를 같이 닦는 것을, 그러므로 이름하여 정관(定觀)이라 한다.
天尊告左玄真人曰:
천존께서 좌현진인에게 고하여 이르시기를
左者,定也。玄者,深妙也。真者,純也,一而無雜。人者,通理達性之人也。曰者,語辭也。
좌는 정이다, 현은 심묘이다, 진은 순이며, 하나이면서 섞임이 없는 것이다. 인(人)이란 이치에 통하고 성품을 달통한 사람이다.
夫欲修道,
대저 도를 닦고자하면
進趣之心,名為修道。
도(道)에 나아가는 마음을 이름하여 수도(修道)라한다
先能捨事,
먼저 능히 일을 버려야하니
一切無染,名為捨事。
모든것에 물듬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일을 버린다는 것이다.
外事都絕,
바깥일을 모두 끊고
六塵為外事,須遠離也。六塵者,色、聲、香、味、觸、法。更不染著,名為都絕。
육진이 외사(外事)를 하는데, 모름지기 멀리 떠나야 한다. 육진은 색, 성, 향, 미, 촉, 법이다. 다시 물들지 않는 것을 이름하여 모두 끊는 것이라 한다.
無與忤心,
없는것은 어지러운 마음과 더불어 없어야하니
境不來忤,心即無惱;心不起染,境則無煩。心境兩忘,即無煩惱。故名無與忤心。경계에 어지러움이 오지않으면, 마음은 곧 번뇌가 없게된다.; 마음이 일어나 물들지 않으면, 경계는 곧 번뇌가 없다. 마음과 경계 둘 다 잊으면, 곧 번뇌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無)와 더불어 어지러운 마음인 것이다.
然後安坐,
그러한 연후에 편하게 앉아서
攝澄煩惱,名之為安。本心不起,名之為坐。
번뇌를 맑게하여 다스리는 것을 이름하여 안(安)이라 한다. 본심이 일어나지 않음을 이름하여 좌(坐)라 한다.
內觀心起。若覺一念起,須除滅,務令安靜。
안으로 관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만약 한 생각이 일어난 것을 깨닫게 되면, 마침내 제하여 없애고, 반드시 안정하도록 한다.
慧心內照,名曰內觀。漏念未除,名為心起。前念忽起,後覺則隨。起心既滅,覺照亦忘。故稱除滅。了心不起,名之為安。覺性不動,名之為靜。故稱安靜。
혜심을 안으로 비추는 것을 이름하여 내관이라 한다. 생각이 새어나가 아직 없어지지 않음을 이름하여 마음이 일어난 것이라 한다. 앞의 생각이 홀연히 일어나고, 뒤에 깨달으면 곧 따라가는 것이다. 마음을 일으킴을 이미 멸하면 깨닫고 비추는 것 또한 없게 된다. 그러므로 칭하되 제하여 멸한다 한다.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되면, 이름하여 편안(安)함이라 한다. 각성하여 움직이지 않으면, 이름하여 정(靜)이라한다. 그러므로 칭하여 안정이라 한다.
其次,雖非的有貪著,浮遊亂想,亦盡滅除。
그 다음으로, 비록 그렇지는 않더라도 탐착함이 있고, 어지러운 생각이 떠다니니, 또한 모두 멸하여 없애 야한다.
眾心不起,妄念悉忘,亂想不生,何有貪著?故曰滅除。
모든 마음이 일어나지 않고, 망령된 생각이 다 없어지면, 어지러운 생각은 생겨나지 않으니 어찌 탐착이있으랴? 그러므로 이르기를 멸제라고 한다.
晝夜勤行,須臾不替。
주야로 열심히 행하여, 잠시라도 정지하지 않아야 한다.
晝之言淨,夜之言垢。垢淨兩忘,無有間替,故名不替。
낮의 말은 깨끗하나, 밤의 말은 더럽다. 더럽고 깨끗함 둘을 잊으면, 사이에 멈춤이 없는 것이다.
唯滅動心,
오직 동하는 마음을 멸하고
忘想分別,名曰動心。覺照祛之,故名為滅。
망상분별을 이름하여 동심이라 한다. 깨닫고 비추어서 떨어 없애버리면, 그러므로 이름하여 멸하였다 한다.
不滅照心;
비추어보는 마음을 없애지 말고
慧照常明,無有間,故名不滅照心。
혜조(慧照)는 항상 밝으니, 틈이 없으며, 그러므로 이름하여 비추는 마음이 멸하지 않는다 한다.
但凝空心,
다만 텅빈 마음으로 이루어지게 하여
不起一切心名空心。
일체의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을 텅빈 마음이라 한다.
不凝住心,
머무는 마음(住心)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하고
一切無著,名之不凝住心。
모든 것에 집착함이 없음을 이름하여 엉기어 머무는 마음이 없다고 한다.
不依一法而心常住。
한법에 의지하지 않아야 마음이 항상 주(住)하는 것이다.
若取一法,即名著相。心不取法,名為不依。照而常寂,故為常住。
만약 하나의 법을 취하면, 곧 상(相)에 집착함이다. 마음에 법을 취하지 않으면 이름하여 의지하지 않음이다. 비추되 항상 고요하면, 그러므로 상주(常住)이다.
然則凡心躁競。其次,初學息心甚難,或息不得,蹔停還失。
그런즉 속세의 마음으로 하면 조급하게 되고 다투게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처음 배우는 자는 마음을 전념하는 것이 심히 어려우니, 혹 그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잠시 멈추었더라도 다시 잃어버리게 된다.
言習性煩惱,難可滅除,定力未成,蹔停還失也。
말하기를 습성, 번뇌는 가히 멸제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정력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으면, 잠시 머무르지만 다시 잃어 버린다.
去留交戰,百體流行。
갔다가 머물렀다 서로 싸우면서, 온몸에 흘러 행한다.
心起染境,境來牽心,心境相染,故名交戰。妄念不息,百非自生,名曰百體流行。
마음이 물든 경계를 일으키면, 경계는 와서 마음을 이끌게되고, 마음과 경계가 서로 물들어서, 그러므로 이르기를 교전인 것이다. 망령된 생각이 그치지 않고 백가지는 스스로 생겨난 것이 아니지만, 이름하기를 온몸을 흘러 다닌다 한다.
久久精思,方乃調熟。勿以蹔收不得,遂廢千生之業。
오래오래 정밀하게 생각하면, 바야흐로 결국 조숙하게 된다. 이로서 잠시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침내 천생의 업을 폐하게되는 것이다.
定心不起,則契真常。一念不收,千生遂廢。
정심(定心)이 일어나지 않으면 곧 진상(眞常/참이 항상함)에 부합한다. 한 생각도 거두어들이지 않으면 천생을 마침내 폐하는 것이다.
少得靜#1已,
적게 이루어서는 고요할뿐이니
初得清淨,正慧未生,故曰少得靜已
처음 청정을 얻어서, 정혜가 생겨나지 않으면, 그러므로 적게 얻어서 고요할뿐인 것이다.
則於行立坐卧之時,
곧 다니거나 서있거나 앉았거나 누웠을때에도
四威儀之時也。
네가지 위의(몸가짐)의 때이다
涉事之處,諠鬧之所,
사물에 접하는 곳과 요란하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見一切諸相為涉之處,起一切諸心,名為諠鬧之所也。
일체 모든 상이 관계하는 곳을 보고서, 일체의 모든 마음을 일으키면 이름하여 떠들고 시끄러운 곳이라고 한다.
皆作意安;
모두 뜻을 안정시켜서
息亂歸寂,名為作意。恬淡得所,名之為安也。
어지러움을 그치고 고요함에 돌아가면, 이름하여 작의(作意)라 한다. 욕심이 없고 담백함을 얻은바를 이름하여 편안함이라고 한다.
有事無事,常若無心;處靜處諠,其志惟一。
일이 있거나 일이 없거나 항상 무심과 같이하여, 고요함에 처하거나 시끄러움에 처하거나, 그 뜻이 오직 하나여야 한다.
有無雙遣,寂用俱忘,萬法不二,名之唯一。
유무를 모두 떨쳐버리고, 고요함과 작용함을 모두 잊으면 만법은 둘이 아니니, 이름하여 유일인 것이다.
若束心太急,又則成病,氣發狂顛,是其候也。
만약에 마음을 묶어서 아주 급하게 하면, 또한 곧 병을 이루어, 기(氣)가 발광하여 뒤집히게 되니, 이것이 그 징후인 것이다.
偏心執靜,名曰束心。心外見相,名為顛也。
마음을 치우쳐서 고요함을 잡으면 이름하여 마음을 묶는것이라고 한다. 마음 밖의 상을 보는것을 이름하여 전(顚)이라 한다.
心若不動,又須放任,寬急得所。
마음이 만약에 부동하면, 또한 반드시 내버려두어, 느슨하고 급함이 적당하도록 한다.
從定發慧,名為放任。定慧齊融,名曰得所。
정(定)을 따라서 지혜를 발(發)하는 것을 이름하여 방임이라 한다. 정혜(定慧)를 가지런히 화합함을 적당함(得所/득소)이라고 한다.
自恒調適,
스스로 항상 적응하며
定多即愚,慧多即狂;定慧等用,名曰調適。
정(定)이 많으면 곧 우둔하고, 혜(慧)가 많으면 곧 광(狂)이니 : 정혜(定慧)가 같이 작용하면 이름하여 적응함이라고 한다.
制而不著,放而不動,處喧無惡,涉事無惱者,此是真定。
통제하여 집착하지 않고, 놓아주어도 동하지 않고, 시끄러움에 처하여도 싫어하지 않고, 사물을 접하여 일을 처리하면서 번민이 없으면, 이것이 참으로 정(定)함인 것이다.
寂而常照,照而常寂,空而常用,用而常空,得本元寂,故為真定。
고요하면서 항상 비추고, 비추면서 항상 고요하니, 텅비어도 항상 작용하며, 작용하면서도 항상 텅비어 있으니, 근본의 으뜸가는 고요함을 얻어서 그러므로 진정(眞定)이라 한다.
不以涉事無惱,故求多事;不以處喧無惡,強來就諠。
사물을 접하여 일을 처리하면서 번민 없이 하지 않으면 그러므로 쓸데없는 일이 요구되는 것이고 ; 시끄러움에 처하여 싫어함이 없이 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곧 시끄러움이 찾아온다.
習性塵勞,常須制御,不可縱逸。
습성과 번뇌는,항상 반드시 제어해야하는 것이니, 멋대로 버릇 없이함은 불가하다.
以無事為真宅,
일없음으로써 진정한 집으로 삼고
見本性空寂,故為真宅。
본성의 텅비고 고요함을 보았으니,그러므로 진택으로 삼는것이다
有事為應跡。
일있음으로 자취에 응함을 삼는다.
慧用無邊,故為應跡。
지혜의 작용이 끝이없으니,그러므로 자취에 응하는것이다
若水鏡之為鑒,則隨物而現形。
만약 수경을 거울로 삼으면, 곧 만물이 따라서 형상을 드러낸다.
本心清淨,猶如水鏡,照用無碍,萬象#2俱現,名為現形。
본심은 청정하며, 마치 수경과 같으니, 비추는 기능이 걸림이 없으며, 만상이 다 드러나니, 이름하여 현형(現形/형체를 눈앞에 드러냄)이라 한다.
善巧方便,唯能入定。
선교방편으로 오직 능히 정(定)에 들어가는 것이다.
諸法性空,寂無所起,故為入定。
모든 법과 성(性)은 공(空)하며, 고요하여 일어나는 바가 없으니, 그러므로 입정(入定)이다.
慧發遲速,則不由人。勿令定中急急求慧,急則傷性,傷則無慧。
지혜의 발(발)함은 늦고 빠름이 있으니, 곧 사람으로 말미암지 않는다. 정(定)중에서 급하고 급하게 지혜를 구하지 말아야하는 것이니, 급하게 하면 성(性)을 상하며, 상하게 되면 지혜는 없어진다.
急求知見,真定乃亡。貪著諸相,故云無慧。
급히 지식을 구하여 보게되면,진정(眞定)은 마침내 죽게된다.모든 상(相)에 탐착(貪著/탐하여 집착함)하는것은,그러므로 이르기를 무혜(無慧)라고 하는 것이다
若定不求慧而慧自生,此名真慧。
만약 정(定)이 지혜를 구하지 않으면 지혜(慧)는 저절로 생겨나니, 이것의 이름을 진정한 지혜라 한다.
心體寂靜,妙用無窮,故為真定。
마음의 체(體)는 고요하고 조용하며, 묘용이 무궁하니, 그러므로 진정(眞定)인 것이다.
慧而不用,實智若愚。
혜(慧)는 작용하지 않으니, 실로 지(智)는 어리석은 것 같다.
了無分別,名之不用。韜光晦跡,故曰若愚。
전혀 분별함이 없으니, 이름이 불용(不用)이다. 드러내지 않고 감추고 종적을 숨겨버리니, 그러므로 어리석은 것 같다.
益資定慧,雙美無極。
유익한 바탕의 정혜(定慧)는 두 가지의 아름다운 무극이다.
寂照齊融,故云雙美無極。
고요하게 비추어 가지런하게 융합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두개의 아름다운 무극이라 한다.
若定中念想,多感眾邪,妖精百魅,隨心應見。
만약 정(定)중에 상을 생각하면, 많은 감정과 많은 삿됨, 요정과 모든 도깨비들이 마음을 따라서 응하여 나타난다.
為心取相。諸相應生,一切邪魔,競來撓亂。
마음으로 상을 취하면, 모든 상들이 응하여 생겨나고, 일체의 삿된 마(魔)들이 다투어 와서 어지럽게 한다.
所見天尊、諸仙、真人,是其祥也。
보이는바의 천존, 제신선, 진인도, 이 모두는 그런 조짐인 것이다.
此為諸相,不可取著。
이는 모두 상(相) 때문으로, 취하여 집착함은 불가하다.
唯令定心之上,豁然無覆;定心之下,曠然無基。
오직 정심(定心)을 위로하게 되면, 환하게 트여 덮는 것이라고는 없고, 정심(定心)을 아래로 하여도 광연하여 받치는 기틀도 없다.
前念不生,故云無覆;後念不起,故曰無基。
앞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무복(無覆)이라하고 뒤의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무기(無基)라고 한다.
舊業日銷,新業不造。
구업을 날마다 없애 버리고, 신업은 짓지 않는다.
宿習並盡,名曰舊業日銷,更不起心,故名新業不造。
오래된 습관이 아울러 다 없어지니, 이름하여 구업이 날마다 없어짐이고, 다시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며, 그러므로 신업을 짓지 않는다고 한다.
無所罣礙,迥脫塵籠。
걸리고 방해되는 바가 없으면, 속세의 에워쌓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난다.
一切無染,故名無所罣礙;解脫無繫,故云迥脫塵籠。
모든 것이 물들지 않아서, 그러므로 이름하여 걸리고 방해되는바가 없다는 것이고, 해탈하여 매임이 없으니, 그러므로 속세의 에워쌓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남이라 한다.
行而久之,自然得道。
행하기를 오래하면, 자연히 득도한다.
智照不滅,名曰行而久之;契理合真,故云得道。
지혜를 비추어 멸하지 않으면 이름하여 행하기를 오래한다는 것이고 ; 이치에 부합하고 진(眞)에 합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득도(得道)라고 한다.
夫得道之人,凡有七候;
대저 득도하는 사람은 무릇 7가지 징후가 있다.
一者,心得定易,覺諸塵漏;
첫째는, 마음이 정(定)으로 바뀌고, 모든 티끌이 새어나감을 깨닫게 된다.
心得清靜,塵念盡知,故曰覺諸塵漏。
마음이 청정을 얻고, 티끌같은 생각들이 다했음을 알게되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모든 티끌이 새어나갔음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二者,宿疾普銷,身心輕爽;
둘째는, 오랜 질병들이 모두 없어져서, 심신이 가볍고 상쾌하다.
真氣胎息,痼#3疾盡瘳。體道合真,身輕不老。
진기를 태식으로 하니, 고질병이 다 낫는다. 도를 체득하여 진(眞)에 합하니, 몸이 가볍고 늙지 않는다.
三者,填補夭損,還年復命;
셋째는, 모자란것은 메우고 단명함은 덜어내니, 나이가 되돌려지고 명을 회복하게 된다.
骨髓堅滿,故填補夭損;駐顏不易,名為還年復命也。
골수가 단단하여 가득하고, 그러므로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단명할 것을 덜어내는 것이고 ; 얼굴이 바뀌지 않고 머물러 있으니, 이름하기를 나이가 되돌려지고 명을 회복하는 것이다.
四者,延數萬歲,名曰仙人;
넷째는, 수를 늘려 만세이니, 이름하여 선인이다.
長生不死,延數萬歲,名編仙籙,故曰仙人。
장생불사하니, 수를 늘려 만세이고, 이름이 신선의 도록(圖籙)에 들어가니 그러므로 선인이라고 한다.
五者,鍊形為氣,名曰真人;
다섯째는, 형(形)을 단련하되 기(氣)로 하니, 이름하여 진인이다.
得本元氣,故曰鍊形為氣;正性無偽,故曰真人。
근본 원기를 얻으니, 그러므로 이르기를 연형위기(鍊形為氣/형을 단련하기를 氣로써 함)라고 한다.
六者,鍊氣成神,名曰神人;
여섯째는, 기(氣)를 단련하여 신(神)을 이루는것이니, 이름하여 신인(神人)이라고 한다.
真氣通神,陰陽不測,故曰神人。
진기(眞氣)로 신(神)을 통하니, 음양을 헤아릴 수가 없으니 그러므로 신인이라고 한다.
七者,鍊神合道,名曰至人。
일곱째는, 신(神)을 단련하여 도(道)에 합하는 것이니 이름하여 지인(至人)이다.
真神契道,故曰至人。
진신(眞神)은 도(道)에 부합하니, 그러므로 지인(至人)이라한다
其於鑒力,隨候益明。
그것은 거울의 작용에서, 징후에 따라 더욱 밝아진다.
鑒力者,常照不息也。益明者,明明不絕也。
거울의 작용(鑒力)이란 것은, 항상 비추어 멈추지 않는 것이다. 익명(益明)이란 것은 밝고 밝아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得至道成,慧乃圓備。
지극한 도를 얻으면, 지혜가 마침내 원만하게 갖추어진다.
若了本性,得道成真,智慧圓明,萬法俱備。
만약에 본성을 요달하여 마치면, 득도하여 진(眞)을 이루며, 지혜가 원만하고 밝아서, 만법이 모두 갖추어진다.
若乃久學定心,身無一候,促齡穢質,色謝方空。自云慧覺,又稱成道者,求道之理,實所未然。
만약에 정심을 오래 배웠는데, 몸에 한 징후도 없으면, 나이만 재촉하고 바탕을 더럽힌 것이니, 색을 사양하고 방을 비워라. 자신이 지혜를 깨달았다고 이르고, 또 칭하여 도를 이룬 자라하고, 도의 이치를 구한다하는데, 실지로는 그런바가 아닌 것이다.
通神合道即得道真成#4。心惑身亡#5,不離生死。《西昇經》云:是故失生本,焉能知道源?
신(神)을 통(通)하고 도(道)에 합하면 곧 득도하여 진(眞)을 이룬 것이다. 마음이 미혹되고 몸이 망하면, 생사를 떠나지 못한다. <서승경>에 이르되 ; 이 때문에 생의 근본을 잃으면, 어찌 능히 도의 근원을 알겠는가? 하였다.
而說頌曰:
그리고 게송에 이르기를
智起生於境,火發生於緣。 지기생어경,화발생어연
各是真種性#6,承流失道源 。각시진종성,승류실도원
起心欲息知,心起知更煩。 기심욕식지,심기지갱번
了知性本空,知則眾妙門。 요지성본공,지즉중묘문
洞玄靈寶定觀經註終#7
동현영보정관경주종
道由心學,匪假佗求;神依形住,罔有其外。我之靈明,亘今亘古,惟其絏於六情,是以戕我正念。貪嗔癡昧,種種見惑,背真向偽,無有殫期。寔惟真師憫念眾生無知,故演此妙經,作人天規鑑,為證道梯航。是有定觀之說,發揮妙本,洞徹玄微,滌乎垢氛,超乎視聽;明無相於有形之後,致虛極於未兆之先;物我俱忘,形神俱妙。凡我羽流,敬之敬之。
도는 마음을 배우는 것으로 말미암고, 다른 것을 구하는 것을 구실함이 아니다; 신은 형상에 의지하여 머물고, 그 밖에 있는것이 아니다. 나의 신령하게 밝음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오직 육정(六情)에 매어있는것이어서, 이것이 내 정념을 상하게하는 것이다. 탐진치로 어두워져, 갖가지 미혹함을 드러내고, 진실을 어기고 거짓을 향하니, 한정이 없는 것이다. 참으로 오직 진사께서 중생들의 무지함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러므로 이 묘경을 펴시어, 사람으로 하늘의 규감을 짓게하여, 도의 사다리가 되고 배가 됨을 증명케하신 것이다. 여기에 정관의 설함이 있는 것이니, 묘본을 발휘하시고, 현미를 통철하시어, 때묻은것들과 조짐들을 없애버리고, 시청을 뛰어넘어서 유형의 뒤에서 무상을 밝히시고, 조짐이 아직 없는 앞에서 허극(虛極)에 이르러; 사물과 나를 모두 잊으니 형신(形神)이 모두 묘하게 된다. 무릇 나와 도사들은 공경하고 공경해야한다.
龍集壬申三月初吉,泠虛子稽首謹識。
용집 임신년 3월초 길일,냉허자 계수근지
洞玄靈寶定觀經註竟
동현령보정관경주경
#1 『靜』,《雲笈七籤》本作『浄』。
#1 『정』,《운급칠첨》본작『정』。
#2 『萬象』,《雲笈七籤》本作『萬物』 。
#2 『만상』,《운급칠첨》본작『만물』 。
#3 『痼』,《雲笈七籤》本作『故』。
#3 『고』,《운급칠첨》본작『고』。
#4 『即得道真成』,《雲岌七籤》本作『即身得道真』。
#4 『즉득도진성』,《운급칠첨》본작『즉신득도진』。
#5 『惑』,《雲笈七籤》本作『證』 。
#5 『혹』,《운급칠첨》본작『증』 。
#6 『種』,《雲笈七籤》本作『動」。
#6 『종』,《운급칠첨》본작『동」。
#7 《雲笈七籤》本所錄經註止於此,無後泠虛子題識。
#7 《운급칠첨》본소록경주지어차,무후령허자제식。
출처 : http://ewwiz.blog.me/199621975
'놀라운 공부 > 수행·전생·영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고상옥황태식경(高上玉皇胎息經) (0) | 2017.06.15 |
---|---|
[스크랩] 동현영보정관경(洞玄靈寶定觀經) (0) | 2017.06.15 |
[스크랩] 태상동현영보천존설대통경(太上洞玄靈寶天尊說大通經) (0) | 2017.06.15 |
[스크랩] 태상동현영보천존설대통경주(太上洞玄靈寶天尊說大通經註) (0) | 2017.06.15 |
[스크랩] 현천상제금과옥율진경(玄天上帝金科玉律真經) (0) | 2017.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