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사도라 덩컨, 비극적 천재들의 사랑 >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어려서 이사도라(던컨
< 이사도라 덩컨, 비극적 천재들의 사랑 >
창피한 얘기지만 나는 어려서 이사도라(던컨)이라는 이름을 농담으로 먼저 알았어. 누군가 “저 녀석은 이사도라야,”라고 하는 걸 듣고 “이사도라가 뭔데?”라고 반문했는데 그 답은 “24시간 또라이라고.” 였거든. 그래서 나는 이사도라가 24시간 또라이의 준말이라고 생각하고 몇 년을 살았더랬다. 그걸 깨 버린 게 주말의 명화인가 방송된 ‘맨발의 이사도라’였지. 아,,, 이사도라가 이십사시간 또라이가 아니었구나.
하지만 과히 틀리지도 않은 게 그녀는 평생 ‘또라이’라는 욕설을 들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야. 그녀는 1878년 5월 26일 태어났다. 그러니까 빅토리아 여왕이 그 강철같은 턱을 내밀며 세계를 호령할 때고 통일 독일이라는 나라가 생긴지도 7년 밖에 안됐을 시기고 후일 그녀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개솔린 자동차는 아직 지구상에 나타나지도 않았을 무렵이었지. 즉 19세기에 태어났어. 우리가 보는 발레의 고전적 정형이 완성된 것도 19세기야. 그 시기에 이사도라 던컨이 미국에서 태어난다.
애초부터 “근엄한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서 화목하게 자랄 운명은 아니었어. 아버지가 처녀랑 바람나서 엄마랑 끝장이 났으니까. 그런데 이사도라는 기본적으로 춤에 천재적 소질이 있었어. 열 댓살 때부터 자신보다 어린 아이들에게 발레를 가르쳤다고 하니까 범상한 자질은 아니었겠지. 그런데 그녀는 딱닥 맞아떨어지고 규격화된 발레 동작에 싫증을 느껴. 그는 휘트먼의 시를 좋아했는데 특히 이 구절에 열광했다지. “나는 나를 찬양하고 나를 노래하리라. 그리고 내가 취한 것에 그대도 취하리라”
19세기는 고래사냥, 즉 포경이 가장 전성기였던 시기이기도 하지. 잡아들인 고래의 수염은 유럽과 미국 여인들의 허리를 죄는데 쓰였다. 바로 코르셋이라는 거. 이사도라는 그 코르셋과 19세기에 등장한 토슈즈같은 갑갑한 것들을 벗어던진다. 고전 발레를 인정하긴 하지만 이런 독설도 마다하지 않지. “발레학교 학생들의 연습을 보면 연습장은 마치 고문실 같으며 무용수는 조사받는 용의자 같고, 형식적인 무용이 인간성을 유린하고 있는 게 보인다”고 말이야.
이사도라는 그렇게 우아하지 않은지는 모르지만 자유롭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열정적인 동작으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원래 변방 사람들이 더 보수적인 법. 문화적 변방이라 할 미국 사람들은 그녀의 춤을 인정하지 않았어. “갓댐! 저게 무슨 춤이야.” 하지만 그녀는 유럽에 건너가면서 세칭 대박을 터뜨리지.
여기서 그녀의 무용 세계는 그만. 이유는 항상 얘기한 대로 내 관심과 능력 밖임. 그녀는 원래 부모의 이혼을 보면서 평생 독신을 결심했다고 해. 하지만 그런 결심은 허물어지기 위해 하는 법이지. 꼭 누구 음주 결심처럼. 그녀는 열정적으로 춤을 추는 와중에 수시로 사랑을 퍼부었고 또 받았어. (모 소설가 얘기 아님) 그녀는 얘기한다. “이따금 예술보다 사랑에 열중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나는 대답한다. 그 둘이 별개가 아니라고. 예술가는 오직 사랑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애를 낳으면 왜 안되나?”를 20세기 초에 부르짖은 선구자(?)였다. 그리고 실제로 아버지가 다른 아이 둘을 얻었고 그녀가 만나 침대로 골인한 남자는 백명이 넘었을 거라는 추정.
아이의 아버지들을 만나고 상대하는 방식도 기이하다. “당신이 내 무대 기술을 베꼈어요.” 라고 항의하러 온 청년과 첫눈에 반해 그날로 밀월여행을 떠나고 그 아이를 낳아 기르는 파격도 이사도라답지만 그 후 알게 된 백만장자 애인과의 사이에서 또 아이를 낳은 후 결혼을 청하자 “예술가가 무슨 결혼을 해요?”라고 야무지게 뿌리치는 모습은 그 시대에는 가히 ‘24시간 또라이’가 아니었을까. 아이들만큼은 사랑했던 그녀였지만 아이를 아버지에게 보여 주러 간 파리행에서 그만 자동차 브레이크 사고가 나고 아이들 둘은 세느강에 빠져 죽고 말지. 그때 이사도라는 거의 실신 지경으로 세느강변을 아이들 이름을 부르며 헤맸다니 이때도 거의 ‘또라이’로 비쳐졌겠지.
하지만 그녀의 사랑이 광기로까지 나아간 건 그녀보다 열 일곱 살이나 어린 러시아 천재 시인 에세닌과의 파멸적인 사랑일 거다. 에세닌은 그의 아들 페트릭을 꼭 닮아 있었고 이사도라는 그에게 흠뻑 빠져들지. 세상에 백만장자 앞에서 예술가가 무슨 결혼이냐고 코웃음치던 여자가 사랑 고백을 위해 러시아말을 배우고 결혼도 마다않아.
에세닌도 고리키가 “시를 위해 태어난 유기체”라고 극찬하고 후일 <목마와 숙녀>의 박인환이 에세닌이 죽을 때 복장 코스프레를 할만큼 경의를 표한 천재였지만 이 천재의 단점은 성격이 극히 괴팍하고 질투도 많고 심지어 폭력적이라는 점이었지. 그는 이사도라의 재능과 인기를 질투했고 심지어 두들겨 패면서 그의 사랑을 표현(?)했지. 죽은 아이들에게까지 질투했는지 그 사진을 불태워 버리기도 하고.
그 끔찍한 결혼 생활이 얼마간 이어진 뒤 그 성질을 못이겼는지 에세닌은 동맥을 긋고 피로 유서를 쓴 후 자살해 버린다. 신혼여행을 갔던 레닌그라드의 호텔 안에서. “안녕, 친구여 안녕. 내 가슴 속의 당신은 여전히 사랑스럽소.” 이건 뭐 유언이라고 해야 할지 사죄라고 해야 할지 참 가증스럽다고 해야 할지.
이사도라는 평생 자유로움을 추구했지만 자신이 추구한 자유에의 강박에 사로잡힌 포로였는지도 몰라. 에세닌에게 몰두하고 그의 광기에 순종하던 그 순간이 어쩌면 그녀에게는 정반대의 자유였을지도. 그런데 이건 이사도라 덩컨 같은 천재에게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강박적인 자유연애지상주의자들이 전혀 엉뚱한 삶을 살게 되는 모습을 많이 봤으니까.
그녀는 알다시피 자동차와는 정말 악연이었다. 새로 사귄 연인과 드라이브를 가려다가 무개차 위로 휘날린 붉은 스카프 (에세닌이 무척이나 탐닉하던 바로 그......) 가 바깥 바퀴에 감기면서 그녀의 목이 부러지고 말았기 때문이지. 유명한 얘기지만 그녀의 아이들이 자동차 안에서 죽어간 것을 상기해 보면 참으로 묘한 죽음이야. 그녀는 차에 타면서 친구들에게 “안녕. 나는 영광을 향해 갑니다.”라고 외쳤다고 하는데 그녀에게 영광은 죽음이었을까. 너무나 자유롭고 싶었던, 춤부터 사랑까지 속박과 틀에서 벗어나고파 평생을 노력했던 천재는 그렇게 죽었다.
그녀의 삶과 죽음에는 에세닌의 이 시가 어울릴 것 같아 덧붙여 둔다.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고요함과 행복이 있는 그곳으로
이제 나도 자그마한 짐을 꾸려
길 떠나게 되겠지
그리운 자작나무 숲이여!
대지여, 모래밭이여!
이 엄청난 친구들과의 작별에
내 슬픔 감출 길 없구나
나는 영혼에 육신을 입히는
이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노라
가지를 늘어뜨리고 장밋빛 물속을
응시하는 백양나무에 평화 있으라
조용히 많은 것을 사색했고
남 몰래 많은 노래 지었으니
나 이 음울한 대지에서 숨쉬고
살았다는 것 행복하다
나 행복하다 여자들과 키스하고
풀밭 여기저기 핀 꽃들을 꺾고
우리의 작은 형제들인
동물을 한번도 매질하지 않았으니
나 알고 있다
그곳엔 꽃피는 관목 숲도 없고
호밀 줄기는 그 백조 같은 목을 살랑거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서 엄청난 친구들과의 작별을
생각할 때마다 나 떨고 있다
나 알고 있다 그곳엔 안개 속에 피어나는
희미한 금빛 보리밭도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와 함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에겐 소중한 것이다
ㅡ From 후배 김형민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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