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오신날, 석가모니 탄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면서 이참에 불교공부를 조금 해보자!
음력으로 4월 초팔일인 오늘은 5월 22일로서 부처님 오신날인데 마침 생물다양성(Biodiversity)의 날과 겹치네요. 석가모니는 생명중시, 인간의 죽음문제 해결, 인간사회의 혁명적 변혁, 진리에 대한 인식방식의 전환, 삶의 태도의 획기적 변화를 강조한 점에서 오늘 두 기념일은 의미가 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물다양성의 날'은 유엔에서 전지구적 차원에서 날로 악화되는 환경위협과 생태계위협으로부터 생물의 다양성을 보전하고, 생물자원의 가치에 대한 인식을 높일 목적으로 제정한 것입니다. 생물의 다양성은 말 그대로 생물체들간의 다양성과 변이, 그리고 생물체들이 살고 있는 모든 생태적 복합체를 통틀어 일컫는 말이죠.
고대 BC 624년 오늘 인도 북동부 가필라국(오늘날 네팔)의 숫도다나 왕과 마야 왕비 사이에 태어난 석가모니는 일찍부터 생명을 중시하고 모든 생물의 등가성을 강조했습니다. 모든 생물은 깨달음의 대명사이자 결정체인 부처가 될 수 있는 인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의미로 석가모니가 "一切衆生 悉有佛性"이라고 강조한 게 그 예증입니다. 또한 석가모니는 사람이 지켜야 할 계율로 이런 저런 금기를 설하셨는데, 그 중에서도 산 목숨을 이유 없이 함부로 죽이지 말라는 살생금지를 가장 중요한 가르침으로 강조했습니다. 특히 생명을 중히 여기라는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출가자가 이걸 어기면 가장 무거운 4가지 죄(4바라이)중의 하나로 지정했습니다. 만약 이 계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그는 반드시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강조해 사람들로 하여금 경각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죽음을 피해 갈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인간도 누구든 죽음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생노병사의 과정을 겪게 마련입니다. 현대 의학적으로는 의사가 숨이 멎고 두뇌가 완전히 멈춘 상태를 사망이라고 판결내리지만, 석가모니는 오온이 흩어지는 게 죽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오온이란 원래 산스크리트로 色, 受, 想, 行, 識이라는 5개의 덩어리를 뜻하는 판차스칸다(panca-skandha)의 한역인데, 한자로는 현장법사가 五蘊으로 번역했고 구마라지바는 五陰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내가 보기에 현장법사는 5개가 각기 쌓거나 쌓이는 덩어리라는 의미에 주목해 "쌓이다"라는 의미를 지닌 蘊을 썼고, 구마라지마는 불교 유신학에서 사망과 사후세계의 중간단계의 존재를 中陰神이라고 하는 것에 주목해 陰으로 번역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암튼 여기선 오온에 대해 일일이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긴요한 뜻만 전하면, '색'은 물질적인 형체가 있는 것, 파괴되는 것 혹은 변화하는 것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 산스크리트의 rūpa의 한역번역입니다. 12연기에도 등장하는 불교유식사상에서 아뢰야식과 함께 작용하는 心所의 하나인 '수'(vedanā)는 인간의 의식이 바깥 경계의 어떤 대상에 대해 어떤 인상을 받아들이는 감수(感受)작용을 말하는데, 이는 감각과 호불호, 쾌불쾌 등의 주곽적인 감정의 작용을 말합니다. 예컨대 동일인물의 어떤 여자를 보고 어떤 이는 미인으로 생각나거나 그저 그렇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같은 일인데도 어떤 이는 즐거운 일이라고 받아들이는 반면에 어떤 이는 덤덤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식의 기분이 언짢게 생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정신작용을 수라고 하는데, 사람 마다의 개성이 다른 이유가 됩니다.
또 '상'(samj˜nā)은 수라는 마음 작용을 통해서 대상을 받아들인 후에 그것을 자신의 틀(범주)로 정리, 이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이는 표상 작용으로 의식 속에 이미지 즉 상(象)을 구성하고 마음속에 어떤 것을 떠올려 관념을 형성하는 것으로서 지각이나 표상 등을 가리킵니다. 대상을 이미지화 하기 위해선 반드시 언어가 개입되는데, "이 사람은 백인이다", "저 사람은 흑인이다"라고 하듯이 바깥 대상을 개념화(언어화)해서 인식하죠. 이러한 정신 작용이 바로 상의 역할이라는 것입니다.
한자로 '가다'라는 의미의 行으로 번역된 '행'은 원래 산스끄리트에서도 '가다'라는 뜻의 samskāra에서 온 말인데, 실제로 정신적 움직임이 일즹한 방향으로 움직여가는 것을 말합니다. 서양철학의 의미로 말하면 일종의 의지력(will)으로서 특정 대상에 관심이나 흥미를 느끼는 기억, 상상, 추리 등의 정신작용입니다. 즉 인간이 경험하는 어떠한 것을 현재에 존재하는 것처럼 형성하는 작용을 말하며, '수', '상', '식' 이외의 모든 마음의 작용을 총칭한 것이라고 해서 마음의 의지 작용을 말합니다.
'식'(vij˜nāna)은 대상을 식별하거나 구별해 인식하고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 혹은 마음의 작용 전반을 총괄하는 주체적인 마음의 활동을 가리킵니다. 色蘊 이외의 4온은 모두 정신적 요소인데, 색온(色蘊)과 결합하여 심신(心身)을 이루기 때문에 '명색'(名色, nāmarūpa)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
생명이나 존재를 구성하는 이 다섯가지 성분, 즉 인과 연이 잠시 임시로 맞아떨어져, 다른 표현으로 말하면 因緣假合, 五蘊假和合으로 존재하다가 그 오온의 인연이 다해 흩어지면 죽음의 세계로 이행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오온 중의 그 어느 것도 그 자체로 영원히 변하지 않음을 뜻하는 Atman, 즉 '아'가 아니라고 합니다. 즉 五蘊無我라는 것이죠. 그래서 이 오온은 나중에 개념이 확대돼 현상 세계의 모든 구성요소를 의미하는 것이 됐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오온 그 자체도 空한 것으로 실체가 없어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파악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 5개의 임시적인 집합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라 인연이라는 조건이 사라지면 제각기 흩어지고 마는 것임에도 자신의 몸뚱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불교에서 인간의 삶이 괴로운, 즉 苦라고 하는 이유의 하나죠.
석가모니는 생명과 인간이라면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을 삶의 끝이나 단절로 보지 않고 자신이 몸, 입, 생각으로 지은 업에 따라 6가지 세상에 다시 태어나기도 한다는, 즉 육도행을 하고, 바른 수행에 의한 업보로 이 6도의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해탈, 열반에 이를 수 있다는 이상을 제시했습니다. 해탈은 다시 태어나도 않고, 나지 않으니 죽지도 않는다는 이른바 不生不滅이라는 설명입니다. 석가모니는 살아 있을 때 바르게 잘 살고 이러한 불법의 실체를 깨달아 증득하기만 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죽음을 초월한 경계를 제시한 것입니다.
다른 한펀으로 석가모니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현세의 제조건을 개선하는 것에도 많은 얘기와 가르침을 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삶과 죽음이 같은 것, 즉 生死一如의 구극의 경지에 도달하려면 현재의 사회와 국가 등 인간의 삶의 질과 조건을 결정하는 정치, 제도, 법, 관습, 문화 등의 분야에서의 악습과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죠. 그가운데 당시 인도사회에서 다중의 삶을 저하시킨 것 가운데 가장 질기고 악랄하게 남아 있던 것이 바로 우리가 들어서 알고 있는
카스트제도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석가모니가 당시 고대 인도사회에 지속화, 고착화 돼 전승돼온 신분제도인 이 카스트제도를 타파한다는 선언을 함으로써 가히 혁명적이랄 수 있을 정도로 사회변혁을 일으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힌두교의 사제계급인 브라흐마나, 왕족, 귀족, 무사계급의 크샤트리아, 평민계급을 뜻하는 바이샤, 노예계급인 수드라 그 아래 노예 보다 더 천시된 불가촉천민 등으로 엄격하게 구분된 카스트제도는 현대 인도사회에서 법적으론 철폐돼 없어졌습니다. 카스트제도의 철폐엔 천민 출신으로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콜롬비아 대학의 법학박사 학위를 받고 독립 초기 신생 인도 정부의 헌법을 기초했으며, 네루 정권의 법무부장관에까지 올랐던 바바사허브 암베드카르(Babasaheb Ambedkar)라는 인물의 공헌이 컸습니다. 인도 현대사에서 인도가 전근대성을 탈피하게 되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컸던 그를 소개하려고 수년 전 인도여행 중 그의 저작과 전기물을 몇권 구입해왔지만, 아직도 기회가 닿지 않네요. ㅠㅠ
암튼 카스트 제도는 헌법 명문에서 공식적으로 없어지게 되기 전까지 수천 년 동안 이어져온 것입니다. 이 제도는 힌두교에서 한 마디로 인간 자신이 숙세나 현세에 지은 업보(業報)대로 저마다 다섯 계급 중의 한 계급으로 태어난다고 하는 결정론적인 교리로서 최상의 계층인 브라흐마나와 크샤트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사회기득권을 보호 유지, 영속시키도록 제도화하는 질곡입니다. 즉 노예나 그리고 노예 보다 더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 불가촉천민들은 자신의 그런 불우한 처지가 모두 자신이 숙세에 지은 업의 결과이니 현실에 불만을 가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숙명론적 종교적, 제도적, 정치적 장치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석가모니는 이러한 힌두교의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고자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으니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의미로 '천상천하유아독족'(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는 선언을 했습니다. 흔히 석가모니의 탄생게로 알려져 있는 이 선언은 석가모니가 마야 부인의 옆구리에서 나와 일곱 걸음을 걸으면서 외친 것이라고 합니다. 모든 종교가 그렇듯이 이 역시 교주인 고타마 싯타르타에 대한 신격화가 가미된 신화적 색채를 띤 것이지만, 본질은 하늘 위에서나 하늘 아래서나 오로지 고마타 혼자만이 존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이 그렇다는 의미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즉 "유아독존" 중의 我는 석가모니 자신이 아니라 인간을 가리킨다는 것이죠. 따라서 모든 인간이 평등하다는 인본주의의 다른 표현이었습니다. 다만, 불교에서 평등주의가 부처의 가르침의 근저에 깔려있지만 이는 고대 불교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발달되지 못한 원인 중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이는 무소유의 가르침과 표리를 이루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고타마 싯타르타가 인간평등을 주창한 것은 엄격했고, 불평등적인 카스트제도에 따라 굴러갔던 고대 인도사회에서는 혁명적인 선언이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예수가 당시 유태사회의 변혁을 꾀했듯이 석가도 인도사회, 나아가 인류보편적인 인간평등을 실현시키려는 사회혁명가로서의 역할을 한 셈이죠.
석가모니는 6년에 걸친 각고의 다양한 고행과 참선 등의 수행을 통해 정각을 이룬 뒤 완전하지 못하고 부족한 언어로서지만 지력이 떨어진 당시 고대의 중생들에게 자신이 깨달은 바와 세계에 대해 가르침을 펴기로 결심한 이래 중생의 근기에 맞춰 많은 예화와 비유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49년 간 부처가 설한 항하사의 모래 만큼이나 많은 그 많은 설법들 중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것을 추려내면 대략 세 가지로 가닥이 잡힌다.
첫째, 진리에 대한 인식방식의 전환, 둘째, 괴로움을 소멸시키는 한 방편의 하나로서 형이상학을 지양하고 현실을 중시하라는 점, 셋째는 억겁의 인연들 중에 가장 태어나기 어려운 인간으로 태어난 사실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인식하고 나태하거나 방일하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할 수 있도록 삶의 태도에 대한 획기적 변화를 강조한 점입니다.
우선 세계관과 관련해 세계와 우주는 각기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고 분절적이지도 않고 전체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인타라의 그물망으로 연결돼 있음을 설했습니다. 이 세계는 인연법의 적용을 받아서 서로 밀접한 관련하에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가 없으면 내가 없고 내가 없으면 너도 없으니 나 이외의 일체 중생들과 나와 같은 몸이라는 대자대비, 동체대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석가모니는 당시 고대 사회에 사상가들이나 수행자들 사이에 유행하던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주제를 피해 현실을 직시하라는 가르침을 편 사실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즉 "세계는 시간적으로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세계는 공간적으로 무한한가, 우한한가?", "영혼과 육체는 동일한가, 동일하지 않는가?", "석가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공자도 그랬듯이 이런 류의 이성으로 알 수 없는 죽음, 사후세계, 귀신 등과 같은 논의와 화두는 수행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도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에 흥미와 관심을 가진 제자인 말룽카풋타는 어느날 평소 석가모니가 이 의문에 대해 속 시원하게 답을 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가지고 자신을 찾아와서 하는 소리가 답을 해주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를 그만두겠다고 협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석가모니는 독화살에 맞은 사람의 예로 들면서 형이상학적 문제는 인간의 괴로움을 해소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즉 길을 가던 중 갑자기 숲에서 누가 쐈는지 알 수 없는 독 묻은 화살을 맞은 이가 독 화살 상처에 대해 잘 아는 의사를 부르지 않고 자신을 쏜 사람이 "어떤 출신인지", 또 "이름, 키, 피부 색깔, 주소를 알지 못하면 화살을 뽑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운다면, 또 그가 "화살의 종류, 화살이 대나무인지 아닌지, 화살에 사용된 깃털이 어떤 종류인지 알지 못하면 화살을 뽑지 않겠다"라고 한다면 "그것에 대해 전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의 수명은 다할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 너의 태도는 화살 맞은 사람 것 같다"고 했다. 계속해서 부처는 말룽카풋타에게 자상한 어투로 이렇게 말해줬다.
"말룽카여! 세계는 영원하다고 하는 사고방식이 있어도 또는 세계는 영원하지 않다는 사고방식이 있어도, 여전히 생노병사가 있고 걱정, 슬픔, 괴로움, 고민이 있다. 나는 생로병사 등을 현실 속에서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가르치려고 한다. 말룽카여! 너희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는 인간의 괴로움의 해결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 말룽카여! 따라서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으로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라. (내가) 말한 것은 말한 것으로 그냥 그대로 받아들여라.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은 '세계는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라는 문제이고, 내가 말하는 것은 사성제이다." (말룽카풋타 소경, 한역은 전유경)
석가모니는 이런 질문을 던진 말룽카풋타라는 제자에게 끝까지 이성으로 알 수 없는 형이상적인 문제에 대해선 답을 해주지 않았습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고해서 '10無記' 혹은 '14無記'라고 불려집니다. 결국 이 예화는 고통과 고뇌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쓰잘 데 없는 논의에 빠져들지 말고 지금 현실에서 고뇌를 없애기 위해 그 괴로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지혜롭게 천착하고 그 괴로움을 제거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행하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전해주는 것이죠. 또한 이는 석가모니의 관심은 오로지 인간을 향해 있었던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죠. 실제로 석가모니 자신도 인간임을 강조했었습니다. 아래와 같이 말입니다.
“나는 인간의 몸으로 세상에 태어났고, 인간세상에서 인간으로 성장하였으며, 인간으로서 깨달음을 었었다."(我身生於人間 長於人間於人間得佛)--중일아함경.
지금까지 제시한 내용들을 종합하면, 불교도들은 자신과 자기 가족 이외에 사회와 나랏일에 무관심할 게 아니라 더 많은 관심과 관여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명제로 이어집니다.
이제 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글쓴이로서 내가 이 글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전체적인 메시지는 2주 전 본인이 대만 南華대학이 주최한 국제 불교학술대회에 초청돼 가서 발표한 논문 내용 중 아래와 같은 일부를 가지고 대신하고자 합니다.
"석가모니는 늘 사회 속에서 생활했고, 탁발(托鉢), 걸식(乞食), 설법(說法), 중생제도(度化衆生)도 모두 사회 속에서 행했습니다. 그런데 후대 불자들이 입산해 은둔수행(山隱蔽修行)하기를 주장해 사회와 단절되고, 적극적으로 세간에서 구해야 할 불법을 세상회피라는 소극적 의미로 뒤바꿔 놓았습니다. 후대 사람들로 인해 신격화 된 석가모니를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본래 모습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잘못 알려진 석가모니의 바른 모습을 바르게 이해하자는 것이죠. 석가모니가 고행을 하고, 깨친 법과 진리를 중생들에게 설한 것도 모두 인간을 위한 것이었듯이 오늘날 한국불교도 인간의,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날! 석가모니가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이, 세상이 본래 인간의 본모습으로 나투길 바라는 마음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2018. 5. 22, 14:59
구파발에서
雲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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