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공부/역사인물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

남촌선생 - 힐링캠프 2018. 5. 27. 16:44

박정희의 5.16 군사혁명 57주기를 축하합니다

   

박정희

5.16 군사혁명 57주기를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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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업적

 

19610610일 농어촌 고리채 정리법 공포

19610611일 재건국민운동전개(국민의식개혁)

19610614일 부정축재 처리법 공포

19610703일 반공법 공포

19610630일 능의선 개통

19610714일 원자력 개원

19610722일 경제기획원 신설

19610803일 김포가도 포장 기공

19610808일 황지지선 기공(1961.6.13~1962.12.10)

19610819일 섬진강 수력발전소 건설

19610921일 춘천수력발전소 기공

19610923일 대한 중선창연(蒼鉛)자가제련공장 준공

19611222일 첫 학사자격 국가고시 

 

19620101일 연호를 서력으로 변경(연호에 관한 법률 제정)

19620113일 제1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발표

19620120일 상법제정 공포

19620201일 국민은행 발족

19620202일 기술진흥 5개년계획 발표

19620203일 울산공업지구설정 및 기공

19620210일 국토건설단 창단

19620301일 공문서의 한글전용 실시(7011일 관계법 제정)

19620319일 핵분열 연쇄반응 일으키는 원자로의 임계도달 시험

19620402일 농촌진흥청 발족

19620430일 해양경비대 창설

19620512일 반공센터 창설

19620601일 무역진흥공사 발족

19620618일 건설부 신설

19620713일 국민 의무교육 실시

19620719일 국립소년직업훈련소 낙성

19620910일 남양송신소 준공

19621020일 해운센터 기공식

19621023일 한국케이블공업주식회사 송배전신 및 케이블공장 기공

19621104일 광주디젤발전소 준공

19621106일 동해북부선(옥계-경포대간)개통

19621118일 과학자 우대정책 발표

19621120일 제4시멘트공장 건설

19621125일 부정거래단속법을 제정

19621128일 난민정착사업장 제방 준공

19621201일 마포아파트 준공

19621215일 김포,강화간 대교건설(~1970.1.26)

19621224일 생활보호법 제정

19621228일 호남 비료 나주공장 준공 

 

19630101일 교육자치제 실시

19630110일 외자도입 강력추진

19630118일 원호센터 준공

19630121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족

19630201일 장충체육관 건립

19630204일 지방문화재육성

19630315일 동진강지역 종합개발공사 기공, 김해, 진도(63~69)

19630321일 감사원 개원

19630330일 원자로 가동식

19630402일 무제한 송전실시

19630410일 부녀회관 건립 기공

19630514일 남대문 중수공사 준공

19630720일 제대군인 개간농장 입주

19630808일 한국나이론 공장 건설(대구)

19630808일 국사교육통일방안 확정

19630901일 철도청 발족

19630901일 노동청 발족

19630906일 국토종합개발계획 조사착수

19630906일 동대문 개축 준공

19630910일 문화재 보수 5개년계획 확정

19630917일 가족계획사업 추진

19630925일 직업재활원 개원

19630926PVC 제조공장 기공

19631010일 가정법원 개원

19631222일 서독광부·간호원파견(1963.12.22~1966.1.30) 

 

19640101일 미터제 실시

19640507일 울산 정유공장 건설

19640507일 국립중앙의료원 설립

19640701일 경주석굴암복원 준공

19640820일 감천화력발전소 건설(부산)

19641129일 울산 제3비료 공장 기공식-매암동,

                              충주비료와 미국 스위프트 투자단의 공동투자

19641205일 제1회 수출의 날 제정, 1억불 달성/7010억불/77100억불

                               82200억불/85300억불/88500억불 달성

19641206일 서독방문(유럽국가 첫 방문),

                               8일 뤼프케 대통령, 9일 에르하르트와 정상회담 

 

19650125일 제2한강교 개통

19650224일 한국원양어선단 결단(원양어업추진)

19650319일 방공 포병대대 창설

19650323일 청소년 선도 국민 궐기대회

19650401일 치산녹화 10개년 계획 확정

19650601일 김해 간척공사 기공

19650622일 한일협정 정식조인(동경), 814일 국회비준(야당불참),

1218일 비준서 교환(서울) 즉시 발효, 국교정상화

19650831일 해인사 경판고 보수

19650915일 제2 영월 화력발전소 준공

19651015일 율곡사 및 율곡기념관 낙성

19651113일 경호천 종합개발 준공식-칠곡군 북삼면

19651123일 민방위법 제정(민방위대창설:1975.9.22)

19651202일 식량증산 5개년계획 확정

19651203일 서울·춘천간 도로포장공사 준공

19651207일 진삼선 개통(사천~삼천포)

19651216일 국내(텔레스)개통 

19660119일 정선선 개통(예미, 증산, 고한 간)

19660127일 경북선 개통(점촌~예천 간)

19660127일 한국과학기술원 설립

19660204일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발족

19660303일 국세청 발족

19660303일 수산청 발족

19660409일 인천제철공장 기공

19660429일 경인공업단지 건설

19660503일 울릉도 추산 수력발전소 준공

19660608일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지구

                              전천후 농업용 수원개발사업 준공

19660609일 팔당수력발전소 기공

19660622일 한국 군장비현대화계획 발표

19660803일 산림청 신설

19661109일 김삼선 기공

19661109일 충남선 기공

19661128일 서울 분묘 보수

19661130일 밀양 영남루 보수

19661130일 서울 종각 보수

19661206일 부여 정림사지 정비

19661217일 아시아 개발은행 건설

19661218일 법주사 대웅전 보수 

 

19670124일 청평·의암 ·화천 수력발전소 건설

19670210일 대도시 그린벨트 설정(서울, 부산 등)

19670304일 영남화력발전소 제2호기 기공

19670330일 원자력청 발족

19670330일 과학기술처 신설

19670401일 구로동 수출 공업단지 준공

19670413일 서해안 철도건설

19670425일 종합민족문화센터 준공

19670426일 안중근의사 동상 이안

19670429일 천체과학관 준공

19670501일 국립광업연구소 설립

19670919일 구미전자공업단지 건설

19670923일 제1한강대교, 강변도로 건설

19671001일 국립묘지정화, 현충탑 건립

19671003일 포항종합제철공업단지 기공(1973. 7. 3 완공)

19671123일 한국수자원개발공사 발족

19671201일 농어촌개발공사 발족

19671220일 성산포 어업전진기지 준공 

 

1968000일 포항항 건설(~1973)

19680122일 대간첩작전본부 발족

19680207일 경전선 개통

19680211일 병기공장(M16소총) 건설착수

19680322일 석유화학계열공업 기공

19680401일 예비군 창설

19680413일 서울대학교 이전 건설

19680613레이다기지 준공

19680705일 방위산업육성3개년 계획확정

19680722일 중앙선,태백선전철화(~1974.6.20)

19680723일 동해안공업도시 개발착수(묵호,북평, 삼척)

19680724일 해양주권선언 발표(대륙붕 자원확보 및 개발)

19680729일 축산개발 4개년계획 확정

19680830일 영남화력발전소(울산가스터빈) 건설

19680909일 제1회 한국무역박람회

19680201일 경부고속도로(대구-부산간) 기공식

19681101일 제주도 포도당공장 준공

19681108일 동양화학공업주식회사 준공

19681202일 소수서원 해체 복원

19681205일 국민교육헌장 선포

19681207일 지리산 등 9개지역 국립공원 지정

19681211일 광화문 복원

19681216일 한국 투자개발공사 설립

19681221일 경인·경수고속도로 준공 

 

19690000일 교육제도개혁

                              (중학교무시험, 고교평준화, 대학입시예비고사제)

19690205일 농업진흥공사 발족

19690215일 지하수개발공사 발족

19690215일 한국도로공사 발족

19690222일 농업기계화 8개년 계획확정

19690301일 국토통일원 개원

19690301일 가정 의례 준칙 공포

19690428일 현충사 중건 준공식

19690428일 불국사 복원 정화작업(1969~1973)

19690604일 부산 화력발전소 준공(21Kw)

19690617일 마산 수출자유지역공업단지 조성

19690703일 울산 알미늄공장 준공

19690729일 서울 신도시건설 착수(한강이남.여의도.한강개발)

19690819일 범어사 대웅전 보수

19691007일 남강댐 준공

19691101일 농어촌근대화촉진법 발표

19691129일 관악산 기상레이더 건설

19691226일 제3한강대교 건설 

 

19700229일 금산사대적광릉 해체 복원

19700307일 비적성공산권에 문호개방

19700322일 정부장기종합교육계획시안마련-86년까지 단계적으로 실시

                              (의무교육9년으로 연장, 교육제신설, 교원에게 병역)

19700415일 남해고속도로 기공(~1973.11.14)

19700422일 새마을운동 제창

19700516일 서울대교 건설

19700529일 인천 화력발전소 준공

19700602일 금산 위성통신지구국 개통

19700701일 우편번호제 실시

19700704일 배창방직기계 준공식 참석(충북 옥천군 옥천읍 양수리)

19700705일 직기공장 준공-유사시엔 총포 생산도

19700707일 경부고속도로 전면 개통

19700725일 남산 어린이회관 건립

19700802일 낙동, 영산강 종합개발안 영구수해방지 위해 다목적댐 건설

197008158.15기념식에서 북한이 무력포기하면

                              남북간의 인위적 장벽 단계적 제거 선언

19700916일 공군 전천후 해상소형공격기 S2A배치

19701022일 수도권(경인,경수,경원)고속전철화(~1974.8.15)

19701110일 행주산성 복원 준공

19701119일 세종대왕기념관 준공

19701208일 도산서원 보수 정화공사 준공

197012174대강유역 종합개발계획 확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19701225일 화엄사 대웅전 보수

19701231일 남원 광한루 보수 

 

19710131일 제주도 일주도로 준공

19710319일 원자력발전소 기공

19710323일 금강·평택지구 다목적농업 개발사업 기공

19710408일 거제대교 건설

19710412일 서울지하철 기공

19710413일 칠백의총 보수정화 준공

19710612일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제의, 북한측 거부

19710812일 한국적십자연맹, 남북가족찾기회담을 북측에 제의

19710830일 속리산 법주사의 사천왕문 복원

19710908일 국토종합개발계획 확정

19710910일 서울 북악 터널 개통

19710925일 태릉 국제사격장 준공

19710929일 여의도 5·16광장 준공

19711114일 각종 무기 생산 개시 

 

19720104일 전국 10대 관광권 개발확정

19720105일 군산항 개발착수

19720000일 제주관광개발사업 추진(~1977)

19720209일 녹색혁명 추진(통일벼 개발)

19720310일 경주 고도개발 10개년획 확정

19720323일 현대 울산조선소 기공

19720405일 산림보호, 육성, 산지개발(입산,수렵금지)

19700529일 인천 화력발전소 준공

19720421일 새마을 운동 노래 작사, 작곡

19720607일 교육용 한자1,781자 선정 발표

19720626일 전국 702개 섬 개발계획 확정

19720704일 한국 개발연구원 설립

197207047.4 남북공동성명 발표

19720930일 영동화력발전소 건설

19721031일 석유화학공장 합동 준공, 울산 석유화학8개공장 건설

19721104일 육산리 고분군 정화

19721113일 시외전화 자동화

19721124일 부산항 대단위종합개발 추진(~1978.9.29)

19721125일 소양강 다목적댐 담수

19721211일 지리산,설악산,낙동강 하류철새보호지역 지정 

 

19730000일 이리 수출자유 지역

19730112일 공업진흥청 신설

19730216일 제주도 종합개발 착수

19730303일 한국방송공사 설립

197305048개 공업장려지구지정 공업개발

                             (춘천,청주,원주,대전, 전주, 이리, 목포, 군산)

19730505일 어린이대공원 개원

19730511일 해운항만청 신설

19730524일 중화학공업건설 발표

19730620일 중앙선(청량리-제천)전철 개통

19730622일 남해대교 건설

19730623일 평화통일외교정책 7개항 발표(6.23선언)

19730626일 대덕연구단지 건설(10개연구소)

19730703일 포항종합제철 준공

19730705일 한일대륙붕 협상 완전타결

19730710일 전국91개 공업고등학교 신설, 확충계획발표

19730720일 여천 석유화학 공업단지 건설

19730815일 남북 UN동시가입 촉구

19731011일 옥포조선소 기공

19731017일 국립극장 개관

19730718일 정수직업훈련원 개관

19731019일 문예중흥5개년계획 추진

19730606일 창원기계공업단지 조성

19731107일 국민연금복지법 제정

19731110일 죽도조선소 건설

19731215일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 등 4개항의 친 아랍성명 발표 

 

19740118일 남북한 불가침 협정체결 제의

19740124일 최대임해공업벨트개발(2제철-조력발전소 건설)

19740328일 영동.동해고속도로 기공

19740522일 아산·남양방조제 준공

19740610일 낙성대 정화사업 준공

19740118일 남북한 불가침협정 체결제의

19741210일 금산사 미륵전 해체 복원

19741227일 이경관문 해체 복원 

 

19750110일 구미대교 건설

19750121일 농어촌지역의 상수도 시설5개년계획 추진

19750201일 대단위농업개발사업 추진(금강,평택,광주, 삽교천,계화도)

19750327일 대청 다목적댐 건설

19750411일 중앙민속박물관 개관

19750520일 학도호국단 창설

19750901일 국회의사당 준공

19751010일 서울 어린이회관 이전 개관

19751028일 전국 성곽보수사업 추진

19751030일 정립회관 건립(장애인보호육성)

19751107일 함대함 미사일 개발 

 

19760120일 옥산서원 보수

19760120일 강화지역 유적 개발

19760120일 신안해저 문화재 발굴

19760317일 모산 저마 공장 준공-충남 아산군 배방면 공순리

19760410일 밀양 포충사 정화사업

19760410일 유관순 유적지 정화사업

19760417일 국어 정화, 순화 운동 전개

19760510일 강릉 오죽헌 정화사업

19760518일 한국 인력 검정공단 법안 확정(기술인력관리,자격,검정의 일원)

19760624일 유적지전적지 개발을 위한 특별법 제정

19760624일 구마고속도로 착공

19760716일 잠수교 개통식 참석

19761002일 반월공업도시 건설

19761012일 쌀의 완전 자급자족 달성

19761014일 영산강 유역 농업개발 제1단계사업 준공

19761030일 한산성 충무공 유적 정화사업 준공식 참석 

 

19770112일 대북식량원조 제의,

                              남북한 불가침 협정 체결되면

                              주한미군 철수에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힘

19770128일 국방부 순시에서 핵무기와 전투기를 제외한

                               모든 무기를 국산화 할 수 있음을 천명

19770000일 남서울대공원 건설

19770215일 산업체부설학교 및 특별학급 설치

19770217일 증권감독원 개원

19770000일 전국 도서관 확충

19770430일 초고압 송변전시설 완공

19770525일 미군철수 정책 저지(선보완, 후저지)

19770615일 월성 원자력발전소 건설(1977.6.15 ~1982.3.10)

19780701일 부가가치세, 의료보험 실시

19770710일 자동차공업 육성책 발표

19770730일 경주통일전 조성

19761103일 안동 다목적댐 건설

19770922일 소비자보호기본법 제정

19771007일 육림의날 선포

19771009일 여주 영육 성역화 사업

19771009일 부석사 정화 작업(1977~1979)

19771025일 군산화력발전소

19771025일 부평화력발전소

19771104일 아산화력발전소 건설

19771207일 전주권 광역도시개발 및 공업단지 조성

197712221백 억불 수출달성 기념 

 

19780101일 동력자원부 신설

19780109일 충주 다목적댐 건설

19780118일 군수산업의 육성(헬기, 대포, 탄약, 장갑차, 함정, 레이다

                              미사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항공기 산업과 특수전차 개발에 착수)

19780220일 행정전산화 10개년 계획확정

19780330일 호남선 복선 개통

19780401일 국민체조 보급

19780414일 세종문화회관 개관

19780503일 월정사 복원

19780510일 김덕령장군 유적지 정화사업(광주)

19780510일 임경업장군 유적지 정화사업(충주)

19780522일 부마고속도로 건설(1978.5.22 ~ 1980.10.5)

19780605일 태양에너지 연구소 발족

19780612일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19780623일 남북간의 교역, 기술, 자본 협력 위한

                              민간 경협기구 구성을 북한에 제의

19780630일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개원

19780815일 해남 표충사 보수

19780926일 국산 장거리 지대지 유도탄, 중거리 유도탄, 다연발 로케트,

                              대전차 로케트 시험발사에 성공, 세계 7번쨰 개발 보유국됨.

19781005일 자연보호헌장 선포

19781020일 서해안 일부지역 국립 해안 공원 지정

19781030일 직지사 정화사업

19781108일 관광산업진흥책 발표

19781130일 곽재우장군유적지 조성 정화사업

19781206일 광주박물관 개관

19781230일 장거리 자동 공중전화 시대 개막 

 

19790327일 토지개발공사 설립

19790406일 경주 보문 관광단지 개장

19790418일 잠실체육관 건립

19790530일 상주 정기룡장군 유적지 정화사업

19790612일 경북 울진 원자력 발전소 기공

19790613일 수도권 광역수도사업 추진(팔당)

19790705일 천호대로 준공

19791002일 환경청 신설

19791012일 국제 올림픽대회 서울 유치 언명

19791026일 삽교천 방조제 준공 *


-


박정희


5.16 군사혁명 57주기를 축하




Bismarck


Also sprach Bismarck 


비스마르크 가라사대 -


연설과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로써- 


무슨 말인고하니,

국가의 중대사는 민주주의 의회제도의 맹점인

다수결의 원칙이나,촛불선동이나 드루킹 같은 여론조작 같은

인민재판이 아닌 오직 국가안위을 위한 철통같은 군대의 화력과 피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해설 : 

독일이

주목하고있는 것은

프로이센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능력입니다.

바이에른, 뷔 르템 베르크 바덴은 각각의 자유주의를 인정 하겠지만,

그러므로, 자신에 프로이센의 역할을 할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로이센은 그 힘을 결집하고 기회를 위해 유지해야합니다. 기회는 이미 몇번이고 놓쳐 왔습니다.

비엔나 협약 후 프로이센 국경은 건전한 국가 생활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큰 문제의 해결은 연설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

이것은 1848 년 및 1849년의 큰 결함이었다 - 에 의해하는 것입니다.

Nicht auf Preußens Liberalismus sieht Deutschland,

sondern auf seine Macht; Bayern, Württemberg, Baden mögen dem Liberalismus indulgieren,

darum wird ihnen doch keiner Preußens Rolle anweisen; Preußen muß seine Kraft zusammenfassen und zusammenhalten auf den günstigen Augenblick,

der schon einige Male verpaßt ist; Preußens Grenzen nach den Wiener Verträgen sind zu einem gesunden Staatsleben nicht günstig; nicht durch Reden oder Majoritätsbeschlüsse werden die großen Fragen der Zeit entschieden – das ist der große Fehler von 1848 und 1849 gewesen – sondern durch Eisen und Blut. - Otto von Bismarck -


Hitler

역시 자서전 Mein Kampf에서 동일하게 역설한 외침이 있다

편집하면, 

아래:

Demokratie ist ein Wert, der auf der ideologischen Grundlage des Prinzips

der parlamentarischen Mehrheit begründet ist, die die Idee der Gleichheit der Menschen anerkennt.
Jedoch,
Die Demokratie hat nicht die Macht, Grausamkeiten auszurotten.
Der Grund ist, dass Opportunisten die Defekte der Demokratie umkehren und sie ausnutzen, um Macht zu schaffen.
So ist die Gefahr, Geschichte zu zerstören, unvermeidlich, auch wenn sie als Zeichen verkleidet ist.
Der Glaube, dass jeder glücklich sein wird, wenn das demokratische System aufrechterhalten wird, ist eine falsche Illusion
Es liegt in der Verantwortung jedes einzelnen Bürgers, mit einer solchen Propaganda verwechselt zu werden und das Schicksal des Landes aufzugeben.

 

민주주의

인간 평등사상을 인정하는

의회주의적 다수결의 원칙에 그 이념적 기초를 두고 성립되는 가치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만행을 뿌리 뽑을 힘이없다 . 그 이유는

기회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의 결함을 역이용하고 그에 편승하여 권력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간판으로 위장한다' 해도 역사가 퇴보되는 위험성은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 체제만 유지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릇된 망상이다

그러한 

프로파간다에 착각되어 나라의 운명을 떠맡긴 결과는 국민 각자의 책임이다

Democracy is a value that is established on the ideological basis

of the principle of the parliamentary majority which recognizes the idea of human equality.
But
Democracy does not have the power to root out atrocities.
The reason is that opportunists reverse the defects of democracy and take advantage of them to create power.
Thus, the danger of demolishing history is inevitable even if it is disguised as a sign.
The belief that everyone will be happy if the democratic system is maintained is a false delusion
It is the responsibility of each citizen to be mistaken for such a propaganda and to give up the fate of the country





.https://youtu.be/SMKuUFoUJ4Q


 



5.16의 새벽

 글쓴이:

성령 최 성 주

그 날은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라디오가 시끄러웠고 신문에는

색안경을 낀 깡마른 軍人이 보였다.

그리고 革命公約이 나왔고 우리는 그것을 줄줄 외웠다.

그렇게 5.16은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의 집권기에 成長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반대하는 街頭 데모를 하다가

군인들에게 잡혀서 필동에 있는 首警司에 끌려갔다.

거기서 한나절을 머리 박고 기합을 받았다.

主動者를 가려내고

나와 데모대는 장충체육관 광장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하숙집 歸家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승객들에게 박정희의 독재를 소리 높혀 설명했다.

50여 년의 星霜이 흐른 뒤,

나는 初老가 되어 그를 다시 생각한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그가 아니었으면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내가 이렇게 하늘을 이고 땅을 딛고 사는 것은

순전히 그의 德分으로 여긴다.

바로 그 5.16

그날의 새벽이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박정희는 빨갱이 혐의로 死刑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그를 아끼는 몇 사람의 도움으로

그는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다.

김창룡 특무대 수사관과

정보국장 백선엽이 그를 도왔다.

그들은 박정희를 알았던 것이다.

이로서 박정희는 다시 軍服을 입는다.

4.19는 혁명이 맞지만

그것으로 나라를 바꾸는 데는 力不足이었다.

張勉 정권은 무능하여 4.19 세력에 끌려 나녔다.

外信기자가 장면에게 이렇게 물었다.

"새 나라가 되었는데

국민을 어떻게 먹여 살리겠습니까?"

장면은 이렇게 답변을 했다.

"求乞을 해서라도 먹여 살리겠다."

이것이 장면과 그 정권의 生存방식이다.

또한 이것이 박정희를 부르는 端初가 된 것이다.

515일 늦은 밤

육영수는 큰딸 근혜의 숙제를 도왔다.

이때 박정희가 방에 들어와 外出을 알렸다.

그는 근혜의 등을 어루만지고 근영, 지만이의

자는 모습을 마지막 心情으로 바라보았다.

(저 애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육여사는 어둠 속으로 남편을 배웅하고

걷은 빨래를 꼼꼼히 개켰다.

(우리는 내일 새벽을 어떻게 맞이할까?)


그러나 이미 혁명계획이 누설(漏泄)되었다.

30사단 참모들이 다투다가

누군가가 고자질을 한 것이다.

방첩대 감시조가 민간인 복장으로 따라 붙었다.

나이는 6살 아래지만 상급자인 장도영 中將에게

이미 혁명계획을 알린 바 있다.

그것은 協助하거나 默認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장도영은 어정쩡하게

양다리를 걸치다가 鎭壓을 명한 것이다.

박정희는 흐트러진 병력을 규합하여

한강 인도교 南端에 섰다.

이미 다리 건너 용산 쪽에는

진압군이 바리케이트로 沮止線을 치고 기다렸다.

박정희가 前進을 하자 진압군의 총알이 빗발쳤다.

擧事가 탄로났다는 소문을 들은 혁명군이 망설였다.

박정희는 목숨을 버릴 각오로

차에서 내려 한강교를 뚜벅뚜벅 걸었다.

이에 용기를 얻은 兵力은 그를 믿고 전진을 계속했다.

한편 6군단 포병부대가

대포를 이끌고 의정부를 통과하려 했다.

그러나 그곳에는 美軍의 검문소가 있었다.

이곳에서도 은 혁명군을 도왔다.

검문소 미군 초병(哨兵)들은 혁명군 통과를

오히려 반기며 교통정리까지 해 주었다.

그들은 아마도 훈련차 出動으로 여겼을 것이다.

한강 인도교 총격전에서 진압군의 총알은

박정희를 비껴갔고 혁명은 드디어 성공했다.

피해는 부상자 몇 명을 낸 것이 전부다.

김종필이 KBS를 점령하고

새벽 5시 첫 뉴스를 이렇게 시작했다.


"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軍部는 드디어 금조미명(今朝未明)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

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정권과 기성 정치인들에게

더 이상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어서 革命公約 6개항이 방송을 탔다.

나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머리를 숙인다.

김창룡과 백선엽이다.

그 둘이 아니었으면 박정희는 刑場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리고 박정희를 비껴간 총알에 감사한다.

만일 그 때 총알 하나가 그를 맞혔다면

대한민국의 前進의 역사는 中斷 되었다.

의정부 美軍 검문소의 초병들에게도 敬意를 표한다.

그들의 검문으로 擧事發覺되었다면

혁명은 시작도 하지 못하고 좌절되었을 것이다.

國軍美軍을 이길 수는 없는 것이다


5월은 계절의 女王이라며 行事記念日이 많다.

근로자의날,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가정의날, 발명의날, 광주5.18, 노무현 서거의날 등이다.

그러나 5.16은 아무도 기리지 않는

"무념(無念)의 날"이 되었다.

일부 세력은 지금도 그것을

革命이 아닌 '구데타'라고 우긴다.

最貧國에서 세계 10經濟大國을 이루었고

산업화를 지나 전자산업은

세계一流가 되었는데 말이다.

먹고 남는 쌀이

창고에 넘쳐나 골머리를 썩히고 있다.


그들은 박정희를 공산당 친일파였다고 格下한다.

그것이 뭔 대수인가?

그가 나라를 富强케 하고 공산군을 막았으며

국토를 상전벽해(桑田碧海)로 바꾸어 가꾸었고

국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自信感을 심었다면

나는 그가 공산당 친일파를 넘어

흉악한 强盜라 하더라도 머리를 숙여 존경할 것이다.


나는 그를 생각하면 눈물부터 나온다.

그가 국민을 운명적 굶주림에서

해방시켰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는 나라와 국민을

제 몸과 가족보다도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동안 소찬(素饌)을 들었고

군복과 양복은 修繕해서 입었으며 革帶는 낡았다.

그가 生前에 남긴 재산은

낡은 신당동 자택 말고는 없다.

그가 권력을 공고(鞏固)히 유지코자 한 것은

중단 없는 국가발전이 절실히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 말을 남기고 죽었다.

"내 무덤에 침을 뱉아라!"


그에 대한 나의 연민(憐憫)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간다.

그를 생각만 하면 그냥 눈물이 앞을 가린다.

이것은 이 맞다.

왜냐하면 症勢가 그렇기 때문이다.

그것도 重病이며 痼疾病이고 不治病이다.

이 병에서 해방되고자 한다면 죽는 길 말고 없다. *  


*이제 그날이 다가왔다.

5.16말이다.

현 정권을 생각하면 그가 더욱 그립다.

그는 키도 작고 깡 말랐지만

생각은 지구를 넘어 우주를 향했다.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것은 다름이 아니고

제 자신보다 국가와 민족을 더 사랑했다는 점이다.

다시 5.16을 맞아 지난 글을 뒤져 올린다.

문재인과 그 세력들의 반역과 배반의 정치에

한 없는 우려와 분노를 느끼면서... 

글쓴이:






























 




자유라는


Liberty와 Freedom의



용어와 그 개념의 차이


에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 1863에서 찾아본다.



 

자유라는 

Liberty와 Freedom의

용어와 그 개념의 차이
에브라함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문 1863에서 찾아본다.
주사파가
자유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Liberty에는 천부인권의 자유개념
Freedom에는 억압된 인권에서 해방자유개념이 내재하기 때문.
Keine Freiheit fuer die Feinde der Freiheit -
자유의 적들에게 자유를 주어서는 안된다.
자유의 적들에게 자유란 없다 !
이상,
뭔 말인가는, 자유롭게 이해 바랍니다
ㅎㅇㅎ 
https://en.wikipedia.org/wiki/Liberty
vs.
https://en.wikipedia.org/wiki/Freedom
-
Hitler의
자서전 Mein Kampf에서-
편집하면,
민주주의는
인간 평등사상을 인정하는
의회주의적 다수결의 원칙에 그 이념적 기초를 두고 성립되는 가치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는 만행을 뿌리 뽑을 힘이없다 . 그 이유는
기회주의자들이
민주주의의 결함을 역이용하고 그에 편승하여 권력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간판으로 위장한다' 해도 역사가 퇴보되는 위험성은 피할 수 없다
민주주의 체제만 유지된다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그릇된 망상이다
그러한
프로파간다에 착각되어 나라의 운명을 떠맡긴 결과는 국민 각자의 책임이다 


Bismarck
Also sprach Bismarck
비스마르크 가라사대 -
연설과 다수결이 아닌, 철과 피로써-
무슨 말인고하니,
국가의 중대사는 민주주의 의회제도의 맹점인
다수결의 원칙이나,촛불선동이나 드루킹 같은 여론조작 같은
인민재판이 아닌
오직 국가안위을 위한 철통같은 군대의 화력과 피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독일이
주목하고있는 것은
프로이센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능력입니다.
바이에른, 뷔 르템 베르크 바덴은 각각의 자유주의를 인정 하겠지만,
그러므로, 자신에 프로이센의 역할을 할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프로이센은 그 힘을 결집하고 기회를 위해 유지해야합니다. 기회는 이미 몇번이고 놓쳐 왔습니다.
비엔나 협약 후 프로이센 국경은 건전한 국가 생활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현재의 큰 문제의 해결은 연설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
이것은 1848 년 및 1849년의 큰 결함이었다 - 철과 피에 의해하는 것입니다.
Nicht auf Preußens Liberalismus sieht Deutschland,
sondern auf seine Macht; Bayern, Württemberg, Baden mögen dem Liberalismus indulgieren,
darum wird ihnen doch keiner Preußens Rolle anweisen; Preußen muß seine Kraft zusammenfassen und zusammenhalten auf den günstigen Augenblick,
der schon einige Male verpaßt ist; Preußens Grenzen nach den Wiener Verträgen sind zu einem gesunden Staatsleben nicht günstig; nicht durch Reden oder Majoritätsbeschlüsse werden die großen Fragen der Zeit entschieden – das ist der große Fehler von 1848 und 1849 gewesen – sondern durch Eisen und Blut.
- Otto von Bismar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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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sburg Address

게티즈버그 연설문
 
Four score and seven years ago
여든 하고도 일곱해 전(1776),
our fathers brought forth on this continent a new nation, conceived in liberty
and dedicated to the proposition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우리의 선조들은 자유속에 잉태된 나라,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믿음에 바쳐진 새 나라를 이 대륙에 낳았습니다.
Now we are engaged in a great civil war, testing whether that nation, or any nation,
so conceived and so dedicated, can long endure.
지금 우리는 그러한 나라, 혹은 이같이 잉태되고 이와 같이 헌신된 나라들이
오래도록 버틸수가 있는가 시험받는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We are met on a great battle-field of that war.
그리고 우리는 그 전쟁의 거대한 격전지가 되었던 싸움터에 모였습니다.
We have come to dedicate a portion of that field,
as a final resting place for those who here gave their lives that that nation might live.
우리는 이 땅의 일부를,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하여 이곳에서 생명을 바친 이들에게 마지막 안식처로서 바치고자 모였습니다.
It is altogether fitting and proper that we should do this.
이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해 줘야 마땅하고 옳은 일인 것입니다.
But, in a larger sense,
we can not dedicate, we can not consecrate, we can not hallow this ground.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우리는 이 땅을 헌정하거나… 봉헌 하거나… 신성하게 할 수 없습니다.
The brave men, living and dead, who struggled here, have consecrated it,
far above our poor power to add or detract.
이곳에서 싸우다가 죽거나 혹은 살아남은 용사들이 이미 이 땅을 신성하게 하였으며,
우리의 미약한 힘으로는 더 이상 보탤 수도, 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The world will little note, nor long remember what we say here,
but it can never forget what they did here.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하는 것을 세상은 주목하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It is for us the living, rather,
to be dedicated here to the unfinished work which they who fought here have thus far so nobly advanced.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우리, 살아남은 이에게 남겨진 일은 오히려,
이곳에서 싸운 이들이 오래도록 고결하게 추진해온,
끝나지 않은 일에 헌신하는 것입니다.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우리들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명예로이 죽은 이들의 뜻을 받들어,
그분들이 마지막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한 그 대의에 더욱 헌신하는 것입니다.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그것은 그들의 고귀한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하고,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신의 가호 아래, 이땅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며,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
그리고 사람들을 위한, 사람들에 의한, 사람들의 정부가 지구상에서 살아지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Signature
of Abraham Lincoln as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From a manuscript document of a Presidential pardon, countersigned by William H. Seward.
Date 18 February 1862
Source Heritage Auction Gallery
Author Abraham Lincol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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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誤答

liberty와 freedom의 차이   
자유라는 개념 또한 매우 잘못된 뜻으로 확산되어 있다.

영어에는 자유라는 뜻을 지닌 단어로

‘프리덤(freedom)’과 ‘리버티(liberty)’ 두 가지가 있지만,

한국어로는 똑같이 ‘자유’로 번역되기 때문에 혼동을 초래하고 있는 것 같다.

 ‘freedom’은 아무런 규제가 없는 상태를 뜻하지만,

 ‘liberty’는 비윤리적 또는 부당한 규제로부터 해방됨을 뜻한다.

그러므로 합당한 규제는 있어도 된다는 뜻을 지닌 ‘liberty’는 타율을 인정한다.

다시 말해서

사회가 생존하기 위해서

국민이 추구해야 하는 자유는 liberty지 freedom이 아니라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에서 내건 ‘자유, 평등, 박애’라는 슬로건의 영문은 ‘liberty, equality, fraternity’였다.

미국 헌법도 국민의 liberty를 보장했지 국민이 제멋대로 할 수 있는 freedom을 약속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간섭과 규제로 통제받는 타율에 지쳐 자율을 외치지만, 자립 능력이 없는 상태의 자율은 타락과 방종으로 치닫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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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誤答:
영어의 '자유'란 말에는 'Liberty'와 'Freedom'의 두 단어가 있다.
그러나 옛날 북유럽 국가에는 '리버티'란 말이 없었고 남유럽에는 '프리덤'이라는 말이 없었다.
리버티는 구속에서 벗어난다는 뜻으로 일종의 특권적 자유다.
예를 들면 노예를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그런 것과 같다.
프리덤은 사랑과 우정이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말로 어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하늘이 부여한 원초적 자유여서 누가 주거나 누가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다.
리버티와 프리덤이 신대륙 미국으로 넘어와 충돌한 것이 남북전쟁이다.
북부는 북유럽에서 건너온 프리덤이고 남부는 남유럽에서 이민 온 리버티였다.
결국 이 충돌은 북군이 승리함으로써 신대륙은 프리덤의 나라가 됐다.
그리고 그러한 자유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신대륙의 관문이었던 뉴욕에 세워졌다.
원래는 '세계를 밝히는 자유의 상'이지만 보통 '자유의 여신상'이라 불린다.
그런데 자유의 여신상은 '자유(Freedom)의 여신상'이 아니라 '자유(Liberty)의 여신상'으로 불린다.
그것은 프리덤이 없었던 남유럽 프랑스가 선물한 것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뉴욕 항구로 들어오는 이민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것이 바로 횃불을 높게 치켜든 거대한 이 여신상이다.
여신상이 쇠사슬을 밟고 있는 것은 모든 탄압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는 의미다.
여신상은 이민의 나라, 자유의 나라 미국을 상징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상징물이었다.
그래서 자유와 행복을 찾아 이역만리 찾아온 사람들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위풍당당한 여인의 모습은 장밋빛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여신상이 외치는 자유는 완전한 자유인 '프리덤'이 아닌 불평등한 특권적 자유인 '리버티'이다.
그래서인지 미국은 아직도 불평등의 싸움 속에서 상처투성이로 몸살을 앓고 있는지도 모른다. 차별이 없이 완전히 동등한 자유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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