三十六計 敵戰計
第十計
笑裏藏刀(소리장도)
웃음 속에 칼을 숨기다
웃음 속에 칼날을 숨기다. 우리 옛말에 '솜으로 칼을 싼다'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말 그대로 부드러운 말씨와 미소짓는 표정으로 상대방의 경계심을 풀고 방심하게 하라는 말이다.
원문의 풀이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성의를 보여 적을 안심시키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뜻하는 바를 도모하라. 충분히 준비한 후에 행동하라. 마음 속에 剛(강)을 품고 겉으로는 柔(유)를 보여라.[信而安之,陰以圖之,備而後動,勿使有變.剛中柔外也.]"
...外柔內剛(외유내강)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나는 부분이다.
전통적으로 '笑裏藏刀'의 대명사로 꼽히는 인물은 '呂蒙(여몽)' 이다. 三國志演義(삼국지연의)에서 관우를 함정에 빠뜨려 사로잡고, 관우가 죽은 후 그의 혼령에 사로잡혀 죽게된 인물, 그가 바로 여몽이다. 자세히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
적벽대전 이후 유비는 형주를 차지해 버리고, 파촉을 차지하고, 한중까지 나아가 급기야는 스스로 '漢中王(한중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는 관우에게 형주를 지키도록 명했다. 吳의 손권은 형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지만, 관우는 吳에 있어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에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의 자리에 오른 여몽은 관우가 번성을 치러 간 사이에 형주를 공략하고자 하나, 관우가 남겨놓은 봉화대가 큰 걸림돌이 되었다. 결국에 여몽은 자리에 드러눕고 만다. 손권이 크게 걱정하나 '陸遜(육손)'은 그 속을 꿰뚫어 보고 여몽을 문병간다. 여몽은 형주를 탈환하고 싶지만 관우의 봉화대가 걸림돌이 되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꾀병을 앓은 것이었다. 이에 육손이 조언을 한다.
"관우는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믿고 자기를 당해낼 사람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소. 염려하는 사람은 오직 장군이 있을 뿐이오. 장군은 이러한 기회에 병을 칭탁하고 사직한 다음, 육구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양보하고 그 사람에게 관우를 비굴한 말로 찬미케 하면 관우는 마음 가득 교만해져서 형주의 군사를 철수시켜 모두 번성으로 향하게 할 것이오. 만일 형주에 방비가 없다면 어찌 함락시키지 못하겠소?"
여몽은 병을 핑계로 일어나지 않고 육손을 추천하며 사직을 청했다.
"만일 인망이 두터운 사람을 쓴다면 관우는 반드시 대비를 할 것이옵니다. 육손은 사려가 깊으나 아직 이름이 덜 알려졌으니 관우가 경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신 대신 임용하시면 반드시 성과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리하여 육손이 여몽 대신 육구를 지키게 되었다. 육손은 즉시 편지 한 통을 써서 명마와 이금, 주례 등을 준비해 번성에 있는 관우에게 보냈다. 편지는 말놀림이 극히 겸손하고 조신했다. 관우는 읽고 나서 크게 웃으며 사자를 돌려보냈다. 그리고는 형주에 남겨두었던 병력을 모두 번성으로 이동시켰다.
...그 틈을 타서 吳의 군사들이 봉화대를 침묵시키고 형주를 차지해 버린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전략삼국지'. 여몽에게 건의하는 육손.
蛇足(사족)을 덧붙이지면, 연의에서는 여몽을 깎아내리기 위해 위의 계책도 여몽이 아닌 육손이 낸 것으로 되어있고, 또한 관우가 죽은 후 여몽은 관우의 혼령에 씌어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正史에 의하면, 위의 계략은 여몽에 의한 것이었고, 여몽은 단지 병 때문에 죽은 것 뿐이었다.
일단은 '소리장도'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여몽이지만, 이보다 더한 예도 있다.
바로 '臥薪嘗膽(와신상담)'이라는 고사의 주인공인 越王(월왕) '구천'. 후에 '열국지'에서 다룰 기회가 있을테니 간단하게만 알아보도록 하자.
때는 춘추시대 말기, 위대한 전략가 손무와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강국 초나라를 무찌르고 주변나라를 떨게 했던 吳나라의 왕 합려는 초를 치고 난 후, 越나라와의 전투에서 전사하고 만다(이 때 손무는 은퇴한 이후이다). 이에 합려의 뒤를 이어 吳王이 된 합려의 손자인 '부차'는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합려의 상이 끝나자 곧 越을 치기 위해 군사를 움직인다. 손무는 없었지만 명장 오자서의 힘으로 월나라는 궤멸적인 타격을 받는다. 이에 월나라는 오왕의 측근인 백비를 매수하여 '월왕 부부가 신하가 되어 오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을 조건으로 멸망은 면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오나라에 와서 오왕 부차의 신하로 생활하게 된다. 이때 '섶에 누워 쓸개를 빨며' 생활한 것이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가 되었다. 오왕 부차의 경계를 풀기 위해 그의 배설물까지 먹어가며 고생을 하여 결국엔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물론 오자서가 반대했지만, 이미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는 오왕에겐 충신의 강직한 충언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월왕 구천은 고국으로 돌아가 즉시 국가체제를 정비하고 복수를 계획한다. 그리고 오왕에게 많은 보물과 미인 '서시'를 바친다. '찡그린 얼굴도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西施嚬目(서시빈목)'의 주인공인 서시를 선물로 받은 오왕 부차는 점점 더 방탕한 생활에 빠지게 된다. 그리하여 커다란 궁궐의 공사까지도 실행하는데 월왕은 커다란 목재를 보내 토목공사의 규모를 더 크게 부추켜 吳의 재정을 파탄나게 한다.
또한 한 해는 越나라에 흉년이 들었는데 吳나라에서 곡식을 꾸기로 했다. 과연 곡식을 빌려줄까 싶었으나 '복수를 꾀하고 있다면 곡식을 빌려달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라는 말에 따라 吳에서는 곡식을 꾸어준다. 다음해에는 越에는 풍년이 들었으나 吳에 흉년이 들었다. 월왕 구천은 이 때를 틈타 공격하려 하였으나 신하들이 만류한다. 越은 吳에 빚을 갚는다며 곡식을 보냈는데, 이 때 낱알이 좋은 것만을 골라 살짝 쪄서 보냈다. 이에 吳에서는 곡식의 품종이 좋은 것을 보고 다음해에 종자로 쓰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찐 씨앗이 자랄리가 없는 법. 吳에는 그 해에 유래없는 대흉을 맞게 되고, 이를 기회로 越은 吳를 크게 쳐 무너뜨린다. 吳王 부차는 '신하가 되겠다'며 항복을 받아주길 청하지만, 越王은 자신이 이미 그렇게 해서 살아남아 복수를 이루고 있었으므로 '인간의 복수심'을 쉽게 보지 않았다. 그러게 吳는 越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
월왕 구천은 한 나라의 王으로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신하가 되고, 온갖 허드렛일을 다하고, 다른 사람의 대변까지 먹으면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그리고는 그 힘든 날들을 지나며 복수심이 무뎌지게 하지 않기 위해 고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섶에 누워 쓸개를 빠는' 생활을 계속했다. 또한 吳王의 경계심이 느슨해지게 하기 위해 많은 뇌물을 보내 그 눈을 흐리게 만들었고, 미인 서시를 보내 정사로부터 관심이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급기야 吳를 무너뜨리기에 이른다. 이야말로 여몽의 예보다 훨씬 처절한 '笑裏藏刀'의 예라 할 것이다. 물론 이 예는 '臥薪嘗膽'으로 더 유명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미소 속에 칼을 숨기다'. 뭔가 일본인의 feel 이 나는 계략이다...쯔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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