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맥(菽麥)'
'쑥맥'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나는 여자 앞에만 가면 쑥맥이 된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서 쑥맥이다.'
이러한 표현을 하지요. 보통 쑥맥은 '초보자' 혹은 '무경험자'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실제로 쑥맥의 한자는 콩 숙(菽)자, 보리 맥(麥)자로 되어 있습니다. 콩인지 보리인지
분간을 못한다는 뜻이지요.
어린아이에서 청소년기를 거쳐서 성인이 되어도 사람은 계속 공부하게 됩니다.
공부하는 과정은 '쑥맥'을 벗어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분별력이 있을까요? 증산도 도전에서는 두가지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어린아이는 모든 것을 안다."
"철부지한 아해와 같다."
이러한 두 말씀이 서로 상충(?)되지요. 사람의 순수함은 어린아이였을 때만큼 순수한
때가 없고, 또한 분별력이 없는 것도 어린아이였을 때만큼 분별력이 없는 때가 없겠지요.
분별력은 성장하면서 자연히 생깁니다. 분별력의 발달은 아마도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있습니다. 이 어린아이는 갓 태어나서 아무것도 분별을 못하지만,
배고프고, 춥고, 덥고, 목마른 것은 알고 있지요. 어머니에게 안기어서 젖을 먹으면서
어머니라는 존재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아버지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아이가 조금만 성장하면, 기어다니게 됩니다. 기어다니면서 이것도 잡아보고, 저것도 잡아
보고 해서 방안이 쉽게 어지러워 지지요. 호기심에 이끌려 이것도 저것도 알고 싶어 하는 것
이지요. 그러다가 뜨거운 불에 한번 데거나 하면, 불이 어떤 것이다 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면서 자기 자신과 자기가 아닌 것에 대해서 구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기와 불과는
다른 존재다. 차가운 물에 들어가서 고통(?)을 느끼게 되면, 물의 성질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동시에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더 명확한 금을 긋게 됩니다. 어린아이 때에는 울기만 하면
어머니가 와서 달래주고 먹여줬지만, 어머니가 어디 나가서 없거나 해서, 어머니가 오지
않으면, 어머니와 자신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아이가 더 자라면, 옆에 누가 봐도 귀찮다고 느낄 정도로 여러가지를 묻게 됩니다.
'엄마 이건 뭐야? 엄마 저거 좀 봐.'하면서 이것 저것 물어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분별력이 점점 구체화 되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도 초보적인 지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매를 한 번 더 들고, 미운 아이에게는 떡 하나 더 줘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영어 속담으로는 'Spare the rod, Spoil the child'(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 라는 속담이 있지요. 동서양에서 거의 같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왜 사랑하는 아이에게는 매를 한 번 더 들고, 미운 아이에게는 떡 하나 더 주라는 이야기를
했을까요? 아이에게 매를 때리는 것은, 아이의 분별력을 키워 줍니다. 반면에 떡 하나 더
준다는 것은 밥을 많이 먹어서 바보가 되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를 드는 것은 아이의 분별력을 키워주려고 자극하는 데에 한정되어야 하지,
기분 나쁘다고 아이를 패고, 못살게 굴라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이러한 분별도 못하는
부모 선생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지요. 어린아이 때에 받은 마음의 상처는 인격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줍니다. 그것은 식물이 뿌리를 뻗고 줄기를 올려서 떡잎을 낼때 상처를
주는 것과 거의 비슷한 경우가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자식에게 전답을 남기려 하지 말고, 그 눈을 틔워 주어라.'라는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분별력을 키우라는 말씀이지요. 또한 '사람은 어릴때 가르쳐야 한다.'
는 말씀도 하십니다. '모르는 놈은 자기를 죽여도 모른다.'는 무서운 말씀도 하셨지요.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한 구분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만이 아니라, 역사를 보는
관점에서도 나타납니다. 단재 신채호는 역사에 대해서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역사를 중국의 관점이나 일본의 관점 혹은 서양의 관점에서
서술하고, 그것을 절대 진리인것 처럼 배우게 되어 버리면 '아(我)와 비아(非我)'의 구분이
없어져 버리는 문제가 발생되며, 그것은 민족/국가의 개념을 상실한 역사가 되어버리는
것이지요. 이 문제는 우리 민족에게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겪게 됩니다. 봄은 따뜻하고, 여름은 덥고,
가을은 선선하고, 겨울은 춥지요. 이러한 사계절을 구분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경험에서
나오기 때문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게 됩니다. '철부지'라는 말은 '살아오면서
나이를 먹은 만큼 사계절을 겪었을 텐데 아직도 분별이 없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어떠한 학문이던지, 수많은 개념이 있고, 그 응용분야도 있지요. 원리도 있고, 방법론도
있지요. 거의 모든 학문은 '분별'에 대한 것이 주 내용을 이룹니다. 사람들은 신문을 보고,
뉴스를 듣고, 학교생활을 하고, 사람들과 다투고... 하는 과정에서 점점 그 분별력을
기르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도 '생이지지라고 이야기 하나, 공부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
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왜 상제님께서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영성에 대한 말씀이십니다.
사람의 영성은 아이때에 가장 순수합니다. 아이때 영성이 가장 순수하기 때문에,
산모가 지성으로 기도드리고 착한 마음을 유지하면, 태어난 아이는 대단히 훌륭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태아는 순수한 영성을 가지고 있기에, 외부의 기운을 즉각 받아들입니다.
만일 태아에게 저주를 한다면 그러한 저주의 기운도 즉각 받아들이지요. 결론적으로
태아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태어나게 됩니다. 상제님께서는 왜 여자의 문제를 그렇게
심각하게 고민하셨는가? 아이의 인격은 거의 어머니로부터 나올 수 밖에 없는 현실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보면, 전쟁터에서 자라나는 아이가 커서 테러리스트가 되거나, 극단적인 성향의
정치인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환경의 동물입니다. 환경을 논하지 않고는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는 대단히 어렵지요.
사람은 커가면서 분별력을 키워 가지만, 그러한 분별력의 발달이 어디에선가 멈춰있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의 Trap에 갖힌 것이지요. 이렇게 되는 여러가지 이유중에
가장 많은 경우는 '상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거의 절대적으로 믿고 있었던 가치에
대하여,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거나, 사람을 믿다가 배신당하거나 하였을 경우, 큰 상처
가 되어서 더 이상의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면
부정의 논리에 빠져들게 되지요. 이렇게 되어버리면 사람은 대단히 어두운 삶을 살게
되지요. '사람은 배서향동이라. 어두움을 등지고 밝은 곳으로 향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니라.'라는 상제님의 말씀과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됩니다. 이러한 영혼들의 문제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천하의 병(病)'이 아닌가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어두움을 등지고 밝은 곳을 향할 것인가?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고뇌했던
것이 바로 유,불,선,기독등의 선천종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정통 가르침이 제대로
이어져 왔는가 하는 문제도 있고, 그들의 결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 그들의 가르침
의 한계가 어떤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나오게 되겠지요.
여름과 겨울의 철이 다르고, 철에 맞는 생활을 하여야 건강을 잃지 않겠지요.
내일은 동지입니다. 동지는 낡은 해의 기운이 저물어 가고 새로운 기운이 태동하는 시점
이지요. 겨울에는 물론 폭음 폭식 과로를 피해야 합니다만, 동지 전후로 해서는 특히나
지나간 날을 정리하고 새로운 날을 맞이하도록 경건함을 잃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지나간 한 해를 되돌어 보며, 남에게 원억을 짓지 않았는지, 자신에게 얼마나 성실했는지,
남에게 속지 말아야 할 일에 속은 경우가 있는지, 남을 원망했는지... 정리하는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일양이 시생하는 동지를 맞아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나간 한해를 꼭 되돌아 보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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