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호복희씨가 팔괘를 그어 문명의 첫 발을 내디딘 이래 우리 민족은 스스로가 하늘의 백성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우주원리에 순응하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삶을 살아 왔다. 그 우주원리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음양오행(陰陽五行)쪹사상으로, 우리문화의 뿌리가 모두 음양오행원리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말과 글은 물론이요 음식, 주거, 의복, 의학, 음악 등 어느 하나 음양오행과 관련되지 않은 분야가 없기 때문이다.
이번 호에서는 우리 민족의 고유문화속에 녹아있는 우주원리의 이치를 밝혀보기로 한다.
생활문화속의 음양오행
오늘날 우리가 쓰고있는 <한글>은 그 형성에서부터 음양오행의 이치를 담은 문자이다.
『훈민정음해례본』의 제자해(制字解)를 보면, ‘천지지도일음양오행이기(天地之道一陰陽五行而己)’라는 문구로 시작한다. 이는 ‘천지자연, 즉 우주만물의 원리는 음양오행 뿐이다’는 의미이다.
음양오행 ▒▒▒▒▒▒▒▒▒▒▒▒▒▒▒
우주 삼라만상은 밝은 것과 어두운 것, 하늘과 땅, 남성과 여성 같이 음양의 쌍으로 존재하며 또한 낮과 밤, 차고 기움, 밀물과 썰물 같이 음양의 이치로 변해간다. 그 음양운동이 구체적으로 펼쳐지는 모습이 오행으로, 만물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다섯으로 변화·순환하며, 각각의 오행기운은 청-적-황-백-흑의 색깔에 배속된다.
천지인(天地人) 삼재(三才)의 원리를 따서 만들어진 모음은 점의 위치에 따라 음 또는 양이 되는데, 선의 위나 오른쪽에 점이 찍히면 밝고 따뜻한 양의 기운을, 아래나 왼쪽에 찍히면 어둡고 차가운 음의 기운을 띄게 된다.
또 발성기관의 모양을 본 떠 만들어진 것이 다섯 개의 기본자음이며, 이것은 오행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사람이 소리를 낼 때 입안의 목구멍에서 시작해 어금니, 혀, 이, 입술을 통해 나오게 된다. 이 때 혀 꼬리가 목구멍을 막는 모양에서 기역(ㄱ, 木), 혀끝이 윗잇몸에 닿는 모양은 니은(ㄴ, 火), 입술의 모양은 미음(ㅁ, 土), 이가 서로 엇갈려있는 모양은 시옷(ㅅ, 金), 목구멍의 모양을 본 떠 이응(ㅇ, 水)이 만들어졌다. (참고 : 『훈민정음해례본』)
한글은 이처럼 만물에 적용되는 우주원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호이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해 낼 수 있는 유일한 문자가 된 것이다.
오행의 원리는 또 우리의 전통식탁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정월 보름에 먹었던 오곡밥이 대표적이다. 오곡이란 조, 기장, 보리, 쌀, 콩의 다섯가지 곡식을 일컫는 것으로 청, 황, 적, 백, 흑의 오행요소에 배속되는 오색(五色)이 조화되어 식탁에 오른다.
이중 조는 익으면 노란 색을 띄나 이삭이 피어날 때엔 푸른색으로 출렁인다 해서 목(木,청색)에 배속되고, 콩은 검은콩을 가장 으뜸으로 꼽으므로 수(水,흑색)에 배속된다.
또한 한국의 전통문양이 바로 음양의 조화와 화합을 상징하는 태극문양과 태극선이었으니, 한복 도자기의 선과 태극선 부채, 장농의 장석, 비녀, 담뱃대 등은 물론, 풍물의 춤사위에도 태극의 이치가 깃들어 있다.
그 외에도 오곡밥과 함께 밥상에 올랐던 오합주, 다섯색으로 물들인 오색 색동저고리를 비롯해, 오색단청 등도 모두가 오행원리를 담은 것들이며, 일상생활에서 썼던 달력에도 일월화수목금토(日月火水木金土)의 음양오행원리가 들어있고, 한약을 조제할 때에도 음양오행의 원리가 사용되었다.
놀이문화속의 음양오행
음양오행의 이치는 우리 놀이문화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신명나게 사물(四物)놀이가 펼쳐지는 마당에도 태극의 음과 양이 펼쳐내는 조화가 연출된다. 금속소리를 내는 꽹과리와 징은 양(陽)이 되고 가죽소리를 내는 북과 장구는 음(陰)이 되는데, 특히 소리가 높은 꽹과리는 양중의 양이라 해서 태양(太陽)이 되고, 징은 양중의 음이라 소양(少陽)이 된다. 그리고 소리가 낮은 북은 음중의 음으로 태음(太陰)이 되고, 소리가 높은 장고는 음중의 양으로 소음(少陰)이 된다.
사람의 몸에서는 머리, 가슴, 배, 골반이 각각 태양, 소양, 태음, 소음에 해당한다. 그래서 꽹과리를 마구 쳐댈 때는 머리통이 찌릿찌릿하고, 징을 치면 가슴통이 저려오며, 북을 치면 배통이 울렁거리고, 장고를 치면 오줌이 마려워지는 것이다. (참고 : 『주역과 과학의 도』, 정신세계사)
민간의 또 다른 대표적 놀이인 윷놀이도 우주원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앞뒤로 구분되는 윷가락은 음양을 상징하며, 4개의 윷가락은 사상(四象)을 의미하고, 엎치고 자치는 가운데 팔괘(八卦)의 변화가 펼쳐진다. 그리고 도-개-걸-윷-모의 다섯가지 변화는 오행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청삿바와 홍삿바가 서로 뒤엉키어 겨루는 씨름에서도 놀이문화속에 깃든 태극의 음양이치를 엿볼 수 있다.
국가제도속의 음양오행
환웅천황의 배달국 시대 통치체제는 오사(五事)조직으로 이 또한 오행원리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오사는 각각 주곡(主穀) - 주명(主命) - 주병(主病) - 주형(主刑) - 주선악(主善惡)으로, 상호독립된 조직이면서도 상호연관된 기능을 수행했다. 그리고 단군조선의 정치제도였던 5가(五加, 마가, 우가, 양가, 구가, 저가)제도 역시 오행원리에서 비롯되었다. (참고 : 『환단고기』, 삼성기(上))
그리고 경복궁 근정전을 가보면, 임금이 앉는 용상의 뒷편으로 일월오봉병(日月五峯屛)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는 해와 달 그리고 다섯 개의 봉우리를 그린 병풍으로, 해와 달은 음양을, 다섯 개의 봉우리는 오행을 상징한다. 조선시대, 임금이 앉는 곳은 어디든 이 병풍을 둘렀는데, 이는 천지의 우주원리를 한 몸에 안은 인사의 절대권자로서 천자의 위격을 상징한 그림이었던 것이다.
또한 옛날 궁궐을 지을 때, 바깥쪽으로는 4방위에 동대문, 남대문, 서대문, 북대문을 만들고, 그 가운데에 중궁(中宮) 자리를 만들어 오행의 이치를 그대로 따랐다.
정신문화속의 음양오행
음택과 양택을 따지고, 인간에게 해로운 수맥(水脈)을 찾아내는 풍수지리도 음양오행의 원리를 바탕에 깔고 있으며, 사주팔자(四柱八字)로 인간의 운명을 헤아리는 점술과 비결도 연, 월, 일, 시의 음양기운을 따지는 이치가 들어있다.
정신적 유산의 결정체인 종교와 철학에서도 우주원리는 빠지지 않는다. 음양오행원리는 단군조선시대 오행치수법을 통해 동이족(東夷族)에게서 한족(漢族)에게 전수되었으며, 후에 도교나 유교의 이념에 그대로 녹아들어 우리나라로 역수입 되었다.
불로장생을 목적으로 연단술(煉丹術)과 양생술(養生術)을 주 수련법으로 하는 도교(道敎) 역시 음양오행사상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으며, 주역(周易)을 주 경전으로 삼고 있는 유교(儒敎) 역시 음양오행사상이 그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한민족은 태극인(太極人)으로서의 삶을 살아왔다.
태극으로 된 마음을 가지고 태극으로 된 언어를 구사하며, 태극의 선으로 된 한복을 입고, 태극으로 된 음식을 먹으며, 태극으로 된 자연의 순리에 따라 태극의 삶을 살아 온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의 뿌리를 잊고 살아온 우리들은 이제 선조들이 이룩한 문화의 위대함을 깨달아, 한민족 본래의 위상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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