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피랍인질사태, 누구의 책임인가?
그 책임의 비중을 도식화하고 요약해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美 제국주의 > 남한 괴뢰정권 > 숭미 개신교 목사(한민족복지재단)
1. 자본주의는 생산관계의 대립과 모순 때문에 발전단계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경제공황을 맞을 수밖에 없고 제국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게 된다. 계속해서 팽창하지 않으면 스스로 무너지고 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속성이다. 미국이 군사적 침략을 통해서건, 계약 하 기지임대를 통해서건 자기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까지 기지와 군대를 주둔시켜온 것은 기본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미국의 세계전략차원에서 이뤄져왔다. 이는 제국주의의 특성이자,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은 달러와 군사력을 앞세워 세계 각 지역에서 미국의 외교. 경제. 문화적 영향력을 유지하거나 더욱 확대하려 한다. 경제, 군사적 통제권을 장악함으로써 이를 통해 제3세계 자원 부국들의 자원과 노동 가치를 착취, 수탈함으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부를 취하려는 것이다.
미국의 달러화는 브레튼우즈 체제 이후,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중지를 선언하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국제교역과 거래에 필요한 국제통화로서의 역할(기축통화 발권국)을 자타가 공인해 왔다. 그러나 이게 요즘 자국 내 제조업과 자본의 아웃소싱, 과도한 소비로 붕괴위기로 몰리고 있다. 그나마 미국 경제가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등 동북아의 나라들이 미국에 빚을 내 준 덕택에(미 국채의 매입) 아직 파산에 이르지 않았을 따름이다.
달러가 기축통화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결정적인 중요 매개체중 하나가 석유이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석유 결제통화를 유로화로 바꾸려는 후세인을 제거함으로써 세계최대 석유 생산기지 중동에서의 석유 통제권을 보다 공고히 하고, 집요하게 패권확산을 호시탐탐 노리는 유로화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기득권적인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석유와 달러패권 문제를 아프카니스탄 침공과 연관지어보자. 아프카니스탄을 침공한 미국의 진정한 저의는 무엇이었을까? 순진무구하게 ‘대 테러전쟁’ 이야기는 꺼내지도 말자. 작년 (2006년 5월) 영국을 방문한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이란 대통령의 흥미로운 제안에 호응해 원유 대금 결제를 달러에서 유로화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힌바 있다. 또 “이란 대통령도 달러와 경쟁하는 유로화를 탄생시킨 유럽의 힘을 인정했다”며 “우리는 달러나 유로 가운데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만약 세계 4위의 원유 수출국 이란(세계 원유 공급의 5% 차지)과 5위 수출국인 베네수엘라가 원유값을 유로화로 정한다면, 두 나라로부터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달러를 팔고 유로화 비중을 크게 늘려야 한다. 기록적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의 달러 대신 유로화를 통한 원유거래가 늘어날 경우 달러가치 폭락과 미국의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미국의 국제문제 전략가들의 사전 포석의 선견적 정확도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준이다. 이란과 국경을 맞댄 아프카니스탄의 점령과 군사주둔의 당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의 야심도 미국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하다. 아프카니스탄 북쪽으로는 옛 소비에트 연방이었던 5개의 스탄 국가들이 있고 이들 독립된 국가들엔 대 러시아 견제를 위한 미국의 전략적 군사기지들이 포진 배치되어 있다. 그러나 5개의 스탄 국가들 바로위에 위치한 러시아는 푸틴 집권이후 막대한 석유 매장량(세계 1위 42,859만 kl, 2위인 사우디아라비아는 42,830만 kl. 2002년 기준)과 생산량을 무기로 소련 해체 후 독립국가연합(CIS) 회원국과 정치 경제적 결속을 강화해 나가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야심을 견제하기 위한 지정학적 전략요충지 또한 묘하게도 아프카니스탄이다.
말을 요약하자면, 아프카니스탄은 미국이 유라시아대륙 나아가 전 세계적인 자신들 패권을 담보하는 정치, 경제, 군사적 전략 요충지이다. 자신들 미래와 운명을 좌우할 지정학적 전략요충지를 포기할 일이 있다고 보는가? 자국 병사들의 일정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점령하고 지켜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자신들에게 지배 받는 괴뢰국의 열성신도들이 적에게 피랍됐다고해서 구출에 적극적이길 기대할 수 있겠는가?
미국이 한국인 피랍 때문에 그나마 고민하는 것은 피랍인질 전원이 살해되었을 경우 일어날지도 모르는 남한 내 현재보다 확대되는 반미기류의 확산이다. 이는 북미 핵 대결의 결과 궁지에 몰린 미국에게 설상가상격으로 더 큰 부담과 악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충분하다. 반미기류 확산과 연계된 민족통일전선의 확대를 미국은 심히 우려하는 것이다.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투쟁, 날로 심화돼가는 사회 양극화와 이에 저항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 등은 공동연합전선을 형성할 역량을 충분히 갖고있는 것이다. 결코 논리의 비약이 아닌 현실화 될 수 있는 위기의 기로에 미국이 지금 서있다.
또한 저항군(탈레반)의 파병동맹국 인질피랍과 살해의 만성화는 동맹군의 사기 저하와 분열을 초래할 개연성이 충분히 있다. 우선 파병국 정권들부터 파병을 꺼려하거나, 철수를 시도(현재 상당히 진척중이고 완료한 국가도 있다)할 것이다. 어느 국가의 위정자가 자국민 저항과 정권퇴진요구의 몰매 맞는 일을 자초하겠는가? ‘인질, 포로 맞교환’ 협상성사의 경우 인질피랍과 살해의 만성화, 정례화는 마찬가지로 미국을 괴롭힐 것이라는 점을 이전 글에서 이미 지적한 바 있다.
미국과 동맹국들이 취할수 있는 방법이란 특수병력을 동원한 구출작전의 전개밖에 없다. 그런데 언제는 미국과 동맹군들이 작전전개를 하지 않았었나? ‘대 테라 전쟁’이라는 국제사회로부터의 호응과 명분도 중요했지만, 실지로는 미국 혼자서 치르기에는 힘에서부터 버거운 상대가 아프카니스탄 저항군이란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미국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2. 노무현 대통령은 21일 아프카니스탄 피랍 사태와 관련한 긴급 메시지 발표했다. 이날 발표한 짧은 메시지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의, 다산 부대는 의료와 구호 지원을 위한 비전투부대입니다. 그동안 매일 수백 명의 주민들을 진료하고 복지시설과 교량 건설 등 아프가니스탄의 재건을 돕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도 마무리 과정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남한이 파견한 다산, 동의 부대는 아프카니스탄인들의 입장에선 미군과 함께 들어온 침략군일 뿐이다. 부대의 성격과 역할에 대해서도 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거짓 선전을 해대고 있다. 다산, 동의 부대의 주 임무는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다국적 동맹군을 위한 군사시설 개, 보수와 진료 활동이 주였다. 다산부대의 경우 공병부대 특성상 전투부대 주력군을 지원하거나 보조하는 중요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러므로 다국적 동맹군의 전투부대와 따로 분리해서 평가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동의 부대 또한 주민들을 진료한다고 하지만 이는 매우 제한된 소수, 특히 점령군과 결탁한 아프가니스탄 현지 엘리트들이나 정부 관료들에 한정될 뿐이다.
다산부대는 바그람 기지 내 활주로와 부대 방호시설을 보수하는 등 명백히 미군의 군사작전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 왔다. 바그람 기지는 많은 민간인들이 끔찍한 고문을 당한 곳으로 흔히 ‘아프가니스탄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 로 불리는 악명 높은 곳이다. 국회 보고 자료에서도 다산, 동의 부대는 미국에 협조하는 ‘대(對)테러전쟁 지원 부대'라고 정확히 명시돼 있다. 남한은 지금 7년째 전쟁 참가국이자 아프카니스탄 저항군(탈레반)의 명백한 교전 당사국인 것이다.
남한은 초대정권 이승만부터 지금까지 정통성과 자주성 없이 태동한 기형적인 식민괴뢰국가이다. 일제 적산은 미제에 의해 자신들에게 아첨 부역하는 숭미 매국역적들에게 불하되어 지금까지도 정치경제 기득권 그룹을 형성 유지해오고 있다. 경제전반이 건국 초기부터 미.일의 과도한 원조와 차관에 의지한 체 실속 없이 외관만 그럴듯하게 커져왔고, 자립경제의 근간이 통째로 뿌리 뽑혀진 상태에서 오늘에 이르게 됐다. 대외 의존도 70%는 인류 역사상 그 유래가 없는 경우다. 식량 자급률 23%..
한마디로 미국이 기침만 해도 남한은 감기고뿔이 걸리는, 국민들 생사여탈의 권한을 미 제국주의자들의 손에 맡겨야 하는 가련한 신세인 것이다. 미국은 남한 국민들의 생사여탈권을 담보로 괴뢰정권에게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고 거둬갔다. 미국의 제국주의 침략전쟁인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필요한 병력과 물자지원을 요청해도 남한 괴뢰정권이 거부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와 상관없는 전쟁에 제국주의자들의 예병(隸兵)으로 파견돼 국제적으로 맹비난 받아도 거부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렇게 자주권 없이 무능하고 무책임할 수밖에 없는 예속 구조아래 놓인 남한정부가 아프카니스탄 인질문제와 같은 중대 사태에 직면해 자주적인 외교협상전략과 작전을 펼칠 수 있고, 또 동맹국 미국으로 하여금 당당히 요구할 수 있다고 보는가? 정부가 개신교 신도들의 아프카니스탄 선교활동을 사전에 극구 말려 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자국민 구출석방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바를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식민주의 체제하 남한의 한계를 지적하고 싶을 뿐이다. 이 한계를 벋어나는 길을 남북공조와 통일뿐 다른 대안은 없다. (이 문제는 너무나 방대한 자료를 요하는 문제라서 다음에 시간 날 때 따로 다뤄 볼 계획이다.)
3.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말이 있다. 칼 마르크스(Karl Marx) 저작 ‘헤겔 법철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에 나오는 문구이다. 일부 좌파들은 이를 두고 맑스가 종교를 부정하고 비난한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사실과는 다르다. 맑스는 아편처럼 종교가 인민들에게 위안이 될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사회구조를 지적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맑스는 소외가 극복되지 않으면 결코 종교의 역할도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봤다.
인간이 인지 불가능한 영역 중 하나가 죽음이다.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는 한계를 가진 나약한 존재인 인간으로 하여금 내세관을 갖게 만들었고, 이는 종교로까지 승화됐다. 관념적으로 보면 ‘현실의 고통과 죽음’, ‘아편과 종교’ 문제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동전의 양면과 같은 영원한 화두이다, 아편은 적은 양을 사용할 경우 환자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역할을 하지만, 한계를 넘어 과용할 경우 자신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무서운 물건이 되고 만다. 종교 또한 아편과 마찬가지이다. 원시 공동체사회에서 도구의 발달은 분업을 촉진시키고 사회분업은 구성원 간 계급을 낳았다.
소수 지배계급과 다수 피지배계급으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지배계급은 자신들 계급의 영속적인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히 유지해나가기 위하여 피지배계급의 소유를 제한하고 압박과 통제를 가했다. 일부 모반도 있었으나 피지배계급은 자연스레 체제 순응적으로 길들여졌고, 현실 세계는 지배계급의 압박과 착취로 인해 발생된 모든 고난과 고통을 종교를 통해 여과 순환(=무마)시켰고, 숙명으로 받아 들였이게 만들었으며 ‘천국과 지옥’과 같은 이분법적인 내세관에 의지하기에까지 이르렀다.
지배계급은 자신들 계급을 따로 떼어내어 차등을 두었으며 신성함을 피지배계급에게 주입 각인시키려 노력했다. 일부 지배계급은 신과 자신을 동격화(신격화)하기도 했다. 종교가 싹틀 토양을 계급사회가 제공한 것이다.
현실의 고통과 죽음 등 인간이 가진 한계에서 오는 두려움과 공포를 치유하고, 소외된 자들을 달래고 돕는 수단으로 종교의 가치가 있고, 존재의 이유가 있다. 피지배 계급의 지위와 역할을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도 종교의 역할이며, 결코 소수 지배계급의 지배논리를 합리화하기위한 지배이데올로기로써 종교가 남용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현실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종교의 역할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관념론(특히 종교)은 종종 신념화되어 지배계급의 지배철학과 이데올로기로 무섭게 이용돼 왔다. 헤겔(Hegel)이 대표적인 예이다. 사회주의 사상. 이론의 근간을 이루는 맑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모태가 된 관념론적 변증법의 계통적 해명 철학자인 헤겔조차도 당대 프로이센 사회의 계급적 한계를 벋어나지 못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계급사회를 옹호하기까지 하는 관허 철학자였다. 맑스가 변증법적 발전의 주체를 객관적 물질세계에서 찾고, 객관적 사물은 독립하여 존재한다고 주장한 것과는 반대로 헤겔은 발전의 주체를 ‘절대정신’에서 찾고 ‘절대정신’의 창조로 보았다.
헤겔의 소위 ‘절대정신’이란 전혀 특별한 것은 아니다. 철학에서 분장된 일반적인 종교상의 신(神)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면 용이하다. 종교는 “신이 세계를 창조했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툭 까놓고 다루고 있지만, 헤겔은 절대정신을 순수사상, 순수개념으로 존재하는 것이라 주장하고, 절대정신을 외재화하면 자연이 되고 최후에는 다시 정신으로 복귀하는 복잡한 배경을 역설한다. 그러나 헤겔의 이 측정키 어려운 이론은 본질상 종교상의 창조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와 같은 관념론에서 생긴 헤겔의 인식론의 근원은 인간의 정신과 사유를 과대화하고 그것들을 물질이나 인간의 두뇌에서 유리시켜 독립적으로 존재하게 하고 더욱이 그것을 자연과 역사의 창조주로 간주했던 것이다. 여기에서 명확한 것은 헤겔은 그의 절대정신을 인간의 정신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제로 그것은 인간의 정신과 사유를 과대화, 절대화한 것에 불과하다. 헤겔은 프로이센을 절대정신이 최종적으로 체현되는 것으로 간주하고 국가의 철학으로서의 자신의 철학을 절대정신의 가장 완전무결한 자기인식이라고 간주했다.
이것이야말로 직접 보수정치에 봉사하고 협력하는 헤겔의 계급성과 관념철학의 지배이데올로기적인 대중 기만적 성격을 말해준다. 미국 개신교 교도들과 이와 연계되고 영향을 받은 남한 개신교 교도들의 수구적이며 반동적인 종교관과 세계관 역시 헤겔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종교가 독단에 빠져 신념화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되면 쇼비니즘적 광기만이 번쩍이게 된다. 아프카니스탄에서의 개신교 선교 사업은 종교적 우월감과 독단에 빠져 뒤틀린 체 신념화된 남한 종교인들과 주권국가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제국주의지배계급의 공조가 만들어낸 광기의 표출이다. 이 광기가 된서리를 맞은 것이다.
종교 무용론을 주장하거나 논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허나 어떤 종교를 선택했건 간에 믿는 자들을 경외시할 필요는 없다. 차별하지도 말아야 한다. 나와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이게 관용이다. 종교를 가진 자들은 무신론자와 다른 종교인들을 인정하고 배타적인 종교적 우월감과 독단에 빠져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종교는 대중을 압박하고 착취, 수탈하는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동조하지 말아야 하며, 체제의 선전도구와 수단으로써 복무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 남한 개신교의 독단이 변하지 않는 한, 지배구조와 체제가 바뀌지 않는 한 결국 아프카니스탄 인질피랍사태와 같은 사건은 망령이 되어 우리 주위를 배회하고 있다가 기회와 여건만 충족 된다면 언제고 어디서고 다시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탱자-
카페 이름 : 새벽을 여는 네티즌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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