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와의 교신 E.V.P
불량한 전기 탓이건 초창기 컬러TV의 구조적 한계 때문이건, 유년 시절 종종 방송화면이 제 모습을 잃으면 엉뚱한 생각을 하곤 했다. 지지직거리는 저 소리는 혹시 외계인이 보내는 신호는 아닐까? 이지러진 화면 뒤에 뭔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는 바로 그 의문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호러와 스릴러 사이의 애매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 장르 영화는 대중에게 낯선 초자연적 현상을 영화적 소재로 끌어옴으로써 호기심을 유발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그건 바로 ‘전자음성현상’으로 풀이되는 EVP1)(Electronic Voice Phenomenon), 즉 죽은 사람과의 교신이다.
애타게 죽은 자들을 찾아서…
사랑하는 아내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존(마이클 키튼)은 꽃다발과 초콜릿을 사들고 일찍 퇴근한다. 하지만 자정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는 아내 탓에 존은 피가 마르고, 새벽 2시 30분이 되자 아예 벽시계 초침이 멈춰버리는 현상이 벌어진다. 그리고 경찰의 전화를 받는다. 사고 난 아내의 자동차를 발견했다는 것. 오열하는 존에게 레이먼드라는 한 사내가 “죽은 당신 아내의 목소리를 들었다”며 접근한다. “헛소리하지 마라”며 그를 물리치지만, 존은 집에 있는 라디오와 전화자동응답기의 음향잡음(화이트 노이즈) 속에서 죽은 아내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존은 레이먼드를 통해 자신이 아내의 목소리를 감지하는 것이 EVP 때문이며, 많은 사람들이 EVP에 의존, 죽은 자와 접촉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중 EVP를 연구하던 레이먼드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된다. 적극적으로 사건에 개입하게 된 존은 EVP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 둘 죽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죽게 될’ 모니터 속의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무당이나 영매(靈媒) 등을 통한 빙의현상은 익숙한 사실이지만, 망자(亡者)가 기계장치를 통해 얘기를 한다는 설정은 매우 흥미롭다. 그리고 그 설정은 호러를 위한 인위적 장치가 아니라, 실제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호기심을 돋운다. 미국은 물론 11개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EVP연구는,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이 땅의 유족들에게 마지막 지푸라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저쪽 세상(저승)에서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내오고 있어요.” 영화 <화이트 노이즈>에서 사건을 유발시키는 이 대사는 죽은 자들이 산 자에게 못 다한 말을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혹시 지금의 수많은 영혼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 이웃들에게 이 영화를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각인시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를 보는 내내 또한 매우 흥미로웠던 것은 EVP의 도움을 받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죽게 되는 상황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사자로 추측되는 검은 그림자의 등장이다.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 는 올해 1월 미국 개봉당시 박스오피스 2위로 데뷔해 5천 589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지금은 미국 뿐 아니라 서구문화에서 영적세계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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