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선(東文選)》122권에 실린 이 글은 이규보가 한림원(翰林院) 동료인 김공수(金公粹)에게 부탁받아 지은, 그의 어머니 인씨의 묘지명 중 일부입니다. 위의 말은 부인이 덕으로 집안을 부유하게 하였고 재주 있는 아들을 두어 나라에 공을 세웠다는 뜻이 되니, 당시로는 부인께 드리는 최고의 찬사일 것입니다.
인씨의 남편은 상장군(上將軍)과 재상을 역임한 고려의 이름난 무신 김원의(金元義, 1147~1217)입니다. 그는 성품이 바르고 청렴했던 것으로 높이 평가받은 인물입니다. 그리고 아들 공수는 과거 급제 후 직한림원(直翰林院)이 되었으니 학문과 재능을 인정받은 셈입니다. 이는 인씨 부인이 내조와 자녀 교육 두 가지 역할을 모두 훌륭히 해냈다는 것을 뜻합니다.
가세가 비교적 넉넉한 편인데도 인씨 부인은 상장군이 재상에 오를 때까지도 길쌈일을 쉬지 않았습니다. 자제들이 만류하면 “이것은 내 직분이다. 이는 마치 너희들이 책과 붓을 잠시도 떼놓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답하였다고 합니다.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자녀는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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