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당(栢堂) 동쪽 산기슭에 샘이 하나 있는데 맑고 시원한 물이 솟아난다_1) 돌 틈에서 졸졸졸 흘러나오는 물은 흰 구름으로 뒤덮인 호젓한 골짜기를 씻으며 내려온 듯. 가뭄이 들어도 마르는 법이 없고, 거문고를 튕기는 듯한 소리를 내고 있다. 물은 예닐곱 걸음 정도를 감돌며 흐른 뒤 개울로 흘러 들어간다. 이 샘 옆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사람들은 모두들 손으로 물을 움켜 떠 마시고는 기분이 상쾌해진다.
농서자는 푸성귀를 배가 부르도록 먹고 나서 손으로 뱃가죽을 쓱쓱 쓰다듬으며 너울너울 흔들리는 오사모(烏紗帽)를 비껴 쓴 채 용무늬 대나무 지팡이 또각거리며 짚고 문을 나선다. 큰 바위에 걸터앉아 정강이를 걷어붙이고 두 다리를 쭉 뻗는다. 얼음 같고 서리 같은 물을 움켜쥐었다가 내려치기도 하며, 진주 같고 옥 같은 물을 삼켰다가 도로 뱉어내기도 한다. 불같은 햇볕을 피하는 데만 좋을까? 세상 먼지에 찌든 갓끈도 벌써 깨끗이 빨아 놓았다.
휘파람 느긋하게 불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개울 너머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온다. 여덟 자 넓이의 대자리를 펼쳐놓고서 두세 치 높이의 울퉁불퉁한 나무토막을 베개 삼아 베고 눕는다. 꿈속에 흰 갈매기를 만나 함께 놀다보니 기장밥이야 익든 말든 나는 몰라라 내버려 둔다_2) 여덟 마리 용을 타고 가볍게 요지(瑤池)로 날아가 서왕모(西王母)가 부르는 노래 한 곡을 듣고 온 듯_3) 호쾌하게 뗏목을 타고 은하수를 건너갔다 돌아와 촉(蜀)나라 도성에서 점쟁이를 만나 놀란 듯_4)
그렇다면 굳이 비단 휘장을 40리에 뻗치도록 치고_5) 후추 8백 가마를 쟁여놓고_6) 황금 연꽃 동이에 물을 채우고서야_7) 내 발을 씻을 필요가 있으랴?
- 이인로(李仁老), 〈홍도정부(紅桃井賦)〉, 《동문선(東文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