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의 제1뜻은 자기참회 자기반성, 수행의 절대기준은 우주원리
수행의 문자적 의미는 ‘닦는다, 고친다, 수리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다’로서 곧, 몸과 마음의 잘못된 것을 바르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의 제1뜻은 자기 참회, 자기 반성이다.
천지자연의 이법에 따르지 못한 것을 다시 천지자연의 운행에 합치되도록 바로 잡음으로써 몸과 마음이 자연과 하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수행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수행서의 비조격인 『참동계』 같은 서적에서는 수행의 원리를 해와 달이 교류하는 모습으로 규명하고 있다. 해와 달의 영향 아래 생장하는 만물에게는 오로지 해와 달, 즉 일월의 운행 법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 수행자들이 가장 알고 싶어했던 부분이다.
그 일월의 운행 하에 다시금 천지의 근원자리인 건곤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건곤과 일월이 우주만유의 체(體)와 용(用)이 된다는 이러한 사실을 간파한 인간의 지혜는 놀랍기 그지없다.
건곤(乾坤)은 천지무형을 주재하고 감리(坎離)인 일월은 유형의 만유를 지배한다. 이 천지일월의 운행원리를 규명하는 것이 수행자의 가장 큰 관심사인 것이다. 하루도 역시 천지일월의 영향하에 운행법도를 지속한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하루의 일과에 따른 행동을 우주원리로 규정하려 했다. 그런 내용을 담는 것 중 하나가 퇴계가 선조에게 올린 「성학십도」 중에서 자연과 더불어 새벽에 일어나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설명한 ‘숙흥야매잠도(夙興夜寐箴圖)’나 저녁에 잠잘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써놓은 ‘서명도(西銘圖)’가 그런 종류이다.
이는 곧 우주변화의 원리가 수행의 절대 기준이 되는 것임을 말한다.
정(精)을 기화(氣化)시켜 신화(神化)시키는 것이 수행의 핵심
이와 더불어 정미(精微)한 핵심 이론으로 중요한 것이 정기신(精氣神)의 변화이다.
전 우주변화의 핵심 골수는 곧 신(神)의 조화이며, 신의 변화 모습임을 보게 되면, 수행의 일차목표를 성취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정기신(精氣神)에서 정(精)은 ‘水土’의 모습이요, 신(神)은 ‘火土’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정(精)이 맑고 깨끗해야 신(神)이 밝아진다. 정을 어떻게 기화(氣化)시켜 신화(神化)시키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다. 과거에 설두(雪竇)라는 스님이 항상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는 글을 소개한다.
해저니우 함월주 곤륜기상 로사견
海底泥牛 含月走 崑崙騎象 鷺絲牽
바다 밑 진흙 속의 소가 달을 머금고 달리니
곤륜산에서 코끼리를 타고 백로가 실을 끌어당긴다.
이는 불가의 화두 같지만, 단순한 화두가 아니다. 해저는 바로 하단전 밑의 회음혈(會陰穴)을 가리키는 것이며, 진흙소는 하단전의 정(精)인 생명의 에너지를 의미한다.
소라고 표현하기도 하고 용이라고 하기도 한다. 달을 머금었다는 것은 곧 감(坎)괘인 양 신장을 의미하며 곤륜은 머리를 뜻한다. 코끼리도 소와 같은 의미이며 백로가 실을 이끈다는 것은 상단전으로 기화시킨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이를 설두지송(雪竇持誦)이라 하여, 스님들도 외우고 다닐 정도로 유명한 글귀로서 이를 통해 수행자들이 얼마나 정을 기화(氣化)하여 신화(神化)시키고자 하였는가를 알 수 있다.
불가의 심우도(尋牛圖), 목우도(牧牛圖) 등에 나타나는 소는 곧 정기신의 기화작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소가 상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태을주도 소울음 ‘훔’으로 시작하고 있다. 소는 축(丑)에 속하며 축(丑)은 양기[子]를 끌어올리는 일을 한다.
깨달음은 천지부모(天地父母)의 마음에
선가에서는 심(心)을 다스려 기화시킨다. 심파가 안정되면 저절로 기화가 된다고 보았다. 호흡조절 등을 통해 심을 안정케 하고 신체를 조절하고자 하였다. 이는 인체의 오행을 하나로 통일시키고자 하는 것이며, 그것은 곧 깨달음으로 이어진다.
깨달음이란 무명(無明)이 열리고 다듬어지고 성숙되는 수행의 열매 같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비법을 소개하면, 옛사람이 이르길 “깨달은 부처는 부모 마음에 들어있다”는 금언이 있다.
아무리 흉악한 살인강도 같은 사람도 자기 자식만은 진실 되고 거짓없이 살기를 바라며 자기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부모는 자식이 재물을 탐하기를 원치 않는다. 고관대작이 되고 부자가 되는 것보다는 가난해도 형제간에 우애 있고, 진실하고, 조상을 잘 섬기며 참된 사람이 되길 기원한다.
부모는 자식이 남을 속이지 않기를 원한다. 부모는 자식이 귀엽고 예쁜 것보다 성숙하고 어른스럽기를 바란다. 남을 도와주고 진리를 받들며 오직 정직하게 살기를 바란다. 부모의 이런 심정으로 돌아가면 모든 사리가 분명해지고 그 속에 깨달은 부처가 들어있다는 것이다.
일개 가정의 부모 마음도 그러한데 천지부모이신 상제님, 태모님을 모시는 우리는 어떠해야 하겠는가. 상제님, 태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체득하면 그것이 천지를 깨닫는 열쇠이다.
태사부님께서 항상 “껄을 벗어야 한다”, “딱지를 떼야한다”, “누렇게 익어야 한다”고 하시는 말씀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곧 상제님 태모님, 그리고 일월과 같은 광명으로 진리를 열어주시는 태사부님 사부님을 통해 건곤 천지의 마음을 심법으로 체득하고 실천하는 것만이 깨달음의 열쇠요 관건인 것이다.
의식과 문명은 궤를 같이 하기 때문에 인간의 의식이 완전히 성숙되고 껄을 벗으면 현재 같은 물질문명을 넘어 도술문명의 초과학 문명이 열릴 것이다.
천지일월은 인간이 성숙하기를 바란다. 천지부모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그것은 절대 중앙 토심(土心)이기 때문에 수행자의 절실한 심법이 되고 있다.
동공(動功)과 정공(靜功)
다음은 동정(動靜)의 문제이다. 옛적에는 불가에서 앉아있는 것, 즉 가만히 있는 것을 정(靜)이라고 했고, 수행은 그런 정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주역 「계사전」에 ‘적연부동(寂然不動) 감이수통(感而遂通) 천하지고(天下之故) - 고요히 움직이지 않다가 느끼어 드디어 천하의 일을 통한다’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이때의 적연(寂然)도 정(靜)의 상태를 이른다.
그러나 이 정(靜)은 기실 동(動)이 극(極)하여 통일되어 일어나는 상황으로 실지는 동(動)의 최대의 상태이다. 동이 극에 이르면 순간 조용해지는 그런 고요함[靜]이다.
송대 성리학에서는 정(靜)을 중요시하지 않고 동지 때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는 것이 ‘천지의 마음을 보는 것’이라 하여 양기가 일어나는 것을 중요시하였다. 실지 몸은 가만히 앉아있고 엉뚱한 생각에 마음이 갇히면 몸이 급속도로 허약해진다.
예를 들어, 어린애들이 2시간 가량 운동하고 나면 그 다음날 벌떡 잘 일어나지만 2시간 동안 컴퓨터 게임 등에 몰두하면 다음날 잘 일어나지 못한다. 그것은 몸을 움직이지 않고 뇌인 양기를 모손시킴으로써 몸의 원기가 모손되고 따라서 몸도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옛적 신의(神醫) 화타는 ‘흐르는 물은 썩지 않고 문지도리는 부패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육체는 움직여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동공을 함으로써 본인은 물론 제자들도 100세가 되어도 건강했다. 장삼봉도 진희이(陳希夷)도 동공을 했으며, 퇴계 이황도 도인(導引)에 힘썼다.
구결을 외우고 주문수행을 하는 것도 사실 동공이다. 가만히만 있으면 양기 즉 뇌(腦)를 쓰므로 원기가 상한다. 가만히 있을 때는 음으로 과거가 생각되므로 이 때는 참회반성을 하는 것이 좋다.
불가의 7조인 신회가 6조인 혜능이 항상 가만히 앉아있자 ‘무엇이 보이는가’하고 물었다. 이에 6조가 말하길 ‘나는 보이기도 하고 안 보이기도 하는데 보이는 것은 나의 허물이요, 안 보이는 것은 남의 허물이다’고 답한 적이 있다.
중국 불교 조계종은 가만히 앉아서 수행하는 것을 하지 않는다. 선종은 깨달으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자기가 부처이므로 절에 있는 불상도 중요치 않다. 우리 나라는 조계를 받아들였으나 주로 가만히 앉아있는 북방불교를 혼용했다 한다. 천지는 쉬지 않고 변하므로 순수한 정(靜)은 있지 않으며 동정(動靜)은 변화의 모습일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신(神)의 조화이다. 인간의 양신[火土]은 음형[水土]에 갇혀 있으므로 음형 내의 양신을 잘 보존 보양하여 중(中)의 조화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옛날에 진인은 휴식[息]이 있을 뿐 수(睡)는 없다고 하였다. 태모님께서도 수마(睡魔), 마신(魔神), 척신을 이겨야 한다고 하셨다. 신이란 정과 더불어서만 그 존재를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사람의 신(神)’인 의식, 즉 마음을 몸과 어떻게 간직하느냐에 있다. 천지부모의 마음을 얻으면 수행은 저절로 된다. 그것은 곧 천지일월을 받드는 것이요, 마음에 모시는 것이다.
불가는 마음만 강조하고 몸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주로 앉아있는 것에 치중하여 청령한 음신을 기른다는 비판을 받았다. 거꾸로 선가는 몸의 직접 단련으로 인체에 단(丹)을 맺고자 하여 동공을 강조하였다. 이는 마음이란 몸에 실려있기 때문에 동공을 통해 몸도 튼튼해지고 또한 무아지경에도 쉽게 이르기 때문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양신을 기른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혹자는 남녀가 교합하고 나서 사정이 되면 즉시 회음혈을 누르고 밖으로 내보내지 않으면 이것이 환정보뇌(環精保腦)하는 불로장생의 비결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절대불가하며 몸을 망치는 지름길임을 밝혀둔다. 역사적으로 이 폐단이 적지 않았다. 한번 궁을 떠난 정액은 몸으로 흡수되지 않으므로 발설치 않으면 패혈되어 폐색되고, 전립선이 붓는 등 아주 좋지 않은 질병으로 화한다.
정(精)을 갈무리하기 위해서는 교합을 삼가고, 혹 드물게 교합을 하더라도 아예 사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때로 해저(海底)혈 즉 회음혈은 곤륜 즉 머리의 백회혈과 짝이 되는 중요 혈이므로 수행시 힘을 주기도 한다. 이 역시 정의 누설을 방지하는 법 중의 하나이다.
정이란 온몸에 다 있으며 신장은 조절 기준이 될 뿐이다. 신장의 정수가 튼튼한 사람은 억만명 중 한 명 있을까말까 하다. 신장의 정(精)이 맑아지면 온몸의 모든 정(精)도 순수화(純粹化)된다고 봐야한다. 신장은 오직 보(補)만 있을 뿐이라 한다.
끝으로 동공을 열어주신 태사부님, 사부님의 크신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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