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교통사고 피해자 가족 C씨가 나를 찾아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달리 있는 게 아니라며 내게 섭섭한 감정을 털어놨다. 그의 친척은 송파구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치료 중이었다. C씨는 가해자와 합의차 경찰서를 오가던 중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곳은 원래 사고 다발지역입니다." 경찰이 보여준 사고현황 그래프를 보니 친척이 사고를 당한 지역에서 두 달 사이에 세 번이나 인명사고가 났다. 그 뿐 아니라 송파구 지역에서만 3,4년 사이에 22명이나 희생됐다. 올림픽대로와 신천 구역, 풍납동 일대, 미사리 부근에서 집중적으로 사고가 발생한 점을 이상하게 생각한 그는 상담을 신청했다.
"영혼세계를 주관하시는 법사님이 계시는 송파구가 전국에서 제일 교통사고가 많이 나는 지역 중 하나랍니다. 이 표 좀 보십시오. 사고는 꼭 같은 지역에서만 일어납니다. 아무래도 영혼 문제인 것 같습니다." 나는 왠지 미안해져 도표를 살폈다. 그의 지적대로 사고 다발지역은 정해져 있었다.
누구보다 송파구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관내 교통사고를 나몰라라 할 수 없었다. 한동안 교통사고 발생 지역과 피해자 명단을 살핀 뒤 가장 음기가 강한 날을 정해 일부러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교통사고 다발 지역 순찰에 나섰다. 거기서 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간, 도로는 한가했지만 차들은 무서운 속도로 달렸다. 도로 한 쪽에 차를 세워놓고 다발지역을 살피는데 갑자기 하얀 물체가 도로로 뛰어들었다. 차들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췄다. 그러나 그 하얀 물체는 맞은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영가인줄 알았으나 사람이었다.
그때였다. 나무 뒤에서 이 장면을 쳐다보는 이가 있었다. 영가였다. 그것도 한 두 명이 아닌 여럿이 다발지역을 부유하며 희생자를 물색하고 있었다. 나는 놀라 영가들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내자 그들은 헐레벌떡 몸을 숨기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또 다른 지역, 차량 사고가 빈번한 위험 구역이라 각별히 조심해야하지만 운전자는 더욱 속력을 내어 달렸다. 물론 이곳에서도 쉽게 영가를 만났다.
사고 다발지역 순찰이 끝난 뒤 세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첫째 사고 다발지역은 이전에 교통사고로 죽은 영가가 떠나지 않고 하나 둘 모이면서 음험한 기운이 흐르고 있었고, 둘째 정상적인 사람도 그 지역만 가면 충동적으로 무모한 무단횡단을 시도하거나 과속, 신호 위반을 했다.
세 번째가 가장 충격적이었다. 현재는 아스팔트 도로로 변했지만 과거 그 지역은 패총이거나 주인 없는 무덤이었다. 오직 편리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습성으로 사자(死者)가 잠든 패총과 무덤 자리를 간단한 제사도 없이 아무렇게나 파헤치고 아스팔트로 덮었으니 영가가 얼마나 분노했겠는가.
다른 날, 나는 구명시식 가무단을 이끌고 다시 사고 다발지역을 찾아가 교통경찰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범위에서 꽃 한 송이와 술 한 잔씩을 부어가며 영가를 위로했다. 그곳에서 만난 희생자 영가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했다.
"교통사고가 나면 시신만 데려가고 영혼은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러니 영가가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영가를 모셔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술과 꽃으로 위로한 뒤, 염불이나 천도를 염원하는 말을 올리면 된다. 이런 작은 마음의 배려만으로도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도로 위의 구명시식을 무사히 끝내고 후련한 마음으로 법당에 도착하자, C씨는 빙그레 웃으며 "송파는 끝내셨으니 이제 자살사고가 빈번한 반포대교에도 출장 구명시식을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곳도 넓게 보면 법사님 관내 구역인데요"라고 말해 나를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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